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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풍상에 깎여 그림자도 희미한 마애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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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 고향인 합천 삼가에서 의령을 거쳐 남해안 고속도로로 들어가기 전에 마애산 이정표를 보게 된다. 설, 추석 명절 고속도로가 밀려 국도로 가다보면 여러 번 이정표를 더 보게 된다. 방어산 마애사는 불교방송을 들으면 광고방송을 많이 듣게 된다. 불교 TV에서도 마애사를 보게 되었다. 뿐만이 아니다. <오마이뉴스>에서도 마애사의 광고를 볼 수 있다.
마애사는 이처럼 낯익은 절이고 더구나 내가 고향을 오고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고향을 오가는 길에 마애사에 한 번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오랫동안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추석 고향을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마애사에 들렀다. 그 뒤 또 한 번 겨울비를 맞으며 마애사를 찾았다. 한 번 다녀온 마애사이고 또 마애사는 여기저기 이정표가 많이 서 있어 구태여 다른 사람들에게 묻지 않아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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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사 추모관이다. 조상들의 유골을 모시고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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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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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잡신이로구나. 신들의 박람회장인가. 불상, 신상이 아닌 잡상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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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 마애사는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 있다. 마애사가 있는 산은 방어산이다. 방어산, 무슨 뜻일까. 방어는 지킨다는 뜻이지 않는가. 산에다 이렇게 쉬운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방어산은 본래 개방산 또는 웅립산으로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산꼭대기에 산성을 쌓은 뒤로 방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방어산은 야산으로 명산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등산객이 심심찮게 찾는 산인가 보다. 산높이기 겨우 530m에 지나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마애사에 이르기 전 푸른 물이 가득 차 있는 저수지를 만난다.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작은 숲길을 따라 마애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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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산 설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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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사 전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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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사 가는 길은 포장도로이긴 하지만 길이 좁아서 차가 서로 마주치면 비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 차를 마주친 적은 없다. 마애사 주차장도 아주 너르다. 명산이 아닌 야산이건만 절 규모는 제법 커서 품격을 갖추고 있다.
마애산은 요즘 유행하는 납골당이 있다. 추모관으로 묘지가 아닌 집안에다 유골을 모시게 해 놓고 불상을 안치하였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은 빈 자리가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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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수터. 나한상이 인상적이다. 포대화상인가. 한산 습득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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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사 대웅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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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리던 길에 안개가 끼어 신비감에 젖게 한다. 마애사는 추모관을 비롯해서 요사채 종각 산령각 등의 정각이 들어서 있어 절다운 풍모를 지니기는 했지만 이렇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절집에 고풍이 풍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을 붙잡는 고요가 자리하고 있다.
절집을 돌아 방어산 등산길을 따라 오른다. 등산길이라기 보다는 마애불로 가는 길이다. 마애불은 마애사 절에서 20분 넘게 걸어서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계단을 따라 가다보면 수십기의 돌탑을 만난다. 공덕을 닦으러 이렇게 돌탑을 쌓아 부처님 앞에 소원을 빈다. 가족탑 1기에 얼마라는 선전까지 하고 있어 장사꾼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돌탑 하나에 수많은 정성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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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사 산령각, 사실 절집마다 있는 산령각은 불교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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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불상으로 가는 길, 마애사에서 2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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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불앞이다. 보물이라고는 하지만 풍설에 깎인 절벽에 마애불은 희미한 그림자로 남아 있다. 보물 제159호다. 이 나라의 문화재를 보게 되면 국보 몇 호니 보물 몇 호니 해서 그 번호를 밝히고 있다. 그 번호가 빠르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돋보인다.
하지만 그 번호는 문화재의 가치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굳이 몇 호라고 그 번호를 밝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번호라는 것은 학교에서 아이들의 출석번호와 같이 관리자의 필요에 따라서 붙인 것이다. 우리가 아무개를 말함에 어느 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했다거나 누구에게서 지도를 받았다고는 말하지만 출석번호가 몇 번인가는 밝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화재도 그 번호를 밝힐 필요는 없다. 국보 1호가 이 나라 최고의 문화재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번호를 밝혀서는 안된다. 관리번호는 관리자만 알면 될 것을 문화재 안내판에는 반드시 국보 몇 호라고 밝히고 있다.
방어산 마애불은 폭이 2~3cm, 깊이가 1cm 정도로 음각된 불상이다. 언뜻 보면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의 선각마애불상을 연상하게 한다. 절벽은 높이 약 5m에 가장 넓은 아래쪽 폭은 7m 정도 된다. 절벽은 금이 가고 깨어져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마애불상 앞 넓은 마당은 과거 이곳에 대웅전이나 아니면 이곳에 절집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마애불상과 마애사 절은 제법 먼 거리에 있어 마애불 앞에서는 마애사의 목탁소리도 희미하다.
마애불상의 본존불은 약사여래이고 협시보살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라고 한다. 월광보살의 팔꿈치 부분에 조성인과 제작연대, 발원 등의 명문이 있다. 그 명문을 해석하면 이렇다. 신라 애장왕 2년(801)에 큰 바위 부처님을 조성하고 이 사실을 기록한다. '바라건대 00 해 주십사'. 마애사를 찾는 이들은 이 마멸되어 비게 된 칸에다 자기의 소원을 넣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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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각. 이 종소리 듣는자 미망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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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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