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돌아와서 처음으로 한 것은 칼라운과의 회담을 통해 얻어낸 소장파들을 제외한 맘루크 지도부의 적극적인 이교도 사냥의 개입이 자제될것이라는 의견 공유였다. 일단, 당장 수십만 맘루크의 군세가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기뻐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강경한 젊은 지휘관들이 여전히 개입할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사실에 계획을 서둘러야 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관련 진행에 대한 중간 보고와 후속 진행에 대해 내 의견을 묻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라는 지시를 한 뒤에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대사관을 나오는 길에 정원에 접한 데크에서 나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간이 테이블 위에 놓인 체스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에라드를 만날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전 경과 공유를 할 때 에라드는 보이지 않았었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다가갔다.
체스판에서는 열띤 공방이 오갔는지 한참을 치른 대국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아마도 살라딘공과 두는 서신 대국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체스의 다음수를 생각하다니, 체스가 무서운 게임인걸까? 아니면 이 두사람의 체스 사랑이 과한걸까? 나는 조금 농담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전황은 어때? 뭐 이기고 있다는 건 항상 변함이 없을테고… 어떻게 교묘한 수로 살라딘공의 심기를 흔들고 있는지만 알려줘."
"졌다."
"응? 뭐라고? 졌다고? 정말? 아니, 형이 졌다고?"
나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에라드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라고 해서 항상 이길수만은 없는 법이지. 어머니한테도 여러 번 지면서 배운 체스인걸… 하지만 오늘은, 참 씁쓸하게 졌다. 그분께서 내 예상대로… 아니 상식적인 기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수대로 두지 않았어. 캐슬링을 하지 않고 대신 퀸을 전진시켜서 기습을 했지. 끝까지 킹은… 본진을 버리지 않았어. 아마도… 그분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남으실 생각이신 듯 하다."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어제 그의 집무실에서 받았던 위화감과 우려가 이것이었던가? 그는 이곳에서 위대한 가문의 일원으로서 긍지를 지키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인듯 했다. 아마도, 오늘 그는 그런 뜻을 담은 오랜 체스의 공방을 주고 받은 벗, 에라드에게 마음을 담아 전달한 것 같다. 에라드가 씁쓸하게 말했다.
"나도… 남을까?"
"형…"
"아니다. 이제 나도 미쳐가는 것 같구나. 그분에게 나는 그냥 중립국 대사관의 종종 어울려 놀기 편한 서기관일 뿐이겠지. 나는 애초에 무슬림도 아니고 그의 가신도 아니고 그에게 큰 의미를 가진 사람도 아닌 것을…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아버지에게 외면당하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나에게 이곳에서 그분과 두는 체스는 유일하게 마음을 쉬게 할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고 공간이었다.
그분은 늘 지면서도 항상 나로 인해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고 나를 소중한 친구라고 말해주었지. 나 역시… 그분이 소중한 친구였어. 그래서 나는… 지금 그분을 그 잔혹한 맘루크들의 손에 남겨두고 가는 것을 상상하면 할수록 가슴아프기 그지 없다. 미안해. 나혼자 우는 소리를 할 상황이 아닌데, 다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못난 모습을 보였구나. 미안하다."
나는 에라드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일단… 지금은 잠시 다녀올곳이 있으니 갔다 올께. 그분에 대해서는 다녀와서 조금 할일이 있어. 자세한건 그때 이야기 하자."
"응? 그게 무슨… 뭔가 설득이라고 할 생각인거야? 정말 그런거야?"
그때 동행하기로 했던 멜리장드와 에스더가 마당에 들어와 말했다.
"왕지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나는 곧 가겠다고 그녀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에라드를 보며 말했다.
"설득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일단은 급한 일부터 우선 하자. 다녀올께. 갔다와서 얘기해."
에라드는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조금 기대를 품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랄까나… 나중에 상황에 직면해서도 저런 표정을 유지 할수 있을지 걱정이네. 하지만 나는 당장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해야했다. 나는 에라드를 뒤로 하고 멜리장드와 같이 대사관을 빠져나와 안젤모 그라치아니를 다시 만나러 예루살렘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두번째 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리 얘기해두었는지 문지기는 나를 보고 그대로 통과시켜 주었고, 여전히 환락적인 분위기를 풍기고는 있었지만, 그안에 쾌락에 찌든 사람들 속에 잘 훈련되고 무장을 갖춘 자들이 있다는 생각에 정신은 오히려 맑아졌다. 나는 곧바로 안젤모에게 안내되었다. 그는 엊그제 만났던 모습 그대로, 조금은 차분한 얼굴로 미소띄며 나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살아 돌아오셨군요. 좀 걱정했습니다만 표정을 보니 그리 나쁘진 않은 결과인듯 하군요."
나는 그에게 그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참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한손으로 창을 들어 창날로 등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 쪼잔한 칼라운은 여전하군요. 기왕이면 통크게 같은 무슬림인 시아파 박해는 안하겠다고 약속 정도는 해주길 바랬는데… 뭐 그렇다고 해도 얻어낸 결과가 나쁘지는 않군요."
"칭찬해 주시는 건가요?"
"물론이죠. 저번에 너무 심하게 나무랬던게 트라우마가 되었나요? 이 정도면 잘해낸 겁니다. 자신을 가지세요. 솔직히 좀 감동했습니다. 행여나 저 깐죽이가 발끈해서 현장 체포 당하면 어쩌나 했는데… 잘 해결하고 오신듯 하군요. 인간을 동전 한닢으로 살수 있는 나라라… 좋은 포인트였습니다. 그렇죠. 그러면 안되죠. 동전의 구리값어치도 안되는 무슬림년들이지만 가격이 그렇게 폭락해버리면 전 운송비도 못뽑고 상품들을 인육상들에게 헐값에 넘겨야 할겁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미리 방지해주신 건 저도 왕자님께 감사드립니다."
