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시 모음 90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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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셀은
임경숙
두드릴 수록 더 단단해지는 정열의 망치로
나를 못질하고는
네 안에서만 뿌리내리게 하는
거대한 혼돈이여
어둠 보다 더 짙은 어두움으로
한 덩이의 양초가 되어
타들어 가는 촛불의 노래
네가 내 안에 점점 스며들어
살에 꽂히고 뼈에 꽂히어 파도칠 때면
난 출렁이는 넓은 바다가 되고
함께 으르렁거리다 부딪혀 부서질 때면
금 빛나는 눈부신 모래알이 된다
나의 미셀은
빗소리, 천둥소리, 발자국 소리
눈 내리는 소리로 녹아 내리거나
바람 소리 되어
어둔밤 산골에 떠돌다
아침 이슬로 살며시 내곁을 떠나가곤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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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재 된장국 타령
임경숙
인왕산 기슭 꼬불꼬불 잘도 숨겨진
달동네 꽃동네 숨어있고
점장이네, 당골네. 점순이네 .털보네 많기도 하이
호박 한 덩이 사들고 오다
쓰레기 통만한 화장실 앞 길가에 두었는디
열쇠로 문을 따는 순간
호박은 굴러굴러 골목을 따라
휘몰아 굽이쳐 앞 꺾어 뒤 꺾어
잘도잘도 달아난다
평지에서 한숨 쉬는 저 방자한 놈 보았나
엣다 !이놈 목덜미 꽉 쥐는디
호박은 물렁 물렁 스폰지 다 되부렀재
버릴까 하다 괘씸하여 된장국을 끓였는디
내 이빨이 또한 스폰지 되어 물커덩 물커덩 하구마니라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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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임경숙
올망졸망한 기와 지붕 뻥 뚫리어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달동네는 색색의 비닐 우산을 쓰고
복돌이네 앞마당 정자나무는 이 달동네의 제일 높은 빌딩이라네
느티나무는 전등불 대신
날마다 수천의 샛노란 낙엽을 억수로 퍼부어
이 골목길 웬 꽃불놀이 인가
파란 비닐 지붕에도 샛노란 낙엽불 이라니…….
아이들이 뒹굴뎅굴
복슬강아지도 떨어지는 잎새를 쳐다 보다
그만 두 눈에 낙엽이 불붙었구나
강아지의 방울이 낙엽 방울이로구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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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
임경숙
보이는 모든 것에 감각이 닿아
전화기를 대면
귀가 근질근질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면
손끝이 간질간질
입안에 숟가락을 넣으면
혀끝이 근질근질
길을 걸을 때 땅을 디디면
발바닥이 꼼지락 꼼지락
아, 미칠 것만 같은 근지러움이여
만약 공기에서조차
심장의 호흡이 간지럽다면
난 어떻게 이 감각들을 견디어 내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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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빠리여, 파리여, 쎄느여!
임경숙
빠리는 거대한 영화관 이지
도시 전체가 카르멘의 스토리가 되는....
젖은 목소리, 적당한 유혹, 끈적이게 다정해지는 탱고
멋있게 죄짓고 쬐금 우수에 젖는 명배우처럼
방랑자의 배낭을 추억과 익살로 가득 채워주는
쎄느 강의 필름이여
파리는 정원이 있는 화장실이지
거기에서는 마음놓고 배설해도 좋은
구린내가 나도 아리송한 악취와 향수가 뒤섞인 곳
거짓과 자연스러움이 어우러진 자유로운 땅
파리여, 너 내 눈물을 그 얼마나 쏟아 내었던고
빠리여, 잘도 바또무슈는 달려가지
이방인의 향수엔 아랑곳없이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노트르담을 지나
로멘스를 뿌린 추억의 거리여
자유와 평등과 박애 정신을
가장 먼저 씨뿌린 거대한 도시
인간의 순진함과 더러움을 모두 껴안고
쎄느강은 재빠르게 흘러가네
샹송 따라 저 멀리 지나가네
「바또무슈」 돛단배, 유람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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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사람
임경숙
외로움은 곁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가 아니라
그리워 하는이를 내 곁에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배 곺음은 참으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먹지 못한 탓이다
참으로 그리워 할 이 조차 없는 외로움
참으로 풀잎 하나 넣을 수 없는 굶주림
처절한 고통에 감히 불처럼 뛰어들 수 있는가
끝까지 맞부닥 칠 수 있다면
부서지고 깨어져서도 살아 숨쉴 수 있다면
고귀한 영혼을 더 이상 그 무엇으로 치장하랴
자신의 가장 최후의 욕망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자
깨어서 활활 불꽃으로만 남아있는 자
맑은 고독에 자신의 넋을 씻어내는 자
정녕 아름답도다
자신을 시간처럼 뛰어 넘어
구름으로 모든 것을 지나가는 이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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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놀이
임경숙
하얀 종이엔 말들의 미끼를 던지고
옷감이 있으면 실루엣의 가위질을 하고
캔버스에단 선과 색채의 에드벌룬을 띄우며
난 삐에로 되어
살고 꿈꾸며 노래하고 발광 지랄을 떤다
보이는 모든 것으로
놀이를 하고 축제의 판을 벌이자
사건을 끝없이 저지르면서
충분히 썩어 문드러지자
그리하여 발효의 때가 오면
힘찬 화살이 되어
세상 천지를 떠돌다 높이 솟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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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예술가의 노래
임경숙
나는 예술가 예술가 지망생이네
램프 아래 상념은 살랑거리는 수선화 무리들이고
불꽃과 함께 이 생각들 얼마나 많이 재 되어 사위었던고
나는 예술가, 예술가를 꿈꾸는 말썽꾸러기이네
물감만 보면 뿌리고 싶어
미끈한 등허리 이건 ,흰 외이셔츠건, 철도길 이건 간에
나는 예술가, 예술, 개술, 공술 하다가 병들었다네
해질 녘이면 황혼을 따라 산등성이를 떠돌다 길을 잃고
어둔 밤이면 주막에서 취하는 것이 좋아 술로써 만신창이가 되네
나는 에술가, 쥐뿔도 없는 가난뱅이네
주머니를 털어 마셔도마셔도 줄지 않는 꿈의 호수를 샀는데
꿈은 별 따라 호수를 떠나고 호수는 텅빈 구렁텅이네
나는 에술가, 예술가의 기질로 예민하게 산다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에도 온몸에 솜털이 나고
붉게 물든 단풍 한닢 떨어지기만 해도 왼 종일 외로워한다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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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안데스, 안데스
임경숙
오! 안데스
만년설로 눈부시게 순결한 침보라소 산
보았나
산꼭대기 믿을 수 없는 신비로운 상아의 산을....
