교복 입은 형들 틈에 쪼그리고 앉은 내 머릿속에
조금 전에 지나왔던 만화방 창틀에 진열된 만화가
떠오른다.
포기할까 말까...?
학교 가는 길.
내가 다닌 국민학교 가까이 능인중학교의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면 가끔 한 번씩 그 아저씨를 만난다.
좌판을 펼쳐두고 연신 시범 보이기에 바쁜 아저씨.
좌판 위에는 조그마한 시범용 소품들이 많기도 하다.
이미 군데군데 얼룩덜룩한 면수건에 소품들이
들어갔다 나오면, 마술처럼...
때 낀 동전은 금세 금빛으로 반짝반짝!
때 낀 단추도, 누렇던 놋수저도...
모두모두 금빛으로 반짝반짝!
구경하던 능인중학교 형 한 명이 아저씨에게 낙점되었다.
"학생 옷은 깨끗한데... 단추가 이기 뭐꼬...!"
쭈뼛쭈뼛 잡혀나간 형의, 오래 안 닦은 이빨처럼
누렇게 변색된 단추 한 개가 금세 금빛으로 반짝거린다.
"아저씨요... 한 개만 닦으면 우짜는교... 다 닦아 주이소~"
"마... 나머지는 사서 닦아라. 아재 지금 바쁘다. ㅎㅎ"
마지못해 그 형이 하나 사면 여기저기 망설이던 손들이
앞다투어 나오고 그 손바닥엔 10원짜리 동전 하나씩이
올려져 있다.
이때쯤이면 내 망설임도 극에 달하고... 기어이
그 금빛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는 내 손바닥 위에도,
만화도 포기한 그날의 용돈 전부인 10원 동전 한 개가
얹힌 채 앞으로 쑥 내밀어진다.
일어서면... 다리에 새로 피가 도는 저릿함. 연한 현기증.
수업시간 내내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그 안티푸라민
통처럼 생긴 광약을 만지작 거리며
나는 행복하고 또 초조해진다.
친구들 앞에서 끄집어내면 즉시 사라질 테니 자랑하고픈
마음 꾹꾹 눌러 달랜다.
하굣길.
같은 동네 아이들 기다릴 틈도 없고, 날 망설이게 했던
만화방도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냥 오줌 마려운 녀석처럼, 총알이 되어 집으로 달린다.
"엄마~ 엄마! 지갑에 동전 있나?"
"와?"
"얼른 도 봐라~ 내가 반짝반짝 광 내 주께~"
가방을 던지기 무섭게 부엌으로 방 안으로 쫓아다니며
녹슨 것은 모두 다 끄집어내 늘어놓고...
마른걸레 한쪽 북 찢으면 준비완료.
광약 뚜껑을 연다.
안에는 녹색의 고형물질이 담겨있다.
아저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배운 대로, 구두 닦듯
천에 감은 손가락 끝에 살짝 찍어 발라 먼저 10원짜리
동전 양면에 살짝 칠하고는 천에 감싸 문지르기를 수차례.
짠~ 천을 펼치면,
금빛으로 반짝반짝! 눈이 부시다.
내 눈도 덩달아 금빛이 된다.
동전이 금덩이로 변하는 연금술의 환희!
마술을 위한 소품들이 하나하나 차례차례 금덩이로
변하고, 마지막으로 학교 갔다 온 작은형의 교복 단추까지
반짝반짝 금 단추로 변하고 나면...
그때서야 돌아오는 제정신.
뒤로 밀쳐둔 숙제에 일기까지 마음은 바쁘고
연필은 느리고...
며칠 지나서 보면 처음보다 더 못난 모습으로 변하고 마는
불량품 광약이 주던 연금 마술의 짧은 행복.
어디서든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을 보면
내 추억 단지에서 잠들어 있던 광약이 벌떡 깨어나
뭐 닦아서 광낼 것 없나... 두리번 거린다.
첫댓글 추억속의 광약이네요.
어린마음에 그 광약이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능인중학교라는 교명을 들으니
억수로 반갑습니다.
대구의 어느 지명이 나오면 이리도 반갑네요.
이른 아침에 마음자리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침 신기했습니다. ㅎ
내가 직접 해도 저렇게 광이 날까?
의문도 들고요.
오래전에 능인중고등학교 자리엔
아파트가 들어섰더군요.
글을 읽다 보니 어섬프레 저도 기억이 나네요.
경이의 광약.
왜 그 당시 갈거리에서 그런 약을 팔았는지 ㅎ
하여튼 기억력이 대단하십니다.
잊고 있었던 옛 기억,추억을 소환시켜 주시어
감사 드리며 건강하세요.
제 용돈 10원으로 살 수 있는
길거리 제품이 그 당시 여럿
있었습니다.
병아리 두 마리 산 적도 있습니다. ㅎ
그거 저도 사 본 기억이 있지만
저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진 않았는데
호기심이 참 대단한 어린이였네요..ㅎ
인생사 호기심을 잃으면 죽은 목숨이라고도 하는데
마음자리님은 그런 호기심 잃지 마세요.
