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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경도(京都)가,
한반도(韓半島) ‘서울’일 수 없는 이유(理由) : 지세(地勢)
2024년 11월 24일
○ 오늘날 우리가 사는 ‘반도(半島)’ 【조선반도(朝鮮半島)니, 한반도(韓半島)니 하는 말은, 20세기(世紀) 이전(以前)에는 없었다】땅은, 사실(事實) ‘넓지 않은 땅’으로,
• ‘동(東)•남(南)’쪽은 바다(海)에 막혀있다거나,
• ‘임금(君主•王•太王•皇帝)’이 서(西)쪽으로 파천(播遷)했다거나,
• ‘평원(平原)’이 아득하다(茫茫)거나,
• ‘높고 높은 산맥(山脈)’이 수천(數千) 리(里)에 뻗어있다거나,
• ‘내륙해(內陸海)’가 수백(數百) 리(里) 혹은 천여(千餘) 리(里)에 달한다거나,
• ‘광활(廣闊)한 사막지대(沙漠地帶 : 沙磧)’가 펼쳐져 있다거나,
• ‘강(江)물이 수천(數千) 리(里) 동(東)’쪽으로 유유히 흐른다거나,
• ‘동경(東京)이나 서경(西京)’을 두었다거나,
• ‘도성(都城)’에서 서(西)쪽으로 갔다거나,
• ‘도성(都城)’에서 오천(五千) 리(里) 남(南)쪽 땅이라거나,
• ‘도성(都城)’에서 동(東)쪽으로 수천(數千) 리(里)를 갔다거나,
• ‘남(南)’쪽에 왜(倭)와 접(接)했다거나,
• ‘북(北)’쪽 땅에 북해(北海)가 있다거나,
• ‘압록강(鴨綠江)’은 서(西)쪽에 있다거나,
• ‘두만강(豆滿江)’을 가리켜 만수지원(萬水之源)이라고 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는 헛소리【혼(魂)이 없는 강시(僵屍 / 殭屍)와도 같은 : 시체 요괴(妖怪)의 일종】의 대명사(代名詞)일 뿐이다. 곧 「반도(半島) 땅엔 불가능(不可能)한 지형(地形) 지세(地勢)다」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서울(Seoul)”의 ‘한자식(漢字式) 이름’은 무엇일까? “한성(漢城)? 한양(漢陽)?” 알 수 없는 일이다.
연유(緣由)도, 사유(事由)도, 구전(口傳)도… …「알 수 없는 그저 “그렇다”라고 막무가내(莫無可奈)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왜 “서울(Seoul)”이 한양(漢陽)이며, 한성(漢城)인가?
정말 “서울(Seoul)”이 「옛 한성(漢城), 한양(漢陽)이며, 한성부(漢城府)였을까?」‘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강시【僵屍 / 殭屍】들이 ‘풀(草) 뜯어 먹는 헛소리’」에 불과(不過)하다.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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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인용(引用) 출처(出處) : 고전번역원 DB] :
〈❶ 연산군이 물러나고 중종(中宗)이 즉위하여는 역시 전대의 편찬 간행 사업을 계승하여 종종의 서적을 간행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즉 《신증동국여지승람》이었다. 이 《신증》의 명(命)을 받은 사람은 이행(李荇)ㆍ홍언필(洪彦弼) 등이니 이들은 동왕 23년에 《승람》에 대한 재차 교오(校誤)와 증보(增補)에 착수하여 동왕 25년(1,530년)에 끝을 맺었다. 권질에는 역시 변동이 없고, 단지 증보처에 《신증》 두 글자로 표시하여 따라서 책명도 그와 같이 하였다. 이 중종 때의 《신증》 본은 동년에 계축자(癸丑字)[성종 23년 소주]로 인쇄된 활자본으로, 그것의 존전(存傳)이 매우 희귀하다. 중략(中略). ➋ 한국고전번역원은 이것을 매우 유감으로 여기어 서울대학본과 기타 본에 의거하여 거창한 국역에 착수하고 있거니와 중종조(中宗朝) 《신증》 이후의 변천된 사항을 증보하는 의미에서, 경도(京都)와 한성부(漢城府) 편 말에는 ‘비고’ 편으로 고종(高宗) 초의 저자 미상의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의 경도편과 한성부편을 전문(全文) 역재하고, 기타에 있어서는 근세 여지학(輿地學)의 대가인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를 참고하고, 또 갑오경장 이후의 변동은 《신증문헌비고》의 여지고(輿地考)를 참고하여 역시 각 군현조 끝에 부기하였다. 이러한 비고를 아울러 통해 본다면, 본국역본은 《재신증여지승람》이라고 할 수 있거니와, 이것이 본 국역본의 한 가지의 특색이라고 하면 특색일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필자(筆者)의 한마디 : “고전번역원”의 당국자(當局者)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번역(飜譯)은 번역(飜譯)으로 끝내야 하는 것이다.’ “저자(著者) 미상(未詳)의 지리지(地理志), 진짜 생존(生存)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김정호(金正浩)라는 분의 저서(著書) 등을 참고(參考)하였다”라는 말은 : 바로 화사첨족(畫蛇添足) 곧 사족(蛇足)을 단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그 가치(價値)를 스스로 떨어뜨린(훼손하는) 결과(結果)를 가져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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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도(京都) 상(上)」편의 서두(序頭) 원문(原文)을 보자.
(1) 「新增東國輿地勝覽, 京都 上」 :
〈古朝鮮馬韓之域。: 고조선(古朝鮮)은 마한(馬韓)의 지역이다. 北鎭華山有龍盤虎踞之勢,南以漢江爲襟帶,左控關嶺,右環渤海。: 북(北)으로 화산(華山)을 진산(鎭山)으로 삼아, 동(東)과 서(西)는 용이 서리고 범이 쭈그리고 앉은 형세이고, 남(南)쪽은 한강(漢江)으로써 요해처(要害處)를 삼았으며, 멀리 좌(左)【동(東)】측에는 대관령이 있고 우(右)【서(西)】측에는 발해(渤海)가 둘러싸고 있다. 其形勝甲於東方,誠山河百二之地也。: 그 형세의 훌륭함이 동방(東方)의 으뜸으로서, 진실로 산하(山河) 중에, 백이(百二)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大東地志 卷一 및 東國輿地志에서도 똑같은 기록(記錄)을 볼 수 있다 : 京都 / 漢城府 : 形勝 : 北鎭華山, 有龍盤虎踞之勢, 南以漢江爲襟帶。 左控關嶺, 右環渤海。 其形勝甲於東方, 誠山河百二之地。】
❶ 〈北鎭華山有龍盤虎踞之勢 : 북(北)으로 화산(華山)을 진산(鎭山)으로 삼아, 동(東)과 서(西)는 용이 서리고 범이 쭈그리고 앉은 형세이고〉라고 하였는데,
「龍 盤 虎 踞 之 勢 : 용(龍)이 서리고 범(虎)이 걸터앉은 형세이니(龍盤虎踞之勢) : 「용(龍)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린다」라는 뜻으로, 지세(地勢)가 험하여 적(敵)을 막기에 좋은 환경(環境)을 표현(表現)한 말이다. 그대로 번역(飜譯)하면 :「용(龍)의 기운이 어리어 나타나고, 호랑이(虎)가 걸터앉아 있는 형세(形勢)이고」라는 뜻이다.
풍수설(風水說)에서 : 「좌청룡(左靑龍)이 동(東)쪽이고, 우백호(右白虎)가 서(西)쪽이 될 수 있는데, 이는 풍수설(風水說)에서 가장 중요(重要)한 대목일 뿐이다」 아래를 보자.