과야낄은 일년 내내 여름 뿐 이고
끼또는 사시사철 겨울 뿐 이며
리오밤바엔 봄과 가을 뿐 인
한 나라에 사계절이 동시에 있는 곳
그 산꼭대기 맨발의 인디오
판초와 모자를 쓰고
빗속을 꽃뱀처럼 지나가네
보았나
하늘이 동화가 되는 놀라운 광경을
눈송이 휘날리면서
태양이 빛나고
비와 우박이 흩뿌려 지는데
무지개 떠있어 모든 것이 동시에 꽃피는 땅
오! 안데스, 안데스
숨막히는 이 아름다운 황홀 누가 지었나
누가 이토록 거대한 예술품을 완성하였나
달려도 끝없는 평원엔
한가로이 양떼들 풀을 뜯고
화산이 치솟는 불기둥의 광채를
10
☆★☆★☆★☆★☆★☆★☆★☆★☆★☆★☆★☆★
오 알프스 알프스
임경숙
오! 알프스
빛나는 황금의 유리성
안데스보다는 자그마하나
정교하게 깎아지른 첨예한 조각품
피레네 치마 바위처럼 억세지는 않으나
날카롭게 우뚝 선 우람한 자태
오! 알프스, 알프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네
11
☆★☆★☆★☆★☆★☆★☆★☆★☆★☆★☆★☆★
백제 화장터에서
임경숙
살이 탄다 탄다 탄다
뼈가 탄다 탄다 탄다
영혼이 탄다 탄다 탄다
사랑이 탄다 탄다 탄다
지글거리며 탄다, 녹아내린다, 부서진다
재되어 흩날린다
부타도, 그리스도도, 윌리엄 브레이크도
윤동주도 가버린 지금
불교를 있게 하고
그리스도교를 있게 하고
문학을 있게 한 소박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통곡과 아픈 눈물을 뒤에 두고
오늘도 한 인간이 태어나고
또 한 인간이 죽어
한줌의 흙으로 되돌아간다
12
☆★☆★☆★☆★☆★☆★☆★☆★☆★☆★☆★☆★
부활절
임경숙
솔바람을 타고
머얼리 바다를 건너온
봄의 새악씨여
하늘가에는
당신의 수줍은 미소가
붉게 물들어 있고
담장 너머
돌 틈새에도
처녀적 연정이 깃들어 있네요
오늘은 부활, 부활절 이래요
신부를 위한
새싹들의 휘황 찬란한 무도회
온갖 꽃들도 예쁘게 치장을 하고
성당에서는
할렐루야가 울려 퍼지고
성채도 뜨겁게 배령 했네요
오늘은 보활, 부활절이래요
봄이 가고 오듯이
사람도 죽음의 문을 넘고 다시 살아온대요
예쁜 영혼의 꽃다발을 안고서
다시 돌아온대요
꼭 온대요
13
☆★☆★☆★☆★☆★☆★☆★☆★☆★☆★☆★☆★
모든 것은 끝내야만 한다
임경숙
인생 ,어디 까지 갈 것인가
현실에서는 자
이기고 딛고 일어서는 자
나는 망가져야 하나
아니면 보다 더 억세져야 하나
궁핍과 처절함과 자학
Iris 같은 슬픈 사랑
미친 나, 바보 같은 나, 지겨운 사랑
모든 악, 모든 위선, 진저리나는 유혹들
모든 것을 끝내야만 한다
일을 통해서라도 구원받고 싶다
고통을 주시어 선한 길로
이끄시는 내 하느님
날 다시 살려 주소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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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사랑
임경숙
아아, 바수어도 또 바수어도
살아남은 나의 불씨여
어디를 헤매이다 너는 이 세상 한 복판에서
나를 불태우는가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어둡고 깊은 심연의 구렁텅이에서
나는 너를 기다리노라
기쁨도 없이 ,슬픔도 없이
외롭게 마주선 영혼의 굶주림 속에
내 생명은 피를 삼키며 너를 기다리노라
그러나 공포, 그러나 쓰라린 몸부림
너는 나를 헛된 욕망에서 깨어나게 하려고
불꽃을 안고
내 안에서 서럽게 흐느끼는가
15
☆★☆★☆★☆★☆★☆★☆★☆★☆★☆★☆★☆★
진실이 아닌 것의 중독
임경숙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려고 말을 하는가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려고 만나는 것인가
사람들은 더 절망하려고 사는 것인가
얼마만큼을 더 침몰하고 내던져져야만
자신의 비천함을 알 수 있을까
생명으로의 무서운 시행착오여
소름끼치는 악으로의 마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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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의 지붕 밑
임경숙
비 내리는 빠리의 저녁 하늘
어둠은 거리에, 지붕에, 문지방에
그리하여 내 어두운 마음 속
밑바닥까지 서서히 서서히 다리를 놓네
무엇 때문에 흘리는 이 촉촉한 눈물 비인가
세상은 온통 상喪을 당한 듯 침통해 있고
무덤 속 깊은 정적만이
이따금씩 가래침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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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꿈
임경숙
마음을 버리기가 힘이 들고
욕망을 버리기가 힘이 들며
두척 안 되는 목숨 부지하기가 갈 수록 더 힘이 든다
이리도 오랜 세월을 헤매야만 하는 나는
너무도 어찌 살아야 될지를 몰라서 일까
걷히지 않은 미망 속에서 아직도 뜨겁게 눈물 흘리는
내 열병은 어느 날 문득 재가 되어 바스라진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소중했던가
길지 않은 목숨, 그러나 결코 짧지도 않은 목숨
질펀한 속세의 온갖 욕구에 헤어지고 찢긴 걸레 같은 생명
이리도 허허로운 일장 춘몽의 미망이던가
배고플 때는 실컷 먹을 수 있는 우리 집이 그리웠고
먼 타국에서는 가슴 졸이며 오매 불망 하던 나의 조국
돌아온지 3개월째 만에 다시 문드러져 내리는 처절한 비감
무엇 때문에 나는 다시 또 하나의 조국을 그리는가
여기에서도 또 저기에서도 발붙이기 힘든
살아있음의 곤혹스러움이여
미칠 듯이 보고싶어 네게로 도망치면
모든 시름 안고 네게 취해 행복할 것 같은
꿈같은 소망도 이제 모두 다 버리었어라
어디에도 죄 없는 사랑, 서로 속이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서로에게 팍 죽어줄 수 있는 사랑
지옥 속을 가거나 아귀축생을 헤매 이거나
서로에게만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아리따운 사랑 있을까
껍질을 벗기어도 날마다 먼지가 가득 쌓여
내 시선을 가리우고 영혼 깊숙이 까지 얼룩이 진다
이리도 숨쉰다는 것은 부패하고 몰락하기 위해서 인가
가난한 생활은 당당한 존심을 앗아가고
평안한 생활은 깨우침으로부터 마비시킨다
살기 위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
죽기 위해 사는 흉내를 열심히 하는 것인지
치열하지 않은 나태한 일상 생활의 나른한 중독
어줍잖은 꿈으로 자신을 예술가라 칭하며 떠도는 나는
정녕 어리석은, 어리석은 광대여라
18
☆★☆★☆★☆★☆★☆★☆★☆★☆★☆★☆★☆★
튈리리 공원
임경숙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오라, 언제인가는 우리도 낙엽이 되리라" 는
구르몽의 싯귀를 몽타쥬하며
샹제리제와 튈리리 공원을 산책할 때
가을마다 벌이는 푸짐한 축제
아름다운 불꽃, 너무나 황홀한 마로니에 광장이어라
세상이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저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아프도록 사랑하고
감탄하며 바라볼 수 있다는 그것이 꿈 같은 현실이다
가을에는 젖고 싶고, 시인이 되고 싶고
순수해지고프다
가을! 이 가을을 놓치지 않도록 깨어 일어나
내 영혼 가득히 채울 수 있도록
낙엽이 다 지기 전 불타는 숲 속에 가고 싶다
낙엽 파편이 부스러져 으깨어지는 소리 들으려
다람쥐가 뛰놀면 밤톨이 또르르 구르는 소리 들으려
아무도 없는 깊은 숲속을 헤매이고 싶다
19
☆★☆★☆★☆★☆★☆★☆★☆★☆★☆★☆★☆★
저 먼 나라 그 어디든지
임경숙
나를 차라리 저 먼 나라에 데려가 주세요
맨발로 거친 산길을 오르는 나의 발바닥은 돌멩이에 찢겨 나뭇가지에 찢겨
먹다버린 깨진 콜라병과 눈총과 온갖 쓰레기에 치여
검붉은 피로 멍들어 있습니다
이대로 벼랑 위를 기어올라
저 넓은 들판이거나
짙푸른 강물이거나
텅빈 허공에다
재 되어 흩날려 버리고픈 생명의 흐느낌
다시 또 한번 격랑이 지나가고
허무와 죽고 싶은 갈망이 나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사랑이 하나의 환상이라면
날마다 내 영혼을 갈갈이 날뛰게 하는
그 질투와 격정과 고통들은 무엇 때문입니까
빼앗겨도 빼앗겨도 다시 또 빼앗길 수조차 없는
가난한 목숨의 뿌리에 기대앉아
님의 얼굴을 떠올리다가는 지우고
님을 향해 천리만리 머언 허공을 휘달리다 가는 돌아서고
가슴만이 불이 나 몸서리칩니다
도덕을, 관습을
법과 정치와 위선을
마침내는 사랑까지도 환멸 해야만 되는
온갖 거짓과 더러움과 탐욕을 뛰어 넘어
모든 것을 부정하는
그런데 어찌하여 삶이 이토록 구슬픕니까?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 견디어 내고
사랑할 수 없는 것을 끝까지 사랑하고
미움과 추악함을 눈물로 닦아 씻어낼 줄 모르는 나는
세상을 떠나 멀리 도망을 쳐도
끈적이는 그 욕망과 비참과 아우성은
목구멍까지 꽉 차 있습니다
칼로 베어도 히드라처럼 잘린 마디 토막토막 되살아나는
얼음에 던져도 뜨거운 화염으로 남아있는
아,이 무서운 환영들은 도대체 어떤 불사조입니까
운명의 힘이 나를 으깨어 바술 때까지
이글거리는 심장을 빨아먹는
생명의 흡혈귀는 어디에 숨어 매일 나를
미치게 하는 것입니까
20
☆★☆★☆★☆★☆★☆★☆★☆★☆★☆★☆★☆★
나의 악마여 나의 사랑이여
임경숙
나의 데몽
그대를 생각만 해도
가슴엔 눈물이 고여
핏물이 고여 아득 해지네
나의 데몽
그대를 떠올리기만 해도
설움이 복받쳐 침이 마른다
피끓던 우리들의 사랑이여
나의 데몽
내 안에서 영원히 죽고 싶다던
네 안에 파묻혀 죽고 싶다던 뜨거운 맹세
그 생명의 열광은 어찌하여 다 물거품이 되어 버렸는가
너의 키스로 내 모든 외로움을 덮어주고
너의 눈물로 내 모든 슬픔을 어루만져 주던 그대
이 세상 모든 고뇌도
부드러운 미풍이 되어 막아 주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 어디에도
다시 찾을 수 없는 그대는
홀로 남은 나를 위하여
영원한 랩소디가 되어
다만 아스라이 들려 올 뿐......
