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 마을의 대를 잇는 참혹의 세월을 기록하며, 권력과 성애와 생육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담아냈다. 문명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마을 산싱촌. 그곳에서는 몇 대에 걸쳐 원인 모를 목구멍 병이 횡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길어야 마흔까지밖에 못 사는 마을 주민들은 그 병의 기원과 예방법을 파헤치려 대규모의 노력을 기울이는데...’라고 큰 줄거리를 소개하며 중국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인 옌롄커의 대표작이라 소개되고 있어 그 내용이 궁금하기도 해 읽어 본 이 소설책 「일광유년」.
읽는 내내 비록 허구이지만 중국 내에 이러한 첩첩산중 깊은 산골이 묘사되어 있고 촌장이라는 하찮고 알량한 권력으로도 마을 주민들을 위한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생명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전체주의적이고 파쇼적인 행태, 그리고 내용 전반에 흐르는 어두운 진실을 보면서 그리 멀지 않은 예전의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한 독재자에 의해 휘둘리는 삶의 질곡이 있었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한 책이다. 그래서 옮긴이는 이를 ‘이 작품을 관통하는 삶의 풍경은 이처럼 권력에 의해 왜곡된 인성과 욕망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옌롄커는 제1회, 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을 수상했고, 중국 문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성취한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20여 개국에도 번역 출간되는 등 살아있는 거장으로서 이 작품을 쓸 때 심각한 요추 부상을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특별 제작한 특수 선반 위에서 4년여의 긴 시간을 보낸 끝에 이 소설을 완성해냈다고 한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작가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자신의 생명과 영혼을 담아냈다고 하여 ‘발분지작(發憤之作)’의 글쓰기이며, 신실주의(神實主義)가 반영된 작품이라 얘기하고 있는데...
이 책은 총 5부작으로서 바러우산맥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산싱촌(三姓村) 즉 란(藍)씨, 두(杜)씨, 쓰마(司馬)씨의 세 성을 가진 주민들로만 구성된 한 마을의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세월을 그린다. 일찍이 번영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목구멍이 막히는 병에 걸려 죽어갔기에 수명은 마흔이 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은 목구멍 병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촌장의 큰 아젠더에 맞춰 대규모의 노동사업을 펼친다. 그리고 주인공인 쓰마란(司馬藍)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중심으로 무척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고 사랑하는 여자인 란(藍)쓰스와 질투심이 많고 못생긴 여인으로 묘사되는 현 부인인 두(杜)주추이와의 사이에서 펼쳐지는 각종 에피소드를 거꾸로 과거로 올라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꾸로 5부에서부터 1부로 읽어가면 오히려 쓰마란의 일대기를 더 잘 파악할 수도 있다 하겠다.
하여간 우선 1부에서는 현 촌장인 쓰마란의 현재의 일상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를 전개하는데 39세가 된 그가 곧 목구멍이 막히는 병이 발병하자 ‘황제내경’과 같은 전통 의학으로 고치려 하지만 안 되고... 현성으로 나가 병을 고치려 한다. 그러나 병원비가 부족하여 마을 주민 일부가 피부이식을 통해 돈을 보태기도 하고 특히 사랑하는 연인인 란쓰스는 인육장사(성매매)를 하여 돈을 벌어 보태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 장면이 너무도 안쓰럽기만 하다. 쓰마란은 병을 고쳐 돌아왔지만 얼마 후 란쓰스가 성매매 과정에서 옮겨온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된다. 그리고 쓰마란도 조용히 그 곁에서 죽게 되고...
2부에서는 쓰마란이 촌장으로 되기까지와 촌장을 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로서 현 부인인 두(杜)주추이와 결혼하기까지의 얘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쓰마란이 촌장이 되어 마을을 도망치는 여자들을 잡아다 매질하고 강제로 시집 보내는 얘기도 나오고 링인거 수로준설공사라는 대규모 노동사업을 펼쳐 수명을 연장하려 하는데 이때 촌장이라는 알량한 권력으로 피부를 팔아 공물을 바치라는 등 공갈·협박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징발하여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어 나가게 만들고 결국 수로가 완성되지만 오염된 물이 들어오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게 된다.
3부에서는 바로 이전 촌장인 란(藍)쓰스의 아버지 란(藍)바이수이 시절에 벌어지는 이야기로서 수명 연장을 위하여 마을에서 운영하는 산자락에 있는 땅들을 대규모로 갈아엎어 흙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때도 마찬가지로 촌장의 알량한 권력으로 인해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한편 이즈음 현의 시범사업으로 루주임의 은밀한 도움 덕택에 계단식 전답도 만드는 등 흙을 교체하는 사업이 선정이 되고 루주임은 수많은 다른 마을 사람들을 데려와 함께 공사를 마무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이때 루주임에게 여성을 보내 성으로 보답하는 장면도 묘사된다. 그러나 루주임이 공사를 중단시키자 란쓰스를 보내려고도 하고... 결국 공사는 제대로 마무리가 되질 못하면서...