흥겨운 얼굴로 후덜덜한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나는 조금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딲으며 그에게 말했다.
"뭐 당신이 인정한 결과라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솔직히 제 역량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폐하의 곁에서 그분을 본 덕에… 칼라운에게서 어머니와 같은 모습을 볼수 있었던 것이 행운으로 작용한 것일겁니다."
"칼라운에게서 폐하의 모습을 보았다라… 칼라운도 심심하면 부도수표를 끊어오고, 술먹고 중요 외교문서에 서명을 하고, 퀸스가드에 행선지도 말씀안하시고 사라지셨다 어느 시골 마구간에서 발견되는 괴벽이 있는줄은 몰랐군요. 맘루크의 의전담당자도 스트레스로 오래살긴 글렀군요."
엄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셨길래 저 망나니한테 저런 소리까지 듣고 사시는 거예요… 나는 눈물을 삼키며 그에게 말했다.
"뭐 일단 결과는 좋게 평가해 주시지만… 사실 큰 진전은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계획은 당신이 말한 것 처럼 부실하고, 수십가지도 넘는 위험을 안고 있죠. 그래서… 저희는 필요하다면 그 어떤 도움이라도 구걸해야 할 현실입니다. 전에… 저희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도와주신다고 하셨죠? 혹시… 그 말씀 아직도 유효한가요?"
그는 조금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라고 말하면 그 하레디 꼬마랑 깐죽이가 날 죽이려 들겠죠? 여자들에게 살해당할 위험을 느끼는 건 일상이지만… 저런 발육부진 유아들에게 그런 잡기 놀이를 해주는 건 취미가 아니군요. 뭐, 까짓것 도와드리죠. 어차피 당분간 맘루크들의 내전이 끝나고 해상 초계가 완화되야 사업도 재개할수 있으니, 노는 동안 왕자님 일거리나 하면서 소일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보수에 대해서… 숫자와 논리로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당장 보상드릴 것을 약속할 수가 없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제국에서도 부인당한 듯한 상황이라 미래에 뭔가 담보를 드릴 것도 없습니다. 저어…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나는 좀 비굴한 얼굴로 그에게 삐질거리며 부탁했다. 여기서, 그의 존재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로 하다. 우리가 세운 계획의 완성을 위해서…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의 안색을 살폈다.
"후후후… 뭐 신경쓰지 마시죠. 정안되면 데네브 작전으로 탈출시키던 무슬림들 몇 명 가져다 팔아서 충당하죠. 아아… 놀라지 말아요. 농담이니깐.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난 왕자님과 프로방스에서 같이 놀아주고 돌봐주던 동생 같은 여러분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더러운 무슬림 년들을 팔아넘기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유익한지를 알게 된후 제국에서 폐출되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조안 폐하가 앙주의 시장으로 부임하셔서 총독에 이르시고 죽음을 이겨낸뒤 백성들에게 받들어져 왕이 되시며 결국 제국을 세우는 것을 보며 자란 제국의 시민입니다.
제국이 나를 포기했어도 나는 제국을 포기할수 없죠. 그러니깐, 이번 한번만은 왕자님에게 그리 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드리겠습니다. 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관련 보상을 유무형으로 회수할 방법은 다양하게 있으니, 너무 미안한 표정하지 마시고 부탁하시죠. 뭘 도와 드리면 될까요? 여기서부터 설명은 깐죽이가 하겠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행여나 거절하거나 터무니 없는 대가를 요구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는 의외로 사람좋은 고향 친구처럼 우리의 요청에 승낙해주었다. 그의 말처럼 멜리장드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데네브 작전의 요지는 보시기에 많이 부족하시겠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경로에 대한거? 해안가도를 따라 북상하는 방법이라면… 뭐 그건 어쩔수없지 뭐. 백만명에 달하는 백성이 이동하는데 정비된 도로와 식수를 구하기 용이하고, 해상보급도 받을수 있는 길이 아니고서는 무리가 따르겠지."
"네에… 그래서 관련 말씀하신 해상 보급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혹시 보유하시고 동원하실수 있는 함선이 몇척정도 되시나요?"
"흐음… 수리중인것 까지 총동원하면 코그 3척, 다우 2척, 드로몬 2척, 카락 3척, 갤리어스 2척… 대충 12척 정도? 근데 밀수선 개조한 배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재량이 백만명 먹여 살릴 식량이나 물자는 도저히 무리야. 설마 그런 무모한 요구를 하는건 아니겠지?"
"네, 그건 물론 아닙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정말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 급하게 필요할수 있는 의약품과 증류수, 그리고 압축시킨 건량을 예비로 적재하여 주시고, 난민들의 이동에 발맞춰서 비슷한 움직임으로 이동해주시길 바라는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극소수의 사람만 피신시킬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니깐요. 그 상황을 대비한 보험으로서 동행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녀의 사뭇 비장한 각오를 담아 저번이랑 달리 공손한 태도로 안젤모에게 부탁을 하는 멜리장드를 보니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안젤모도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그 정도라면 가능하겠지.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난민들과 합류하는 지점이라면 티루스 해안이 될것이고… 화물은 자파에서 선적해서 일단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난민들과 합류해야 겠구만. 대충 경로는 심플하구만. 무지하게 위험하지만… 아마도 맘루크들의 지휘관들이 엄청나게 바보가 아니라면 일단 난민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해상 보급의 움직임을 먼저 확보하려 하겠지?