외로운 내 가슴은 더 이상 그대의 사랑으로 덮힐 수가 없어라
사랑은 거짓 안에서 오직 거짓을 연기 할 수 있을 때만 신선하다던 그대
삶의 탄력성을 바래 진부한 일상을 거부하고
라씬느의 비극을 갈망하여 "드라마의 생"을
살다 간 그대여
죽어서도 그대는 질투로 앙칼지게 피투성이가 된
암컷의 발정을 그리는가
미움도 증오도 사라져 버린 지금
내가 그대를 죽도록 사랑했음을
그대의 사랑이 나를 성숙한 여인으로 완성시켜 주었음을
파멸과 구원을 맛들여 준 내 애인이여
그대여
인간의 사랑도 얼마나 아릿따은 진주인가
가장 혹독한 만남만이
지울 수 없는 영원한 랩소디로
전설처럼 아스라이 들려오네
나의 악마여,
나의 사랑이여
21
☆★☆★☆★☆★☆★☆★☆★☆★☆★☆★☆★☆★
마음의 여행
임경숙
정말 큰 여행은
멀리 풍경을 찾아 떠나는
밖의 여행이 아니라
자신 안에 떠오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자신을 끊임없이 변모시켜
다듬어 가는
내면의 여행입니다
22
☆★☆★☆★☆★☆★☆★☆★☆★☆★☆★☆★☆★
열애
임경숙
마음은 가득 차 호수가 되는데
고여드는 그리움의 뼈아픔이여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 곁으로 달려가고
나는 죽도록 사랑의 슬픔에 빠져드오
스스로를 태우며 사라져 가는 촛불이기나 하다면
폭풍우 치며 휘달리는 바람이기나 하다면
얼마나 좋겠소마는
나는 자신을 불질러 휘달리면서도 언제나
마음에 갇힌 탄타로스라오
나의 사랑이여
당신은 멀리 있지만 당신만이 나를 숨쉬게 하는
진정한 맥박
미칠 듯이 당신을 그리워하오
아, 만일 신의 도우심으로
당신 곁에 갈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만사 오케이
다른 시련은 얼마든지 참을 수가 있소
다만 당신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만을 생각하오
무정한 사람이여, 편지를, 편지를, 편지를 주오
나는 당신의 신부
너무 오랫동안 내버려두지 마세요
나는 오직 당신을 위해 태어난 여인이라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한 나의 소명이라오
23
☆★☆★☆★☆★☆★☆★☆★☆★☆★☆★☆★☆★
갈망
임경숫
인간이 자신의 한계점을 깨닫고
더 이상 앞으로 걸어나갈 수 없는
캄캄한 동굴 속에 갇힐 때
암흑은 하나의 지옥입니다
하나의 사랑이
전 생명을 좌우할 만큼
나의 모든 것이 되어 버린
무서운 집착을 아십니까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당신을 만날 수만 있다면
노예가 되어도 좋을 만큼
당신을 열렬히 갈망합니다
24
☆★☆★☆★☆★☆★☆★☆★☆★☆★☆★☆★☆★
비상
임경숙
마음이여 커져라
마음이여 날개를 펴고
비상하여라
그리하여 산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다가 되고
하늘이 되어
본래의 너에게로 되돌아가라
25
☆★☆★☆★☆★☆★☆★☆★☆★☆★☆★☆★☆★
풍경의 아름다움
임경숙
첫눈으로 흩날리는
싸락비를 맞으며 썬그라스를 낀 채로
플라타너스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면
하늘의 음악이 들려온다
잠시 발길을 멈추어
흘러가는 시간과
사물의 꿈과 율동을 들어본다
취해오는 생명의 숨결이여
살아 있음이 아름다워라
나도 잠시 바람의 입김이 되어
바로 젖어서 젖어서 대지에 스며들리라
꽃잎 사이를 이리저리 감싸며 내리고
창공을 날아 저 높은 하늘로
구름으로라도 비행 해보리라
비틀거리며 흐느적거리는 풍경의 전율
하늘이 춤을 추고
나무와 걷는 발걸음도
존재하는 놀라움에 난무하고 있음이여
기뻐하자, 살아있음을
축복하리라, 존재하는 이 떨리는 아름다움을…….
늘 보고 있었음에도 낯익던 풍경이
새로운 미美로 나를 놀라게 하네
26
☆★☆★☆★☆★☆★☆★☆★☆★☆★☆★☆★☆★
샤걀
임경숙
아름다운 색채, 유희
선의 다정함 ,사랑에 푹 젖게 하는
영인들의 포옹은
세상의 슬픔으로부터
예술의 유토피아 속의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예술가의 캔버스 위의 모습"은
색채가 블루이며
거리 전체가 춤추는 듯 환상적 이어서 좋다
27
☆★☆★☆★☆★☆★☆★☆★☆★☆★☆★☆★☆★
사랑하는 이여
임경숙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당신 사랑에 시들어
나는 병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기쁨의 약을 주세요
당신 침묵에 아파서
비명을 지릅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사랑의 힘을 주세요
당신을 위해 아름다이
나를 죽어 가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내가 지금 사랑에 빠졌다면
사랑의 사도가 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랍니다
28
☆★☆★☆★☆★☆★☆★☆★☆★☆★☆★☆★☆★
눈길을 걸으며
임경숙
한없이 외롭고 시린 마음
슬픔을 주머니에 가득 담고서
눈처럼 새하얀 고독을 맛본다
지금까지 걸어온 삶
그리고 또 걸어가야만 될 고달픈 삶
기쁨을 꿈꾸면서도
기쁨조차도 얼마나 덧없이 지나고
사랑은 순간 순간마다의 괴로움과 수고로부터의
향액이 아니었던가
고통과 신비…….
사는데 까지 견디어보고
극복해보자
바람결이 살을 에일 듯이 차갑고 냉랭하다
가슴에 불을 뜨겁게 달구어야 할텐데
비천한 생각이 유혹을 한다
나를 잊자, 나를 잘 죽어가자
그리고 흰눈에 듬뿍 듬뿍 젖어보자
29
☆★☆★☆★☆★☆★☆★☆★☆★☆★☆★☆★☆★
견자 見者
임경숙
칼날이 선 명증스러움
심연의 어둠을 찢고 또 찢어서
아프도록 피 흘린 내 영혼의 통곡
그 고통과 고난과 고독의 절규를 통하여
불꽃이 되고 싶음이여
번개가, 바람이
부서지고 또 깨어져서
햇빛의 뼈가 된
맑고 부드럽고 따뜻한
한줄기 빛이 되고 싶음이여
30
☆★☆★☆★☆★☆★☆★☆★☆★☆★☆★☆★☆★
아쉬움
임경숙
하나의 위기가 예견해주는 구원
커다란 어둠이 가져다 주는 진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남겨주는 생명력
그리고 허무를 깨뚫어 바라볼 수 있는 지혜
모든 것을 넘어서면 하나의 빛의 문이 보이는데
다 다르기도 전에 적당히
타협하거나 피해 가거나
운명과 맞 부닥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아픔들은 커다란 빛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다만 괴로움으로 그치고야 만다
31
☆★☆★☆★☆★☆★☆★☆★☆★☆★☆★☆★☆★
너의 사랑은
임경숙
너의 사랑은
추운 날의 따사로운 햇살이고
너의 사랑은
어두운 밤의 다정한 등불이며
너의 사랑은
무더운 여름날의 시원한 소낙비이고
너의 사랑은
쓸쓸한 날의 가슴 적시는 노래이며
너의 사랑은
하늘의 아름다운 무지개 여라
32
☆★☆★☆★☆★☆★☆★☆★☆★☆★☆★☆★☆★
여보
임경숙
여보!