➋ 〈南 以 漢 江 爲 襟 帶 : 남(南)쪽은 한강(漢江)으로써 산천(山川)에 둘린 요해처(要害處)를 삼았으니〉라고 하였는데,
이런 형세(形勢)는, 북진(北進)하는 외침(外侵)에만 해당(該當)되는 사안(事案)으로, 남진(南進•南侵)하는 외침(外侵)【예(例) : 호란(胡亂)】시에는 배수진(背水陣)을 칠 수밖에 없고, 종국(終局)에는 한강(漢江) 수(水)에 빠져 죽는 일만 남는 외통수 길이다. 뭐가 요해처(要害處)란 말인가?
➨ ‘반도(半島) 지형지세(地形地勢)’로 보면 : 이건 헛소리다. 남(南)쪽은 큰 바다(大海)로 한계(限界)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南)쪽으로부터 외적(外敵)의 침략(侵略)을 받을 수 없다. 임란(壬亂)이 있지 않은가? 반문(反問)하겠지만 이는 내란(內亂)이지 외침(外侵)이 아니다. 이는 곧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지세(地勢)」를 말하는 것이다.
➌ 〈右 環 渤 海 : 우(右)【서(西)】측에는 발해(渤海)가 둘러싸고 있다〉 : “환(環)”이라는 말은, 「‘고리 환(環)’ 자(字)로, 둥근 고리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 파생(派生)된 의미(意味)가 “에두르다, 둘러싸이다”로 쓰이는 글자다.
「한반도(韓半島) “서울”의 서(西)쪽 지세(地勢)가 발해(渤海)에 둘러싸여 있는가?」 “서울”의 서(西)쪽은, 서해(西海)가 있을 뿐이고, 서해(西海)조차도 서(西)쪽에만 닿아있을 뿐으로 “둘러싸이다(環)”의 형국(形局)이 될 수 없는 일이다.
“둘러싸이다(環)”의 형국(形局)이 되려면 : 최소한(最小限) ‘3’면(面)이 닿아 있을 때나 가능(可能)한 이야기다. 「한반도(韓半島)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의심(疑心)스러운 점은, “1,900년대(年代) 이후(以後)에 첨삭(添削)을 거친 것으로 요약(要約)될 수 있다.”】
➍ 〈其形勝甲於東方,誠山河百二之地也。: 그 형세(形勢)의 훌륭함이 동방(東方)의 으뜸으로서, 진실(眞實)로 산하(山河) 중에, 백이(百二)의 땅이다〉라고 하였는데,
동방(東方)의 “으뜸이다”라는 말에서 “동방(東方)”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이게 중요(重要)한 것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 동방(東方)이란 서방(西方)과 대칭(對稱)되는 말로, 동방(東方)과 서방(西方)을 가르는 그 기준선(基準線)에서 동(東)쪽의 모든 땅(地)을 뜻하는 말이다.
「반도(半島) “서울”이 동방(東方)에서 가장 으뜸의 땅인가?」
「진실(眞實)로 산하(山河) 중에서 “백이(百二)의 땅【백이지지(百二之地)】”」이라면 「관중(關中)의 땅【關中之地】을 말하는 것이고, 그곳은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요충지(要衝地) 땅을 벗어날 수 없다.」라는 것은, 수천(數千) 년(年) 역사(歷史)가 이를 증명(證明)하고도 남는 일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天地篇 ○ 地理類 / 城郭 / 保障諸處辨證說」을 보면 이런 기록(記錄)이 있다. :
〈則以今之王京比之洛陽。關東比之關中。春川比之關中之長安。其說甚當。: 지금의 왕경(王京)은 낙양(洛陽)에 견줄 수 있고, 관동(關東)은 관중(關中)에 견줄 수 있고, 춘천(春川)은 관중(關中)의 장안(長安)에 견줄 수 있다. 이 설이 심히 타당하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과연(果然) 타당(妥當)한 비유(比喩)인가? 얼토당토아니한, 어불성설(語不成說)【말이 하나의 일관(一貫)된 논의(論議)로 되지 못함. 즉, 말이 이치(理致)에 맞지 않음을 뜻함. 말이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아니하여 말 같지 않음. / 출처(出處) : Naver 한자사전】의 이야기다.
◉ 위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도(京都) 상(上)」편의 가장 중요(重要)한 서두(序頭)의 기록(記錄) 내용(內容)을 보면 :
20세기(世紀) 이후(以後)의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에 비춰보면 : 「황당무계(荒唐無稽)하고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설명(說明)이 되어버린다.
❶ 「古朝鮮馬韓之域 : 고조선(古朝鮮)은 곧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옛 조선(朝鮮)을 지칭(指稱)하는 것인데, 고조선(古朝鮮)은 마한(馬韓) 지역(地域)에 있었다는 것이고 고황제(高皇帝)의 경도(京都) 역시 마한(馬韓) 땅에 있었다」라는 것이다.
「고조선(古朝鮮)의 ‘수도(首都)=국도(國都)=왕성(王城)’은 평양(平壤)이다」라고 전해지는데, 이는 “마한(馬韓)”의 땅이었다. 따라서 조선(朝鮮)의 “국도(國都)=한양(漢陽)=한성(漢城)”은 고조선(古朝鮮)의 마한(馬韓) 땅에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解釋)될 수밖에 없다.
아래의 지도(地圖)【출처(出處) : 위키백과 한글판】을 보면 : “마한(馬韓)의 최대(最大) 영역(領域)은 임진강(臨津江)을 경계(境界)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조선(古朝鮮)이 마한(馬韓) 땅에 있었다는 것은, 귀신(鬼神)들이 모여앉아 수다를 떨며 씨 나락 까먹는 이야기로 만들어진 건가?」 도대체 뭔 이야기인가?
➋ 「고조선(古朝鮮)의 ‘국도(國都)=왕성(王城)’은 ‘평양(平壤)’」이라고 하였다. 이 “평양(平壤)”이 임진강(臨津江) 남(南)쪽 어디에 있었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임진강(臨津江) 이북(以北) 땅”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고조선(古朝鮮)도 아니요, 마한(馬韓)도 없었다면 : 도대체 평양(平壤)을 중심(中心)으로 어떤 나라(國家)가 있었다는 것이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평양부(平壤府)」편을 보면 :
〈建置沿革 : 本三朝鮮、高句麗之故都。唐堯戊辰歲,有神人降太伯山檀木下,國人立爲君,都平壤,號檀君,是爲前朝鮮。周武王克商,封箕子于此,是爲後朝鮮。傳至四十一代孫準,燕人衛滿奪其地,都王險城,[險,一作 “儉”,卽平壤] 是爲衛滿朝鮮。: 본래 삼조선(三朝鮮)과 고구려(高駒驪)의 옛 도읍(都邑)으로 당요(唐堯) 무진년에 신인(神人)이 태백산(太伯山)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왔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임금을 삼아 평양(平壤)에 도읍하고 단군(檀君)이라 일컬었으니, 이것이 전조선(前朝鮮)이요, 주 무왕(周武王)이 상(商)을 이기고 기자(箕子)를 여기에 봉하니, 이것이 후조선(後朝鮮)이요, 전하여 41대손(孫) 준(準)에 이르러 연인(燕人) 위만(衛滿)이 그 땅을 빼앗아 왕험성(王險城) 【험(險)은 검(儉)이라고도 쓰니, 곧 평양(平壤)이다.】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조선[衛滿(魏滿)朝鮮]이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분명(分明)하게 기록(記錄)하기를 “고조선(古朝鮮)의 수도(首都)는 평양(平壤)”이라고 하였다. 결국(結局) 「오늘날의 평안도(平安道) 땅은 마한(馬韓)의 핵심지지(核心之地)였다」라는 것인데,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은 “마한(馬韓)의 영역(領域)을 ‘임진강(臨津江) 이남(以南)’ 땅에 한정(限定)시켜 버렸다”
이건 분명하게 노림수가 있는 것이다. 곧 「동이(東夷)=구이(九夷)=한(韓)」들의 터전을 한반도(韓半島)로 만들어 놓기 위한 술책(術策)이다. 아래 기록(記錄)을 보면서 설명(說明)하겠지만 한반도(韓半島)는 「동이(東夷)=구이(九夷)=한(韓)」들의 주요 터전이 아닌 변방(邊方) 땅이었을 뿐이다.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의 조선사(朝鮮史) 해설(解說)을 기준(基準)으로 보면 :
➨ 자칭(自稱) 곧 스스로 일컫기를 천손족(天孫族)이며, 일등국민(一等國民)이라고 치켜세우며, 2,600년 천황기(天皇紀)를, 침을 질질 흘리며 외쳐대는 왜족(倭族)은, 오늘날의 인간(人間), 인류(人類)무리가 아닌 「변종어류(變種魚類) 인간(人間) 무리」들로 「진화(進化)에 진화(進化)를 거듭하여 손가락과 발가락에 지느러미(鰭)가 만들어지고, 입(口)은 아가미(鰓)로 진화(進化)되어 한반도(韓半島) 남해(南海)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변종어류인간(變種魚類人間) 무리」라는 이야기와 같다.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➌ 〈경도(京都) 곧 국도(國都)인 “한양(漢陽)=한성(漢城)”은, 「마한(馬韓) 땅에 있다.」〉라는 것이다.