그렇다면 적들의 육상 병력은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우리 함대를 따라 난민들의 뒤를 밟을 것이고, 해상에서는 육상 정찰을 근기로 우리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공격할 시점을 계산하려 들꺼야. 우와, 이거 흥분되서 손끝이 떨리는데? 자칫 잘못하면, 배에서는 난민들이 맘루크의 군단에 학살되는 모습을 보고, 난민들은 우리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절망하는 촌극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 너 사람 심하게 부려먹는다."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안젤모 제독님 외에는 달리 도와주실 분이… 역시 너무 불가능한 일인가요?"
"흥, 단언컨데 일반인이라면 확실히 불가능하지. 하지만 너희들은 운이 좋았어. 나는 그라치아니의 적자이자 안젤모의 이름을 이어받은 자다. 나에게 불가능은 고집쎈 노처녀 수녀를 무도회장에서 꼬셔서 침대로 데려가는 것 정도의 난이도를 말한다. 해주겠어. 해상으로 가는 길은 내가 책임지지.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고 육상에만 전념하도록 해."
멜리장드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든 데네브 계획의 동료들을 대표해서 당신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저번에 제가 저지른 무례함도 사과드립니다. 제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 덕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을 이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설픈 동정심이 아닌 냉철한 사고와 비정한 결단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닭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려주신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녀를 한손을 가슴을 대고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안젤모는 껄걸 웃으며 대답했다.
"으하하하… 이거 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네. 안젤모 영감이랑 필립 재상님이 보셨으면 뭐라 평하셨을까나? 상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재밌어 지는걸? 뭐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오빠 말 잘들으니깐 귀엽잖냐. 앞으로도 내가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줄 테니 까불지 말고 말 잘들어라. 그리고 네 친구인 그 하레디 아가씨 한테도 전해줘라. 너무 귀여워서 저지른 장난이니, 다음번에 보면 그 속편을 계속해 주겠다고. 아, 오해하지는 마! 난 16살은 넘어야 공략 대상이야. 어린애는 아껴주고 보호하자는 것이 내 취지니깐."
멜리장드는 좀 기운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네에… 아이샤도 당신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다시 만나는 건 티루스 해변이 되겠으니 그때 재회하도록 하시죠."
"좋아… 그럼 나는 우리 애들을 데리고 곧바로 자파로 가도록 하지. 무슬림들의 눈이 많으니 난 되도록 데네브 작전에 많이 노출하지 않는게 좋겠지. 화물은 언제쯤 도착하지?"
"이미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상당 부분은 항구에 있는 사람이 현지에서 징말 혹은 구매해서 선적 할겁니다. 아무튼 내일 오전이면 항구에 인도받으실수 있을 겁니다."
"흠, 저번에 한번 맴매해줬더니 이젠 좀 일처리가 마음에 드네. 왕자님, 여기서 일단 인사드리죠. 부디 티루스에 도착하실때까지 무모한 행동을 하지 마시고 본인의 안전을 최선으로 생각하셔서 저와 만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인사에 나는 고개를 숙여 목례하며 대답했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와 작별의 인사를 하도록 하죠. 안젤모 제독도 부디 무사히 도착해서 해안도로를 가득 채우고 북상하는 우리들을 바다에서 막아주는 성벽이 되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티루스에서."
"티루스에서."
나는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안젤모의 거점을 빠져나와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안젤모의 협조를 구했다는 말을 전하자,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수긍을 했다. 멜리장드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일단 우리 작전에 가장 핵심적인 서두 부분은 완성되었습니다. 해상 지원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화물을 선적하고 안젤모가 티루스에 도착해서 상황을 파악하는 시점은 아마도, 열흘 정도 후가 될 것입니다. 그에 발맞춰서 성지의 백성들도 이동을 한다면, 일부 선발 인원과 후발 인원들을 제외한 전체 인원이 이동하는 시점은 바로… 내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말이지… 정신없이 일이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멜리장드의 선언을 들은 멤버들도 대부분 질린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납치당한게 불과 그저께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엄청난 계획이 얼마나 날림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경악할 노릇이었다. 아이샤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티루스에서의 합류 계획… 정말 괜찮을까? 우리가 너무 무리한 짓을 저지른건 아닐까?"
멜리장드는 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자의 말처럼… 숫자와 논리로 봤을 때 뭔가 문제점이라도?"
아이샤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없어. 지금으로서는 어쩌면 성공율이 그나마 존재하는 방법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서야 상황이 직면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상상하기가…"
"친구야. 우리 독하게 가자. 프로답게 하랬잖아. 친절한 고향 오빠가 그렇게 충고해주는데 말 잘들어야 하지 않겠어? 이제 물릴수도 없어. 그냥 가는 수 밖에 없어."
이 녀석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지? 나는 우리 멤버들 중에서 가장 두뇌파인 두 녀석이 왠지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에 살짝 우려가 들었다. 그래서 물어보려는 찰라… 멜리장드가 선수를 쳤다.
"그리고, 그 계획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분이 필요해. 왕자님, 살라딘공을 설득하러 가실 거죠?"