처음 불러 보지만 마음 따뜻 해지는
여보!
가만히 불러 보고는 배시시 웃음 나오는
여보!
우리 서로 여보라고 부르며 함께 살아요
이 세상에 가득한 햇빛, 공기,물, 사계절과 바다
돈 내지 않고 누리는 기쁨이 더 큰데
여보!
우리 두 가슴 따뜻이 서로 부비며
나비처럼 다정하게 살아요
여보!
33
☆★☆★☆★☆★☆★☆★☆★☆★☆★☆★☆★☆★
반성
임경숙
나는 예술을 통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낮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또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34
☆★☆★☆★☆★☆★☆★☆★☆★☆★☆★☆★☆★
베를린의 눈물
임경숙
눈물, 눈물, 눈물…….통곡의 눈물, 절망의 눈물
한계 상황의 눈물
카타르시스의 눈물, 비겁한 눈물, 참회의 눈물
소망의 눈물, 나를 위해 우는 이들을 위한 감사의 눈물, 미안한 눈물
너무 강한 자 앞에서 목구멍이 메이는 눈물,
발 붙힐곳 없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 눈물
낯설어 낯설어서 당황하는 눈물, 허무의 눈물, 외로움을 타는 눈물
갈곳이 없는 처지의 온 생명이 켜대는 폭발적인 눈물, 이방인의 눈물
어리석은 나를 고쳐보고 죄 많은 나를 씻기어 보자는 각오의 눈물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건데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몰라 우는
답답한 눈물 ,불안한 눈물
눈을 감아도 비오듯이 눈물의 봇물이 터져 나오고
혓바닥을 깨물어도 이 오열을 어찌 할 수 없음이여
쿠담의 거리에서나 ,우체국에서나, 은행에서도
화려한 백화점에서나 방에서나 어디나 없이
나의 눈물은 뚝뚝 떨어져 얼룩무늬를 이룬다
나도 모르겠어라 이리도 울어야만 하는 까닭을
눈물의 병이라도 났음인가, 울지 않는 약이라도 사먹어야겠다
감정의 포장을 잘못 했더니 내 마음이 아무데서나 발가벗겨지누나
아, 울어서 울어서라도 내가 변화될 수 있다면
신에게 존재의 위기를 아뢸 수만 있다면
내 사랑하는 이들을 위로해줄 수만 있다면
이 눈물은 얼마나 고귀한 것일까
그러나 이 눈물이 그치고 다시 또 맹목적인 일상을 되풀이하다 보면
그 얼마나 똑같은 잘못과 어둠 속에 마비되어 있을 것인가
눈물이 나오는 것도 아픔이요, 눈물이 그치는 것도 아픔이어라
감상과 안일함과 유치한 감정의 포로는 되지 말자고 채칙 질 하지만
지혜롭지 않으니 나를 다스리기가 힘이 든다
다이아몬드처럼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심성
순수하면서도 냉철한 심성
세상을 꿰뚫어 보면서도 한없이 따뜻한 심성을 갖고 싶은데
멀고 먼 마음이여, 현실이여
예수께서"예루살렘의 여인아, 나를 울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 먼저 울어라"
하시던 말씀이여
참으로 나를 위해 울고 있는 자를 기억해 주소서
내 눈물은 나를 고발하고 ,축복하며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어
울고 있습니다
"기어이...."그리고 "마침내"당신의 은총에 의하여
죽을 듯이 내가 울고 있습니다
아직도 죄 중에서 방황하고 있사오니
빛의 길에 나아갈 수 있을 때까지
회개의 시간을 허락해 주소서
이 눈물이 마르기 전
깨어서 농축된 아픔을 심혼 깊숙히 안고
고난의 길을 더듬어 몸부림 칠 때에…….
신이여, 눈물의 세례가 결실을 맺게 하소서
내 눈물이 남을 괴롭히지 아니하고 ,그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부드러운 부호를 지닌 바람이 되게 하소서
나는 비록 울고 있지만
생의 밧줄을 튼튼히 엮어
낼 씨앗을 길러내고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35
☆★☆★☆★☆★☆★☆★☆★☆★☆★☆★☆★☆★
나는 생을 노래하네
임경숙
인생이 무얼 말하는가
내 가슴이 넘쳐서 줄줄 흘러내리네
마음의 물줄기들은 얼키고설키어 긴 시냇물이 되어 호수로 가고
너무도 풍부하게 많이 느끼고 있음을
너무도 화끈하게 사랑하고 싶음을
오∼∼ 인생이여, 잠시 나를 쉬게 해다오
너의 눈길이 너무도 뜨거워 내 심장은 타버릴 것만 같다
너의 포옹이 억세게 강렬하여 나는 미칠 것만 같구나
나를 불질러 활활 불타오르고 싶음이여
이글리도록 현란한 불꽃이 되고 불꽃의 영원한 심지가 되어
"사랑하고 싶도다, 이 세상 전체를"
신의 은총인지 악마의 유혹인지도 모를 헐떡이는 정렬의 와중에서
이리도 몸서리치게 사랑하고 싶은 목마름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네
내게로 오라 인생이여
나는 너를 기다리면서 네 끓는 불 가마에 생명을 송두리 채 던지노라
나는 네 심장의 한 복판에 꽂힌 화살이 되고
너는 나의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어
네가 주는 온갖 생명의 양식을 취하도록 마시리라
사실 이렇게 인생이 거대하고 눈부시게 매혹적일 때
그 어떤 괴로움인들 보배롭지 않은 게 있으랴
난 가장 행복한 여인이 되어 네 가슴에 생명을 기대고 서면
"산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신비로운 기적의 체험"임을 배우게 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지평선 보다 더 깊숙히 도사린
나의 사랑은
태워도 태워도 사라지지 않는 별과 같으니
아직도 살아야 될 생명의 시간이 주어져 있음은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내 사랑의 뜨거운 불꽃으로
나의 생을 영원히 노래하네
36
☆★☆★☆★☆★☆★☆★☆★☆★☆★☆★☆★☆★
길
임경숙
날마다 날마다의 갈증
내 생명은 광포한 배곺음을 느낀다
살이 떨리는 현기증으로
어두운 별빛 아래서나
눈부신 태양 아래서도
마냥 피 흘리는 마음
지날 수록 인생은 멀고
외로움은 깊어라
37
☆★☆★☆★☆★☆★☆★☆★☆★☆★☆★☆★☆★
실의
임경숙
번개는 먹구름 속에
진 눈개비는 차가운 바람 속에
태양은 메마른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자신을 못질한다
헌데도 하늘 아래 뿌리내릴 수 없는
고삐 풀린 넋들은
죽을 수조차 없어 헤매이는가
38
☆★☆★☆★☆★☆★☆★☆★☆★☆★☆★☆★☆★
고드름
임경숙
수돗물이 얼어 멀리서 길어 나르는데
물은 물통 안에서 춤을 추다가
길바닥 얼음가에서 스키를 탄다
사랑으로 기쁘게 안아 주었더니
마루에 떨어진 물방울도 히죽히죽
실상은 내 고통은
사랑의 무게였어라
39
☆★☆★☆★☆★☆★☆★☆★☆★☆★☆★☆★☆★
휴식
임경숙
당신은 나의 아버지, 나의 연인
거칠게 이 세상을 헤매느라고
아짓껏 내가 쉴 곳이 없답니다
오늘밤, 당신 집에 머무르게 해주십시요
푸른 눈동자 그 깊숙이에 잠들며
보드랍고 달콤한 혀의 이불로 추운 몸을 덮어주세요
그는 보드라운 입맞춤으로
수천 수만의 나비를 끌어모아
그 나래 아래서
나를 꿈꾸게 해주었다
40
☆★☆★☆★☆★☆★☆★☆★☆★☆★☆★☆★☆★
빠리의 레스토랑
임경숙
식당에서 난 이태리 모자를 쓴 요리사였소
쓱싹 쓱싹
어느 날은 도미가 짤려 짤려
어느 날은 연어가 횟감이 되어 미쳐미쳐
하얀 생채랑 빨강 고추장이랑 파란 겨자랑
꽃밭을 이루고는 이내 난장판이 되오
흰 포도주 빨강 포도주 섞어 섞어
노랑둥이 흰둥이 검둥이도 뭉쳐 뭉쳐
된장찌게 서양스프 짬뽕이 되어
샴페인과 함께 취했다 깨어났다 취해 취해
술김에 식칼을 갈자 번쩍 번쩍
누가 손님이냐 누가 주방장이냐
에라 모르겠다, 마시는거다
손님 노래 주방장 노래
술병의 노래, 안주들의 노래 ,모두다 엮어 엮어
이 저녁은 모두 다 술고래가 된다
41
☆★☆★☆★☆★☆★☆★☆★☆★☆★☆★☆★☆★
신문보도
임경숙
날마다 신문에 보도되는 무시무시한 재난들
교통사고,살인,절도,강간,사기,유괴.입시 경쟁
화산폭발,해일,추방,데모,투옥,고문,노동쟁의,실업난
영양실조, 처형, 밀수, 기업 도산, 폭력, 인구 폭발, 핵 위협
인권 투쟁, 정치적 음모, 물가 폭등, 기형아 냉대, 세계 무역 마찰
전쟁, 화재, 주택난, 전염병…….