즉(卽), 벌써 눈치를 챈 분이 계시겠지만 :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은 : 「마한(馬韓)은 경기도(京畿道) 일부(一部), 충청도(忠淸道)와 전라도(全羅道) 땅이라고 해설(解說)하고 있는데, 그럼 고조선(古朝鮮)은 또 어디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냐?」
「경도(京都) 곧 서울은, 마한(馬韓) 땅에 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서(史書) 원문(原文)에는 : 「古 朝 鮮 馬 韓 之 域 : 고조선(古朝鮮)은 마한(馬韓)의 지역이다.」라고 하였다.
이래서 오늘날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강단사학(講壇史學)을 지칭(指稱)하여 “사학(死學)”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무덤(墓地)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수도(首都) “서울”의 서(西)【우(右)】쪽에는 발해(渤海)는 없고, 서해(西海)는 있다. 이래서 강단(講壇)을 뜻해 “사학(死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국도(國都)인 「한양(漢陽)=한성(漢城)」은 “마한(馬韓)” 땅에 있다〉라는 기록(記錄)을 따라가 보자.
과연(果然) 이곳이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서울” 땅인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우선(于先) 정사(正史)라고 부르짖는 몇 종류(種類)의 고전(古典) “원서(原書)=원전(原典)”을 보자. 한반도(韓半島) 조선왕조(朝鮮王朝)【고조선(古朝鮮),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魏滿朝鮮), 한(韓 : 三韓), 삼국(三國), 고려(高麗), 고황제(高皇帝) 조선(朝鮮) 등의 한민족(韓民族) 모든 왕조(王朝)를 칭(稱)】를 주창(主唱)하며 침을 질질 흘리며 외쳐대는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 논자(論者)들이 애용(愛用)하고 있는 정사(正史)를 보면서 “왜 이 자(者)들이 사기(詐欺)를 치고 있는지를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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➌- 1) 후한서(後漢書) 85 : 〈昔堯命羲仲宅嵎夷,曰暘谷,蓋日之所出[1] : 오랜 옛적에 요(堯) 임금의 명으로 희중(羲仲)이 우이(嵎夷)에서 살았는데, 이르기를 양곡(暘谷)이라고 하는데, 해(太陽 : 日)가 이곳에서 나온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석(註釋)에서 이르기를 : 〈注[一] 孔安國尚書注曰「東方之地曰嵎夷。暘谷,日之所出也。: 공안국(孔安國)이 상서(尙書) 주(注)에서 이르기를 : 동방(東方)의 땅이 우이(嵎夷)라고 한다. 양곡(暘谷)이란 해(太陽)가 솟는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
동방(東方)의 땅(地)【東方之地】이 반도(半島)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중원대륙(中原大陸)의 땅은 서방지지【西方之地】인가?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추종(追從)하는 “놈”들에게 물어보자.
장안(長安) 서(西)쪽에 있었던 삼보(三輔) 중의 하나였던 「우부풍(右扶風) 【이곳에 ‘우이(嵎夷)=욱이(郁夷)’가 있었다는 것은 정사(正史)인 전한서(前漢書)에서 고증(考證)하고 있다】땅」이 「동방지지(東方之地)인가? 서방지지(西方之地)인가?」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은 “한마디”로 「정신(精神) 빠진 놈들」이요, 「무덤(墓地)에서 빠져나온 귀신(鬼神)들이요, 혼(魂)을 빼앗긴 강시(僵屍 : 殭屍)들이다.」
[◆ 1] / 後漢書 85 本文 : 〈韓 : 韓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辰。: 한(韓) : 한국(韓國)은 세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마한(馬韓)이요, 둘째는 진한(辰韓)이요, 셋째는 변진(弁辰)이다. ➨(1) 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 마한(馬韓)은 서(西)쪽에 있는데, 54개 나라가 있다. 그 북(北)쪽에는 낙랑(樂浪)이, 남(南)쪽은 왜(倭)와 이어져 있다. 辰韓在東,十有二國,其北與濊貊接。: 진한(辰韓)은 12개 나라가 있고, 그 북(北)쪽에는 예맥(濊貊)과 이어져 있다. ➨(2) 弁辰在辰韓之南,亦十有二國,其南亦與倭接。: 변진(弁辰)은 진한(辰韓)의 남(南)쪽에 있다. 또한 12개 나라가 있다. 그 남(南)쪽은 또한 왜(倭)와 이어져 있다. 凡七十八國,伯濟是其一國焉。: 78개 나라가 있는데, 백제(百濟)는 그중의 한 나라이다〉라고 하였다.
➨(1) 〈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 마한(馬韓)은 서(西)쪽에 있는데, 54개 나라가 있다. 그 북(北)쪽에는 낙랑(樂浪)이, 남(南)쪽은 왜(倭)와 이어져 있다.〉라고 하였는데,
「한반도(韓半島)의 전라도(全羅道) 땅 아래 남(南)쪽 어디에 왜(倭)가 있었을까?」
그 가능성(可能性)은 딱 “하나”가 있다. : 「왜(倭)」란 : 「바로 “진화(進化)에 진화(進化)를 거듭한 변종인간(變種人間) 무리다.” 곧 손가락과 발가락은 지느러미로 진화(進化)되고, 입(口)은 아가미로 진화(進化)되어 바닷물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進化)된 변종인간(變種人間) 무리다〉 맞는 말인가? 틀린 설명(說明)인가?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을 신봉(信奉)하고, 추종(追從)하는 “놈”들에게 물어보자.
「반도(半島) 남(南)쪽 전라도(全羅道)와 제주도(濟州島) 사이의 바닷물 속에 이런 변종인간(變種人間) 무리가 “왜(倭)”라고 칭(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2) 〈弁辰在辰韓之南,亦十有二國,其南亦與倭接。: 변진(弁辰)은 진한(辰韓)의 남(南)쪽에 있다. 또한 12개 나라가 있다. 그 남(南)쪽은 또한 왜(倭)와 이어져 있다〉라고 하였다.