그녀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어? 어… 그렇지. 아무래도 혼자 내버려 둘수는 없으니…"
"그럼 서둘러 움직여주세요. 지금 바로 에라드와 리엔을 데리고 그분을 설득하고 오세요. 반드시 설득해주셔야 해요.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낭패를 보게 될꺼예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분을 설득하러 갈 생각이었다. 없는 사이 경과를 듣자 하니 이미 그분은 에라드와 두던 체스의 마지막 수를 적은 편지와는 별도로 자신의 집사를 보내 그분의 사용인과 하인들도 탈출에 같이 동행하라고 했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고 한다. 그분을 모시던 사람들이 고초를 겪게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사였다. 에라드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와 멜리장드를 보며 물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분의 의사는 명확하다. 죤이 그분의 의지를 꺽을 수 있을까?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설득하려 했겠지만… 그분은 살라딘의 후손이시고, 아이유브의 마지막 자존심이신 분이야. 그분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우리와 같이 성지를 빠져가 줄행랑을 치는 길에 같이 동참해주실까? 난 도저히 설득할 방법을 모르겠구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한가지… 변수를 몰랐다면 아마도 감히 엄두 조차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에라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형, 난 형이 좋아. 내 어린 시절 유일하게 가식없는 눈으로 나를 대해준건 형밖에 없었지. 그리고… 난 그분도 좋아해. 그분은 진정 이 땅의 영웅이셨던 분의 후예에 부끄럼이 없는 분이시고, 그 개인으로서도 모든 이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모습이 좋아. 그리고 두 사람이 같이 체스를 두는 모습이 보기 좋아. 난 두 사람이 함께 이곳을 탈출해서 살아남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깐… 한번 설득해보겠어.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도와줘. 그분을 설득해서 이곳을 빠져나갈수 있도록."
"그렇게 해준다면… 그분을 모시고 이곳을 빠져나갈수만 있다면… 내가 무엇이든 널 돕지 않을수 있겠니. 가자."
나는 멜리장드와 아이샤에게 말했다.
"남은 준비를 마무리해줘. 일단 나와 에라드는 그분을 설득하러 갔다 올께."
"아까 말씀드렸던 것 처럼 리엔도 데려가세요."
"응? 리엔도? 리엔은 그분과는 초면인데 무슨 도움이 되려나? 뭔가 첩보관의 입장에서 설득할 다른 방법이 있는 거야? "
리엔은 조금 망설이며 말했다.
"뭐… 그런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일단 저도 데네브 계획에 합류했으니 그런 쪽으로 일을 제대로 하는게 도리에 맞겠죠. 멜리장드와 미리 얘기해둔게 있으니 같이 가서 그분을 포섭하는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그러자 아그네 공주님도 말했다.
"리엔군이 간다면 나도 같이 가도록 할까요? 아마도 내가 제안하는 거라면 그분도 어느 정도 경청하지 않을수 없을꺼예요. 저와 에스더도 같이 다녀오시죠."
그녀는 늘 그렇듯 미소띈 얼굴로 리엔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왠지 리엔이 그녀의 미소에 움찔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같이 가도록 하시죠."
에미르의 궁전에 도착하자 그분의 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실줄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면담을 원치 않으셨지만… 제가 억지로 우겨서 겨우겨우 자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미 멜리장드양에게 저희 쪽 의사를 전달하기는 했습니다만… 정말 그분을 모시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있으신건가요? 그분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셔서 과연 수락하실지 의문입니다만…"
"어떻게든 해봐야죠. 솔직히 확률은 높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그분을 모시고 이곳을 같이 빠져나가는 길에 동행할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하아… 왕자님만 믿겠습니다. 저는 그분을 어린 시절부터 모셔서 그분의 하인이 아닌 그분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부디, 저희 가족 같은 주인님이 이곳에서 비운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그분을 부탁드립니다."
거세된 환관인듯 중년의 나이에도 수염이 없는 집사는 우리를 그분의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조금 긴장된 표정을 애써 숨기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분은… 무슬림 전사처럼 무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사슬 갑옷과 망토는 오랫 아이유브의 품격이 느껴지는 물건이었고, 처음 우리와 만났을때처럼 투구와 그 투구에 연결된 사람의 얼굴형으로 조형된 얼굴 마스크가 그의 표정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손을 들어 목부분에 있는 잠금쇠를 푸로 안면의 마스크를 벗으며 얼굴을 드러내며 말했다.
"작별인사를 제대로 드렸어야 했는데…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숨어버렸군요. 못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계획이 앞당겨 졌다고 들었습니다. 내일이 되면… 다들 이곳을 떠나신다고요. 그동안 무관한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힘써주셨고, 앞으로 고난을 짊어져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부디 가시는 길에 알라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나는 그의 말에서 강한 의지를 느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말을 고르며 차분하게 생각하였으나… 결국 어떤 이야기도 무의미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같이 가시죠."
그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같이 가세요. 우리와 함께 이곳을 떠나시죠. 저희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당신을 좋아합니다. 에라드는 물론이고 저와 저의 동료들 역시요. 같이 가시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도 여러분을 좋아하고 저의 친구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했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의 주인입니다. 저에게는 제 가문의 명예와 이곳의 주인으로서의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이곳을 떠날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 아그네 공주도 말했다.
