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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숙님
8월 11일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촛불집회 951회
역까지 걸어가는데 땅에서 열기가 확확 올라온다. 저녁 7시가 지나 이제 좀 시원할 만도 한데...
김천역 평화광장에는 오늘도 변함없이 함수연 님이 집회 참여자들에게 힘을 주고자 시원한 주스를 만들어왔다.
"학교에서 점심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듯이 오늘은 뭘 먹나 기대하게 된다."고 사회자 김종희 기획팀장이 우스개 소리로 사람들을 모았다.
"우리 김천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곧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고, 그것이 나아가 동북아 그리고 전 세계의 평화가 이어지는 이 거대한 물결 가운데 우리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 최현정 부위원장과 '사드는 미국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승리하는 길이 좀 더디고 힘들지만 김천을 지키는 SRF 투쟁만큼은 반드시 우리가 승리해서 우리 김천 시민들에게 그리고 사드 투쟁하시는 분들에게 힘이 되어야겠다'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요.
다들 그런 마음으로 이 7년, 8년을 이 자리에 밀고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도 평화를 지키는 굳건한 마음으로 사드 배치 반대 김천시민대책위 촛불집회 제 951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동욱 공동위원장의 공지.
"공지하겠습니다. '2024년 여름 건강하게 나기', 8월 14일(수요일) 저녁 7시 이화 만리에서 함께 저녁 먹도록 하겠습니다. 고기 구워 먹겠습니다.
늦으신 분은 7시 반까지는 오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함께 저녁 먹으면서 소주도 한잔 하면서 함께 친목을 다지는 그런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 다 참석하셔도 됩니다. 많이 오십시오."
백창욱 예수살기 목사.
"내일 모레가 광복절인데 우리로서는 참 쓸쓸한 광복절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분단 체제에서 어느 해 광복절이라고 기뻤겠습니까? 허리 잘린 조국에 광복절이라는 게 또 다른 비탄의 날이기도 한데... 하여튼 이번에 독립기념관장 김형석이라는 사람의 평소 발언이, 또 취임 때 말이 우리 염장을 지르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 가장 큰 문제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쓰레기들이 권력 자리에 너무 많이 있어요.
정말 쓰레기 하치장에 가야 될 인간들이 권력 자리에 있는 게 문제 같은데, 한 사람이 어느 시대에 태어나서 그 시대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시대가 내포하고 있는 불합리, 모순, 불의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사람 사는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서 가려고 하는 데 있어서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를 파악하는 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이 시대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자각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너무 중요해요.
예를 들면은 제가 60년대생인데 그러니까 제가 태어난 해를 따져보니까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10년도 안 됐어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은 지금도 그렇지만 반공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한 사회를 지배하던 그런 시대였잖아요.
반공 이념 그 한 가지 이념이 모든 사람의 사상과 삶을 그렇게 억제하는 거에 대해서 그렇게 큰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그냥 그러려니 으레 그냥 그렇게 살아왔지만, 지나고 나서 그 시대를 보면은 정말 숨 막히는 시대를 우리가 살았다 이렇게 문제의식을 갖고 있잖아요.
반공을 넘어서는 그런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우리가 가야 된다. 이런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예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복음서를 보면은 예수의 정체성을 알리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또 그만큼의 중요한 예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말이 '사람의 아들(인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이 다 어떻게 보면 고백적인 언어고 신앙적인 언어인데 그렇게 예수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복음서에서조차도 감히 말하지 않은 그러나 완전히 100% 사실인 중요한 예수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 예수의 100% 틀림없는 정체성이 뭐냐 하면 - 그는 식민지의 아들이었습니다. 빼도박도 못하는 식민지의 아들이었어요.
예수가 기원전 4년에 태어났어요. 기원전 4년이 어떤 해이냐면은 헤롯 대왕이 죽은 해입니다. 헤롯 대왕이 공포 정치를 했거든요. 비밀 경찰을 동원하고 자기의 군사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주 철저히 억눌렀거든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어떻게 되겠어요?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서 봉기가 일어났단 말입니다. 근데 특히 왕성하게 봉기가 일어난 곳이 갈릴리였어요.
그렇게 봉기가 일어나자 로마가 개입을 합니다. 로마의 2개 군단이 갈릴리의 세포리스트라는 지역을 철저히 궤멸시켜요. 그리고 그 잔당으로 의심받는 사람들 민중들 2천 명을 십자가 처형을 합니다.