“반도(半島) 경상도(慶尙道) 남(南)쪽”에 변진(弁辰)의 12개 나라가 있을 곳이 어딘가? 경상도(慶尙道) 남(南)쪽은 출렁이는 파도(波濤) 소리에, 갈매기들의 합창(合唱)이 어우러지는 바다(海)가 아니고, 「육지(陸地)였다는 건가?」
그렇다면 “변진(弁辰)”의 12개 나라의 그 남(南)쪽 땅에 있었다는 “왜(倭)”는 또 어디에 있었다는 것일까? 이걸 반도(半島) 땅의 “경상도(慶尙道)” 땅에 맞춰보면 : 경상도(慶尙道) 남(南)쪽으로부터 대마도(對馬島)와 구주(九州)【큐슈】사이는 본래 육지(陸地)여야 된다.
즉(卽), ‘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 「한반도(韓半島) + 제주도(濟州島) + 열도(列島)는, “모두 한 덩어리로 된 육지(陸地)였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세(地勢)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다. 즉(卽), 반도(半島) 땅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이야기다. 곧 “반도조선(半島朝鮮)”이란 존재(存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건 천지창조(天地創造)를 만들어 낸 조물주(造物主)가 환생(還生)해도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다. 또 아래의 정사(正史) 기록(記錄)을 보자.
➝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들인 매국사학자(賣國史學者)들의 설명(說明)에 “후한서(後漢書)” 기록(記錄)을 대입(代入)하면 : 「‘한반도(韓半島)+제주도(濟州島)+열도(列島)’는, 한 덩어리로 된 육지(陸地)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조물주(造物主)가 환생(還生)하더라도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인 “매국사학자(賣國史學者)”들은, 무덤(墓地) 속에서 기어 나온 귀신(鬼神)들이다.」 이런 ‘놈’들에게는 몽둥이가 약(藥)이니. 아예 무덤(墓地)마저 불태워 다시는 기어 나올 수 없도록 해야 한다.
【후한서(後漢書) : 《後漢書》是記載東漢歷史的紀傳體史書,由南朝劉宋時的范曄(398年-445年)所著。本書分十紀、八十列傳和八志(八志自司馬彪《續漢書》補入),記載了從光武帝稱帝(25年)起至漢獻帝禪讓(220年)的195年歷史。
《後漢書》與《史記》、《漢書》和《三國志》合稱「前四史」。在三國時代以前,人們將《東觀漢記》與《史記》、《漢書》並舉,合稱「三史」,唐代以後漸以本書取代《東觀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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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三國志 魏志 : 韓 : 〈韓 在 帶 方 之 南, 東 西 以 海 為 限, 南 與 倭 接, 方 可 四 千 里 : 한국(韓國)은 대방(帶方)의 남(南)쪽에 있는데, 동(東)쪽과 서(西)쪽은 바다에 한계(限界) 하는데, 남(南)쪽은 왜(倭)와 이어져 있다. 有 三 種, 一 曰 馬 韓, 二 曰 辰 韓, 三 曰 弁 韓 : 한국(韓國)은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마한(馬韓)이요, 둘째는 진한(辰韓)이요, 셋째는 변한(弁韓)이다. 辰 韓 者, 古 之 辰 國 也. 馬 韓 在 西 : 弁 辰 亦 十 二 國, 中 略, 其 瀆 盧 國 與 倭 接 界 : 진한(辰韓)은 옛 진국(辰國) 이다. 마한(馬韓)은 서(西)쪽에 있다. 변진(弁辰) 또한 12 나라인데, 중략(中略), 독로국(瀆盧國)은 왜(倭)와 경계(境界)가 접하여 있다〉라고 하였으니,
후한서(後漢書)에서 설명(說明)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내용(內容)으로, 「동(東)쪽과 서(西)쪽은 바다【海 : 이 또한 오늘날의 바다(海)인지 또는 내륙해(內陸海)인지 절대적(絶對的) 고찰(考察)이 필요(必要)한 부분(部分)이다.】이고, 남(南)쪽은 육지(陸地) 곧 뭍으로 왜(倭)들과 경계(境界)를 이루고 있었다」라는 것이다.
➨➨➨ ‘원문(原文) 내용(內容)’은 곧 한국(韓國)【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남(南)쪽 땅에 “왜(倭)”와 접(接)해 있었다고 하였으니, 그곳의 “왜(倭)”는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뜻일까? ‘이놈’들의 말대로라면 : 「경상남도(慶尙南道), 전라남도(全羅南道) 땅은, 왜(倭)의 고향(故鄕)이요, 고토(故土)」라는 뜻이 된다. 「맞는 말인가? 틀림 말인가?」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인「매국사학자(賣國史學者)들 모두는, 얼빠진 “놈”들이요, 미후(獼猴)와 같은 놈들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 《三國志》是三國時代結束後不久,由3世紀末歷史學家陳壽所著之中國歷代史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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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태평어람(太平御覽) : 三韓 : 〈後漢書曰:韓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韓。: 후한서(後漢書)에서 이르기를 : 한국(韓國)은 세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마한(馬韓)이요, 둘째는 진한(辰韓)이요, 셋째는 변한(弁韓)이다. 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 마한(馬韓)은 서(西)쪽에 있는데, 54개 나라가 있다. 그 북(北)쪽에는 낙랑(樂浪)이, 남(南)쪽은 왜(倭)와 이어져 있다. 辰韓在東,十有二國,其地與獩貊接。: 진한(辰韓)은 동(東)쪽에 있는데, 12개 나라가 있고, 그 북(北)쪽에는 예맥(濊貊)과 이어져 있다. : 弁韓在辰韓之南,亦有十二國,其南亦與倭接。: 변한(弁韓)은 진한(辰韓)의 남(南)쪽에 있다. 또한 12개 나라가 있다. 그 남(南)쪽은 또한 왜(倭)와 이어져 있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
〈又曰:有州胡,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 또 이르기를 : 주호(州胡)가 있는데, 마한(馬韓)의 서(西)쪽에 있으며, 바다 가운데 대도【大島 : 큰 섬】위에 있다. 其人差短小,言語不與韓同。皆髡頭,如鮮卑。: 그 사람들은 상이(相異)하여 짧고 작으며(短小), 언어(言語)는 한국(韓國)과 같지 않다. 모두 곤두(髡頭)【삭발(削髮)】를 하였는데, 선비(鮮卑)와 같다. 但衣韋衣,有上無下。好養牛豕,乘船往來,市貨韓中矣。: 무릇 옷은 가죽(韋)옷인데, 윗옷은 있고, 하의(下衣)는 없다. 소(牛)와 돼지(豕) 키우기를 좋아하고, 배(船)를 타고 왕래하며, 한국(韓國) 사이에서 물건을 사고판다〉라고 하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 역시(亦是) 「후한서(後漢書)와 위지(魏志)」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내용(內容)으로 기술(記述)되어 있다.
➨ 「진한(辰韓)의 남(南)쪽에 변한(弁韓)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또 「변한(弁韓)의 남(南)쪽에 왜(倭)와 접(接)해 있다」라고 하였다.
➨➨ 이러한 “왜(倭)”는 어디에 있었다는 것일까?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에게 물어보자. 왜(倭)는 어디에 있었다는 것이냐? “왜(倭)”는 “변종어류인간(變種魚類人間)”종(種)인가?
또 “마한(馬韓)의 서(西)쪽” 큰 섬(大島)이 있어 그곳에 주호국(州胡國)이 있어, “난쟁이 백성(百姓)”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이들의 후예(後裔)들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태평어람(太平御覽)은 : 〈北宋初年,宋太宗趙光義於太平興國二年(977年)命李昉等編撰《太平御覽》,至太平興國八年十二月(984年初)書成,共六年。太平御覽凡1000卷】
[◆ 4] /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 〈四至 : 馬韓在西, 五十有四國, 其北與樂浪接, 南與倭接. : 마한(馬韓)은 서(西)쪽에 있는데, 54개 나라가 있고, 그 북(北)쪽은 낙랑(樂浪)과 접하였고, 남(南)쪽은 왜(倭)와 접(接)해 있다.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 진한(辰韓)은 동(東)쪽에 있는데, 12개 나라가 있다. 그 북(北)쪽은 예맥(濊貊)과 접해 있다. 弁韓在辰韓之南, 亦有十二國, 與倭接. : 변한(弁韓)은 진한(辰韓)의 남(南)쪽에 있고, 또한 12개 나라가 있으며, 왜(倭)와 접(接)애 있다.〉라고 하였다.
