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부터 <크로우즈 제로>까지, 일본영화는 독자적인 상상력뿐 아니라 풍부한 감성을 가진 작품으로 꾸준히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그동안 이렇다 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없었다. 이런 와중에 <20세기 소년>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나오코> 등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올해 하반기 개봉을 앞두고 대 반전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일본영화 시장은 한국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다. 하지만 예로부터 위기를 자양분 삼아온 일본 인디영화들이 이틈을 타 속속 개봉했고 이러한 시기에 완성도 높은 일본 영화가 2008년 하반기 국내 영화 시장을 찾는다.강보라 기자
작은 영화의 영리한 선전
2004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정도를 기점으로, 소위 ‘작은 영화’라 불리는 일본 인디영화는 국내 관객들로부터 점진적인 호응을 얻어왔다. 서사에 천착하지 않는 일상성, 유머러스한 만화적 판타지, 섬세하게 재단된 디테일 등 일본 특유의 색깔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은 빠른 속도로 고정 고객군(?)을 형성했고,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은 옹골찬 프로그래밍으로 꽤 쓸 만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다.
하지만 일본 인디영화를 공격적으로 소개해온 수입, 배급사와 미니시어터 관계자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인디영화에 대한 수익이 딱히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수준이었음을 지적한다. ‘일본영화 전성기’는 어디까지나 개봉 편수에 기초한 소수 관객의 입장일 뿐, 이윤을 내는 입장에선 딱히 풍년도 흉년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올 하반기 개봉하는 일본 인디영화들은 스타 감독과 스타 배우를 내세운, 대체로 안전한 라인업을 담보로 한다. 일정 규모의 고정 관객을 확보한 지금, 소수의 수요에 걸맞은 ‘소규모 개봉, 장기 상영’의 배급 방식에 ‘흥행성’을 더해보겠다는 이들의 계산이 읽히는 부분이다.
맥 못 추는 일본 주류 상업영화
일본 인디영화가 국내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채득한 지금, 반대로 상업영화는 국내에서 몇 년째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2006년 국내에서 관객점유율 8.63%를 기록하며 한국과 미국에 이어 3인자로 군림하던 일본 상업영화는 현재 앙상한 편수로 겨우 자리보전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2006년 9월, 100만 관객을 모은 <일본침몰>의 여세를 몰아 섣불리 와이드 릴리즈한 <히어로>가 잇따라 고배를 마신 작년의 사례를 거울삼아, 수입·배급사들이 일본영화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영화 마니아들의 구매력에 대해서는 다들 회의적이다. 원작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한 <20세기 소년> 같은 대작도 일본 작품이라는 이유로 수입이 주춤했을 정도”라는 메가박스 프로그래밍 팀 김수연 과장의 설명은 현재 한국에서 일본 상업영화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가늠케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월부터 3월까지 개봉된 일본영화는 총 7편으로 전체 개봉작의 9%, 시장점유율은 1%를 갓 넘기는 미진한 성과를 남겼다. 굵직한 작품 축에 속했던 <데스노트L: 새로운 시작>도 국내에서는 불패신화의 기록을 수정했고, 최근 개봉한 학원 액션물 <크로우즈 제로> 또한 소재에 따른 좁은 흥행 타깃으로 예상보다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일각에선 일본 인디영화가 국내 관객들의 취향을 한정시켰다고 불평한다.
규모가 작아서 ‘인디’일 뿐, 국내에 들어온 대부분의 일본 인디영화들이 오락적인 요소가 많은 20대 취향의 상업영화였다는 것이다. 일본의 독특한 문화적 감수성이 국내 관객들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것도 - 정확히는 소수 마니아들의 정서에만 부합한다는 것도 -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주장이다. 중장년층 세대 근저에 남아 있는 일본 문화에 대한 반감, 일본에 비해 현저히 좁은 부가판권 시장, 일본영화에 있어 특히 횡행하는 네티즌들의 불법 다운로드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2004년 1월 일본영화 시장 전면 개방 이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지브리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국내 일본영화 역대 흥행 톱은 <러브레터> <주온> <쉘 위 댄스> 같은 민망하리만치 해묵은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영화가 취약한 애니메이션이나 공포물, 한국 취향에 맞는 최루성 멜로만이 간간이 잽을 날릴 뿐, 한국 관객 앞에서 일본 상업영화는 아직 이렇다 할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류용 기획 영화가 일본에서 줄줄이 참패하고 있는 지금, 서로의 시장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심미안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일본영화는 계속된다
올해 일본 3대 영화사인 도호, 도에이, 쇼치쿠는 모두 제작과 배급 규모를 축소 중에 있다. 관객점유율을 기준으로 본다면 현재 일본영화 시장은 한국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다. 반가운 것은 예로부터 위기를 자양분 삼아온 일본 인디영화들이 이틈을 타 속속 개봉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기에 완성도 높은 일본 영화가 2008년 하반기 국내 영화 시장을 찾았다.