"저 역시 부탁드립니다. 고귀한 성지의 수호자시여. 비잔틴은 오랜 시간 성지의 중립을 지켜준 당신의 행동을 높이 기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잔틴은 당신에게 그에 준하는 직위와 대우를 보장할것입니다. 같이 가시죠. 콘스탄틴노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잔틴의 호의는 감사드립니다. 허나 고귀하신 당신의 청을 거절하는 무례 또한 용서를 구합니다. 유스티아누스께서 니카의 반란에 수의를 더럽히지 않으시고 명예를 지키셨듯이 저 또한 존경해 마지 않는 귀국의 대제에 감히 미칠 존재는 아니지만, 지도자로서 책임을 저버리고 안위만을 돌보는 행동은 선택할수 없습니다. 부디 선조의 전례를 감안해 저의 거절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아그네 공주의 청도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조금 다급함을 느끼고 재차 청원했다.
"계속 거절하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맘루크의 손에 떨어져 참상에 휩쌓일 이곳에서 과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에게 자비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칼라운이나 바이바르스라면 혹시 몰라도 바라카와 같은 자들은 당신뿐 아니라 이곳의 모든 남은 백성들에게도 해를 끼칠것이 틀림없습니다. 들어보니 비단 시아파만이 아닌 수니파들 중에서도 정치적으로 맘루크에 의견을 달리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하더군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곳 예루살렘이 있는 수니파의 백성들 거의 모두가 맘루크로 인해 전쟁에 고통을 입은 피난민에 가깝더군요. 그들은 당신을 리더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저버릴 생각이십니까? 그들을 맘루크의 창검에 희생되도록 방치하실 생각이신가요? 부디 다시 한번 심사숙고 해주시길 바랍니다."
"전에 보내주신 계획서를 보고 저희 쪽의 입장을 전해드렸습니다. 다 데려가십시오. 그들 또한 성지에서 떠나길 원한다면 거두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고 추격하는 맘루크들을 막을 저의 사병들도 데려가 주십시오. 솔직히 말해… 이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에서 죽는 것은 오로지 저 하나이기를 저는 바랍니다. 아무런 희생도 없다면 좋겠지만, 그럴수 없다면 저 하나의 희생으로 그들의 정치적 허영과 종교적 만족이 채워지길 저는 바랄 뿐입니다."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방법을 달리 하는 수 밖에 없을 듯 했다. 나는 에라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은 뭐라고 할말 없어? 살라딘공과 가장 오랜 지기였잖아. 형도 좀 뭐라고 말 좀 해봐."
그러나 에라드는 어두운 표정으로 살라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빛이 교환되고, 그는 쓸쓸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캐슬링을… 거부한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났다. 솔직히 말해… 살라딘공께서 그러실꺼라고 생각했다. 최후의 순간이 오면 캐슬링을 포기하는 수로 역전을 노리는 공세를 취할것이라고… 이미 네가 오기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토록 성지가 유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외교적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지금 그 누구보다도 나는 당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막아서도, 막을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가슴이 아픕니다."
그는 나에게 말하다 어느새 그분을 다시 돌아보며 말하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두던 체스판에 시선을 떨구며 말을 흐렸다. 그리고 그런 에라드는 살라딘 역시 조금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아무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두 사람만이 이해하는 그런 세계가 그곳에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나에겐 그런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결국 그 방법을 꺼내기로 마음 먹고 입을 열었다.
"살라딘공… 당신에게는 살아서 우리와 동행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바로 이 체스입니다. 계속 이 체스를 두셔야죠. 언젠가 에라드를 이길때까지 살아서 두셔야 하지 않으신가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날 당신이 둘 체크메이트의 수가 뭔지?"
나의 말에 순간 두 사람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살라딘이 말했다.
"뭔가…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저는 이미 에라드경에게 한판 따냈습니다. 거기 테이블 위에 있는 체크메이트가 선언된 기보가 그거랍니다. 이미 바라던 승리는 거두었으니 그분과의 체스에 여한은 없습니다만…"
나도 그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니깐, 이건 억지이자… 협박이겠지. 나는 체스판에 조금 다가와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는 살라딘을 보고, 그뒤에 다가오는 리엔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뇨,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억지가 심하시군요. 이건 어딜봐도 체크메이트입니다. 나이트가 킹을 사각에서 노리고 있습니다. 킹은 아무리 움직여도 한칸 밖에 못움직이는 규칙상 나이트의 손을 벗어날수 없습니다."
"그래… 이 게임은 끝났어. 이건 아무리 따져봐도 더 둘 수가 없어."
살라딘에 이어 에라드도 자밋 우울한 표정 대신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체스판을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의 게임을 이어갈 수는 없다고 선언하였다. 나는 테이블 위에 체스판 밖에 굴러다니는 말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체스판위에 있는 말 하나를 집어들어 그 말과 바꿨다. 그리고 말했다.
"이것으로…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한참후 에라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죤… 억지가 너무 심하다. 너도 체스 규칙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게 뭐하는거냐? 세상에 그런 프로모션이 어딨냐? 체스판 끝도 아닌 중간에서 말을 바꾸다니… 그리고 그 말은 애초에 프로모션이 되는 말이 아니잖아. 그렇지 않습니까? 살라딘… 공?"
그가 살라딘에게 질문을 하려다 돌연 말을 머뭇거린 것은 살라딘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뭔가 미묘한 경련을 일으키며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 살라딘공? 혹시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에라드는 재차 살라딘에게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다, 뭔가 대단히 놀란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 어떻게 알았죠? 그… 사실을?"
나는 뭐라 대답할수 없었다. 그것은 할말이 없거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살라딘의 뒤에서 다가가던 리엔의 모습의 뭔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손에 든 소매에서 꺼낸 작은 철퇴같은거 뭐야? 난 리엔에게 물었다.
"저기… 리엔? 지금…"
"알겠습니다!"
