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즌이 시작되기 전, "이용규와 정근우가 보강됐으니 한화도 4강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여러 차례 [4강은 절대 불가능하고 탈꼴찌도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올해 역시 99.99% 확률로 한화가 최하위일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 투수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훌륭한 야수가 몇명 보강되도 팀 순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야구단의 전력은 투수에 의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뉴욕 타임스 출신 언론인이자, 60년 가까이 MLB 기자로 활동하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레너드 코페트는 "타자란 투수의 행동이나 생각에 끌려 다니며 거기에 반사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며, 게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바로 투수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피칭은 야구의 75%를 차지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90%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으며 현대 야구에서는 피칭이 야구의 전부라고 볼 수 있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A급 투수보다 A급 타자의 몸값이 훨씬 높은 미국프로야구를 한평생 취재했던 사람이 한 얘기라서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고, 타자는 원래 투수에게 집니다. 타격은 원래 변덕이 심해서 하향 곡선을 타고 있을때는 백약이 무효합니다. 우리에게 스윕당할때의 삼성이 그랬고, 5연패에 접어든 지금의 한화가 그렇죠. 잘던지는 투수에게 한두경기 막혀도, 심판의 넓은 존을 따라가느라 밸런스가 흩어져도, 나쁜 운이 몇차례 겹쳐 무득점 이닝이 조금만 이어져도 타선은 쉽게 침체에 빠지죠.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시간] 뿐입니다. 다른 선수를 기용하거나 번트 혹은 도루를 섞어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도 있지만 결국 흐름을 다시 찾는데는 일정시간이 필요하죠. 그 사이클 아래서는 패배가 좀 많이 쌓일 수 있습니다. 삼성도, SK도, NC도 모두 5연패 혹은 그 이상씩을 한번씩 했습니다. 조급하게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고, 팀이 망한 것 처럼 역정을 낼 필요도 없지요. 게다가 원래 약한 전력인데요.
요 며칠 번트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선수들이 욕심을 낸다]고 평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보내기번트는 윗선에서 작전을 내려주어야 대는 것이지 선수 스스로 희생정신을 발휘해 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정확한 스윙을 해야 되는데 왜 모두 장타만 노리느나"며 불만을 가지시는 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구에 [정확한 스윙]과 [장타를 노리느 스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김태균 정도 레벨의 타자 뿐이죠. 거의 대부분의 타자들은 [힘차게 스윙]해야 정확한 타격이 됩니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최선을 다해 휘둘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헤드업이 되거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나 폼이 무너지는 것은, 홈런을 치려고 헛바람이 든 게 아니라 타이밍이 맞지 않아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지요. 그러니 선수들이 욕심을 낸다고 구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내가 홈런을 쳐야겠다]고 생각하며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선수들이 죄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타석에 들어선 다면 그것은 김재현 코치나 쇼다 코치의 책임이겠죠.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아쉬운 것은 권혁의 투구수입니다. 왜 공을 42개나 던져야 했는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이미 0:3으로 지고 있었고 우리에겐 딱 2번의 공격만 남아 있었으며, 8회는 하위타순이 등장할 예정이었죠. 게다가 권혁 등판 이전까지 NC투수들의 WHIP은 0.714였으며 올 시즌 NC는 7회 이후 앞서고 있는 34번의 시합에서 역전을 허용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 정도의 확률이라면 그것은 실현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보아야 옳습니다. 그 확률을 뒤집는 것은 사실상 '요행수'의 영역이고 실제로 결과까지 나빴죠. 권혁이 패전처리가 아니라면 그렇게 공을 던져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심지어, 올 시즌 KBO 전체 불펜투수 중에서 가장 많은 공을 던지고 있는 선수인데 말입니다. 점수싸움을 벌여주지 못한 타자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겠으나, 그 아쉬움과 권혁의 등판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앞으로는 지는 경기에서 필승조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말고 그냥 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팀에 비해 필승조가 풍부하지 못하니 좀 아끼자는 의미입니다.