4부에서는 그 이전 촌장인 쓰마란의 아버지 쓰마(司馬)샤오샤오 시절에 벌어지는 이야기로서 쓰마란이 7살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뚜기떼들이 하늘을 덮고 결국 모든 들판이 황폐화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너무도 힘든 대기근의 시기에 접어들게 된다. 한편 이 시절에는 유채밭에서 나온 기름 등을 통해 수명 연장을 꿈꾸고 있었으며 이 유채밭을 지키려 마을 사람 모두가 매달린다. 이때 유채밭을 통해 수명 연장이 잘 안 되면 땅을 갈아엎어 흙을 바꾸겠다는 란바이수이의 얘기도 소개된다. 대기근으로 쥐를 잡아먹고 죽은 메뚜기들을 말려 식량으로 먹고 사는데... ‘무를 곁들인 돼지고기 찜’이라는 쓰마란과 란쓰스와의 어린 꼬맹이 시절의 첫 소꿉장난 로맨스 얘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결국 식량이 모자라자 식솔을 줄이기 위해 촌장의 알량한 권력으로 촌장 본인의 첫째부터 셋째까지 세 아들을 포함하여 마을의 장애아들 수십명을 마누라 모르게 남편들이 산골짜기에 버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장애아이들이 굶어 죽어가자 수천수만의 대규모 까마귀 떼가 달려든다. 마침 장애아들을 찾아 나선 쓰마란이 이들을 찾아내지만 다 죽어가고 있고 그곳에서 까마귀를 잡아 와 식량으로 대용하게 되고... 그러나 소금이 없어 마을 사람들이 배탈이 나자 피부를 팔아 소금을 사와 나눠주기도 하는데 시체가 없어지자 까마귀도 사라진다. 그리고 마을은 다시 대기근에 시달리자 귀환계약서를 만들어 사람들을 외지로 보내 돈을 벌어오게 만들지만...
5부에서는 또 그 이전 촌장인 두주추이의 아버지인 두(杜)상 시절의 이야기로서 은빛수염이 길게 늘어진 84세의 할아버지의 얘기가 소개되면서 유채기름을 먹어 이렇게 장수하고 있다는 얘기를 통해 4부에서 다음 촌장이 유채밭에 매달리는 복선을 깐다. 그리고 촌장이 죽어가면서 아이를 많이 낳아야 마을이 번성한다는 유언을 남기자 그 뒤로 마을 전체가 밤이면 부부는 모두가 사랑에 빠지고 그리고 이후 마을에는 배부른 여자들이 넘치게 된다. 아이들이 밤에 사랑 나누는 엄마아빠 모습을 보게 되는 장면도 나오고... 피부 한번 팔면 2년 치 생활비가 생긴다는 얘기. 아이를 계속 나으려니 아이 젖을 떼게 되는데 그러자 밖으로 나온 쓰마란이 란쓰스 엄마를 만나 함께 양쪽 젖을 두 아이에게 먹이는 첫 만남 얘기. 더 거슬러 올라가 어머니 양수 속에 있는 쓰마란 얘기... 즉 ‘쓰마란은 이렇게 미지근한 차 같은 자궁 안에서 은 바늘이 땅에 떨어지는 거처럼 아주 맑고 미세한 웃음을 지으면서 자궁 밖의 세상과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시험 삼아 머리를 세상으로 내밀어보았다.’라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처럼 이 책은 쓰마란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기 위해서 할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몸부림의 일대기로서 란쓰스와 두주추이 두 여인과의 엇갈린 애증 관계나 각 시대 촌장들의 사유화된 권력의 횡포 그리고 죽음이 여기저기에 산재하는 음울한 모습으로부터 탈피하고픈 아니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아니하였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소설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이 책을 1,000여 페이지 가까이 된다. 백과사전처럼 두껍다. 며칠간을 이 책에 매달리느라 진땀이 많이 났는데 전개된 상황을 반추하여 되돌아보니 기억에 남는 건 두 주인공의 죽음에 찐한 안타까움이 그리고 여기저기 죽어 나가는 모습에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저밈이 밀려오는 건 웬 주책인지 모르겠다.
#일광유년 #옌롄커 #자음과모음 #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첫댓글 오늘은 장마비가 잠시주춤을 하니 무더운 날씨를 보이고 있는 목요일날 오후시간에.
컴퓨터에서 좋은글을 읽으면서 쉬었다 가네요 내일부터는 다시 가을장마비가 내린다고 함니다
대비들 하시고 몸 관리도 잘 하시고 즐거운 오후시간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