【사지(四至)란 : 소유지(所有地)를 뜻하는 말로, 동서남북(東西南北) 경계(境界)를 말하는 것이다.】
➨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역시(亦是) 똑같은 내용(內容)을 말해주고 있다. “마한(馬韓)이든, 변한(弁韓)”이든 갈라지기 전에, 반도(半島) 땅은, ‘동(東)•남(南)•서(西)’ 삼면(三面)이 바다에 닿아있다.
따라서 마한(馬韓)의 남(南)쪽은 바다(海)요, 변한(弁韓) 남(南)쪽 땅도 바다(海)에 한계(限界)하고 있어, 「왜(倭)들과 접(接)해 있을 땅(地)이 없다.」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 논자(論者)들에게 물어보자. 도대체 어디에 “왜(倭)”들이 있었다는 것이냐?
➨「수백(數百) 리(里) 바다를 건너(渡海), 오늘날의 열도(列島)를 지칭한다」라는 해설(解說)은, 정말 쪽팔리는 일이자, 또한 “접(接)”이라는 글자(漢字)를 모욕(侮辱)하는 희대(稀代)의 어리석은 놈들이다.
《太平寰宇記》是北宋時期的樂史編著,共200卷,記錄了宋太宗時的山川地理人文等,很有史料價值。書名又作《太平寰宇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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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통전(通典) : 馬韓 : 〈馬韓, 後漢時通焉. : 마한(馬韓), 후한(後漢) 때에 서로 통했다.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 세 종류(種類)가 있는데, 첫째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진(弁辰)이다. 馬韓在西, 五十有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 마한(馬韓)은 서(西)쪽에 있는데, 54개 나라가 있다. 그 북(北)쪽에는 낙랑(樂浪)이 있고, 남(南)쪽에는 왜(倭)와 접(接)해 있다.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 진한(辰韓)은 동(東)쪽에 있는데, 12개 나라가 있으며, 그 북(北)쪽은 예맥(濊貊)과 접(接)해 있다.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 변진(弁辰)은 진한(辰韓)의 남(南)쪽에 있고, 또한 12개 나라가 있으며, 그 남(南)쪽에는 또한 왜(倭)와 접(接)해 있다. 凡七十八國. 或云百濟是其一國焉 : 모두 78개 나라인데, 혹(或)은 이르기를, 백제(百濟)는 그 한 나라였다〉라고 하였다.
通典 : 〈通典是歷史上第一部體例完備的政書,唐杜佑撰。唐德宗貞元十七年【AD 801年】編成,歷時三十餘年。。本書列為十通之一,與通志, 文獻通考合稱三通 : 통전(通典) : 「당(唐) 재상(宰相)이었던 두우(杜佑)가 지은(撰) 것으로, 당(唐) 덕종(德宗) 정원(貞元) 17년【AD 801年】에 편성(編成)된 것으로, 30여 년(年)에 걸쳐 만들어졌다」라고 전해지는 고전(古典)으로 통지(通志)와 문헌통고(文獻通考)와 함께 삼통(三通)이라고 전해진다고 하였다.〉
➨ 「마한(馬韓)의 남(南)쪽에는 왜(倭)와 접(接)해 있다. 【南 與 倭 接】」이라 하였고, 「변진(弁辰), 그 남(南)쪽에는 또한 왜(倭)와 접(接)해 있다. 【其 南 亦 與 倭 接】」라고 하였으니,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 논자(論者) “놈”들의 해설(解說)대로라면 : 「오늘날의 반도(半島) 남(南)쪽 전라도(全羅道)와 경상도(慶尙道)는 “왜(倭)”들의 고토(故土)【고향(故鄕)】였다」라는 이야기가 되며,
「이곳 땅에서 웅거(雄據)했던 많은 토호(土豪), 관향(貫鄕)【본관(本貫)=선향(先鄕)】을 가진 씨족(氏族)들은 모조리 “왜(倭)”였다」는 말이 되며,
「이곳 출신(出身)으로, 본관(本貫)을 가진 양반가문(兩班家門)이라는 말은 헛소리요, 이곳 땅에 오늘도 건재(健在)하고 있는 유림(儒林)【사림(士林)】들은 결국 “왜(倭)”들의 위장전술(僞裝戰術)이었을 뿐이다」라는 말과 같다. 맞는 말인가? 틀림 말인가?
초등학생(初等學生)들에게 이러한 지형지세(地形地勢)를 설명(說明)하면서 “왜(倭)”는 변종어류인간(變種魚類人間)들이라고 한다면 : “칼-칼-대며 아저씨 지금 우리에게 거짓말하는 거 맞죠!” 할 것은 100%다.
➨➨➨ 그렇다. 손자손녀(孫子孫女)들에게는 이런 역사(歷史) 이야기를 절대(絶代) 하지 못한다. 며느리에게, 딸로부터 된통 당하기 십상(十常)【십중팔구(十中八九)】이다. 곧 손자손녀(孫子孫女)의 장래(將來)를 망치는 결과(結果)를 낳기 때문이다. 즉(卽), 시험점수(試驗點數)를 깎아 먹는 결과(結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 지금(只今) 우리 사회(社會)가 이렇다. 식민사학(植民史學)이, 매국사학(賣國史學)이, 또 다른 식민사학(植民史學)을, 매국사학(賣國史學)을 낳고, 반국가 세력(叛國家 勢力)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제(日帝)의 마지막 총독(總督)」 曰 : 〈기다려라! 반드시 돌아오겠다〉라고 어금니를 깨물며 울분(鬱憤)에 차 외쳤다고 전해진다.
「오늘의 한민족(韓民族)은 어디에 ‘서’ 있나?」 “친일(親日)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일제(日帝)를 신봉(信奉)하는 친일주의자(親日主義者)”들을 국가(國家) 요직(要職)에 등용(登用)하는 “놈”이 누군가? 이 자(者)부터 처단(處斷)해야 망조(亡兆)를 피할 수 있는 것이며, 한민족(韓民族)이 융성(隆盛)할 수 있는 기초(基礎)를 다질 수 있는 것이다.
「통전(通典)」속에는, 그동안 학계(學界)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선생(先生)님들이 몰랐던,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많은 조선사(朝鮮史) 기록(記錄)이 생생(生生)하게 살아있어 대륙(大陸) 조선(朝鮮)을 증거(證據), 고증(考證)하고 있다. 우리 카페(Cafe)에 여러 차례에 걸쳐 게재(揭載)되어 있으므로 참고(參考)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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➍ 연행록(燕行錄) / 「北京錄 單」 / 初四日。 辛亥。 晴而溫。: 自此白塔已見。 塔在遼陽北門外, 相去三十里, 對面揷天。 按白塔記, 或云仙人丁令威化鶴歸時, 所止華表柱, 非也。 乃是唐太宗征高麗, 命尉遲敬德建之。: 여기서부터는 백탑(白塔)이 보였다. 백탑은 요양(遼陽)의 북문 바깥에 있고 30리 떨어져 있는데, 마주 보니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백탑기(白塔記)〉를 살펴보건대, 혹자는 신선인 정영위(丁令威)가 학이 되어 돌아왔을 때 내려앉았던 화표주(華表柱)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바로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울지경덕(尉遲敬德)에게 명하여 세운 것이다. 遼東左挾勃海, 前臨大野, 千里茫茫, 而白塔乃得此野三分之勢。: 요동(遼東)은 좌(左)편으로는 발해(渤海)를 끼고 있고, 앞쪽으로 큰 들판에 임하여 천 리에 아득한데, 백탑이 바로 이 들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형세를 얻었다. 【AD 1,826년, 동지사행(冬至使行)에 참여했던 정양 신태희(申泰羲)의 연행기록(燕行記錄)이다.】
오늘날의 “요동(遼東)”은, 「반도(半島)의 정(正)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있다」 따라서,
➨ 반도(半島) 좌측(左側)은, 요동(遼東)의 좌측(左側)과 방위(方位)가 같다.
