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석류를 오랜만에 봤다.
지난 주말 지리산 기슭 마을에 갔을 때였다.
가을 햇살 아래 반짝이는 석류를 마지막 본 게 언제였을까.
철든 뒤로는 나무에 열린 석류를 옆에서 본 기억이 안 난다.
아내와 나는 반가운 나머지 휴대전화를 꺼내 연신 찍어댔다.
동네 빈터에 널어놓은 윤기 나는 빨간 고추에도 새삼스레 눈길이 갔다.
결실의 경이로움을 전에도 이번처럼 느낀 적이 있었던가.
읍내 장터에 사과, 포도는 많았지만 햇밤, 햇대추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시장 한 곳에서는 김장용 배추 모종을 팔고 있었다.
아, 이때쯤 모종을 심어야 김장철에 댈 수 이쑈는 거구나.
깊게 주름이 파인 할머니는 지리산에서 직접 캐왔다는 버섯을 앞에 놓고 오가는 사람들을 불렀다.
그날 밤은 한옥마을에서 보냈다.
이튿날, 정말 개운한 새벽을 맞았다.
산책 길을 나섰을 때 흘러나온 마을 안내 방송.
"전통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다 같이 동네 청소를 합시다."
이장의 목소리에는 巨儒를 배출한 고장이라는 자부심이 짙게 배여 있는 듯했다.
추석을 맞아 '가짜 깁스'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던 주부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연출용 팔 깁스' 착용 방법과 택배 안내 등이 죽 뜬다.
생김새는 다섯 손가락만 뺴고 손과 팔목을 덮고록 돼 있다.
며느리 깁스, 추석 깁스, 명절 가짜 깁스 등 명칭도 갖가지다.
네티즌의 반응도 다양하다.
"일 많이 해 손목 염ㅈ등이 생기면 진짜 깁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참 한심한 짓" 오죽했으면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싶다.
여기까지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명절용 다리 깁스, 명절 립스틱도 나왔다니 이건 또 뭔가.
명절 립스틱은 입술에 발라 창백한 얼굴릉 연출할 수 있다나
남편들이 함께 명절 준비를 하면 모두 필요없는 것인데.
이쯤에서 지리산 밑 마을이 자꾸 떠 오른다.
햇볕에 타 거무스름한 얼굴의 농민들은 가짜 깁스가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추석에 맞춰 이웃과 함께 동네 청소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세태를 두고 뭐라고 할까.
절기의 변화에 따라 거짓 없이 살아가는 그들이 우러러보인다.
그나저나 가짜 깁스를 산 주부들은 그걸 사용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된다.
하도 소문이 많이 나버렸으니. ㅜ 정원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