우선 총 제작비 600억 원, 3부작 시리즈라는 스케일을 내세운 <20세기 소년>을 필두로,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등 대작 일본 장르영화가 차례로 한국을 찾는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 청춘 멜로의 선전은 다소 수그러진 듯, 말랑한 소녀 배우들의 득세 속에 우에노 주리, 히로스에 료코 등 청춘스타가 나오는 영화들이 간신히 자리를 꿰찼다. 기타노 다케시, 수오 마사유키, 야마시타 노부히로 등 국내에서 몇 차례 검증을 마친 감독들의 작품도 무사히 국내에 착륙했다. 국내와 개봉 시기가 같거나 비슷한 따끈따끈한 작품들이 대부분으로, 이것들은 최근의 일본영화 경향을 파악하는 단초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감 만족, 장르영화
<20세기 소년>을 비롯해 <쿠로사기>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대기 중!이시우 기자
거대 프로젝트로 부활하다
<20세기 소년>| 2008 | 감독 츠츠미 유키히코 | 출연 가라사와 도시아키, 도요카와 에츠시, 도키와 다카코 | 수입 (주)메가박스 | 개봉 9월
장장 8년의 발행 기간, 한국을 포함한 독일, 프랑스 등 12개국에서 출판, 전 세계에서 무려 2천만 부 이상 판매… 말만 들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수치를 자랑하는 이 엄청난 베스트셀러의 이름은? 바로 <20세기 소년>이다. 평범한 편의점 주인인 겐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과 이 모든 일들이 그가 어릴 적 썼던 ‘예언의 서’에 기인해 있다는 내용이다. 겐지는 ‘예언의 서’에 2000년을 기점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떠올리고, 친구들과 함께 배후 조직의 리더인 ‘친구’라는 인물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다.
만화 <20세기 소년>은 매력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20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쉽사리 영화화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제작사는 원작의 작가인 우라사와 나오키에게 각본을 맡겨 이를 3부작으로 나눠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영화는 총 제작비 60억 엔, 해외 올 로케이션 촬영, 또 주요 출연진만 300여 명에 달할 만큼 원작의 아성에 걸맞은 거대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제작사는 원작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를 끌었던 작품인 만큼 작년 아메리칸 필름 마켓부터 시작해 올해 칸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판매를 주도해왔다. 그만큼 자국 내에서 <20세기 소년>에 대한 기대감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또 이 영화가 처음 봉준호 감독에게도 연출 제의가 들어왔던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은 “원작의 팬과 일반 관객 모두에게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라며 의지를 표명했다.
눈 떠보니 정신병원 독방
<콰이어트 룸에 어서 오세요> | 2007 | 감독 마츠오 스즈키 | 출연 우치다 유키, 아오이 유우 | 수입 스폰지 | 개봉 하반기
작가인 아스카는 어느 날 눈을 뜨자 자신이 정신병동 독방인 ‘콰이어트 룸’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담당 간호사를 통해 자신이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하려 했다는 얘기를 듣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스카는 폐쇄된 정신병원에서 거식증 환자 미키를 포함해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그곳의 생활에 점차 익숙해져갈 때 즈음, 다시금 콰이어트 룸에 감금된 자신을 보고 경악한다. 마츠오 스즈키는 자신이 집필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던 동명 원작의 소설을 토대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9년 만에 다시 스크린에 진출한 우치다 유키의 모습뿐 아니라 아오이 유우, 츠마부키 사토시 등의 조연을 보는 게 쏠쏠한 재미를 준다.
