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보았노라, 씁쓸했노라…….
해변의 여인, 야이야 야야 바다로! 손뼉 치며 도착한 바다. 낭만적이면서도 짜릿하고, 짜릿하면서도 신사적 품격을 갖춘, 해변의 러브라인을 기대했던 우리가 순진했던 걸까. 역시 국민학교 출신은 속일 수 없지. 굶주린 평민 솔로 삼인방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달달한 가슴에 찬물을 끼얹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래, 뜨겁게 들끓던 가슴이 서늘해졌으니 이걸 피서라고 부르는 게 당연할지도 몰라.
7번에서 했던 전설의 고향, 11번에서 했던 이야기 속으로, 6번에서 했던 토요 미스터리 극장이 요기 잉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는 가지 말라던 솔로수련 10년차 언니 말 들을 걸 그랬나 싶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정말 여기구나 싶었다. 납량특집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즐기려고 간 건 똑같으면서 이제와 왜 고상한 척이냐고?
납량특집, 당신의 진상 유형은?
1. 술주정 끝판왕, 사람이 아니무니다
야―아―호―오! 응? 야호? 순간 눈을 의심했다. 내가 혹시 외로움에 정신줄 느슨하게 잡아서 바다에 온다는 게 그만 산으로 온 건가? 산에서 비키니 입고 삼디다스 모기들에게 회식 시켜주고 있는 거였나? 아니다, 히말라야 14좌 완봉이라도 했다는 듯한 이 야호의 주인공은 소주 3병이다. 사람이 아니라 소주 3병이다. 낯선 사람에게 개라고 부르긴 좀 죄스럽고, 그래 이게 다 술 탓이지. 코가 삐뚤어져서 고래고래 노래하고 소리치고 울고 시비 걸고…… 이건 사람이 아니무니다. 술이무니다.
2.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쌓인 스트레스만 버리고 가면 좋으련만, 기왕지사 버리는 거 다 버리고 가는 사람들 꼭 있다. 혼자 밤바다 거니는 것도 서러운데 유리 조각 잘못 밟아 만신창이 된 솔로의 발바닥엔 누가 후시딘 발라줄 겁니까. 막 버린 비닐봉지며 먹다 남은 음식이며 나발 불다 집어 던진 소주병이며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멍드는 일인걸 모르십니까.
3. 여긴 어디? 난 누구?
한 뼘짜리 비키니는 차라리 정숙한 편. 오랜 솔로수련이면 마법사가 된다더니 우린 프랑스 남부의 누드비치에 와 있 ……는 줄 알았는데 주변의 오빤 영동스타일. 수컷의 향기라곤 장가 못간 늙은 오라버니 방에서 나는 양말 숙성냄새가 전부였던 내게 이런 시련 너무했다. 심장이 발랑거려 모랫바닥만 보고 걸었다. 우황청심환이라도 사먹으려고 시내로 나갔는데, 편의점을 점령한 비키니 군단에 깜놀. 하여간 언니들, 되게 막 더웠나 보다.
4. 부킹 환영, 하지만 거절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닷물이 짠지 싱거운지 먹어보지 않아도 아는 나이. 우리의 목적은 애초에 핑크빛 로맨스였던 거, 인정한다. 가장 훈내 나는 멤버, 뻐꾸기 제일 잘 날리는 멤버, 짝패를 이루어 한 뚝배기 하실래예? 물어오는 남자들이 싫지는 않았다는 거다. 하지만 거절에는 이유가 있다. 나 너는 참 싫다,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면 좋겠거늘. 너희들 중에 니가 제일 괜찮은 편이라면 안 봐도 비디오니까 좀 가줄래? 집요하게 따라붙지 말아줄래?
돌아오는 길, 우리는 말이 없었다.
여름 밤은 짧고 외로움은 길었다. 어쩌면 우리의 외로움은 앞으로도 장기간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자명한 사실만은 알았다. 앞으로 내가 사랑하게 될 남자사람이 바라던 이상형의 외모는 아닐지언정, 밤바다를 술주정으로 휘젓고 오물을 투척하고 실오라기 한 장 걸치지 않아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집요하게 여자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남자는 아니길 바라는 마음. 그거 하나 건져 간다. 이 정도 수확이면 그래도 빈 손은 아니라고 위로해보지만 왜 눈물은 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