그리고 아주 조그맣게 문화면에
오늘 연극 공연은 "돈 내지 맙시다"
오늘 영화 프로는 "7일간의 사랑 "입니다"
42
☆★☆★☆★☆★☆★☆★☆★☆★☆★☆★☆★☆★
유희
임경숙
무엇을 원하니
0 이 1 에게 묻는다
하나가 대답하기를
"무無가 되고 싶어"
세상은 너무 메마르니까
넌 무엇을 원하니
1 이 0 에게 묻는다
"세계가 되고 싶어"
유有는 잃어버린 내 갈비뼈이니까
하나가 사라져
자꾸만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어디선가는
새로운 하나가 금새 맞은 햇살을 머금고 달려 나온다
서로 다른 근원을 향하여
공전하는 생사의 엇갈림들
태어남은 또 다른 죽음
죽음을 통해 삶은 새롭게 여과되는가
햇살이 영원에서 흘러내린다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의 유골이
깊은 밤 속에 매장되고 있다
왜 사는 거니?
진정한 죽음을 알기 위하여
왜 죽는 거니?
또 다른 삶을 찾아내기 위해서
43
☆★☆★☆★☆★☆★☆★☆★☆★☆★☆★☆★☆★
혼돈
임경숙
어느 날 문득
먹구름 사이에서
하늘이 칼을 가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젠 내 마음 한 복판으로부터
칼을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예리하고 몹시 번쩍거리는
이 욕망들은 대체 어디로 부터 오는가
44
☆★☆★☆★☆★☆★☆★☆★☆★☆★☆★☆★☆★
가난한 동네
임경숙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살았네
소꼽 장난 처럼 자그마한 방에 여러 식구가 살고 있는
금치 쟁이라는 분의 살아가는 도구는
신문지에 돌돌 말아진 이상한 도구들 뿐
내 어머니의 어금니도 그분이 만드신
이빨의 형태를 쓴 금속이었네
머리를 자르러 지하실 밑에 있는 남의 집
거실에 가게 되었네
실업자인 남편은 하루종일 껌을 씹으며
아내의 손님을 구경하면서 심부름을 하고
어린 두 딸은 쭈그리고 앉아 유희하며 깔깔거린다
방안의 비좁음과 이상한 냄새 너머로
그래도 건강한 아내의 가족에 대한 애정과 낙천성은
햇빛 없는 이 암울한 분위기에
한줄기 따뜻한 빛이었다네
떨쳐버릴 수 없는 비장한 미美를 발하는…….
45
☆★☆★☆★☆★☆★☆★☆★☆★☆★☆★☆★☆★
혼자서
임경숙
혼자서 방에 남아 있다
혼자서 나를 숨쉬고 있다
혼자서 과거를 운반하고 있고
혼자서 불안한 꿈을 기다리고 있다
혼자서 아픈 불덩어리로 타들어 가고 있고
혼자서 존재하는 허무를 들이마시고 있다
46
☆★☆★☆★☆★☆★☆★☆★☆★☆★☆★☆★☆★
작은 차이
임경숙
머리를 들어라
그대 비통해 하는 이여
갈보리 언덕과 부활의 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과 기쁜 날은 불과 사흘 사이니라
47
☆★☆★☆★☆★☆★☆★☆★☆★☆★☆★☆★☆★
안개
임경숙
안개 낀 새벽길
저 만큼 우뚝 선 채 뛰어 넘을 수 없는
공간들의 침묵
존재하면서도 부재 하는 듯한
이 고요함이 얼마나 신선한가
모두에게서 멀리 도망쳐 나와 홀로 깊숙이 빠져드네
그동안 세상은 너무나 떠들썩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바빴었지
안개, 아침 녁의
이 몽롱함
이 미지수
48
☆★☆★☆★☆★☆★☆★☆★☆★☆★☆★☆★☆★
오 아버지
임경숙
나의 쉐리,너 어디 있느냐
예, 당신의 딸이 여기에 있어요
어찌하여 넌 밤낮 없이 탄식만 하느냐
네 신음 소리에 깨어 내 가슴이 쓰라리구나
네 병이 대체 무엇인지 딸아 이리로 오너라
아버지 ,제 아픔을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너무 많은 것을 갈망하기에 제 생명이 아파요
그러나 그것조차 모르겠어요
바래기도 하고 ,바램을 버리기를 원하기도 하니까요
아버지 제 곁에서 떠나지 마세요
당신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사랑하고 싶어요
모든 것을 감싸주고 축복하고 싶어요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생명이니라
늘 내게 귀를 귀울이고 ,네 전부를 내게 맡기어라
나는 "사랑 때문에만 있음"이로다
49
☆★☆★☆★☆★☆★☆★☆★☆★☆★☆★☆★☆★
술
임경숙
마주앙은 너무나 심심하고
맥주는 조금 쓸쓸하고
막걸리는 설익는 취기를 가져오고
소주는 독한 대로 가슴을 뜨겁게 하고
노블와인 핑크는 한없이 전신을 몽롱하게 한다
50
☆★☆★☆★☆★☆★☆★☆★☆★☆★☆★☆★☆★
장난기의 말
임경숙
풍상 빠뚜아, 뚤루리 쌍자
따쓰하리 따쏭 ,꼬참바 참바∼
무의미의 소리, 소리들
소리가 꿈틀거리며 소란을 피운다
원시의 생명이 악발을 지른다
닫혀지지 않는 말의 공간에서
어렵게 의식은 새로운 무공해의 말을 찾는다
51
☆★☆★☆★☆★☆★☆★☆★☆★☆★☆★☆★☆★
매화
임경숙
찬 바람결에
가냘픈 꽃잎이 속옷을 벗은 채 떨고 서있네
겨울은 어디쯤 끝이 올까
아름다움은 항상 서럽다는 것을
아,발가 벗긴 꽃처럼 추워하는
내 영혼이여
오늘도 하염없이 날이 저무네
52
☆★☆★☆★☆★☆★☆★☆★☆★☆★☆★☆★☆★
황혼 녘
임경숙
미친 하늘
미쳐있는 구름
미쳐서 미쳐서 죽어 가는 나무와 숲과
무너져 가는 색체들, 어둠들
천지가 황홀한 피를 흘리네
소름끼치게 아름다워서
어찌할 줄 몰라 피를 토하네
53
☆★☆★☆★☆★☆★☆★☆★☆★☆★☆★☆★☆★
진정한 섬
임경숙
인생을 시처럼 살다가
우즈강에 빠져 재빠르게 죽음 저편으로 건너간
-버지니아 울프-
생의 모든 일상과 인연을 끊고
사하라 사막에서 고독을 사랑하며 작은 자가 된
- 샤를르 드 후코-
밤을 노래하고
샤르트르의 길을 낭만으로 채운
- 샤를르 드 뻬기-
너무도 지순한 영혼의 불꽃으로
고통받는 이의 아픔에 스스로를 불살라 버린
- 시몬느 드 베이유-
미제레레의 깊은 명상 속에
색체의 완벽함을 추구한
- 루오-
자신의 몸뿐 아니라
영혼으로까지 춤추려 하다 미쳐버린
- 바스라브 니진스키-
보이는 모든 것으로 우주를 창조하려던
불멸의 불행한 천재
- 미켈란젤로-
암흑 속에서 빛의 소리를 듣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건반으로 열어젖힌
- 베토벤-
저마다 숭고하고 영원히 파도치는 섬입니다
54
☆★☆★☆★☆★☆★☆★☆★☆★☆★☆★☆★☆★
내 친구 다미아노
임경숙
부서진 코
뻥 뚫린 눈
일그러지고 비틀어진 얼굴에
입가에 떠오르는 선량한 미소
지난 여름날 우린
나자로 마을에서 친구 다미아노를 발견 하였네
심장에 빛나는 보석을 지닌 그를…….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 동산에서
고아인 꼬마 친구들과 나환자인 다미아노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려고 성당엘 갔었다네
누가 더 괴로워하는 사람인지를
잊어버린 채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생각하면서…….