뛰는 사기꾼 위에 나는 사기꾼
<쿠로사기> | 2008 | 감독 이시이 야스하루 | 출연 야마시타 도모히사, 호리기타 마키 | 수입 폴인시네마 | 개봉 하반기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기꾼이 존재한다. ‘흰 사기꾼’(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한 사기꾼), ‘붉은 사기꾼’(이성을 유혹하는 사기꾼), 그리고 이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검은 사기꾼.’(쿠로사기) <쿠로사기>는 2006년 일본 TBS에서 방영된 동명 드라마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일본 내에서 드라마를 영화화하는 건 드문 일이지만, 원작의 인기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영화는 원작의 옴니버스 형태에서 탈피해 쿠로사기의 개인 에피소드에 중점을 둔 범죄영화로 변모했다. 일본 내에서는 인기 드라마의 리메이크, 아이돌 스타의 영화 데뷔 등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며, 올해 3월 개봉해 박스오피스 5위권 내에 드는 성적을 올렸다.
의료계를 둘러싼 음모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 2008 |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 출연 다케우치 유코, 아베 히로시 | 수입 폴인시네마 | 개봉 하반기
60%의 성공률을 100%로 이끈 전 일본 최고의 수술진이 있다. 그들을 세상 사람들은 ‘글로리어스 세븐’이라 부른다. 하지만 명성에 걸맞지 않게 갑작스럽게 수술 실패가 이어지고, 그 사이에 음모가 개입되어 있음이 밝혀진다.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은 일본 내에서는 <팀 바티스타의 영광>이란 제목으로 4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개봉 4주째 100만을 돌파하며 흥행 기록을 세웠던 이 작품이 국내에서는 어떤 반향을 이끌지 주목된다. 원작에서 남자였던 다구치 역에 여배우인 다케우치 유코가 캐스팅된 것도 이례적인 일.
구로사와 기요시의 미스터리 공포물
<로프트> | 2005 |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 출연 나카타니 미키, 도요카와 에츠시 | 수입 미로비전 | 개봉 9월
<로프트>는 2005년 부산영화제에 ‘아시아의 창’ 부문에 출품되어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한물간 베스트셀러 작가 레이코는 요양차 떠난 시골에서 고고학자 요시오카를 만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나 요시오카가 운반하던 미라의 원혼 때문인지 레이코는 가위 눌림에 시달리고, 점차 알 수 없는 공포가 그녀를 위협한다. 미로비전에서 일본과 공동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까다로운 국내 수입 절차에 의해 개봉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 장르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연출에 참여한 데다가 이 영화를 통해 2006년 호치영화제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카타니 미키의 연기력은 영화 팬들에게 충분히 매력 넘치는 요소다.
일본영화의 또 다른 심장
일본 장르영화들은 만화나 소설 등에서 그 생명력을 수혈받는다. 일본은 만화와 문학 등의 콘텐츠가 탄탄할 뿐만 아니라 오타쿠 문화를 바탕으로 폭넓은 팬 층이 갖춰져 있다. 이는 제작사 입장에서 투자하기에 안전한 장치인 셈이다. 이들 원작을 영화로 제작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원작의 세계관과 줄거리,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방식으로 <20세기 소년>과 같은 경우다. 둘째, 원작을 바탕으로 변형을 시도하는 것인데 <텐텐>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영화들은 간혹 의도와 달리 원작의 매력을 살리는 데 실패하지만, 어색한 특수효과와 잘못된 캐스팅마저 재미로 받아들이는 원작의 팬들이 있는 한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유주하 기자
젊음, 그 한 편의 드라마
청춘영화, 멜로영화, 성장영화.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혈기왕성한 드라마 열전강보라 기자
‘용서받지 못한 자’의 패자부활전
<나오코> │ 2008 │ 감독 후루마야 도모유키 │ 출연 우에노 주리, 미우라 하루마 │ 수입 ㈜데이지엔터테인먼트 │ 개봉 8월 7일
열두 살 때 외딴 섬으로 천식 요양을 간 나오코는 그곳에서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열 살 소년 유스케를 만난다. 하지만 물에 빠진 나오코를 구하려던 유스케의 아버지가 목숨을 잃게 되면서 이들 사이엔 쉽게 메워지지 않는 감정의 골이 생긴다. 그로부터 6년 후, 고교 육상계의 천재 마라토너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유스케. 나오코는 우연히 만난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지만 그는 “벌써 잊어버렸어.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 두 사람의 복잡한 사연을 알게 된 고교 육상부의 니시우라 감독은 나오코를 육상부 매니저로 영입하며 본격적으로 이들의 관계 회복 작전을 펼친다.
