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권 동아대 의대 교수; “친구들이 ‘함부로 남의 성(性)을 바꿔서 지옥가겠다’는 농담을 가끔 해도 신이 주신 의료면허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 걱정 안 합니다. 국내 성전환 수술로 유명한 동아대 의대 김석권(金碩權·52) 교수는 신이 범한 오류(?)를 대신 바로잡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며 밝게 웃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난 86년 첫 수술에 성공한 이후 지난달까지 모두 198건의 성전환 수술을 해낸 김 교수는 200건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에서 시술된 성전환 수술의 80%를 김 교수가 해낸 셈.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수술이 156건,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수술이 42건이다. 김 교수의 원래 전공은 두개안면성형으로 속칭 ‘언청이’라 불리는 구순구개열 등 얼굴 기형 치료가 주분야이다.
지난 86년 병원을 찾은 한 트랜스젠더(성전환) 희망자가 “혹시 성전환 수술은 하지 않느냐?”고 시술을 부탁한 것이 이 길로 들어선 계기였다. 당시 국내에는 관련 연구는커녕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조차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문헌과 논문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학문적인 호기심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연민도 컸다. 김 교수는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과 성 정체성 혼란 속에서 살아가던 트랜스젠더들에게 행복한 삶을 선사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성전환 수술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1990년을 전후해 수술 요청자들의 발길이 몰리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사회가 민주화 물결을 타면서 트랜스젠더들도 자신을 드러내고 음지를 벗어났다”고 김 교수는 회상했다. 유럽에선 1930년대부터, 미국에선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성전환 수술 분야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도입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만만찮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김 교수는 90년에 처음으로 시행한 한 여성의 성전환 수술을 지금까지도 뼈아픈 교훈으로 삼고 있다.
“복잡한 수술인데 너무 과한 욕심을 부렸습니다. 가슴부터 시작해서 모든 과정을 한꺼번에 시술하다 보니 무리가 가서 환자가 결국 중환자실에서 1주일을 지내야 했지요. ” 이 일 이후 김 교수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시행할 때는 6개월에 거쳐 2단계로 나누어 수술을 진행해 왔다. 현실적으로 경제적 여건만 뒷받침된다면 국내의 성전환 수술에는 큰 문제가 없다.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에는 1000여만원이,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에는 2000여만원이 든다.
그러나 성전환을 원한다고 아무에게나 수술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20세 이상으로 6개월 이상 호르몬 치료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고, 1년 이상 원하는 성으로 성공적으로 살아왔어야 한다. 정신과 치료 경험과 정신질환 의심 역시 없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부모·형제·자매 등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김 교수는 “예전엔 경제적 여유를 갖춘 30대 중후반의 트랜스젠더들이 병원을 찾았는데 요즘은 20대의 상담 문의도 많다”며 “자녀의 행복을 위해 부모들이 함께 병원을 찾고 수술비를 대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밝혔다.
트랜스젠더들의 직업군도 많이 달라졌다. 80년대만 해도 대부분 저학력의 유흥업소 종사자들이었다는 것. 김 교수는 “요즘은 중소기업 사장, 수퍼마켓 주인, 일반 회사원, 공무원, 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떳떳이 병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를 ‘타고난 성을 거부하고 반대되는 성의 일원으로 지속적으로 살아가려는 일종의 성 정체성 장애인’이라고 정의하는 김 교수는 ‘성전환’이라는 명칭보다는 ‘성확정’이 보다 적합한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수술을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는 육체를 새로 갖추는 일이니 단순히 성전환만으로 보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가 추산하는 국내의 트랜스젠더 숫자는 1000여명으로 인구 5만명당 1명꼴이다. 수술을 성공리에 마쳐도 이들에게는 아직 난관이 남아 있다. 육체적으로는 원하던 성을 획득했지만 호적 정정·개명 등 법률적인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 김 교수는 “우리 사회도 이제 트랜스젠더들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관용과 포용심으로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 연예인도 8년 전 김 교수에게 수술을 받았다.
김 교수는 “그 친구는 당시에도 무척 예뻤다”며 “심지어 ‘미스코리아에 꼭 한번 나가보라’는 농담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트랜스젠더는 5년 전 수술을 받은 30대인데, 그 친구가 요즘 트랜스젠더 인권문제와 관련, 법 정비를 위해 활동 중이라고 들었다”며 “다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많은 돈을 들여 새 삶을 살게 된 만큼 정말 열심히 살기를 늘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수술해준 트랜스젠더들이 결혼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 가장 기쁘다는 김 교수는 “무엇보다도 환자를 깊이 이해해야 하고 한 번의 수술로 끝내지 말고 이후에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 도와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슬하에 2남1녀를 둔 김 교수에게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짓궂은 질문을 던지자 “성 정체성이 확정되어야 삶이 행복해지기 때문에 내 자녀라 할지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수술을 돕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성철기자
첫댓글 우리의대 학장님 ㅇㅇ
이새끼도 완전 개잡의대였네 역시..... 내 짐작대로 여긴 개잡의대 천국이구만 ㅋㅋ 아 씨발 개잡 의대 새퀴
니가 개잡 개잡 그래도 설인보다는 나아 ㅇㅇ 수능점수만 해도 ㄲㄲ
하리수도 동아대 작품ㅋㅋㅋㅋ
저 사람이 학장이었어?? 유명하다고는 들었는데..ㅋㅋ
그 분이 동아의대 출신은 아닐테고 어디 의대 출신이지?
부산의대 출신이다..아직까진 부산대 출신 교수님들이 많지. 고신대도 마찬가지고. 근데 인제대는 서울대 출신 교수가 제일 많더라 ㅎㅎㅎ
동아대 하악하악
난 이거 얼핏 들었었는데, 우리나라 트랜스젠더 대부분은 한명의 의사한테서 탄생되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동아대 학장이었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