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녁부터 트위터를 통해 이 메시지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물만두’라는 필명으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의 블로그에서 추리소설, SF 등 장르문학 서평을 쓰던 홍윤 씨(사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향년 42세인 홍 씨의 부고를 접한 사람들의 추모 댓글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물만두’는 대단한 존재였다. 2000년 3월 20일 첫 리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쓴 서평은 모두 1838편. 팬들은 책을 사기 전 그의 서평을 참고했다. 출판사들도 그의 서평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의 평가에 따라 책 판매량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장르문학 팬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물만두’라는 이름은 그의 죽음을 계기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특히 홍 씨가 20년 동안 근육이 약해지는 ‘봉입체근염’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면서도 독서와 집필에 온 힘을 기울였다는 사실, 말년에는 손가락 여섯 개밖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10년간 해온 작업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숙연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홍 씨의 블로그에 부고를 올린 동생 현수 씨(38)는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더없이 착하고, 누구보다도 장르문학을 사랑했던 사람이 세상에 있었음을 알리고 싶어 부고를 남겼다”고 말했다.
현수 씨에 따르면 고인이 병명을 확인한 것은 대학 졸업 직후였다. 입사 시험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다 힘에 부치자 병원을 찾았다가 이름도 생소한 ‘봉입체근염’ 진단을 받은 것이다. 면역세포가 근육을 공격해서 근육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 이 병의 특징이다. 한방과 양방을 모두 시도해보고, 좋다는 약은 다 먹어봤지만 홍 씨의 근육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현수 씨는 “그런 상황에서도 언니는 웃음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가족을 걱정했다”고 전했다. 홍 씨는 집에서만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추리소설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물만두’라는 필명은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에서 따왔다. 홍 씨는 아침을 먹고 나면 오전 9시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오후 5시까지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홍 씨의 어머니가 24시간 곁에서 홍 씨를 도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홍 씨는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지 못했다. 지난 추석 때는 한 차례 위기가 왔다. 홍 씨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자 담당의사는 사흘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홍 씨는 퇴원한 뒤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음식을 먹으며 강한 생명력을 보였다. 힘든 와중에도 다섯 편의 리뷰를 보탰다.
하지만 홍 씨는 한 고비 넘겼다며 안심하던 가족들을 뒤로하고 13일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이 출근 준비로 바쁘던 이날 오전, 홍 씨가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에 가족들이 가봤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현수 씨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서 마지막으로 ‘엄마’라는 말을 남기고 간 거죠”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이 전해지면서 추모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팬들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글을 쓰는 줄 몰랐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알라딘의 이웃 블로거들은 일면식도 없는 홍 씨의 빈소를 찾기 위해 지방에서 일부러 상경까지 하면서 조문을 했다. 알라딘은 홍 씨 추모 행사 준비에 들어갔다. 김성동 마케팅팀장은 “그의 필명을 앞세운 장르문학 리뷰대회를 열 계획이고, 더 나아가 장르문학 공모전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