2006~2007년 이후 뜸해진 일본 청춘 로맨스의 부활일까. <스윙걸즈>(2004) <노다메 칸타빌레>(2006) <라스트 프렌즈>(2008)로 영화와 TV 드라마를 넘나들며 코미디의 재능을 보여온 우에노 주리의 모처럼 진지한 내면 연기가 국내 팬들에게 주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유스케 역의 미우라 하루마는 “달리기 장면에는 거짓이 없다. 실제로 100㎞ 이상 달렸다”고 강조, 리얼한 연기를 강점으로 내세우기도. ‘역전 마라톤’을 소재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약 8년에 걸쳐 장기 연재된 만화 <나오코>가 원작으로, 만화의 열렬한 팬인 인기 록 밴드 ‘포르노 그래피티’의 보컬 오카노 아키히토가 달콤한 러브 발라드 ‘당신이 여기에 있으면’을 주제가로 헌정(?)했다. 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니카츠 100년 전’ 대표작으로 초청돼 오픈 즉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개봉 전부터 흥행을 예고했다.
밥 딜런, 우리를 치유해주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2007 │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 출연 나가야마 에이타, 마츠다 류헤이, 하마다 가쿠, 세키 메구미, 오오츠카 네네 │ 수입 시네마 밸리 │ 개봉 9월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2006)의 꽃미남 스타 에이타의 첫 주연작으로 작년 한 해 일본에서 6개월 이상 롱런,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원작자인 일본의 지성파 신예 작가 이사카 코타로는 후에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감명받은 나머지 자신의 소설 일부를 수정했다고 전해진다. 부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유학생 도르지, 순진한 시골 청년 시나, 괴짜 바람둥이 가와사키 등 독특한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 아픔과 치유의 과정이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가 들려주는 따스한 멜로디 아래 조용하게 펼쳐진다. 치밀한 암시와 수수께끼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반전은 짙은 여운과 함께 영화의 엉뚱한 제목을 이해시킨다. 12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F4, 아직 죽지 않아!
<꽃보다 남자> 2008 │ 감독 이시이 야스하루 │ 출연 이노우에 마오, 마츠모토 준, 오구리 슌, 마츠다 쇼타, 아베 츠요시 │ 수입 ㈜누리픽쳐스 │ 개봉 8월 28일
‘전 세계 14개국 5800만 부’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기록한 청춘만화의 고전 <꽃보다 남자>가 드디어 영화화되어 국내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 1995년 한 차례 영화로 제작된 바 있는 <꽃보다 남자>의 신 버전으로, 일본 안방을 달궜던 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그대로 합류했다. 이미 일본에서는 지난 6월 개봉해 로맨스영화 중 일본 내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기록 갱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꽃보다 아름다운 꽃미남 4인방 F4와 츠쿠시의 위기일발 러브 스토리는 스크린에서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일본은 물론 라스베이거스, 홍콩, LA를 아우르는 화려한 로케이션, 원작과 TV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았던 츠쿠시와 츠카사의 졸업 이후 이야기가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해 영화만의 재미를 더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배웅하는 생(生)
<오쿠리 비토>(가제) │ 2008 │ 감독 다키타 요시로 │ 출연 히로스에 료코, 모토키 마사히로 │ 수입 ㈜케이디미디어 │ 개봉 10월
‘연령 무관, 고소득 보장, 여행의 조력자 구함.’ 누구나 지원 가능해 보이는 수상한 문구. 다름 아닌 사체를 관에 납입하는 ‘납관사’를 찾는 구인광고다. 악단의 해산으로 졸지에 백수가 된 첼리스트 대오는 고향으로 내려와 일자리를 찾다 급한 김에 납관사 견습생으로 취직한다. 아내 미카에게는 관혼상제에 관련된 일이라고 일단 둘러댄 상태. 미인이라 생각했던 청년, 어린 딸을 남기고 죽은 부인, 많은 키스 마크가 배웅을 대신한 할아버지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임종을 돕는 대오의 이야기가 생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과 함께 유쾌하게 펼쳐진다. 히사이시 조 음악감독의 감미로운 첼로 선율이 풍부한 양감을 만들어내는 한편, 납관사의 아내 미카 역으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히로스에 료코가 눈을 즐겁게 한다.
