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언어(The Language of God)> 프랜시스 S. 콜린스
DNA는 신의 설계도이다 !
유전자 지도에서 발견한 신의 존재...
우리는 왜 여기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과학과 종교의 갈등, 인간에 대한 오해는 편견과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 게놈 지도의 완성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낸 콜린스 박사의 과학과 신의 존재, 인간 본성에 관한 통찰!!!
프랜시스 S. 콜린스(Francis Sellers Collins)는 세계적 권위를 지닌 유전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오랫동안 생명의 암호가 숨겨진 DNA를 연구해 왔다. 1993년, 세계 6개국 2천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총지휘하여, 10년 만인 2003년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31억 개의 유전자 서열을 모두 밝히는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대학 시절에는 열렬한 무신론자였으나, 유전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은 후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뒤부터 종교적 신념의 진정한 힘을 주목하게 되었다. 최첨단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인 동시에 하느님과 성경을 믿는 독실한 신앙인인 그는 신이 우리 인간을 돌보고 인간의 삶에, 드물게는 기적의 형태로 간여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콜린스는 이 책을 통해, 신을 믿으면서 과학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을 괴롭히는 딜레마를 해결할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는다.
신에 대한 믿음과 과학에 대한 믿음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하나의 세계관으로 결합할 수 있다.
그가 믿는 신은 기도를 들을 수 있는 신이며 우리 영혼을 보살피는 신이다. 그가 발전시킨 생물학은 그런 신과 얼마든지 조화가 가능하다. 콜린스가 보기에 과학은 성경과 대립하지 않는다. 대립은커녕 성경의 토대가 된다.
콜린스는 여러 해 동안 자신의 견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생명의 암호를 밝히는 유전자를 연구해 오며, 이성과 믿음을 한데 섞은 이 역작을 내놓았다.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세세히 소개한 《신의 언어》는 신을 옹호하는 이야기이며 과학을 옹호하는 이야기다.
그는 무신론에서 젊은 지구창조론에 이르기까지, 불가지론과 지적설계론을 포함한 과학과 종교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살펴본다. 그는 신앙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주장과, 과학의 진실을 터무니없이 거부하는 종교인의 주장들을 반박한다. 그는 진정한 과학자가 어떻게 초월적 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믿음이 서로 모순되지 않게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정치한 구성과 논리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 무신론과 불가지론
어떤 사람은 무신론을 '소극적' 형태와 '적극적' 형태로 나눈다. 소극적 무신론은 하느님 또는 다양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부재인 반면에, 적극적 무신론은 그런 신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굳은 확신이다. '불가지론자(agnostic)'란 말은 '다윈의 불독'으로 알려진, 개성 있는 영국 과학자 토머스 헉슬리가 1869년에 만든 말이다. 그가 처음 이 말을 만든 사정은 이렇다.
지적으로 성숙해지면서, 내가 무신론자인지 유신론자인지 범신론자인지, 유물론자인지 관념론자인지, 그리스도인인지 자유사상가인지를 자문하게 되었을 무렵, 나는 더 배우고 생각할수록 대답하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맨 마지막 항목을 빼면 이 가운데 어느 종파와도 관련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이 선한 사람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한 가지에 의견이 달랐다.
이들은 어떤 'gnosis(그노시스-영적 인식)'을 얻었다고, 즉 존재의 문제를 어느 정도는 분명하게 풀었다고 확신했지만, 나는 그렇지가 못해서 그 문제는 풀 수 없다는 꽤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더없이 적절해 보이는 'agnostic(애그노스틱)'이란 말을 만들었다. 이 말은 내가 모르는 바로 그것을 훤히 안다고 공언했던 교회 역사의 'gnostic(그노스틱 : 그노시스파, 즉 헬레니즘 시대에 영적 인식을 강조했던 사람들)'들과 반대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agnostic'은 신의 존재를 인식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자다. 무신론에서처럼 불가지론에서도 적극적 형태와 소극적 형태가 있어서, 적극적 불가지론은 인간이 신의 존재를 인식하기란 앞으로도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소극적 불가지론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적극적 불가지론과 소극적 불가지론의 경계는 모호하며,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다윈의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1881년, 무신론자 두 사람과 저녁식사를 하던 다윈은 손님들에게 "두 분은 왜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하십니까? 라고 물으며, 자기는 헉슬리의 '불가지론자'라는 말이 더 좋다고 했다. 그러자 손님 한 사람이 대답했다. "불가지론자는 그럴 듯해 보이는 무신론자일 뿐이고, 무신론자는 공격적으로 보이는 불가지론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가지론자는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으며, 단지 적어도 지금 본인으로서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거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언뜻 보기에는 논리적 방어가 가능한 입장이다. 진화론과도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는 입장이며, 많은 생물학자들이 이 부류에 모여든다. 그러나 불가지론은 회피로 이용될 위험을 안고 있다. (pp. 171-172)
* 창조론
'창조론자'라는 용어는 표면적인 의미로 보면 어떤 신이 존재해서 우주 창조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지난 20세기에 '창조론자'라는 용어는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를, 특히 창세기 1, 2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우주 창조와 지구상에서 생명의 탄생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악용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창조론자'들이 가진 견해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것은 '젊은지구창조론'이라 불리는 것으로,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창조가 이루어진 6일간을 문자 그대로 하루 24시간의 6일로 해석해, 지구의 나이가 1만 살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지구상의 종 하나하나가 모두 신의 창조적 행위로 탄생했으며,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이 에덴동산에서 흙으로 빚은 역사적 인물이지 다른 생물체에서 진화해온 인물이 아니라고 믿는다.