며칠이 지난 뒤 다미아노는
책 7권과 향수 뿌린 편지와
돈 2만원을 선물로 부쳐 주었다네
이것은 어쩌면 그의 전 재산의 30분의 1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의 영혼을 실은 편지에는
"주님이시여, 나의 주님이시여,
어찌하여 나를 나병에 들게 하셨습니까,
하오나 내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나병에 들었더라도
글씨 틀리지 않고 제대로 쓸 수가 있을 텐데
난 9살에 나병이 들어 부모 형제를 일찍 떠났답니다
내 다섯 손가락만 제대로 남겨 주었더라면
일기를 쓸 때 두 손등에 연필을 찔러
손등으로 쓰지는 않을 것이며
소포를 부칠 때 마음대로 혼자서 부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이시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내 생각까지 몽땅 앗아가지 않으시어
밤이면 잠들지 못한 채 외로움에 떨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 넘치는 마음들은 도대체 어디에 소용이 되는 것입니까
당신께 부르짖다가 하소연 하다가
노래 부를 때가 있다면
때때로는 기쁘고 평안한 노래도 부르겠습니다
나는 날마다 망가지고 있으나
어린 꼬마들이 바르게 자라도록
힘 자라는 대로 책을 부쳐 드리겠으며
나를 봐서라도 기운을 내세요
건강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다미아노는 몸의 썩은 냄새가 베일까봐
책갈피 마다 향수를 뿌렸으나
그 영혼의 향수는 육신의 피고름을 뒤덮고도 남을
눈부신 향기로 나를 매혹 시켰다네
내 친구 다미아노는…….
55
☆★☆★☆★☆★☆★☆★☆★☆★☆★☆★☆★☆★
강아지
임경숙
마당가에 쭈그리고 있는
자그마한 강아지
방에서 쫓겨나 온몸을 흙으로 세수하네
개는 개답게 방임해서 키우는 게 좋다 할지라도
추위에 떨며 선량한 눈물 흘리는 개 도련님
왠지 내 살아 있음까지 부끄럽다
56
☆★☆★☆★☆★☆★☆★☆★☆★☆★☆★☆★☆★
나는 흙이 되고 싶다
임경숙
내 머릿속에 돈, 성공, 명예, 성취, 욕정 다 버리고
밤이면 별과 더불어 은하수를 꿈꾸고
나무 곁에선 또 귀엽게 이웃하고 선 작은 나무가 되고
시냇물가에선 한줄기 물방울이 되어
어디든지 거리낌 없이 흘러가고 싶다
생활의 굴레. 인습의 굴레. 가난의 굴레 다 끊고서
햇살 아래 한가하게 졸리면 잠들 수 있는 자연인이고 싶다
보드라운 대지와 함께 사시사철 풋풋한 젖가슴에
온 생명을 껴안고 끝없는 윤회를 되풀이하여
삶과 죽음을 잉태하는 겸손한 흙이 되고 싶다
짓밟히고 또 짓밟혀도
끝끝내 사랑을 다 버리지 못하는
밑바닥의 생명력
나는 어둠 속 에서도 생명의 불씨를 머금은 흙이 되고 싶다
모든 소란, 욕망 ,상처, 미움의 찌꺼기
맑게 걸러내 주는 선악을 떠난 자유
그 본질을 지닌 조용한 흙이 되고싶다
57
☆★☆★☆★☆★☆★☆★☆★☆★☆★☆★☆★☆★
양수리 마을
임경숙
달리는 바람의 아우성 소리가
만원 버스에 탄 사람들의 비지땀을 어루만지며
들판으로 들판으로 휘달려 간다
일요일이면 떠들썩한 양수리 마을
태공은 늘어진 시간의 배를 띄우고
노래하는 강물에 노를 띄우네
사는 것은 즐겁다
졸 졸 졸
이 몸이 큰 파도에 바수어져
반짝하고 깊은 늪 속에 가라앉을 때까지
흘러가는 것은 재미있다
졸 졸 졸
58
☆★☆★☆★☆★☆★☆★☆★☆★☆★☆★☆★☆★
개나리 꽃
임경숙
아지랭이가 되어 가지 위에 맴도는 꿈
나무들의 실타래 선과
그 공간이 주는 아름다운
꿈의 이야기들…….
59
☆★☆★☆★☆★☆★☆★☆★☆★☆★☆★☆★☆★
내 고향 해남 땅
임경숙
저녁 노을이 바다에 빠져
황홀한 도취를 안겨주던 내 고향 땅
파란 들판에 날마다 바람은 데생을 하고
농부들이 해마다 판화를 찍던 거대한 땅
그때 그 날의 산천 초목이건만
낯익은 얼굴 다 어디로 떠나갔을까
내 조국을 하늘에 삼으며
금가지 않은 우주를 진정한 본향이라 여겨야 하듯
굳이"전라도 땅 해남이여"하고 고집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내가 최초로 탯줄을 잇고 젖을 빨던 대지여
지금은 아버지의 육신이 편안히 잠들어 있는 휴식의 땅
가장 외로울 때면 친정 집이 되어
위로 받을 수 있는 소박한 땅
어린 시절 날마다 산에 올라 꿈을 키우며
"어찌하여 이곳에 우리의 워즈워드는 없는가"
안타까워했는데
오늘 따라 새삼 해남을 노래하자니
가슴에 슬픔만 가득 차 오르네
60
☆★☆★☆★☆★☆★☆★☆★☆★☆★☆★☆★☆★
필연의 길로
임경숙
의식의 광맥을 파헤쳐
그 깊은 동굴 속에 숨겨진 보석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마음속 가장 깊이 도사린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꺼내
십자가의 상흔과 합할 수 있다면…….
오-고통은 쇠망치가 되어
영혼을 미칠듯이 휘갈기는데
어찌하여 내게는 구원이 없는가
예수여,
당신은 사랑으로 이 세상을 껴안았는데
나는 사랑도 없이 고통에 뛰어 들었나이다
더 이상 가야할 길이 없사오니
나에게서 나를 도망시켜 주시고
이제는 사랑 안에 죽어가게 하소서
내 영혼을 받아주시고
생과의 싸움에서 진정한 안식처를 찾게 하소서
방향 없는 발걸음을 인도하소서
성모 마리아!
오시어 나를 차지하시고
단순한 호기심만이 아닌 ,필연적인 생을 살아가게 하소서
기운을 내라,
네 뼈는 부러지지 않았으니…….
아는가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대가 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모래바람은 불고 황량한 벌판에서
굶주림에 울부짖던 때를…….