우린 그때 행복했을까?
<우리 가장 사랑한 순간> │ 2007 │ 감독 이마이 나츠키 │ 출연 아라가키 유이, 미우라 하루마, 고이데 게이스키 │ 수입 폴인시네마 │ 개봉 10월 2일
여름방학이 다가오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아낸 미카는 저장했던 모든 문자 메시지와 전화번호들이 삭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내가 다 지웠어. 지우면 안 되는 남자친구 번호라도 있는 거야?” <우리 가장 사랑한 순간>은 고지식할 정도로 순수한 고교 1년생 미카와 일찍이 삶의 질풍노도를 경험한 동급생 히로, 다정다감한 성격의 명문대생 유우를 둘러싼 가슴 시린 첫사랑의 기억을 최루성 멜로로 그려낸다. ‘느림과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일본 멜로의 전형에서 벗어난, 과거의 추억을 매개로 한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학창 시절 순수했던 풋사랑의 기억을 끌어내며 국내 관객들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 가리는 멜로영화
‘한국에서도 통했다’
투명한 설원에서 펼쳐지는 가슴 시린 러브 스토리 <러브레터>를 시작으로, 이와이 슈운지 특유의 서정적 영상과 소박한 매력은 이후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무지개 여신>등을 안정적으로 들여왔다. 선이 가는 여배우 히로스에 료코의 힘은 <비밀> <철도원> <연애사진>을 성공시키며 일본 멜로에 대한 적응력을 길렀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또한 맑은 영상과 작품성으로 입소문을 통해 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마니아층을 형성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일본에서만 통했다’
50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는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완성도와 화제성에 비해 일색 짙은 무거운 주제로 한국 관객의 큰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바이브레이터>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역시 본국의 인기와는 달리 감정의 고저가 확실한 정통 멜로에 길들여진 우리에게는 싱거울 만큼 평탄한 전개로 외면을 받았다. <메트레스 연인>은 성적으로 지나치게 자유로운 묘사가 부담스럽게 다가와 흥행에 실패했다. 조숙현 기자
이 영화에 주목하라, 감독 열전
11년 만에 돌아온 수오 마사유키를 필두로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와 차세대 감독으로 손꼽히는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신작이 하반기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재미와 작품성을 고루 갖춘 명감독의 영화 속으로 풍덩!이시우 기자
11년 만의 전격 귀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 2007 | 감독 수오 마사유키 | 출연 가세 료, 야쿠쇼 고지 | 수입 위드시네마 | 개봉 하반기
<쉘 위 댄스>(1996) 이후 무려 11년 만이다. 전작에서 사교댄스로써 중년 남성의 성취감을 표현해 전 세계 팬들과 평단을 감동시킨 수오 마사유키가 신작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발표한다. 주인공인 뎃페이는 어느 날 만원열차를 탔다가 여고생을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자칫 범죄자의 오명을 쓸 위기에서도 뎃페이는 결백을 주장하며 2년간의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한다.