'퍼어억! 깡!'
"아악!"
그리고 눈을 뜨고도 믿을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리엔은 내가 지금 뭘 할려는 거냐고 물으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금이라는 말을 듣고 손에 든 둔기로 살라딘공의 뒷통수를 후려갈겼다. 그러나, 둔기가 두들겨진 순간… 사람 머리에서 나기 힘든 금속성이 나면서 살라딘공은 머리를 손으로 쥐고 땅바닥에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소리쳤다.
리엔은 둔기를 다시 휘둘러 뭔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듯 계속 살라딘의 뒷통수를 두들겼고, 그때마가 둔기와 투구가 부딪치며 맑은 금속성과 함께 살라딘공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리엔의 바람과는 달리 살라딘공은 투구가 머리를 보호하는 덕분인지 고통스러워 하기는 했지만 좀처럼 기절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며 리엔을 피하려 기어다녔다. 그런 살라딘공을 리엔은 쫓아가면 어떻게든 기절시키려 하고… 뭔가 멀리서 보기에는 어처구니 없는 희극 같은 몸개그가 눈앞에서 벌어졌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쯤은 기절해주셔야 하는데… 정말 죄송하지만 그냥 모든 사람들이 다 편해지게 기절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밖에 아무도 없느냐! 이 사람을 막아라. 아니, 왕자님이랑 에라드경, 지금 뭐하는 거예요. 그를 말리세요."
이 황당한 촌극을 보며 조금 미소짓다가 에스더가 조금 째릿하자 삐질해한 아그네 공주는 보다 못했는지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에스더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에스더는 등에 가바엥 약품통 하나를 꺼내 손수건에 뭍혔다. 그리고 충분히 약품이 배여들자 아그네 공주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좀 정중하게 모시도록 하죠. 남자분들, 다들 살라딘공의 팔다리를 붙잡아 주세요."
그녀의 말에 우리는 얼떨결에 그의 팔다리를 잡아 바닥에 깔아뭉겠다. 그러자 아그네 공주는 예의바르게도 실례라는 말을 한번 해보인 다음 손수건을 살라딘공의 얼굴에 대고 숨이 막히도록 눌렀다. 살라딘공이 소리쳤다.
"다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다들 지…"
그리고 조금씩 소리가 줄어들어가며 팔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러자 아그네 공주는 손수건을 그의 얼굴에서 떼며 웃으며 말했다.
"이럴 생각인줄 알았으면 미리 좀 말해주시지 그러셨어요. 좀더 쉬운 방법이 있는데요."
나는 당황하도 못해 황당함을 느끼며 리엔을 노려보았다. 리엔이 삐질거리며 말했다.
"멜리장드가 왕자님이랑 대충 얘기 된거라고 했다구요. 안되면 강제로라도 끌고 오기로… 그래서 비상수단을 동원한건데 설마 머리 전체를 감싸는 투구를 쓰고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죠."
그래서 성지의 수호자라는 양반의 뒷통수를 대장간 모루 두들기듯이 두들겼냐? 나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에스더와 아그네 공주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아그네 공주가 소근거리듯이 에스더에게 말했다.
"체스가 요새 많이 어려운가봐. 현장 요원들이 저정도 수준이면 앞으로 마지스트리아노스가 활동하는데 별 걱정이 없겠는데?"
"설마요. 그냥 쟤만 낙하산이라서 그렇겠죠. 마틸다 위체가 어떤 사람인데 체스가 전원 저 지경 일까요. 그냥 얼굴 예쁘니깐 특이한 취향 가진 요인 포섭용으로 데리고 있던 애를 버리는 셈 치고 남겨두고 간거라니깐요."
"미모도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체스의 인재풀도 나쁜건 아닌건가?"
"여보셔들! 다 들리거든요. 아오, 나도 투구가 혹시 있는거 아닌가 했는데, 왕자님이 지금! 이라고 신호를 주니 멜리장드랑 얘기된대로 해야 하는 줄 알고 한거라구요. 왕자님도 좀 뭐라고 말해보세요."
아니… 이 성지의 지배자를 투구가 우그러질만큼 두들겨패놓고 나중에 수면제로 기절시켜놓은 상황에서 뭘 어쩌라구… 나는 왠지 한숨이 느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며, 밖에 사람을 불러오라 명했다. 그리고 난감해하는 나에게 더 난감하게 에라드가 물었다.
"지금 그거 무슨 뜻이었어? 왜 프로모션을 보고 살라딘공이 당황한거지? 설마…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그건 말도 안되는…"
"이미… 답을 알고 있구만 뭘… 난 형이라면 눈치 챘을꺼라 생각했는데 의외인건 되려 나야.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건 아니지."
"그럼 뭐가 중요한데?"
"일단은… 살라딘공의 집사와 부하장교들이 이 사태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가 더 큰 문제일 듯 한데… 대체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납득해줄까?"
나의 걱정에 아그네 공주가 해맑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이 상황 아무 설명없이 딱보면 우리들 그냥 살라딘공 암살하러 온 어새신 교단의 암살자들이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공주님… 우리 살아서 나가야 한다구요. 잠시후 집사가 들어왔을 때 상황을 본 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두신 게임 주인님이 이기셨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게 그렇게 화가 나셨습니까?"