우리가 인혁당 (인민혁명당) 사건이 났을 때 8명이 하루아침에 사형 집행 당했을 때 대구경북이 한순간에 이제 공포 분위기가 됐잖아요. 그 8명 돌아가신 분에게 한 다리 거쳐서 안 통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했어요.
대구라는 사회가 크지 않잖아요. 그래도 어쨌든 현대 사회에서도 그 8명이라는 사람에게 한 다리 걸쳐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였는데 그 고대 시대 1세기에 사람 인구도 많지 않은 시대에 2천 명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으니 이 2천명과 연관이 안 된 사람이 있었겠어요?
모든 갈릴리 민중들이 그 십자가 처형 당한 사람들과 이렇게 저렇게 다 연관관계가 있다는 건 너무도 분명하죠. 부모였거나 형제였거나 자식이었거나 그걸 넘어서 친구였거나 친척이었거나 이웃 사람이었거나 동네 사람이었거나 한마을 건너에 사는 누구였거나 하여튼 이걸 너무나 다 잘 아는 겁니다. 그 2천 명이 졸지에 하루아침에 십자가 처형을 당했을 때의 그 갈릴리 민중들의 정서를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했을 거예요. 그리고 로마가 일으키는 그 무력의 공포 분위기 이게 정말로 그들로 하여금 숨 막히게 했을 거예요.
바로 그렇게 2천 명이 하루아침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그 해에 예수가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예수는 제국의 식민지라는 이 숙명 속에서 제국과 한 판 대결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운명을 갖고 있는 셈이죠.
그런 속에서 이제 그가 끊임없이 그 제국으로부터의 그런 민중들의 해방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다음에 골몰하고 그 길로 나간 게 이제 그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고 그 내용이 이제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거죠.
근데 그런 복음서를 통해서라든지 또 그 시대를 알려주는 여러 역사서를 봤을 때, 이스라엘, 또는 유다, 또는 갈릴리의 그 모든 재앙은 로마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로마가 연관이 안 된 사건이 없었습니다. 일상적으로 세금을 걷는 것부터 해서 모든 인민들이 살아가는 그 비극의 그 원인에는 로마 군대가 원인이었어요.
당연히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이 철저하게 무력으로 통치하는 시대였기 때문에요.
예수는 그 속에서 민중의 해방을 끊임없이 추구를 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구세주로 높임을 받는 거 아니겠어요? 전혀 민중의 해방을 향한 그런 치열한 투쟁 몸부림 문제의식 이런 게 없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는 구세주가 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십자가 처형당한 사람이 예수만 아니거든요. 세프리스에서 2천 명이 죽었다고 했잖아요. 그것만이 아니라 로마는 반체제범을 죽이는 형틀로 십자가를 썼거든요.
그런 속에서 예수가 높음을 받는 거는 끊임없이 그 틈바구니에서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 치열하게 자기 몸을 던진 그것이 이제 십자가 처형으로 정점에 이루었기 때문에 구세주로 높이는 거죠.
이런 현실, 제국의 운명 속에서 태어나서 그 제국의 압제 아래 신음하는 이런 현실 속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거를 철저하게 의식하는 거, 이거는 굳이 구세주가 아니더라도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될 사고방식 아니겠어요?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그런 엄혹한 사회 속에도 그냥 개인의 행복만을 그냥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기회주의적으로 어느 편에 서야 내가 뭐 잘 먹고 잘 살까 그런 거를 끊임없이 노리면서 그렇게 개인주의적으로 처신한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늘 그런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속에서 우리는 뜻을 정해서 이렇게 미제를 상대로 사드 철거 투쟁을 하는 거잖아요.
통일시대 tv에 최근에 '강진욱 현대사 미스터리'라는 코너가 생긴다고 미리 광고하는 그런 내용을 봤어요. 이 사람이 전 연합통신 기자인데 은퇴를 했어요. 현역시절 접한 칼 858기 폭파 사건, 버마 아웅산 폭파 사고, 1968년 1.21 사태 김신조 사건도 이 나라 권력의 조작 미스터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거를 들으면서 섬짓하더라고요. 정말 권력은 못하는 일이 없다. 거의 정말 하나님급의 그런 권능을 가지고 있구나.