젊은 지구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대개 변이와 자연선택으로 종 내부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소진화'를 받아들일 뿐, 한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는 '대진화'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화석 기록에 나타난 공백은 다윈의 이론이 틀렸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1960년대에는 현재 고인이 된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가 설립한 '창조연구학회' 회원들이 《창세기 홍수(The Genesis Flood)》를 비롯해 여러 서적을 잇달아 출간하면서 젊은 지구창조론의 활동이 한층 더 구체화되었다.
모리스와 그의 동료들의 주장 가운데는 지층과 그 지층에서 발견된 화석은 수억 년에 걸쳐 퇴적된 결과가 아니라 창세기 6~9장에 묘사된 단 몇 주 동안의 대홍수의 결과라는 내용도 있다. 설문조사 결과, 미국인의 약 45퍼센트가 젊은 지구창조론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복음주의교회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리스도교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책과 비디오에는 새, 거북, 코끼리, 고래 등에 해당하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거나(그러나 이런 화석도 몇 년 사이에 모두 발견되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진화의 가능성을 배제한다거나(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방사성원소의 붕괴율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때문에 방사능을 이용해 바위와 우주의 연대를 측정하는 것을 잘못이라는(이는 사실이 아니다) 등의 주장을 펼친다.
창조론자들이 만든 박물관이나 테마공원을 가보면 인간이 공룡과 즐겁게 노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젊은 지구창조론은 인간이 나타나기 훨씬 전에 공룡이 모두 멸종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지구창조론을 지지하는 자들은 진화가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DNA 연구로 눈앞에 드러난 유기체들의 유연관계는 단지 하느님이 특별한 창조 행위를 반복한 결과일 뿐이다. 서로 다른 포유동물에서 염색체의 유전자 배열이 비슷하다거나, 인간과 생쥐의 DNA에서 똑같은 자리에 반복되는 '쓰레기 DNA'가 나타난다는 등의 현상은 하느님의 계획 중 일부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pp. 174-179)
* 지적 설계론 (또는 창조론2.0)
언뜻 보기에 '지적 설계'라는 두 단어는 생명이 지구에 탄생하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신이 담당했을 역할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을 담고 있겠거니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고유명사로서의 '지적설계'는 자연에 관한, 특히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여러 부분이 모여 하나
의 복잡한 생물적 기능을 수행할 때, 그 여러 부분 중 어느 하나만 제거해도 전체 기능이 마비되는 생물
조직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개념에 관한 대단히 특별한 여러 의미를 담은 전문 용어가 되었다......
지적설계론은 1991년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 뿌리는 생명 기원의 확률적 불가능성을 지적한 초기 과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지적설계론의 주요 관심사는 최초의 자기복제 유기체가 어떻게 생겨났는가가 아니라 생명의 놀라운 복잡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진화론의 허점이다.
지적설계론을 처음 만든 사람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법학 교수이자 그리스도교도인 필립 존슨(Phliilp Johnson)으로, 그는 저서 《심판대의 다윈(Darwin on Trial)》에서 처음으로 지적설계론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의 주장은 여러 사람에게 점점 퍼져갔고, 특히 생물학 교수 마이클 베히(Michael Behe)는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라는 책에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란 개념을 자세히 다루었다. 최근에는 정보이론을 연구한 수학자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가 지적설계론의 해설자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적설계론은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 명제를 바탕으로 한다.
명제 1 : 진화는 무신론적 세계관을 확산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를 저지해야 한다.
명제 2 : 진화는 자연의 미묘한 복잡성을 설명하지 못하므로 근본적 결함이 있다.
