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삼 金京三(1872 ~ 1920)】 "대한국민회 활동, 1920년 일본군에 피살"
1872년경 함경북도 부령군(富寧郡) 하무산면(下茂山面, 부령면으로 개칭) 형제동(兄弟洞)에서 태어났다. 집안 배경 및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활동한 단체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이며, 주로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방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1914년 이동휘(李東輝)가 북간도 명동(明東)에서 조직한 국민회(國民會)가 전신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옌지를 중심으로 세력을 재구축하였다. 이들은 북간도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기에, 미주 국민회와 구별하여 간도국민회(間島國民會)로도 불린다.
봉오동전투 및 청산리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간도 일대의 독립군과 한인 사회를 초토화할 목적으로 1920년 간도 일대에서 훈춘사건(琿春事件, 간도참변, 경신참변)을 일으켰다. 1920년 10월 30일 연해주에서 출발한 포조군 제14사단(28여단) 제15연대 제3대대장 오오카 다카히사(大岡隆久)가 스즈키(鈴木) 대위 이하 7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용지사(勇智社) 장암동에 도착하였다. 장암동은 주민의 대다수가 기독교 신자였으며, 영신학교(永信學校)를 중심으로 집결하여 독립운동에 협조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이들이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주민들을 교회에 집결시켰다. 40세 이상의 남자 33명을 예배당 안 바닥에 꿇어앉힌 후에, 짚단 등으로 채우고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다음, 불을 피해 나온 사람들을 찔러 죽이는 참살을 자행했는데, 이때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