그 호기심이 저를 이 먼곳까지
데리고 왔으니 잃으면 안 되지요.
요즘은 몇 만원하는 싸구려 천체
망원경에 꽂혀 있습니다. ㅎ
밤 하늘 별들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요.
그런 광약을 저는 못
봤습니다.
먹을 것은 학교 가는 길에
즐비했어요.
반짝이는 것 하면 별이지요.
별처럼 반짝이는 글
많이 올려 주세요.
모범생은 등교길 바쁜 걸음에
사람들 웅성웅성 하는 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ㅎㅎ
여학교 앞엔 그런 아저씨들이
없기도 했을 거구요.
'광약' 이라는 말이 무언가 했습니다.
어린시절 기억이 대단하셔요.
님의 글 덕분으로 수필방 여러분이
모두 천진난만했던 시절로 돌아 가
잠시나마, 어린시절 놀이로 돌아가게 하지요.
물체가 반짝반짝하면,
시선이 가기 마련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헤듯이
낮이면 별은 보이지 않지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발하고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한다는 성경구절 처럼,
요며칠, 이상한 자신을 과시하는 글이 군데군데 덧칠하고 있어요.
광약으로 마음을 닦아주면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잘 기억하는 어린 시절과
수필방 분들의 추억 궁합이
잘 맞는 덕분입니다. ㅎ
요즘 어릴 때 보던 밤하늘을 자주
보다가 별 호기심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재미나요.ㅋㅋㅋ
광약의 쓰임새가
그렇게 동전이나 단추 광을
내서 반짝이게 했군요.
그 아저씨
장사 수완이 좋으신데
때묻은 동전받아
돈좀 버셨을라나.
때빼고
광내고~
라는 말은 농담처럼 흔히 하던 말이었는데
실제로 광약을 본 기억은 안납니다.
마음님~
새벽이도 광내주세요.ㅋㅋ
새벽인 너무 커서 광내기 힘듭니다.
그저 비 많이 오면
'새벽이 좋겠다. 목욕하는 날이네.'
ㅎㅎ 이런 말만 하지요.
아, 새벽이 눈은 자주 씻어 줍니다.
그 눈이 제 마음과 곧바로 연결 되어
있어서.
새벽이 챙겨주시니 고맙다고
새벽이 웃는 사진 보여주랍니다.
광약..오랜만에 기억을 해봅니다.
학교앞 노상장사꾼에게 10원에 사서 참
요긴하게 사용 하였지요.
무엇이던 동이 섞인 쇠붙이 라면 반짝반짝
광양 이었습니다.
무악산님,
잘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바르고 닦으면 금세 광이 나던
그 신기함에 하루 해가 빨리도
저물었어요.
ㅎ 기억납니다
납작한 광약통속의 녹색까지
며칠 지나면 보석처럼 반짝이던 것이 아주 새까맣게 변했었지요
위에서 몇분께서 그랬지만 기억력 대단해요
어디 사진을 찍어둔것도 아닐텐데
능인고는 무엇이 유명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교명이 낯설지 않고 몇번 들어본적이 있어요, 대구의 학교였군요
ㅎㅎ 역시 단풍님도 그 광약
잘 알고 계시네요.
능인고는 불교계 중•고등학교로
그 당시엔 대구 수도산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때 낀 금속을
순식간에 반짝반짝.
그 시절 놋그릇 닦는 게
큰일이던 엄마들의 일손까지 덜어줬겠다 기대했더니..
광약 효과가 며칠을 못갔다구요.
10원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컸나봅니다 ㅎ
그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들 효도하고 싶제?
이거 하나 사가지고 가서 집에
놋그릇 몇개만 닦아주면 그기
바로 효도데이~"
ㅎㅎ 그런데 며칠 지나면 색이
원래로 돌아가니...
그래도 며칠은 반짝반짝 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렷을적에 본것도 같고 또 들은것도 같고
가물가물 합니다 .
몇십년 동안 "광약"이란 그 단어를 접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
요술처럼 반짝반짝 닦인채로 있으면
좋을텐데 다시 색깔이 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위에 풀로라님처럼 저도 엄마 생각이 퍼뜩 났습니다 .
그 아저씨가 팔던 물건들 중에
물약도 있었는데, 바르면 모든
동전이나 동제품들이 은빛이 되는 코팅제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쓸 데도 없는 거 와 자꾸 사오노~"
하시던 제 엄마 생각 납니다.
ㅎㅎ기억력이 정말 좋으십니다.
마음자리님 글을 읽으니 나도 그런 광약을 파는 모습이 떠오르군요.
만화까지 포기한 10원. 정말 아깝습니다.
매일 받던 용돈 10원 덕분에
알게 된 새 세상들이 참 많았습니다.
병아리도, 작은 금붕어도 사서 키워보고...
물론 영화도 많이 보고요. ㅎ
ㅎㅎ 어렴풋이 생각 나네요
광약 ~
용돈을 매일 10원씩 받으셨다면 아주 가난하지는 않으셨나 봅니다
그 기억을 생생하게 재현 해 주시는 마음자리님의 글이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