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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 : 16. 금식할 때
3. 올바른 금식 ( 6 : 16 - 18 )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금식은 비상한 기도의 한 방법으로 비상하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효력 있는 기도의 한 방법이다. 예수께서는 앞에서 언급한 기도의 교훈으로 돌아가고 있다. 역시 금식에서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가식적으로 하나님께 한다는 것이며 참된 금식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마태복음 17: 21 전통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는 세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그 모습이 영화롭게 변화된 사건이 있은 후에 산에서 내려와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던 간질 환자를 고쳐주신 후 “이런 유의 것은 기도와 금식으로가 아니고서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수리아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려 할 때에 금식하였다. 사도행전 13: 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금식은 중요한 기도의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금식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는 모양을 내지 말고 평상시와 같이 행하므로 은밀하게 해야 한다.
마 6 : 16. 금식할 때 -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1] 금식할 때에
모세의 율법에는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모든 백성이 다 금식할 것을 규정했다.
* 레 16: 29-31 – 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31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 레 23: 26-32 –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28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29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30 이 날에 누구든지 어떤 일이라도 하는 자는 내가 그의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31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32 이는 너희가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아흐렛날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 민 29: 7 - 일곱째 달 열흘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바벨론 유수 기간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정기적으로 금식할 것을 규정하였다.
* 슥 7: 3-5 – 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4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 슥 8: 19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국가적 차원의 금식 외에 집단이나 개인의 차원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금식이 행해졌다. 금식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주 앞에서 더욱 겸비해지기 위해서 시행되었다.
* 느 9: 1-2 – 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 시 35: 13 -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 사 58: 3 -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 도다.
* 욘 3: 5 –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리고 헤어날 수 없는 큰 번민과 위기 또는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려는 방법으로 행해졌다.
* 출 24: 18 -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 삼하 1: 12 -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 에 4: 16 -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 행 14: 23 -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이 금식은 구약 시대뿐 아니라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신앙적 측면에서 자기 훈련의 한 방법일 수 있다.
구약 시대에서부터 금식이 단순히 형식적이거나 위선적으로 행할 때는 신랄한 비판이 가해졌다.
* 렘 14: 12 -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 슥 7: 5-6 –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금식하면서도 이웃 구제에 무관심한 사실에 대해 혹독한 비판이 내려졌다.
* 사 58: 1-7 – 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2]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금식할 때에'라는 말이 현재 시상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시 금식은 어떤 특별한 행사라기보다 유대인들이 늘 계속해 오던 행사였다.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한 주에 두 번, 즉 월요일과 목요일 경에 금식하였다.
'안나'와 같은 경건한 여선지는 일상적으로 금식하였다.
* 눅 2: 37 -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금식을 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배고픔과 같은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같은 고통을 자기 의(義)와 경건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하여 자연적 고통에 인위적인 표정까지 가미(加味)하는 위선을 범하지 말 것을 명하셨다.
일상의 신앙생활을 자기 의(義)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전락(轉落)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뤄져야 하는 참된 경건이다.
3]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할 때는 자연적으로 용모가 흐트러지고 자신의 죄악을 통회하고 자복하는 중에 기름을 바르지 않고 재(災)를 뒤집어쓰기도 하였다.
주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자신의 진실한 통회의 표시로써 금식이 행해졌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자신의 종교심을 자랑하고 또 사람의 칭찬과 존경을 받으려는 동기에서 외식적인 금식이 행하여 졌던 것에 대해서이다.
4]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흉하게 하다'는 뜻의 원어 '아파니주신'(*)과 사람에게 '보이려고'라는 뜻인 '파노신'(*)은 그 음운상 비슷한 단어로서 헬라 문학에서 일종의 재담적(才談的) 표현이다. (Robertson).
'얼굴을 흉하게 하는' 것이란 먼지와 재 등을 머리에 뒤집어씀으로써 본 얼굴을 거의 보이지 않게 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다.
* 삼하 15: 30 –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 겔 24: 17 -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바리새인들이 원하던 것은 하나님의 상이 아니라 대중의 칭찬이었으므로 그들은 헛된 영광의 상을 이미 받은 것이다.