무리진 꽃과 향기 나는 풀잎 사이에서도
위로 받지 못한 피나는 영혼은
밤이면 더욱 미쳐서 괴로워 했지
그러나 보라
얼마나 놀랍게 봄은 다시 소생하는가
오, 위대한 생명이여
나는 혼자서 병들어 가지만
언제나 어루만져 주는 따사로운 손길 있음이여
그분은 나 보다 더 가까이 나를 살려 주시는구나
온갖 불신이 뼈를 쑤셔대도 사랑은 기적의 눈길로
영원까지 바라보고 있도다
가자 ,어떠한 순간에도
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발버둥치기 위해
주어진 시간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기 위해
젊은이여
기운을 내라
네 뼈는 부러지지 않았으니…….
믿음 속에 살고 ,나에 대한 일치 속에 살고, 모든 두려움을 버려라
61
☆★☆★☆★☆★☆★☆★☆★☆★☆★☆★☆★☆★
가마 솥
임경숙
힘차게 격렬하게 끓고 싶다
부글부글 내혼魂을 뚫고 들어가
하늘로 높게 치솟고 싶다
그럴 수라도 있다면
폭풍의 혓바닥이라도 되어
산과 들판을 송두리 채 핥아주고 싶다.
나를 타들어 가면서도
끝내 활화산이 되지 못하는
생명의 흐느낌이여
고무공보다도 더 탄탄하게
땅 위를 팔짝 팔짝 휘달리면서 살고 싶건만
어인 까닭에
이토록 나를 뛰어넘지 못한 채
자꾸만 주저앉고 마는가
피끓는 열망이여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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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꿈.1
임경숙
아름다운 꿈이다
밀밭과 보리밭이 바람결에 흔들려 파도침은…….
컵 속에 든 장미꽃 두 송이가 시들어져
그냥 버리기에는 안타까워서
바위를 뚫고 그 안에 꽃을 묻었더니
거기에서 씨가 터져 나와
보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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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꿈.2
임경숙
성모님의 눈이 하나 멀어졌는데
나의 눈 까지 암흑에 가리워졌다
아무리 눈뜨려 해도
어둠만이 가득찬 절망감
그것은 나의 "꿈"을 점점 더 깊어지게 해서
참으로 깨어나기 힘든 하나의 "상황"이었다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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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임경숙
다 시든 장미 꽃잎이 피를 토하여도
여전히 꽃들이 활짝 웃는다
그 미소의 메마름엔 향기는 없지만
그래도 꽃 곁에서만은 나도 미소짓고 싶다
순수한 생명의 미소를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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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을 위하여
임경숙
마음이 맑으면 생각이 맑아지고
기분이 맑으면 내 온 주위가 맑게 느껴지고
나의 주위가 맑게 느껴지면
또한 온 세계가 맑게 비추이리라
누구나 다 자기 영혼의 거울을 가지고서
생을 확인하며 사는 게 아닐까
좀 더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한 세상과의
만남을 꿈꾸고 노래하면서 살고프다
언제나 처럼 평화롭고 사랑에 가득 차서
맑은 행복 안에 살고프다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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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화와 마리아
임경숙
백합화를 두고
너무나 소중한 생각에
나 혼자 보기에는 아깝습니다
처음으로 이렇게 순결한 향 내음을
가득 맡으며
지고한 그리움에 잠겨 봅니다
성모 마리아여!
당신께 바치는 마음의 꽃
어여삐 받아 주옵소서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사랑
백합화 되어 어여쁜 꽃다발이 되기를…….
너
너
..........
하얀 장미꽃으로
문득
나래 접은 황홀함이어라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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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임경숙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머금고만 있었지
먹을 수 없는 시간
먹어도 자꾸 설사만 하는 시간
가슴에 천불이 나 뒤숭숭하다.
꼭 토해내야만 제대로 숨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는구나
무당이라면 좋겠다, 천둥이었으면 좋겠다
무희 였으면 좋겠다
미친 여자 였으면 좋겠다
마음껏 마음껏 울부짖고 춤추고 싶어
저주든 ,파멸이든, 불덩어리든,
나를 활활 타 들어가
뱉아 내었으면…….
병이지, 죽도록 광기에 사로잡히는
이 사나움이여
나를 빠져나가고 싶은데 뜨거운 화염에 갇히어
나갈 출구가 없으니 이토록 괴로운 거야
나를 구하는 숙명의 일
예술을 찾는 것
그것만이 나를 목마르게 하고
소외감을 주며 절망케 한다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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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임경숙
힘차게 결렬하게 끊고 싶다.
부글부글 내 혼(魂)을 뚫고 들어가
하늘로 높게 치솟고 싶다.
그럴 수라도 있다면
폭풍의 혓바닥이라도 되어
산과 들판을 송두리째 핥아주고 싶다.
나를 타들어 가면서도
끝내 활화산(活火山)이 되지 못하는
생명의 흐느낌이여,
고무공보다도 더 탄탄하게
땅 위를 팔딱팔딱 휘달리면서 살고 싶건만
어인 까닭에
이토록 나를 뛰어넘지 못한 채
자꾸만 주저앉고 마는가,
피끓는 열망이여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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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임경숙
예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수난이고
인간이 신께 드리는 사랑은 절망이다
예수님이 수난을 뛰어넘듯이
인간이 절망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절대의 고독, 절대의 고통, 절대의 절망…….
극한 상태의 자기 부정을 통해
우리 영혼은 보다 자유로울 수 있고
초월자의 사랑을 감지하는 게 아닐까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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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 일기
임경숙
글은 부질없는 방황의 기침 소리이며
진정 산다는 것을 이리저리 꿰뚫어 보려는 인식의 형광체
깨어서 살고자 하는 영혼의 절규이다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는 자존심
어떤 부귀 영화나 이익이나 안전으로부터도
더렵혀질 수 없는 순수의 공간
살면서 꿈꾸고, 꿈꾸면서도 강렬하게
생에 침전되는 침투력
어떤 위험에도 도망하지 않고
어떤 죄악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고귀함
상식을 뛰어넘는 여유와
파리한 도덕 율에도 갇히지 않는
자유분방한 넋의 비상이다
불과의 싸움, 폭풍우와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
살고 추구하며 용맹스럽게 불타버리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불을 피우기 위한
기름이 되는 과정이며
싸움터에 가는 전사에게 줄 방패이다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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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임경숙
글을 쓰고 싶은 것
더 많이 꿈을 꾸고
꿈을 따라 멀리 헤매는 것
인간이 되어가고
삶을 아는 것
삶을 사랑하고
삶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는 것
그러나, 그러나 그것이 언제쯤일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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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임경숙
우리는 보다 높은 의지
사랑의 불꽃이기 위해
저마다 발 돋음 하는 숭고한 정신의 산물이다
몇 번이고 속화되어 가는 나른함에서 깨어나
끊임없이 추구하며 정화되어 가는 하나의 별,
의지와 영혼과 사랑의 나비이다
삶이 아무리 괴롭다고 하여도
삶은 위대해지지 않으면 안될
가장 엄숙하고도 존엄한 것
삶이야말로 신적인 것이며
삶 속에 신의 내재하심을 믿고 싶다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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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
임경숙
담장 너머로 봉우리마다
사랑을 밴
장미의 얼굴들
확 터져 버릴 그 황홀한 순간을 바래
꽃잎은 저마다
바이올린의 현처럼 떨고 있다
나도 문득 장미가 되어
오열 해오는 마음이여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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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임경숙
난 바람이 좋아
바람이 흔들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난, 이제야
왠지 사는 것 같아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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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앞에서
임경숙
부글거리는 태양
헛되이 휘청거리는 지축
그렇게 흐리멍텅한 시선으로 닭장 앞에
쭈그려 앉는다
참을 수 없는 액취
사람만 보면 먹이를 가져오지 않나 주리를 튼다
햇빛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식탁의 고기가 되기 위하여 열심으로 살쪄 가는
가엾은 짐승이여
너는 네 운명을 알고 있니?
종일토록 먹이만을 찾아 혈안이 된
꿈을 잃은 비참한 전락이여
시골에 두고 온 전원의 산책이 그립지도 않니?
그러나 내 모습인들 너 보다 더 나을게 무어 있으랴
우리들의 욕망은 너무나 헛되구나
이토록 커다란 감옥에서 쓰레기가 되기 위하여
만신창이로 더럽혀지는 생명들
사는 게 욕스럽다
빠삐용의 탈출…….