➨ 반도(半島) 우측(右側)은, 요동(遼東)의 우측(右側)과 방위(方位)가 같다.
곧 ① “한성(漢城)=한양(漢陽)=도성(都城)”에서 출발(出發)하여 북(北)쪽의 심양(瀋陽)을 바라보며 가고 있기 때문에, ② 도성(都城)의 우측(右側)에 발해(渤海)가 있다고 하면, ③ 요양(遼陽) 역시(亦是) 요양(遼陽)의 우측(右側)에 발해(渤海)가 있어야 함은 당연(當然)한 이치(理致)다.
그러나 위의 기록(記錄)을 보면 : 「요동(遼東)의 좌측(左側)에 발해(渤海)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경도(京都)의 좌측(左側)에 발해(渤海)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문(原文)에서는 : 「경도(京都)의 우측(右側)에 발해(渤海)를 끼고 있다」라고 반대(反對)로 말하고 있다.
결국(結局), 「오늘날의 발해(渤海)는, 연행록(燕行錄)에서 말하는 “발해(渤海)”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연행록(燕行錄)”에서는 「압록강(鴨綠江)은 서(西)쪽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위에서 말하는 방위(方位)가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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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明 董 越, 朝 鮮 賦, 東 國」
(2) 「新增東國輿地勝覽, 京都 上」 :
[新增] 大明董越, 朝鮮賦:〈眷彼東國,朝家外藩。西限鴨江,東接桑暾。天池殆其南戶,靺鞨爲其北門。: 명(明)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 : 〈살펴보건대, 저 동국(東國)은 조가(朝家)의 바깥 울타리로, 서(西)쪽은 압록강(鴨綠江)이 한계(限界)가 되고, 동(東)쪽은 상돈(桑暾)에 닿았으며, 천지(天池)는 거의 그 남(南)쪽 문이 되고, 말갈(靺鞨)은 그 북(北)쪽 문이 되었다.【其國東, 南皆際海, 西北爲建州, 正北爲毛憐, 海西. : 그 나라는 동(東)쪽과 남(南)쪽이 모두 바다에 닿아있고, 서북(西北)쪽은 건주(建州)이고, 정북(正北) 쪽은 모련(毛憐) 해서(海西)이다. 】〉라고 하였다.
본문(本文) : [西限鴨江,東接桑暾。天池殆其南戶,靺鞨爲其北門]
➊ 〈西 限 鴨 江 : 서(西)쪽은 압강(鴨江)【압록강(鴨綠江)】으로 한계(限界)【경계(境界) 또는 끝】한다〉라고 하였다.
「압록강(鴨綠江)이 서(西)쪽에 있고, 그곳이 경계(境界)를 짓고 있다」라고 한다면 : 「오늘날의 북한(北韓)은, 북한(北韓)이 아닌 서한(西韓)이 맞는 말이고, 남한(南韓)은, 남한(南韓)이 아닌 동한(東韓)이어야 맞는 말이다.」
곧 명(明) 동월(董越)은 말하기를 : “조선(朝鮮)은 중원대륙(中原大陸) 땅에 있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당연(當然)한 이야기다. 「“조선(朝鮮)의 땅은, 동(東)쪽과 남(南)쪽은 바다(海)다”라는 말은, “서(西)쪽은 육지(陸地)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고, 「그 한계(限界)는 서(西)쪽을 흐르고 있는 압록강(鴨綠江)까지다」라는 것이다.
➨ “조선부(朝鮮賦)”를 읊은, 명(明)나라의 동월(董越)【1430年—1502年】은 누군가?
「동월(董越)」은, 탐화급제(探花及第)【과거(科擧)에서 3등(等) 급제자(及第者)를 일컫는 말이다】자(者)로, 「강서(江西) 녕도인(寧都人)」으로,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를 거쳐 시독(侍讀), 효종(孝宗) 즉위(卽位) 뒤에 봉명(奉命)을 받들고 조선(朝鮮)에 출사(出使)하여 “조선부(朝鮮賦)”를 지었고, 공부상서(工部尙書)를 역임(歷任)한 관리(官吏) 출신(出身)이다.」
이러한 명(明)나라의 대신(大臣), 관리(官吏)가 “조선부(朝鮮賦)”를 지었고, 그 내용(內容)은 「당시(當時)의 조선(朝鮮) 강역(疆域)을 기록(記錄)으로 남겨 놓은 것인데, 명(明)나라 사람이 명(明)나라 황제(皇帝)의 신하(臣下)였던 자(者)가 “명(明)나라 땅(地)을, 조선(朝鮮) 땅(地)”이라고 기록(記錄)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문제(問題)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이 말은 곧 ‘당시(當時)의 조선(朝鮮) 강역(疆域)’은, 오늘날의 중원대륙(中原大陸)의 땅을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동월(董越)이 조선부(朝鮮賦)”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內容)을 뒤집을 수 있는 자(者)가 있겠는가? 결코 있을 수가 없다.
【董越(1430年—1502年),字尚矩,號圭峰,江西寧都人。明朝政治人物,探花及第。官至南京工部尚書,諡文僖[1],葬寧都河東山[2]。 天順三年(1459年)舉己卯科江西鄉試。成化五年(1469年),登一甲第三名進士(探花),授翰林院編修。成化十一年、十四年兩次奉旨出任科舉主考官,選中王鏊、梁儲等一代名臣。成化十八年,升翰林院侍讀,直經筵,為孝宗講學九年。孝宗即位後,董越升右庶子兼侍講,奉命出使朝鮮,並撰寫《朝鮮賦》。弘治四年,參與纂修《憲宗實錄》成,升太常寺少卿,兼侍講學士,充日講官。不久,升爲南京禮部右侍郎、南京工部尚書。弘治十五年去世,贈太子少保,諡文僖。著作 著有《朝鮮雜誌》、《使東日錄》等 : 引用 出處 : 維基百科 自由的百科全書】
➋ 〈東 接 桑 暾 : 동(東)쪽으로 상돈(桑暾)과 접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국도(國都) 한양(漢陽)의 동(東)쪽은 동해(東海)에 닿는다. 그렇다면 “상돈(桑暾)”이란 뜻은 무언가?
「상돈(桑暾)」이란 「‘부상(扶桑)에서 돋는 해’라는 뜻으로, 동해(東海)를 가리켜 이르는 말이다.」 곧 「동해(東海)」를 말하는 것이다.
동월(董越)이 말하는 상돈(桑暾)은 반도(半島) 땅이 될 수 없는 이유(理由)는 바로 “동월(董越)”이 스스로 말해주고 있다. 즉(卽), 「조선(朝鮮) 땅」은 : 「동(東)쪽과 남(南)쪽만이 바다(海)로 한계(限界)하고 있을 뿐, 서(西)쪽은 바다(海)가 아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월(董越)”이 말한 “상돈(桑暾)”은, 오늘의 대륙(大陸) 강소성(江蘇省) 이남(以南) 바다(海)인 「동해(東海)」를 지칭(指稱)하는 것이다. 【대만(臺灣) 이남(以南)의 및 필리핀(呂宋) 등지(等地)의 바다(海)는 “남해(南海)”라고 하였다】
➌ 〈天 池 殆 其 南 戶 : 천지(天池)는 여러 곳에 존재(存在)하며, 이러한 설명(說明)은 “오늘날의 백두산(白頭山) 천지(天池)는 20세기(世紀) 이후(以後)에 불리워졌다”라는 증거다.