여기서 '받다'에 해당하는 원어 '아페쿠신'(*)은 상업 용어로써 자주 쓰이는데, 거기서 이 말은 전액을 영수(receipt)했다는 뜻이다.
외식 자들은 자기들의 구제 활동을 통해 사람의 영광과 칭찬을 구한다.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는 말은 직역하면 '자기 상을 받고 있느니라.'이다. 그들은 '와, 정말 사랑이 많은 사람이야, 구제를 많이 하는 좋은 분이야!'라는 사람의 칭찬을 이미 상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니 하늘의 상은 없다고 하셨다.
6] 금식하는 성도의 자세
* 삼상 7: 6 -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금식은 구제, 기도와 함께 성도가 갖추어야 할 신앙의 3대 실천 덕목이다. 보통 신앙의 정진을 위하거나 급박한 어려움에 대처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청할 때 우리는 금식을 하게 된다.
* 삼하 1: 12 -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 삼하 12: 16, 21-23 –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금식은 금식하는 자가 목숨을 내놓고 하는 비장한 행위다. 그러므로 금식은 엄숙하고 경건한 가운데 행하여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에 금식하는 자의 자세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씀하시고 있다.
(1) 금식할 때는 외식적인 행동을 삼가야 한다.
* 마 9: 14-15 –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 막 2: 18-20 –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 눅 5: 33-35 –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적인 표현으로 자주 금식을 하였다. 이러한 신앙적인 행위는 외식적인 의식으로 흘러 습관화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금식할 때 일부러 슬픈 기색을 하고 얼굴을 흉하게 하였다.
이러한 외식적인 행위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기에 마땅하였다. 신앙은 내적인 반응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뻐기거나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다. 특히 금식과 같은 범상한 신앙적 행위는 더욱 그러하다.
① 금식은 하나님을 상대로 한다.
* 눅 2: 37 -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이것은 매우 평범한 내용의 말이지만 신앙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다. 인간은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고 의지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자신의 행위나 용모, 실력 등을 은근히 과시하며 자랑하며 남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신앙생활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즉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적 열심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 엄밀한 면에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께로만 모아야 한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신앙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도 같다. 그래서 시험에 들기 쉽고 낙담하며 좌절한다.
이러한 신앙적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겠다. 금식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금식은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다. 우리는 금식할 때 모든 외식적인 요소를 내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상대로 하는 성도들이 되자.
* 단 9: 3 –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② 금식할 때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금식은 성도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비상(SOS) 신호다. 예수께서도 지상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금식을 하셨다. 금식은 하나님과 비장한 만남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 욜 2: 12-17 –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의 육체와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해야 한다. 특별히 성도는 금식할 때일수록 자신을 돌아보며 육체를 순결하게 보존하며 영혼을 성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금식이 되는 것이다.
③ 죄를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그분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물리치신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죄인이 있다. 그는 죄인은 죄인이되 자기의 죄를 애통해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죄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죄를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으시고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다. 하나님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셔서 멸시치 아니하신다’
* 시 51: 17 –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금식은 회개를 동반해야 한다. 회개하지 아니한 완악한 죄인의 금식은 금식이 아니고 단식이다. 단식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인간의 목적만을 이루려는 인본적인 행위다. 반면에 금식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는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려는 고귀한 신앙적인 행위다. 우리는 이러한 금식을 위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
(2) 금식이 주는 유익
① 육체의 연단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지듯이 인간의 육체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강건하게 변화한다. 우리의 육체는 간사하여 조금만 방심하여도 나태와 게으름과 안일에 빠져든다. 서 있으면 앉기를 원하고 앉아 주면 눕기를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육체다.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은 모두가 악이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를 위한 모든 식물의 공급을 차단하는 금식을 통해서 우리의 육체를 정결케 하며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② 영혼의 평강
올바른 금식을 하는 성도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환한 빛을 발하고 지극한 평강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영혼이 그와 같이 평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금식은 반드시 기도가 따르게 되어 있다. 기도는 영혼의 양식이다. 풍부한 기도는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 그러므로 금식은 영혼을 부요하게 해준다.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금식하는 자세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공급받기 위해, 그리고 영혼의 평강을 위해 바른 금식을 하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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