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6일 오후, 오랜만에 덕진공원에 놀러 갔다. 지난해 11월 말에 온 뒤 처음이니 일곱 달이 넘었나? 늦가을의 풍경과 초여름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다. 덕진공원의 자랑인 연잎이 푸르게 푸르게 펼쳐져 있어 장관이었다.
게다가 두 차례의 '깜짝 음악공연'을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미국 젊은이의 기타 연주가 그 하나이고, 연잎들의 타악 연주가 그 둘이다. 덕진공원의 초여름을 멋지게 수놓은 두 번의 야외 음악회. 공짜여서 더더욱 흐뭇했다.
#1. 기타 음악회
덕진공원의 연못 파노라마를 완상하며 거닐다가 긴의자에 앉았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연잎의 향연이 볼 만하다.
그런데 저만큼에서 웬 젊은이 하나가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멀찍이 건너다 보며 잠시 감상하는데,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악기를 케이스에 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는 방향은 아내와 내가 있는 곳.
가까이 보니 그 젊은이는 미국인이었다. 우리 옆을 지나가자 내가 말을 붙였다. 멋진 연주라고. 그래서 우리에게도 잠깐 들려줄 수 없겠느냐고. 젊은이는 그러마고 흔쾌히 승락한 뒤 우리 벤치에 앉았다.
통성명을 하니 스펜서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미국 메릴랜드에서 여섯 달 전에 왔고, 전주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단다. 나이는 스물넷. 순박하게 잘 생겼다.
날렵한 포크기타가 세련된 모습이다. 젊은이가 묻는다. 혹시 주문하고 싶은 곡이 있느냐고. 얼른 생각나는 게 없어 아무 거나 한 곡조 들려달라고 했더니 젊은이는 고개를 두어 번 갸웃거리며 생각하더니 능숙한 솜씨로 연주를 해나간다.
첫 번째 곡은 닐 다이어먼드의 '스위트 캐롤라인'. 그리고 두 번째 곡은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 '. 듣자 하니 상당한 실력이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영어 선생이냐, 아니면 기타리스트냐'며 찬사를 겸해 물은 뒤 '아마 둘 다인 것 같다'고 대답까지 해줬다. 그랬더니 기분이 좋은지 젊은이는 싱글벙글이다.
관객은 아내와 나 단 둘. 간간히 옆을 지나가는 연인들이 눈길을 슬쩍슬쩍 던진다. 오후 나절의 바람결은 한결 상쾌하다. 더운 날씨마저 순식간에 날릴듯이 그렇게.
내가 기타 한번 만져봐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라고 또다시 흔쾌히 허락한다. 그래서 존 덴버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를 불러줬다. 이국에서 혼자 사는 젊은이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실어서.
그리고 젊은이와 헤어졌다. 또 보자며 인사를 건넨 뒤 서로 손을 흔들었다. 젊은이는 매주 일요일이면 이곳에 와 기타로 외로움을 달랜다고 한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참 착해 보인다.
#2. 연잎 음악회
미국 젊은이와 헤어진 뒤 덕진공원을 가로지르는 나무 다리를 건넌다. 연잎이 질펀하게 펼쳐진 연못 위로 100여 미터의 나무 다리가 꼬불꼬불 기다랗게 이어져 있다. 가운데쯤엔 정자가 하나 단아하게 앉아 있다.
정자에 가까이 왔을 때일까.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제법 많이 내린다. 정자에는 10명 가량의 나들이객이 모여들어 비를 피한다. 여기서 바라보니 연못이 더욱 아름답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두둑-!후두둑! 후두두둑!
넓게 펼쳐진 크고 작은 연잎들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한다. 영락없는 타악기 연주회. 잎의 크기에 따라, 두께에 따라 음향이 각기 다르다. 얇은 소리, 두꺼운 소리, 가는 소리. 굵은 소리...
여기에 바람까지 솔솔 부니 분위기는 만점. 연잎들이 이리로 저리로 춤까지 춘다. 갑자기 쏟아진 여우비는 제법 오랫동안 이어졌다. 해는 벌써 서쪽 하늘의 잿빛 구름을 벗어났건만 비는 한동안 그칠 줄 몰랐다.
두 연인이 두 손을 꼭 잡고 음악을 감상한다. 아주머니, 아저씨도 알게 모르게 타악 연주에 빠져든다.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세 살짜리 아이만이 찰옥수수 맛에 빠져 냠냠거릴 뿐. 하기야 여기서는 그마저 음악소리!
대자연이 연출한 깜짝 음악회는 20여 분 동안 계속되다가 끝이 났다. 비록 박수 없이 막을 내린 연주회였지만 어느 공연장의 그것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비가 그치자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연못에는 다시 소리없는 바람만 불 뿐. 오후나절은 그렇게 시나브로 기울어갔다.
2010.6.6.
첫댓글 울 신랑이 좋아하는 Sweet Caroline...대타님도 기타치며 노래하는걸 좋아하셔서 더 흥겨운 시간이였겠어요.
