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력 은 보통 인체 자체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힘 혹은 기운을 의미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성생활에 필요한 기력을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래서 한국의 중년 남성치고 정력에 좋다는 약과 음식을 한두 번쯤 복용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 개발된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한국에서도 한창 선풍을 일으킬 무렵의 일이다. 비아그라와 같은 서양의 양약들이 들어오면 한방의 전통적인 보신약제인 정력제가 설 땅이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한의학계 내부에서 제기됐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상지대 한의대가 발간하는 학회지에 『비아그라에 어떠한 약 성분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약을 복용한 뒤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생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과연 얼마 후 실제로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사망한 경우가 세계 각국에서 속속 보고됐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비아그라는 남성의 음경 해면체에 분포한 말초혈관에 혈액 순환을 촉진시킴으로써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연출하는 기전을 갖는다. 이는 한의학에서 임종 직전이나 폐결핵 말기에 나타나는 「음허화동(陰虛火動)」증상과 유사하다. 즉 이 증상은 몸은 자꾸 야위고 각혈(?血)하지만 성욕은 오히려 증가해 결국 몸을 상하게 돼 사망하는 기전과 거의 비슷한 상태인 것이다.
대체로 발기부전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잔해졌거나 당뇨병·암과 같은 만성 소모성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서 나타난다. 이때 비아그라 같은 약을 복용해 발기만 시켜서 성생활 같은 중노동을 하면 인체는 어떻게 될까. 결국은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동반하는 돌연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나이든 사람이 젊은 여성에게 빠져 자주 사정을 하면 젊은 여성의 배 위에서 급사하게 되는 복상사(腹上死)라는 것도 바로 이 경우다.
정력 떨어지면 심장도 나쁘다
한의학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남녀의 성생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의학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황제내경』은 그 첫머리인 「상고천진론편」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남자는 8세에 신기(腎氣)가 튼튼해지고 머리가 자라며 이가 새로 난다. 16세에 신기가 왕성해지고 활발한 내분비 호르몬 기능으로 정기(精氣)가 배출돼 음양이 화하여 자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24세에는 성선 호르몬(신기)이 균등하여 근육과 뼈가 튼튼해지고 어금니가 나며 영구치를 만든다. 32세에는 근육과 뼈가 완전해지며 살이 풍만해지고, 40세에는 신기가 쇠약해지며 모발과 치아가 빠지기 시작한다. 48세에는 신기가 고갈되며 얼굴은 꺼메지고 모발과 수염 등이 하얗게 변한다. 56세에는 간기능이 쇠약해져 근육을 움직이지 못하고 남성 호르몬이 고갈하여 정액이 마르고 떨어져서 형체가 피폐해진다. 64세가 되면 치아와 머리가 빠진다』(원문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
이상과 같이 사람은 40세, 즉 중년이 되면서부터 신기(신장 기운), 즉 남성호르몬이 부족해지며 이로 인해 본격적으로 노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신기는 오장육부상 신장에 해당하며, 음양오행의 이론에 따르면 수(水)에 배속되며, 곧 정기(精氣)를 의미한다.
한의학에서는 신기, 즉 정기(精氣)를 인체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인체를 양생(養生)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정(精)이 중요하다. 정이 충실하면 기가 굳세지고 몸이 건장해지며, 몸이 건장해지면 스스로 병이 없어져서 안으로는 오장(五臟)이 영화롭고 밖으로는 피부가 윤택해 얼굴색에 빛이 나고 귀와 눈이 총명해지는 것이다. 또 이러한 정을 낭비하지 않으면 능히 오래 산다고 하였다.
반면에 신기(정력)가 떨어졌을 때 인체의 반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뇌기능에서 집중력과 어휘력, 표현력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기억력은 20대 이후부터 서서히 감퇴하며 ▲두피의 모낭수가 감소하고 머리카락 성장속도가 저하하며 ▲시력 및 청력이 감퇴하고 ▲체지방이 현저히 증가하며 ▲근육이 위축 및 약화돼 골다공증이 시작되고 ▲성기능의 경우 혈관장애로 발기각도가 저하되고 남성호르몬의 저하로 인해 성행위 빈도수도 저하되는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어 정력이 떨어지면 신수(腎水)를 보해야 한다거나 수기(水氣)를 보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정력에 해당하는 신장의 수기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체의 생명력인 정력, 즉 신장기운이 떨어진다는 것은 하나의 기관이 고장이라기보다는 인체 여러 기관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의미다. 특히 한의학에서는 심장과 신장이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심신상교(心腎相交)」라는 표현을 쓴다. 다시 말해 심장과 신장은 서로 잘 교류한다는 뜻인데, 심장이 나빠지면 반드시 신장이 나빠지고 거꾸로 신장이 나빠지면 심장 역시 나빠진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신장이 나빠 부종이 발생하는 환자는 심장까지 나빠져 숨이 차거나 고혈압이나 관상동맥경화가 찾아온다. 심장병 환자의 경우 혈액을 말초신경에까지 힘있게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신장병이 생겨 부종이 오거나 단백뇨·혈뇨 같은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에서 개발된 비아그라도 같은 이치다. 원래 이 약은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약이지만, 말초의 혈액순환장애, 특히 음경 해면체의 순환장애를 치료해 획기적인 발기부전증 치료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즉 한의학 고유의 심신상교 이론을 바탕으로 개발한 화학약품이 비아그라인 것이다.