“스스로도 전직 영화감독이라 생각했다”라 할 정도로 연출에 대한 욕심이 희미해져갈 무렵, 수오 마사유키를 돌려놓은 건 신문에 난 어떤 기사 때문이었다. 그는 여기서 한 남자가 억울하게 치한으로 몰려 무죄를 입증하는 데만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기사를 보게 되고, 이를 영화화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다뤘던 ‘아마추어가 어느 날 다른 세계에 뛰어든다’와 같은 맥락에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마추어였던 그 역시 ‘재판의 프로’가 되기 위해 만 3년 동안 법정 관계자들을 만나고, 200회 이상 재판을 방청하며 취재를 계속해왔다.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일본 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작년 일본에서 개봉되어 2007 베니스영화제, 2008 전주국제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일본 대표작으로 출품되기도 했다. 게다가 2008 키네마 준보 어워즈와 2008 요코하마필름 페스티벌에서 작품상, 감독상, 최우수 연기상 등을 휩쓸었고, 흥행 면에서는 총 11억 엔의 수입을 거두는 성공을 이루는 등 관객 및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기타노 다케시의 원맨쇼
<감독 만세> | 2007 | 감독 기타노 다케시 | 출연 기타노 다케시 | 수입 스폰지 | 개봉 10월
<다케시즈>에 이어 감독 자신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작품. 그는 시작부터 자신의 특기인 폭력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멜로부터 오즈 야스지로 풍의 정극, 호러, 시대극 등 다른 장르의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실패로 끝나고 다케시는 고민에 빠진다. 그가 CG를 사용해볼까 고민하던 중, 지구에는 운석이 충돌하고 영화는 SF적인 스토리로 진행된다. 이처럼 흥미로운 면들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감독 만세>는 작년 겨울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 흥행에서는 부진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감독, 각본, 출연, 편집까지 1인 4역을 소화해내고 괴물 같은 역량을 뽐내며 작년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칸영화제의 영광을 잇는다
<도쿄 소나타> | 2008 |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 출연 가가와 데루유키, 야쿠쇼 고지 | 수입 스폰지 | 개봉 하반기
<도쿄 소나타>는 2008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출품되어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당시 “정확하고 완벽한 숏에 배우들의 연기력도 빛을 발했다”는 등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그동안 공포, 액션 등의 장르영화로 유명해진 기요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도쿄 소나타>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실상 서로에게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 소통의 부재는 곧 가족에 균열을 일으키고, 평범해 보이던 가정을 붕괴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칸에서의 영광을 이어 일본 및 국내에서도 조용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10명의 명감독들이 펼쳐내는 꿈
<열흘 밤의 꿈> | 2007 | 감독 시미즈 다카시, 야마시타 노부히로 | 출연 마츠야마 겐이치, 고이즈미 교코 | 수입 시네마밸리 | 개봉 9월
일본의 찰스 디킨스로 평가받는 소설가 나츠메 소세키에게 바치는 헌정 영화, <열흘 밤의 꿈>은 1908년 발행된 동명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일본의 유명 영화사 닛카츠에서 제작을 담당했으며 10명의 감독에게 모두 동일한 제작비를 제공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제1야(夜)’부터 ‘제10야(夜)’까지 총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치카와 곤 같은 노장부터 니시가와 미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같은 신진까지 다양한 감독들이 각각 연출을 담당했다. 영화는 ‘꿈’을 주제로 판타지와 미스터리 등의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백 년간 사랑을 나누는 부부의 이야기,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조각하는 남자 등 흥미로운 소재들로 가득 차 있다.
떠오르는 신예 감독의 기대작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 2007 |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 출연 카호, 오카다 마사키 | 수입 스폰지 | 개봉 7월 24일
<린다 린다 린다>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작가 와타나베 아야가 만난다면?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이 그 해답을 알려줄 것이다. 이 영화는 1994년부터 연재가 시작되어 일본 내에서 140만 부를 판매한 순정만화 <천연 꼬꼬댁>을 토대로 전교생이 6명밖에 안 되는 분교에서 시골 소녀와 도쿄에서 온 전학생과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노부히로 감독과 아야 작가는 청춘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또 주인공 미기타 소요 역은 신인 배우 카호가 맡았는데, 그녀는 일본 아카데미 등에서 신인 여배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 감독에 주목하라, 야마시타 노부히로
배두나의 일본 진출로 화제가 됐던 <린다 린다 린다>를 아시는지? 이 영화를 통해 국내에 알려진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지루한 삶>(1999)을 통해 11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Off Theater’ 부문 대상 수상과 동시에 전 세계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우울한 생활> <바보의 하코선> 등 ‘덜 떨어진 남자 3부작’을 통해 엉뚱한 유머 감각과 묘한 여운으로써 자신만의 공식을 완성했다. 그의 영화 중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과 <마츠가네 난사사건>는 ‘키네마 준보’에 2007 일본영화 베스트 2위와 7위로 각각 이름을 올렸으며, <마츠가네 난사사건>은 11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푸르지오 관객상을 수상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차세대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조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