명제 3 : 진화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설명할 수 없다면, 진화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지적설계자가 개입해 필요한 요소를 공급했을 게 분명하다.
지적설계 운동은 그 설계자가 누구일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이 운동을 이끄는 사람들 다수가 그리스도교 관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 사라진 힘은 하느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pp. 184-189)
* 유신론적 진화 (바이오로고스 : BioLogos)
유신론적 진화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진지한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미국에서 다윈의 대표적 옹호자였던 아사 그레이와 20세기에 진화론적 사고를 확립한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도 그런 사람이다. 이 견해는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에서도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도 그 중 한 사람이다....약간씩 변형된 형태도 많지만 전형적인 유신론적 진화는 다음과 같은 전체를 기초로 한다.
1. 우주는 약 140억 년 전에 무에서 창조되었다.
2. 확률적으로 대단히 희박해보이지만, 우주의 여러 특성은 생명이 존재하기에 정확하게 조율되어 있다.
3. 지구상에 처음 생명이 탄생하게 된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생명이 탄생한 뒤로는 대단히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와 자연선택으로 생물학적 다양성과 복잡성이 생겨났다.
4. 일단 진화가 시작되고서 부터는 특별히 초자연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5. 인간도 이 과정의 일부이며, 유인원과 조상을 공유한다.
6. 그러나 진화론적 설명을 뛰어넘어 영적 본성을 지향하는 것은 인간의 특성이다. 도덕법(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이 존재하고 역사를 통틀어 모든 인간 사회에서 신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그 예가 된다.
이 여섯 가지 전제를 인정한다면, 얼마든지 있을 법하고 지적으로 만족스러우며 논리적으로 일관된 통합체가 탄생한다. 공간이나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우주를 창조하고 그것을 관장하는 자연법을 만든 신이다. 신은 불모의 공간이었을 우주를 생명으로 채우고자 정밀한 진화 체계를 선택해 마침내 각종 미생물과 식물, 동물을 탄생시켰다.
가장 놀라운 점은 신은 의도적으로 이와 똑같은 체계를 이용해 특별한 생물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지성을 갖추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자유의지가 있고 신과 함께 있고자 하는 생물이다. 신은 이 생물이 궁극적으로는 도덕법에 복종하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런 견해는 과학이 자연계에 관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모든 사실과 얼마든지 양립 가능하다. 또 세계의 주요 일신교들과도 양립 가능하다. 물론 유신론적 진화라는 관점 역시 다른 어떤 논리적 주장과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신을 믿으려면 항상 신앙이라는 도약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종합적 견해는 신앙을 가진 수많은 과학자에게 만족스럽고 일관되고 영양가 있는 관점을 제공하며, 이로써 과학적 세계관과 영적 세계관이 우리 안에서 즐겁게 공존한다. 이 관점은 신앙을 가진 과학자들을 지적으로 충만하고 정신적으로 생기 있게 만들며, 신을 숭배하면서 동시에 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신의 창조물이 지닌 놀라운 신비를 벗기게 한다.(pp. 201-203)
과학은 자연계를 연구하는 유일한 합리적 수단이다. 원자 구조를 탐구하든 우주의 특징을 탐구하든 인간게놈의 DNA 서열을 탐구하든 과학적 방법만이 자연현상의 진실을 추구하는 신뢰할 만한 유일한 수단이다. 실험도 여지없이 실패할 수 있고, 실험에 대한 해석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과학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과학의 본질은 자기 수정이다. 지식이 점진적으로 축적되다보면 어떤 큰 오류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나 과학만으로 그 무거운 질문에 빠짐없이 대답할 수 없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순수한 자연주의적 세계관의 빈약함을 인정했다.
그는 조심스레 말을 골라가며 이렇게 썼다.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 신의 실재, 사후세계의 존재 가능성, 그 외에 많은 영적 질문은 과학이 닿을 수 있는 테두리 밖에 존재한다.(pp. 228-229)
유전학과 게놈학이라는 과학이 인간에게 '신의 역할'을 허용하기 시작한 걸까? 이 말은 최근의 발전을 우려하는, 비종교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만약 인간도 신처럼 무한한 사랑과 박애를 실천할 수 있다면, 과학 발전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 게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는 그렇게 고상하지 않다. 환자를 치유해야 하는 의무와 해악을 끼칠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서로 충돌할 때면 우리는 어려운 결정에 부딪힌다. 그럴 때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이해 관계자의 견해를 모두 경청한 다음,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하는 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이 노력이 성공해야 현재 과학적 세계관과 영적 세계관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종식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양쪽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지,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니다.(pp. 273-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