정력 체크해보기
남성들은 자신의 정력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것이 남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자신의 정력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을까? 사실 사람의 기능 및 기질적인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첨단 의료기기가 많이 개발돼 있지만 남녀의 정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정력의 한의학적 원리를 이해하면 측정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인체의 생명력(정력)이 떨어지면, 먼저 남성 인체에 변화가 오는 부분이 있다. 체지방이 젊은이에 비하여 2배 정도 늘어나고 뼈의 밀도가 떨어지는 골다공증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특히 정력이 떨어질 경우 왜 골밀도에 영향을 주는지는 한의학이 잘 설명하고 있다. 한방 이론에 배합된 장기를 살펴보면 「신주골(腎主骨)」이라 하여 신장에 배속된 것이 바로 뼈다. 이 때문에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곧바로 그 뼈밀도 역시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뼈의 밀도를 재보는 골밀도 측정기는 남성 정력을 체크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남성의 정력을 파악해보기 위해 CT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해왔다. 이 골밀도 측정기를 통하여 나타난 뼈의 전신밀도, 그리고 정력을 알아볼 수 있는 허리뼈(특히 허리 둘째 뼈)의 밀도를 살펴봄으로써 환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강 상태를 유추하여 볼 수 있다.
뒤 페이지의 <표>에서 보이는 골밀도 측정 자료는 안면홍조감, 정력부족, 중증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남성 환자의 것이다. 이와 같은 증상은 여성의 갱년기 증상과 거의 비슷한 양태를 띠고 있어 필자 역시 흥미롭게 관찰한 바 있다. 그런데 이 환자는 병원의 종합검진과 X-레이 촬영에서는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필자의 골밀도 검진기에서는 심한 골다공증 증상이 잡히고 특히 L-2(허리 둘째 뼈)의 골밀도가 심각하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필자는 골밀도 측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관찰하기도 했다. 임신이 안 되는 남녀환자의 불임검사를 하는 과정에 골밀도를 재본 결과 상관관계가 있음이 확인됐다. 즉 남자의 허리뼈 밀도가 떨어지면 그 사람의 정자도 숫자나 활동성이 떨어지고, 여자의 허리뼈 골밀도가 떨어지면 배란이 잘 되지 않거나 임신이 되어도 유산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남자의 경우는 정력이 점점 떨어지면 우선 체중이 늘고 뼈밀도가 떨어진다. 체중도 특히 아랫배가 나오고 뼈, 특히 허리 둘째 뼈의 밀도가 떨어진다. 거꾸로 말해 아랫배가 나오고, 골밀도 측정결과 허리 둘째 뼈의 밀도가 떨어졌으면 정력이 감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정력이 감퇴할 경우 허리뼈와 관련해 요통이 찾아올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요자신지부(腰者腎之府)」라고 표현한다. 즉 허리는 신장이 관할하므로 신기 곧 정력이 떨어지면 허리가 먼저 아프게 되는 요통 등의 통증이 올 수 있다. 따라서 중년의 요통이라면 반드시 골밀도 검사를 통해 정력을 판단하고 보강에 힘써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일찌감치 정력을 강화시켜 주는 약제가 개발돼왔다.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정력 부진에 사용되는 유명한 처방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비아그라 능가하는 정력제
첫째가 공진단(拱辰丹)이다. 이는 녹용, 당귀, 산수유, 사향 네 가지 기본방에다 인삼, 숙지황, 계피, 목향, 침향을 가한 처방이다. 이러한 공진단은 원래 일반 보약으로 선천적으로 정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복용시키는 약제다.
필자는 이 약제를 심장이 좋지 않은 환자에게 중풍 및 심장질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20여 가지의 심장 관련 약을 가감하여 복용시켜 보았다. 그런데 이 약제를 복용한 60대의 환자가 발기부전증에 대단한 효력을 발휘해 본의 아니게 그 자식들로부터 『아버지 약에 정력제를 넣은 것 아니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사실 이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심장과 신장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심신상교 원리에 따라 제조된 약제다. 심장이 좋아지면 당연히 신장이 좋아지기 때문에(그 역도 성립한다), 60대 환자에게서 그런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부작용이 발생한 비아그라가 원래 심장약에서 출발한 것도 바로 이런 원리다. 여하간 심장약이 가미된 공진단은 신경을 많이 쓰는 사업가의 양기부족, 발기불능 치료제로 사용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둘째는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쌍화탕(雙和湯)이 있다. 이는 백작약, 숙지황, 당귀, 천궁, 계피, 감초, 생강, 대추가 주처방으로 시중에서는 주로 겨울철 감기약으로 시판되는 처방이다. 공진단이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의 정력제라고 한다면 쌍화탕은 육체적 노동을 하는 사람이거나 과음 후 성생활을 하거나 성생활 이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좋은 처방이다. 여기에다 간의 피로를 푸는 구기자를 합하면 오랫동안 복용해도 부작용이 없으나,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이 흠이다.
마지막으로 연령고본단(延齡固本丹)이 있다. 이는 정력 부족으로 인한 중년의 양기부족과 50세 전후에 백발이 됐을 때 복용하는 정력제다. 「보름을 복용하면 양사, 즉 발기가 웅장하고, 한 달이면 안색이 동자와 같고 십리 밖을 투시하며, 석 달이면 백발이 검어지고 신기가 쇠하지 않는다」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신통력을 발휘한다는 약이다.
한편 정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의 음식과 운동이 중요하다. 특히 이때는 뼈의 밀도를 늘려주는 쪽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음식으로는 잡곡을 주식으로 하며 콩제품, 멸치, 새우 같은 작은 생선, 그리고 신맛이 나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이와 더불어 걷는 운동, 일명 「유산소운동」이 필수적이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걷는 산책이나 등산이 제일 좋은 운동이다. 현재 중년의 한국 남성들이 먹는 기름진 음식과 과음, 과로, 땀이 나고 열이 나는 운동은 정력을 기르는 방법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유난히 정력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정력증진과는 정반대의 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문의 02-511-5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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