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투리 중에는 살려 쓰고 싶은 것들이 꽤 있습니다. 어떤 한정된 지역에서만 쓰이고 있는 것을
전국적으로 쓰이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 사투리를 표준어가
되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것은 특히 그 사투리가 표준어로 번역이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가령 ‘호습다’는 아가들이
요람 같은 데서 살 흔들릴 때 느끼는 기분 좋은 느낌을 나타내는 호남방언인데 이에 해당하는
표준어는 없습니다.
<우리말 산책>에서 다룬 바 있는 ‘지두룸’이나 ‘확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좀 살려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많이들 하지요.
그러나 그 방법은 그리 쉬운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무엇에다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인데 생명이라는 게 그렇게 뜻대로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작가가 사투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두 경우를 보고자 합니다.
살려 쓰고 싶은 사투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좋은 길이 바로 작가들이 그것을 써 주는
일일 터인데 다음 두 경우는 그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2
‘혼불’이라는 말은 이제 최명희의 소설 <혼불> 때문에 꽤 낯익은 단어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혼불’이 과연 무슨 뜻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실제로 많을 것 같지 않습니다.
소설 <혼불>에는 ‘혼불’의 내용이 꽤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은데 그 한 대목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뜩하도록 푸른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 부인의 혼(魂)불이었다. (3권 107쪽)
이와 더불어 이 언저리의 서술을 종합해 보면 혼불은 대개 운명하기 사흘 전쯤에 우리의
육신(肉身)을 떠나 날아가는데(그러면 그 사람은 숨은 아직 쉬고 있어도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크기가 종발만 하며, 빛은 별빛같이 맑고 푸르스름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양은 남자의 것과 여자의 것이 달라 남자의 혼불은 꼬리가 있고 좀더 크며,
여자의 혼불은 둥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혼불’은 어떤 관념적인 개념이 아니고
구체적인 형체를 가지고 있는 물체인 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혼불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말로라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작가 최명희는 ‘혼불’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는 것을 아주 이상해하며 또 서운해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혼불’이라는 말을 들어 보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았고요.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작가 최명희도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친숙하게 들어 온 이 말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게 기이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충청북도가 고향인 출판사 사장도 못 들어 본 말이라 하고,
중부 사람들은 누구나 모르더랍니다. 그래서 결국 작가는 ‘혼불’은 전라남북도에서만
쓰이는 사투리라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렇기는 하여도 작가는 ‘혼불’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에게 ‘혼불’을 표준어로는 어렵지만 일단 국어사전에 올리도록 애써
보겠노라는 약속을 했고 그 결과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 ‘혼불’은 방언으로는
올라 있습니다.
저는 이 ‘혼불’이 언젠가는 마치 ‘뒤안길’이 그랬듯이 표준어로 승격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그런 싹이 보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어떤 기념회 자리에서 어느분이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을 기리면서
그분이 평생 우리 민족의 혼불을 살리려고 애썼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혼불’은
이미 그처럼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3
‘혼불’과 비슷한 경우로 ‘뼝대’도 있습니다.
‘뼝대’는 강원도 정선을 자주 노래한 시인 황동규가 그의 시에서
몇 번 썼는데 역시 사투리를 살려 쓴 경우입니다.
다음은 그의 시집 이름이기도 한 <몰운대행>의 한 부분입니다.
표고버섯죽 한 그릇 비우고
길을 나선다.
신선하고 기이한 뼝대
저녁 빛을 받아 얼굴들이 환했다.
그 위에 환한 구름이 펼쳐진 길
그 끝을 향해.
‘뼝대’는 정선 언저리의 사투리입니다.
그 고장에 가면 바위로 된 높은 벼랑들이 많은데 그걸 ‘뼝대’라 부릅니다
(현지 발음으로는 ‘병때’이지만 ‘뼝대’로 적는 게 나을 듯합니다).
앞의 사진에 보이는 영월 동강의 바위 벼랑이 뼝대의 한 전형적인 모습일 겁니다.
그 바위 벼랑들이 바로 ‘뼝대’인 것입니다.
이 ‘뼝대’에 해당하는 표준어는 없는 듯합니다.
그러니 가령 시에서 그걸 표준어로 표현하려면 ‘높은 바위 벼랑’ 쯤이 될 터인데
그런 표현으로는 시의 리듬이나 분위기를 살리기 어려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투리 ‘뼝대’를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겠지요.
황동규 시인은 <오어사에 가서 원효를 만나다>라는 시에서도 포항 부근의
운제산을 읊으며 ‘뼝대’를 썼는데 달리 다른 말을 찾기 어렵지 않았을까 합니다.
호수 가득
거꾸로 박혀 있는 운제산 큰 뼝대.
이 ‘뼝대’가 앞으로 얼마나 생명을 얻어 갈지 궁금합니다.
이미 황 시인 외에 몇몇 시인이 ‘뼝대’를 쓰기 시작한 것을 보면 희망이 있어도 보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몇몇이 운동을 하여 내일부터
이것들을 표준어로 하자고 하여 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다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써 주어야 생명이 붙는데,
거듭 말하지만 그 길을 열어 주는 가장 좋은 길은 ‘혼불’이나 ‘뼝대’처럼
작가가 나서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뒤안길’의 경우처럼 그 작품이 사랑을 받게 되면 이들도 자연스럽게
사람들 품속에 안기게 될 테니까요. / 옮긴 글
첫댓글 혼불 뼝대 새롭게 얻었습니다 고맙구요 어제 오늘 전화해도 안봤구먼 마치고 한잔 할까 할 예기도 많은것 같고 ... 연락하이.
...또 바빠 지겠다,..오늘 백년손님 오시는 날?...^^*.. 대강대강 하게나~~~
혼불..나또한 처음 읽을때 궁금하여 본적있는가..알아본듯..아무도 없던데요.그래서 작가가 만든단어일까..아니군요 사투리..뼝대..강원도 사투리라지만 그또한 처음. 여울님 몸살 안나셨나부다..다행^^*
작가가 만든 단어가 아니라 예부터 있던 말인데 쓰들 않아서 死語化된 순 우리말인데 이후 사전에 올라 있다고 하데요..^^*...
ㅎㅎㅎ기어코 뼝대를 찾으셨군요. 제가 뼝대란 말을 처음 안것은 강원도 시인 '박세현'님의 <뼝대>란 시를 읽고난 다음에 알았습니다. 위 사진처럼 뾰쪽 솟은 벼랑같은 바위.... 청량리역에서 태백선열차를 타고가면 영월부근에서부터 많이 구경할 수 있습니다./ 혼불은 저도 어렸을 때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게되면 푸르스름한 혼불이 사람 몸에서 빠져나간다는....그러나 한 번도 본 적은 없고 어른들로부터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언제 한번 우리 강산 휘~ 돌아볼 날 있으려나,...남들은 해외여행 자랑하는데 나는 우리나라도 못 가 본 곳이 너무 많아서,..ㅎㅎ..부끄럽네요...승일님,.시간나면 괴나리봇짐 달랑 매고...장돌뱅이처럼,..생각만 해도 좋은데,.. 그러고 보면 '혼불'이나 '초혼'이나....안그런가요? 이리님?
정선 근방에 살았던 나도 뻥대란 말은 처음 듣습니다요...ㅎㅎ 우리강산 휘 돌아 볼때 낑가 주세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