‘남(南)쪽의 천지(天池)’라고 했기 때문인데, 바로 운룡천지(雲龍天池)【雲南省大理白族自治州雲龍縣 : 해발고도(海拔高度) 2,551m에 있다.】가 있다. 그러나 아직 고증(考證)되지 않은 사견(私見)이다.
➍ 〈靺 鞨 爲 其 北 門 : 말갈(靺鞨)은 그 북(北)쪽 문(門)이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이대가 명(明)나라 때임을 감안(勘案)해 보면 : “말갈(靺鞨)”이 아니라 “여진(女眞)”일 것이다. 그러나 “말갈(靺鞨)”이라고 한다면 당연(當然)히 조선(朝鮮) 영토(領土)의 북문(北門)이 될 수 있다.
「말갈(靺鞨)은 물길(勿吉)로 곧 숙신(肅愼)」을 일컫는 말이다. “숙신씨(肅愼氏) 또는 숙신국(肅愼國), 숙신민(肅愼民)은 북(北)쪽과 서(西)쪽 사이에 있었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2)- 1) 그 주석(註釋)에서 이르기를 : 〈其國東, 南皆際海, 西北爲建州, 正北爲毛憐, 海西. : 그 나라는 동(東)쪽과 남(南)쪽이 모두 바다에 닿아있고, 서북(西北)쪽은 건주(建州)이고, 정북(正北) 쪽은 모련(毛憐) 해서(海西)이다〉라고 하였다.
주(注) : [其國東, 南皆際海, 西北爲建州, 正北爲毛憐, 海西.]
➊ 〈其 國 東, 南 皆 際 海 : 그 나라의【고황제(高皇帝) 조선(朝鮮)을 말한다】동(東)쪽과 남(南)쪽 모두 바다(海)에 닿는다[다다르다 : 際]〉라고 하였다.
「위에서 말하는 지형지세(地形地勢)는, 반도(半島)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솔직(率直)하게 말해 초교(初交) 2년(年) 정도(程度)면 다 알고 있는 내용(內容)이다. 왜냐하면 “반도(半島)란, 삼면(三面)이 바다에 접하고, 한 면(面)만이 육지(陸地)와 통(通)하는 땅」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똑똑하고 잘난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국민(國民)들도 : 조선사(朝鮮史) 또는 한국사(韓國史)에만 들어서면 : ‘초교(初交) 2년(年) 이하(以下)’의 머리로 되돌아 가버린다. 참 이해불가(理解不可)한 민족(民族)이요, 국가(國家)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언어도단(言語道斷)적인 역사(歷史)를 국가적(國家的) 과업(課業)으로 승화(昇華)시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의무교육(義務敎育)으로 지정(指定)하여 강제주입(强制注入), 곧 세뇌(洗腦)시키고 있다.
“반도(半島)”라는 단어(單語)의 뜻조차 알지 못하는 국가(國家)요, 국민(國民)들이다. 「반도(半島)란, 삼면(三面)이 바다(海)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面)이 육지(陸地)로 이어진 땅」을 말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한글”도 이해(理解)하지 못하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국가(國家)와 그 구성원(構成員)들은 뭔가?
➥ 위의 원문(原文)에서 보다시피 : 「동(東)쪽과 남(南)쪽은 바다(海)로 한계(限界)하고, 서(西)쪽은 육지(陸地)로 이어져 있다」라는 뜻이다. 곧 고황제(高皇帝) 조선(朝鮮)의 땅이 바로 “그렇다”라는 뜻이다.
바로 「명(明)나라의 ‘동월(董越)’은 조선부(朝鮮賦)에서 말하기를 : 오늘날의 중원대륙(中原大陸) 땅을 가리키고 있다.」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董越[1,430年∼1,502年] [出處 / 維基百科. 自由的百科全書] : 字尚矩,號圭峰,江西寧都人。明朝政治人物,探花及第。官至南京工部尚書,諡文僖,葬寧都河東山。孝宗即位後,董越升右庶子兼侍講,奉命出使朝鮮,並撰寫朝鮮賦. 著有朝鮮雜誌, 使東日錄等.】
➋ 〈正 北 爲 毛 憐, 海 西 : 정북(正北)은 모련(毛憐), 해서(海西)이다〉라고 하였는데, 조선(朝鮮)의 정북(正北)은 길림성(吉林省) 길림시(吉林市)다.
① 여기서 「모린위(毛潾衛)」를 “중국어 위키백과”를 보면 : 「그 본래(本來) 위치(位置)를 말하기를, “도문강(圖們江) 이남(以南) 지구(地區)”【毛憐衛,原位於圖們江以南地區】」를 말한다고 하였는데,
「도문강(圖們江)은 두만강(豆滿江)을 말하며 그 이남(以南) 땅이라는 이야기는 곧 조선(朝鮮)의 최 동북방(東北方) 땅 일부를 명(明)의 모린위(毛潾衛)라고 했다고 하였다.
즉(卽), 〈毛憐,滿語[原創研究?]意為「馬」[來源請求]。與建州衛原同屬於明朝女真胡里改部,二者之間有族緣關係,《朝鮮王朝實錄》稱毛憐衛為「東北(或豆滿江)➨兀良哈」,建州衛為「婆豬江兀良哈」,建州衛和毛憐衛同為建州女真的主體。〉라고 했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올량합(兀良哈)」은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오늘날의 “몽골” 최(最) 서북방(西北方)의 “당노산맥(唐努山脈)=당노오랍산(唐努烏拉山)” 【러시아(Russia)와의 접경지대(接境地帶)로 동서(東西)로 뻗어있다】남북(南北) 지대(地帶)에서 살던 종족(種族)이었기 때문이다.
「올량합(兀良哈)」은, 바로 「오량해(烏梁海)로, 서백리아(西伯利亞)【서(西) Siberia 분지(盆地)】에 살던 돌궐(突厥)계 종족(種族)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중국(中國)에서도 이처럼 기술(記述), 설명(說明)하고 있다. 한반도(韓半島) 학계(學界)는, 혼(魂)을 팔아먹은 강시(僵屍•殭屍) 집단(集團)이다.】
본시(本是) 모린위(毛潾衛)도, 건주위(建州衛)도 모두 건주여진(建州女眞)이다.
「AD 1,433년의 ‘조선(朝鮮) 정벌군(征伐軍)’의 파저강전투(波猪江戰鬪)에서 모린위(毛潾衛) 등의 여진(女眞)들이 꺾이고 부서져 큰 피해(被害)을 입고, 그 땅은 조선(朝鮮)이 점거(占據)해버리니, 그 잔족(殘族) 세력(勢力)은 건주좌위(建州左衛) 알타리(斡朶里) 수령 이만주(李滿住)는 혼하(渾河) 유역(流域)으로 옮겨갔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胡里改部首領火兒阿萬戶阿哈出子猛哥不花掌毛憐衛。後又傳位給撒滿哈失里。1433年朝鮮發動婆豬江戰鬥,毛憐衛等女真衛所被摧毀,其地為朝鮮所佔據。其後部分殘餘部眾隨建州左衛斡朵里部首領李滿住遷居渾河流域。地理位置 / 據《朝鮮王朝實錄》載:「毛憐衛在古慶源、斡木河之間, ……其地離新慶源三日程也。……則毛憐衛與我國不遠矣」,「昔居於豆滿江內,今皆徙居於江外」大約在今朝鮮東北面圖們江下游咸鏡南道會寧市和慶興之間】
문제(問題)는 : 「압록강(鴨綠江)은, 조선(朝鮮)의 서(西)쪽 땅에 있다」라는 것이고,
「두만강(豆滿江) 역시(亦是) “만수지원(萬水之源)”으로, 오늘날의 “당노산맥(唐努山脈)=당노오랍산(唐努烏拉山)”북방지대(北方地帶)를 흐르던 하천(河川)이었다.」라는 것이다.