한말씀 덧붙이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1번선발입니다]라는 제목이 좀 더 어울릴 내용이니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패배가 쌓이니까 게시판에서 자꾸 [암흑기 주범] 혹은 [암흑기 멤버]라는 글들이 보입니다. 오늘도 그런 글이 참 많이 올라왔죠. 특정 선수 거론하면서 그 선수가 올라오고 나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고 말하거나, 근묵자흑이라는 사자성어를 써가며 특정 선수들을 비하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류의 표현은 회칙 위반으로 간주합니다.
암흑기 멤버라니요. 팀이 그동안 야구를 못한 것이 그 선수들 책임은 아니죠. 십수년간 투자 안하고 다른 구단보다 늦게 선진화했던 과거 구단 시스템의 책임이 그들에게 돌아가면 안됩니다. 암흑기에 땀흘리며 뛰어준 그 선수들은 잘못이 없지요. 류현진-김태균-안영명-윤규진-송창식 모두 암흑기에 고생한 선수들입니다. 그러면 그 선수들도 암흑기의 주범일까요? 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지난 시즌 주전 2루수는 정근우였고, (올해 권혁처럼) "몸이 완전치는 않지만 팀을 위해 뛰겠다"며 시즌 초부터 나와 경기에 나선 선수가 바로 이용규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암흑기 멤버일까요?
원조 이글스팬 VS 신입 김성근팬으로 편갈라 싸우지 말자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맞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암흑기때 뛰었던 못난 선수 VS 김성근이 키운 핫한 선수] 이런 식으로 선수들 나누지 마세요. 한화가 지금보다 야구를 훨씬 잘했던 시절에 가을야구에서 한몫씩 했던 선수들이고, 팀 성적이 추락해 팬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훨씬 덜했을때도 매일같이 구슬땀 흘리며 그라운드에서 흙먼지 마시고 고생한 선수들입니다. 아무개가 올라와서 분위기를 흐린다? 아무개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물든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런 글로 게시판 분위기 흐리는 분들이 더 나쁩니다.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선수들입니다. 다시는 그런 식으로 매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한화이글스 화이팅
글 잘읽었습니다...그리고..
공감합니다^^
1번 선발님 글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구구절절이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리 선수들 내일 하루 푹쉬고 심기 일전하기를 바랍니다.
권혁등판관련해서는 200퍼 공감합니다
오늘 권혁등판은 좀 무리였던것 같네요..당장 화요일에 접전이 벌어지면 올려야 할 투수인데..사실 오늘 분위기는 이미 넘어가 버려서..이럴 때 최영환선수나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것도 좋을법한데..좀 아쉽습니다..
고동진,김태완,한상훈까지 돌아와서
팀이 더 강해지고 두꺼워질줄 알았는데
예상을 벗어난 한주였네요
최영환선수는 2군내려간걸로 알고 있어요 권혁선수3일쉬고 어제 20개넘게 던지고 오늘 나왔는대
전에 감독님께서 권혁선수에게 투구수조절하라고 하셨다는 기사를 본적있어요 아미도 오늘 투구수 계산했을거라 생각드는대 8회 2아옷잡고 40개넘었을때 1아옷만 잡으면되니까 내일 휴일생각해서 권혁선수에게 맡긴거 같아요 결과도 안좋아서 아쉬움도 만지만 그래도 권혁선수를 올린건 그만큼 우리타자들한테 기대할만큼 절실함이 컸다고 생각합니다....우리선수들 심기일전해서 화요일 좋은경기 기대합니다..
잘잘못 따질 때가 아니죠... 연패 끊고 이기면 다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나저나 다음주 상대가 넥센이라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
공감합니다
불펜이 조금 애매하긴 했습니다.준비된 투수는 정대훈선수뿐이었고 하위라고해도 손시헌김태군 선수 만만하게 보긴 어렵고 이미 상황이 벌어진 후에는 나성범테임즈선수였으니.투수간의 격차가 아쉬웠던 순간입니다.
좋은 글 공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이리 NC와 넥센한테 주눅이 들어있는지...
내일도 걱정이 태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