응? 아… 그러고 보니 체스판 앞에 쓰러진 살라딘, 그리고 곁에서 지팡이를 들고 있는 체스 대국 상대 선수… 아… 그런 식으로 해석할수도 있구나. 에라드가 당황하며 손사래를 치며 변명했다.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이건 제가 아니라…"
"농담입니다. 결국 주인님 쇠고집을 꺽으시려면 이런 방법 밖에 없으셨겠죠. 주인님을 제가 모시고 피난 행렬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정신을 차리면 길길이 날뛰시겠군요. 그때는 아무쪼록 수습 잘 좀 부탁드립니다."
왠지 쓸쓸해보이는 그 환관 집사를 보며 우리는 말없이 그와 왠지 기절했어도 억울한지 기절한채로도 이를 악물고 끙끙거리고 있는 살라딘을 남겨두고 궁전을 빠져나왔다. 이로서 성지에서 해야 할일은 대략 마친듯 했다. 나는 밀려오는 피곤함을 이기며 대사관으로 돌아와 많지 않은 내 짐들을 꾸리고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잠을 청했다.
쉽사리 잠이 오지는 않았다. 몇 달동안 정든 대사관에 나에게 할당해준 방에 천장을 바라보며 내일부터 시작될 고난을 생각했다. 이곳 성지에서 나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항상 정해져 있지 않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나는 고민한다. 결국 그리고 정해진 길을 걸으며 나는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어머니의 빈자리가 그리워졌다. 나는 과연 살아서 어머니를 다시 만날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역사적인 성지 탈출의 개시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두번다시 있을까 싶은 백만여명의 백성이 압제를 피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거대한 역사의 시작은… 의외로 내가 예상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아침에 빵에 버터를 바르며 퀭한 얼굴로 우유를 홀짝이는 멜리장드를 보며 물었다.
"뭐랄까나…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건 아니지만 왠지 내가 상상했던거랑은 모습이 많이 다르네. 난 그래도 수백만 백성들이 이동하는 대역사라면 뭔가 상상하던 모습이 있었는데 말이지."
"뭐 어떤걸 상상하셨는데요?"
"음… 뭐 예를 들면 불안해하는 수십만명의 백성들이 광장에 모여 앞으로 닥쳐올 잔혹한 통치와 억압에 절망하면서도,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지. 그 순간 사람들에게 우리가 나타나 멋드러진 연설을 하고 감동을 주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하려는 일의 당위성과 앞으로의 희망을 전하고, 그에 감화받은 백성들이 점차 흥분하기 시작하고… 마지막 순간 이 작전의 책임자인 내가 나타나서, 뭔가 어설프지만 감동의 절정을 이끄는 선언을 하며 다같이 열광하는 거지.
그리고 모두다 조그만 희망이나마 용기를 버리지 않고 나아가기를 결심하고 다같이 이교도지만 자신들을 도우러 남은 우리들을 칭송하지.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문이 열리고 수십만명이 열을 지어 북으로 향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길고 긴 거대한 행렬이 시작되는 거지. 뭐 그런걸 상상했는데… 그냥 어수선하기만 하네. 이미 몇일전부터 탈출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구… 난 혹시나 연설시킬까봐 이런저런 말들 고민하고 있었는데…"
멜리장드는 나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단 한방에 환상을 깨버렸다.
"왕자님, 아랍어 못하시잖아요."
아… 맞다. 일단 연설 자체가 안되겠구나. 그리고 멜리장드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일행이 일렬로 우르르 몰려간다구요? 그건 대체 무슨 집단 자살 퍼포먼스인가요? 그랬다가는 백만명이 전부 출발하려면 대략 한달이 지나도 행렬 끝은 예루살렘 성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을꺼예요. 일단, 백만명이 다 예루살렘에 모여 살지도 않아요. 7할 이상이 예루살렘 도심 외곽과 변두리 지역에 살고 있으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이동은 선이 아닌 면으로 움직입니다. 다같이 우르르 뭉쳐서 가면 몰살당하기 밖에 더하겠어요? 그리고 탈출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질겁니다. 각각의 탈출 대상인원을 선별해서 개별 유닛으로 20여개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안티오크로 향하는 가도에 각각 별도의 경로로 이동하게 했죠. 젊은이들이나 목동들이 많은 그룹은 다소 험한 산악지형으로, 노약자와 여자들이 많은 그룹은 대로를 이용하도록, 특히 약한 그룹들은 수레와 우마를 대량으로 배치해서 각자 속도가 비슷하게 나오도록 조정했습니다.
출발지도 각각 유닛별로 다릅니다. 일부 예루살렘에서 출발하는 그룹도 있지만 외곽에서 출발하는 그룹, 후방에서 천천히 경계를 하면서 오도록 헤브론 근처에서 출발하는 그룹, 그리고 외곽으로 우회하는 그룹 등… 전체적으로 뱀처럼 길게 늘어진 행렬이 아닌 개미떼들이 넓은 면적을 점하고 군체로 이동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이번 탈출의 요지입니다. 그러니… 수십만 백성들이 광장에 모여 이교도 왕자의 연설에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는 일은 불필요합니다."
"그렇구나… 그렇다 해도 참 뭐랄까나… 잘짜여졌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정함이 느껴지네. 각각의 유닛을 나눴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이 그룹에 따라 갈릴수도 있다는 말이구나."
나의 말에 대답한 것은 아이샤였다.
"계획의 비정함에 대해 멜리장드를 탓하진 말아주세요. 잔인한 결론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모두를 살릴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전제하에서… 저와 케두스 왕자님, 라드 이맘님은 멜리장드의 의견을 백성들을 대표해서 동의했습니다."