좀 부끄러운 얘길지 모르지만 이 노래가 그 노래인지 이날 첨 알았답니다. 리듬만 조금 아는 노래였어요^^ 그러고 보면 카메노님은 대단하셔! 언제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요 밑에 제 글(숲속 향기 맡으러 떠난길) 보면 Neil Diamond 음악 올려져 있는데..대타님 제 글 안보셨군요..ㅎㅎ
레오 님이 올린 배경음악에는 라이브로 부르던데 더 신나요. 라이브의 생동감이 生生生生生
난 또 카메노님이 生生하게 부르셨다는 줄로 알고... ㅎㅎㅎㅎ
어유~~~ 대타님이 기타솜씨를 뽐내셨군요.ㅎㅎ 화창한 날씨에 제암산과 함께 한 공원데이트 즐거우셨죠?
어유~~~ 밥줘 누님도! 이날 비가 내렸다니깐요^^. 하기야 여우비라 맑다 흐리다 잠깐 비가 오다 갰으니 그게 그건가...^^^^ 국줘님과의 의성답사 사진 잘 봤답니다.
옆 동네 사는 나도 모르는 깜짝 연주를 대타님이? 나도 다음주에는 한번 가봐야겠네요...나도 닐 다이아몬드 엄청 좋아하는 가수입니다 지금도 LP판 가지고 있어요 비록 복사판이기는 하지만 ^^
그러고 보니 닐 다이아먼드가 꽃님이님 세대로군요. 저는 그의 '롱펠로우 세레나데'를 좋아합니다만^^.
우리부부 낮잠자던 시간에 음악회를 즐기셨네요...ㅎㅎㅎ
더운 날에 자장가도 좋지요~~~~! ㅎㅎ. 오늘도 되게 덥네요^^.
멋진 대타님 외로워할 이국인한테 고향 생각 더 나게 노래를 불러 주셨다고라 ㅎㅎㅎ 행복한 나들이에 음악회까정 잼나게 사세요
그라고 봉께 우리 달새님 뵌 지 오래됐네!! 야생화처럼 수수하고 아름답게 사시는 달새님이 존경스럽습니다^^ , 제 블로그 인물사진 찍어주셔서 늘 감사하고^^^^
닐다이아몬드...갈매기의 꿈 OST도 멋지죠. 제암산님은 주로 전주에 가 계시나보네요. 대타님께 자장가 불러디리니라구~~ㅎㅎㅎ
그래서 요즘 잠이 잘~~ 온다우~~~~~ㅎㅎㅎㅎ '갈매기의 꿈'도 들어볼랍니다^^
순수男, 대타님께서 외로운 타국인과 함께 보낸 시간이 아주 흐믓하게느껴집니다...
연꽃잎 타악기를 들으려면 전주에..필히 덕진공원에..필히 비오는 날에 가야겠어요^*^
덕진공원 연꽃축제는 7월 10-11일에 열린답니다. 물론 연꽃은 7월 내내 볼 수 있다고 하고요^^
멋쟁이 청순남과 그의 여자...아무도 몰라주는 그 미국청년의 연주도 들어주고 또 말도 걸어주고...
연잎의 연주도 들을 줄 아는 그남자의 이름은 대타?..영 안 어울리는 닉 네임이다
얼결에 짓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한번 '대타'는 영원한 '대타'인가요? 향기야님, 좋은 생각 있으심 말씀해주세요^^.
젤 부러운 사람이 연주하면서 노래부르는 사람인데......대타님이 멋진 연주를 하셨으니 덕진공원이 인파로 넘쳐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것이 좀.......^^
상상만해도 마음이 땃땃해집니다. 글도 좋아요~~~
Thank you, sir! ㅎㅎ
우연한 만남이 준 소중한 음악회 참 좋은 날이셨군요. 행복한 부부이십니다. *^^*
갑장님, 뵌 지가 제법 오래 됐네요^^.
마음이 편해집니다.노래 끝날때가지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그런데 제암님의 사랑스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요. ^^
맞아요! 말로는안 통하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았아요^^^^^
언제나처럼 새벽같이 눈이 떠져서~~백두산을 생각하며 아침산행을 할렸더니 비가 오네...모처럼 시간내어 집에서 접속했더니...잘 살쟈?
주말이면 산에 가던 습성이 이곳에선 예외라 나도 맑은하늘 바라보며 산에 가고 싶어한다오. 8월 7일 나는 남알프스 등반이 예정되어 있어 운동좀 해야 하는데..서울엔 비가 오는군요. 뜬구름 님도 잘 살쟈? ㅎㅎ
그랑께. 해필이면 비가 오네! 워낙 빌빌해서 백두산에 가질랑가 몰라.
대타 님과 쌍벽을 이루는 젊은이가 나타났네요. ㅎㅎ 다음엔 기타들고 공원으로 나가세요.
일요일 오후면 온다니까 담에 또 가봐야것어요^^
덕진공원은 내 학창시절에 그룹데이트, 개인 데이트 하던 곳 이랍니다. 연꽃이 피면 정말 멋있지요. 내고향 전주에서 떠나온지 오래되어 지금은 내가 태어난곳이구나 !... 그정도...랍니다...
산드라님이 전주댁!? 더 반갑구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