「올량합(兀良哈) 또한 오늘날의 “몽골(蒙古)”과 “러시아(Russia)”의 국경지대(國境地帶)를 서(西)쪽에서 동(東)쪽으로 뻗쳐있는 “당노산맥(唐努山脈)=당노오랍산(唐努烏拉山)” 주변(周邊)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살던 종족(種族)이다.」라는 것에 있다.
「여진(女眞)」은, 곧 ‘말갈(靺鞨), 물길(勿吉)’로 오늘날의 마자르족【마자르인(헝가리어: magyar(ok) 머저르[*]) 또는 헝가리인(영어: Hungarian(s) 헝가리안[*], 독일어: Ungarn 웅가른[*])이란 우랄족 우그리아족에 속하는 민족으로, 헝가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헝가리가 그들의 국민국가다 / 인용(引用) 출처(出處) : 한국어 위키백과】이다. 이들은 오늘도 동구라파(東歐羅巴) 땅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종족(種族)이다.
이러한 역사해설(歷史解說)은, 또한 ‘산해경(山海經)’과 그 주석(註釋)에서,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이 수천인(數千人)들을 초빙(招聘)하여 저술(著述)했다는 ‘회남자(淮南子)’에서도 이를 고증(考證)할 수 있는 일이다. 곧 「숙신민(肅愼民), 숙신씨(肅愼氏), 숙신국(肅愼國)은 서(西)쪽과 북(北)쪽 땅에 있었다」라고 말이다.
이런 그들 「“마자르”가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있었다」라는 이야기는,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 논자(論者) ‘놈’들의 헛소리다.
② 해서여진(海西女眞) : 이곳은 ‘해서(海西) 곧 바다의 서(西)쪽’이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해서(海西)가 아닌 해동(海東)”이어야 맞는 말이다.
오늘날의 중국(中國) 학자(學者)들은 「해서여진(海西女眞)」은, 「송화강(松花江) 동(東)쪽으로부터 흑룡강(黑龍江)에 이른다」라고 설명(說明)하면서도, 「왜 이곳이 “해서(海西)”인가? 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 어떤 이야기도 없다.」 【海西女真,女真族三大部之一,明代女真分為建州、海西、野人三部。海西女真主要分佈於海西(今松花江東)到黑龍江】
➨➨➨ 이처럼 「동해(東海) 또는 태평양(太平洋)」을 기준(基準)하여 “바다(海) 서(西)쪽” 땅이라고 한다면 : 「한반도(韓半島)는 해동(海東) 땅이 아닌 해서(海西)요, 해서(海西)는, 곧 우리나라를 칭(稱)하는 말」이라고 해야 딱히 올바른 것이 된다.
➨ 위의 지도(地圖)를 보면서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를 생각해 보자. “동(東)쪽과 남(南)쪽은 바다(海)로 한계(限界)한다.”라고 하였다. 【위의 지도(地圖)에 ‘동(東) 중국해(中國海)’라고 한 곳은, 옛 지도(地圖)에서는 “동해(東海)”라고 표시(標示)되어 있다】
그러나 “반도(半島)【한반도(韓半島)】땅”은, “동(東), 서(西), 남(南)”쪽이 바다(海)로 한계(限界)하고 있어, 동월(董越)의 기록(記錄)은 헛소리가 되어버린다. 이 말은 “동월(董越)”이 말한 「조선(朝鮮) 강역(疆域)은 반도(半島) 땅이 아닌 중원대륙(中原大陸) 땅」임을 말하고 있어, 이를 증명(證明)하고 있다.
「상돈(桑暾)」 : 「반도인(半島人)들은 반도(半島)의 “동해(東海)”를 말한다」라고 하지만, 이는 「의무교육(義務敎育)이라는 주입식(注入式) 교육(敎育)과 세뇌공작(洗腦工作)의 원인(原因)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곧 「21세기(世紀) 오늘의 한국(韓國)의 동해(東海)」와 「20세기(世紀) 이전(以前) “동국(東國) 동해(東海)”는 전혀 다른 바다(海)를 말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걸 모르고, 이해(理解)하지 못하는 AD 1,910년 이후(以後)의 의무교육생(義務敎育生)과 ‘한글’ 전용(專用)으로 인하여 파생(派生)된 “역사(歷史)를 잃은, 민족(民族)의 혼(魂)을 잃어버린 한민족(韓民族)의 크나큰 불행(不幸)이다.”
➨➨➨ 『동해(東海)』 : 「대륙(大陸) 강소성(江蘇省) 장강하구(長江河口) 이남(以南) 바다(海)를 동해(東海)」라고 하며, 「대만(臺灣), 필리핀(呂宋) 등지(等地)의 바다(海)를 남해(南海)」라고 한다. 【‘동월(董越)’은, 남경(南京)의 공부상서(工部尙書)를 역임(歷任)했으며, 강서(江西) 출신(出身)이란 것을 감안(勘案)하면 왜 “상돈(桑暾)”이 ‘대륙(大陸)의 동해(東海)’를 말하고 있는지를 미뤄 짐작(斟酌)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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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 수도(首都)는 “서울”인 것은 누구라도 다 아는 상식(常識)에 속(屬)한다. 그러나 「“서울”이 “한양(漢陽)인가? 한성(漢城)인가? 한성부(漢城府)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라는 것이 정답(正答)이다.
모든 동식물(動植物)은, 자연환경(自然環境)을 떠나 살아갈 수 없으며, 인간(人間) 무리 또한 자연환경(自然環境)과 지형지세(地形地勢)를 떠나 삶을 영위(營爲)할 수 없음은 너무도 잘 안다. 이걸 떠난 삶이란 곧 ‘멸종(滅種)’됨을 의미(意味)한다.
➨ 「곧 21세기(世紀) 왜곡(歪曲)과 조작(造作)으로 얼룩진 ‘조선(朝鮮)의 역사(歷史)’는, ‘조선인(朝鮮人)의 멸종(滅種)’됨을 뜻하며, 오늘의 “윤석열 정권(政權)”을 보면 : 「한민족(韓民族)의 망조(亡兆)의 사신(使臣)으로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예부터 전해오는 속담(俗談)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곧 “서당(書堂) 개(犬) 3년이면 풍월(風月)한다”라고 말이다. 곧 이 말은 “아무리 무식(無識)한 사람이라도 어떤 부분(部分)에서 몇 년 일하면 얼마간의 지식(知識)과 경험(經驗)을 갖게 된다”라는 뜻이다.
「윤석열 정권」이 벌써 절반(折半)을 넘은 3년(年) 차다. 3년(年) 차면 무엇하나? 풍월(風月)은 고사하고, 시구(詩句)하나 제대로 읊지 못하는 무식(無識)과 무도(無道)와 저속어(低俗語)만이 판치는 ‘개판’을 만들어 놓았다.
똑같은 이치(理致)다. “서울은 서울”일 뿐, 어떻게 옛 “한양(漢陽), 한성(漢城), 한성부(漢城府)가 될 수 있겠는가” 지형지세(地形地勢)를 보면 가당(可當)치 않다.
이 모두는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 그놈”들 매국노(賣國奴)들이 만들어 놓은 반국가적(反國家的) 행위(行爲)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는 이놈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처단(處斷)해야 할 의무(義務)가 있다. 한민족(韓民族)의 구성원(構成員)이라면 말이다.
2024년 11월 24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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