나는 아이샤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지난번 씨서펜트를 만나고 난 뒤로 우리 안에서도 나름 변화를 하는 녀석들을 보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만 했다. 나는 일단은 그런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멜리장드에게 말했다.
"그러면… 광장에 모인 군중들을 향한 멋진 연설은 무리라고 해도, 성문에 올라가서 성밖으로 나가는 피난민들을 위해 불러주는 노래는 어떨까? 그거라면 굳이 아랍어를 잘 몰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 같은데…"
"뭐, 그거라면 왕자님 좋을대로 하시죠. 일단의 사람들이 출발하면 우리 데네브 작전의 멤버들의 출발은 남은 서류를 소각하고 관련 자료를 정리한 다음인… 아마도 저녁 늦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만 돌아오세요. 그리고 마침, 이동하는 군중들을 격려하러 라와드 이맘도 북쪽 성문에 가있는 듯 하니 같이 움직이시길 바랍니다."
"그래? 알았어. 이따가 출발할 때 다시 보자."
"아침도 다 드시고 가세요. 이제 이런 호화로운 식사는 당분간 무리일겁니다."
멜리장드의 말을 듣고 식사를 마치고 오니, 이미 성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미리 배정된 통제 인원들의 안내를 받아 질서정연하게 성벽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는 라와드가 사람들의 이동을 보며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고, 그러자 이곳에 와서 자주 듣던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알라는 위대하다. 알라는 위대하다. 알라는 위대하다. 알라는 위대하다. 나는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고 증언한다. 나는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고 증언한다. 나는 무함마드가 알라의 사도인 것을 증언한다. 나는 무함마드가 알라의 사도인 것을 증언한다. 자, 예배에 와라. 자, 예배에 와라. 자, 성공을 위해서 와라. 자, 성공을 위해서 와라. 알라는 위대하다. 알라는 위대하다. 알라 외에 신은 없다."
무슬림들의 하루 다섯번 예배를 올리는 신호인 아잔(adh?n) 이다. 아랍어는 모르지만 하도 오랫동안 이곳에서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백성들은 라드의 말처럼 고개를 메카의 방향으로 돌리며 숙이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전진하며 목례로 기도를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성벽을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바닥에 카펫을 깔고 기도를 올리는 라드가 있었다.
"이제 시작이군요."
"아, 왕자님 오셨습니까. 기도를 올리는 중이라 예를 올리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되려 기도 시간을 방해한 제가 무례한듯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이 약식으로 기도를 올리고 탈출에 방해가 되지 않게 움직이고 있군요."
"네, 항의하는 사람들도 좀 있었지만 열심히 설득을 해서 그 사람들을 납득시켰습니다. 결국, 종교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교리와 규칙보다는 고통받는 사람, 힘겨워하는 사람,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이 옳은 종교의 방향이죠. 적어도 무함마드께서는 확실히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종교의 차이로 인해 세상이 힘겨워 지긴 했지만요."
나는 저 너머에서 며느리의 손에 이끌려 가는 카심 영감님과 눈이 마주쳤다. 영감님은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양 해맑게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고 나도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세상이 저 너머에는 존재하고 있을까요? 저는 많이 불안합니다. 우리 안에서도 자조적으로 얘기하는 것 처럼 한낯 이교도의 왕족 나부랑이인 제가 과연 이런 일을 책임질수 있을까요?"
"희망이란 저너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곳에 존재하지요."
그렇게 말한 그는 한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을,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내 가슴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다. 그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난과 시련은 더 큰 영광을 위해 피할수 없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왕자님은 이미 한발을 내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로지 그 길을 걸어갈 뿐 의문을 가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절망에 순간에서, 기도를 하는 대신 냉철한 대책을 찾고, 위기의 상황에서 구원을 바라는 대신 동료의 지원을 찾으라, 그것이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신 시련을 이겨낼 힘이로다. 제 스승님의 말씀이십니다."
"뭔가… 과격하신 분이시네요. 당신의 스승이시라면 신앙인이셨을텐데 기도와 구원을 그리 폄하하기 어려우셨을텐데 말입니다."
"과격하고, 또 좋은 분이셨죠. 제 삶을 바꾸어 놓으신 분이니깐요. 저는 그분처럼 항상 변함없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련도 저에게는 알라가 주신 제 일생에 이어질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겠죠. 저는 믿습니다. 그 끝에 절망과 죽음이 아닌, 희망과 복됨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음을요."
나는 그의 말에 조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군중 속에 또 다른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키호트경이다. 그는 왠지 과장된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성벽위에 나를 발견하고 경례를 올렸다. 나는 미소지으며 그의 경례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예배를 마친 다음에… 떠나는 백성들을 위해 혹시 제가 노래를 불러주는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황이 이런 와중에 너무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짓일까요?"
"음악은 언제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죠. 지금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슬픔이 가득차 있을 겁니다. 부디, 밝고 기운이 나는 노래가 있다면 한번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무함마드께서도 직접 지인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주를 들려주시며 그들의 고된 삶을 달래주셨죠. 아마도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겁니다."
나는 그에게 미소지으며 하프를 꺼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악기다. 한동안 이런저런 일로 너무 바빠 하프를 켤틈도 없었구나. 나는 조금 녹슨 실력이 사람들에게 들키지 말길 바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첫댓글 이번에도 1등이다!
과연 이 무모한 탈출의 결과는...
그나저나 살라딘 암살미수사건을 이런 식으로 써먹다니! ㅋㅋㅋ
다음편에서 신나는 통수날리기가 시작될 겁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리엔과 안젤모는 작가의 총애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좀더 괴롭혀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