일상의 습한 권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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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요정
임경숙
나는 당신의 새
당신을 위해 새벽녘
햇살 머금은 포플러 나무 위에서
맑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겠어요
나는 당신의 꽃
당신 조그마한 꽃병에 꽂히어
향기롭고 그윽한 향으로
은방울 꿈을 가득 채워 드리겠어요
나는 당신의 이름 없는 별
당신이 잠들지 못하는 밤에 내게 손짓하면
부드러운 눈빛으로
당신 가슴에 내려와 가만히 속삭이겠어요
아, 사랑이
나의 생각과 몸과 영혼을 불질러 올 때
님이시여
나는 당신 꿈의 요정이 되겠어요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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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꼴라쥬
임경숙
사랑을 그림자라 하고
Love를 ABC라 하면 어떠랴
머레이쉬스칼의 유머러스한 이야기처럼
구름, 달, 호수 대신에
호텔, 자동차 ,달러를 노래하고
블루스 대신에
디스코처럼
템포의 걷잡을 수 없는 질주
더 많은 만남 속에
한없이 소외당하는 자아상실
그럴수록
더 많이 요구되는 건 무엇인가
그대에게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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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
임경숙
내 영혼에 램프가 있네
어떻게 불을 켜나요
내가 울면은
램프가 젖어 있는데…….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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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임경숙
운명의 끈질김
단단함
잡초 같은 생명을 사랑하네
불 가마 속에서 익어 가는 사람이라면
난 시련을 사랑하겠네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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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임경숙
오, 그립고 그리운 목소리여, 목소리여
빗방울 노래에 휴식을 취하고
비의 발자국 소리에
잠들 수 없는 그리 움이여, 그리움이여
간밤의 소낙비
흥건히 내 가슴을 뜯네
저 비는 사랑을 풀어 대지를 적시는데
내 정열의 단비는 갈 곳이 없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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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하고
임경숙
까닭 없이 네가 좋았지
이유도 모르게 너를 사랑하다가
내 가슴이 타버린 미칠 듯한 그리움들 이제 어디로 다 가버렸을까
정처 없이 너를 보내고
빈 가슴만 어루만지네
사랑하는이여
당신도 지금 나만큼 쓸쓸 한가요
[mbc 큰누나 연속극 주제 가사 됨]
82
☆★☆★☆★☆★☆★☆★☆★☆★☆★☆★☆★☆★
가을에
임경숙
나무 그루터기에 샛노란 나뭇잎을 보거나
땅위에 구르는 낙엽을 보면
내 생명 또한 색칠이 되고
젖은 수목이 되어 처연히 가라앉는다
숲 속에 달려가 나무와 함께 땅을 베고서
지치도록 하늘을 치어더 보거나
바람의 유혹에 못 이기어
이리 저리 방랑하는 가랑잎 일수 있다면
색채 속에 파묻힌 환상이 되어
부시시 뼈와 살을 녹이는 낙엽일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계절에
"죽음은 신선한 나의 축제이고
슬픔은 달콤한 포도주입니다"
가을에 내 목숨은 촛불처럼 이글거리는
위험한 불꽃입니다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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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임경숙
발가락으로부터 뿌리내리기 힘든
너, 겨울 나무여
네 생명의 불씨를 어디에 감추려고
늦은 밤 두 날개 모두 부러트리고
갈길 없어 어둠 속 깊숙이 서성이느뇨
84
☆★☆★☆★☆★☆★☆★☆★☆★☆★☆★☆★☆★
예술이란 무엇일까
임경숙
예술이란 고통 하는 자의 소리이며
고문당하는 자의 소리
이 세계가 과연 살만한 세계인가
아닌가에 대해 다시 묻는다면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85
☆★☆★☆★☆★☆★☆★☆★☆★☆★☆★☆★☆★
불안
임경숙
아직도 혼돈상태
그저 졸음으로 가득 찬 생존의 터널
긴 어두움
부끄럽다
아니 부끄러워라도 할 수 있는
오기를 가져 봐야겠다
흐리멍 텅한 자신이 자꾸 두려워진다
나의 길을 가자고 버티었는데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86
☆★☆★☆★☆★☆★☆★☆★☆★☆★☆★☆★☆★
한恨
임경숙
마음의 번뇌를
떨구려 해도
씻어지느냐, 씻어지느냐, 씻어지느냐
아무리 사랑을
지우려 해도
잊혀지느냐. 잊혀지느냐, 잊혀지느냐
오르지 못하는 길
단념하려 해도
버려지느냐, 버려지느냐, 버려지느냐
한 맺힌 목숨의 서러움
처절한 생명의 몸부림이여
오늘도 통곡하느냐, 통곡하느냐, 통곡만 하고 있느냐
87
☆★☆★☆★☆★☆★☆★☆★☆★☆★☆★☆★☆★
여행
임경숙
여행은 바람을 가슴에 가득 채우는
그리하여 흐느끼게 하고 더욱 쓸쓸하게
방황하도록, 자신 안으로 몰아세우는
술 주정 같은 것
헤매일 수록 더욱 어지럽게
허기지는 외로움
지나가는 기차처럼
마음과 마음 사이를
풍경과 우주를 더듬으면서
비명을 지르는 경적과 같은 것
88
☆★☆★☆★☆★☆★☆★☆★☆★☆★☆★☆★☆★
죽음에의 유혹
임경숙
마지막 빈자리에서
청해야 될 그 소망을
이토록 예리한 칼자국처럼 내 영혼 깊숙이에 숨겨주시어
나로 하여금 못 견디게 갈망케 하는
죽음이여, 아, 죽음이여
인간은 오직 죽을 수 있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그 언제쯤 눈물의 귀양소를 떠나
훌훌이 당신에게로 귀의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이
마지막 마지막 그 날 이라면
89
☆★☆★☆★☆★☆★☆★☆★☆★☆★☆★☆★☆★
공장 생활
임경숙
주님! 아직도 내가 걸어야 될 길이 멀었습니까?
하루에도 몇번씩 생의 테두리를 떠나, 머나먼
곳으로 떠나 버리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공장 생활이 얼마만큼 날 괴롭히고 지치게 하는지는
아무도 모를 거에요
시간마다, 분마다, 초마다
나는 질식할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을 견디고 있어요
그 언제쯤인가, 넌 결국 이것을 알기 위하여
그토록 헤매었다고 깨달을 수가 있을는지…….
허나 파리한 얼굴과 야윈 손이
바늘 위에 꽂힌 소녀들의 성실함 앞에서
어리석을 정도의 열심 앞에서
내 고뇌조차도 한없이 부끄러운 묵묵한 저항
주님 ,저에게도 거짓 없는 성실함을 주소서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아무리 보수가 적고, 아무리
흥미가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생"의 얼굴을 하고 내게 다가서면
겸허하게 내 자신을 비추어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나를 어디로 이끄시든지 간에
사랑의 등불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 주소서
정녕 나는 내 타오르는 고통의 불꽃으로
모든 악을 이겨내고야 말겠어요
☆★☆★☆★☆★☆★☆★☆★☆★☆★☆★☆★☆★
첫댓글 임경숙 시 모음
감사히 잘 읽고 보듬고 나갑니다.
오늘도 수고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그도세상김용호님
연녹색 나뭇잎이 너무 아름답고 좋은 날
밝은 미소로 행복 가득한 금요일 되세요
추천"콕"
내밀 일기
임경숙
글은 부질없는 방황의 기침 소리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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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는 자존심
어떤 부귀 영화나 이익이나 안전으로부터도
더렵혀질 수 없는 순수의 공간
살면서 꿈꾸고, 꿈꾸면서도 강렬하게
생에 침전되는 침투력
어떤 위험에도 도망하지 않고
어떤 죄악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고귀함
상식을 뛰어넘는 여유와
파리한 도덕 율에도 갇히지 않는
자유분방한 넋의 비상이다
불과의 싸움, 폭풍우와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
살고 추구하며 용맹스럽게 불타버리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불을 피우기 위한
기름이 되는 과정이
기다림
임경숙
글을 쓰고 싶은 것
더 많이 꿈을 꾸고
꿈을 따라 멀리 헤매는 것
인간이 되어가고
삶을 아는 것
삶을 사랑하고
삶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는 것
그러나, 그러나 그것이 언제쯤일까
우리네 자화상에 한표를~!!
감사합니다 시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