하나님 창조의 특징이 뭐냐 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뜻이 있는데 권력도 그렇게 없는 데서 있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그런 권능이 있구나 하는 거를 새삼 인식하게 됐는데요.
여러분 제가 좀 전에 1세기에 이스라엘의 모든 재앙은 로마로부터 시작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은 한국 현대사의 모든 비극의 시작에는 누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 대사가 본국에 보내는 정보 보고서에 박정희 전두환 쿠데타 있잖아요. 아시아에서 미국이 행한 정책 중에 가장 성공 사례라고 했어요.
우리에게 그 참혹한 비극을 안겨준 그런 엄청난 사건이 박정희 전두환 쿠데타잖아요. 근데 이게 미국 입장에서는 아시아에서 특히 한국에서 이루어진 미국이 가장 성공한 정책이라는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말할 정도니 CIA가 개입 안 한 일이 없을 거라는 건 너무나 당연히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에 가서야 그 진실을 액면 그대로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혹시 거기에 그동안 가공된 거를 또 진실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없을까 이렇게 헷갈리기까지 하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이런 그 세태 속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돌아가는 사안을 제대로 분별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일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될 그런 가치 판단을 하고 결정해는 것 자체도 정말로 굉장한 그런 요구인 거죠.
지금 올림픽 때문에 굉장히 감명을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무거운 그런 것도 보잖아요.
특히나 그 안세영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유가 뭐예요? 부상을 무릅쓰고 금메달을 딴 이유가 금메달을 따야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때문에 나는 기어코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그런 각오를 했다잖아요. 그래서 배드민턴 협회의 꼰대짓을 얘기하잖아요.
조직이 좀 잘 안 되고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꾸준히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단체가 필요하다, 그래서 무슨 단체를 결성하잖아요.
그런데 단체를 결성한 다음에는 무슨 환경단체도 그렇고 무슨 시민단체도 그렇고, 처음에는 그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 결성한 단체가 나중에는 그 단체를 유지하는 게 더 우선순위가 되더라고요.
그 단체가 결성한 목적인 운동의 활성화나 지속 가능성 이것은 가외로 밀리는 거를 제가 여러 번 봤어요. 그래서 운동의 본질이 소외되는 거예요. 체육회가 딱 그런 거 아닙니까?
선수들을 더 지원하고 관리를 잘해서 좋은 성적 거두기 위해서 협회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가 돼갖고 협회가 주가 돼갖고 거기 임원들이 이렇게 꼰대짓을 하면서... 전지훈련 가는데 임원이 왜 따라가요? 선수, 감독 코치만 하면 되는데 임원들이 따라가서 나랏돈을 낭비하고 그런다고 하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사회에서 부딪히게 되는, 카르텔이 만들어내는 모습, 그 사회가 갖고 있는 불합리한 모습들을 많이 겪고 있는데,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뭡니까?
우리가 미제의 종속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그냥 헤매고 있는 거잖아요.
뉴라이트, 친일 세력들이 이렇게 발호하는 거에 대해서 한편으로 안타까운 거는, 지금 사드 철거라든지 종미사대를 벗어나는 미제를 극복하는 게 우리한테 가장 큰 과제인데, 미제 극복은 고사하고 아직 그 친일 청산도 제대로 못해가지고 저렇게 일본놈보다 더한 일본인의 사고 방식으로 군림하는 것을 보니까 참 안타깝더라고요.
일제로부터 벗어난 게 수십 년인데 여전히 일제의 그런 논리에 사로잡혀가지고 헤매고 있으니 우리가 언제 일제를 넘어서서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있는 거죠.
그렇지만 여러분 이런 현실인 것을 우리가 원래 몰랐던 게 아니잖아요. 알고 있는데 막상 이 분야를 계속 가다 보니까 이런 것들이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 거죠.
저는 예수가 식민지의 모순, 식민지가 그 민중들에게 가하는 그 비통함 말할 수 없는 대재앙, 그런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걸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서 그걸 가지고 끝까지 천착해 가면서 그렇게 민중들에게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데, 저는 그 천국 복음이 뭘까 생각해 봤는데 민중을 해방시키는 얘기예요.
제국 말고 더 큰 나라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구약에서 말하는 그 이상사회를 다시금 환기시키면서 우리가 이 제국의 폭정에 눌리지 말 것을 얘기한 게 나는 천국 복음이라고 봅니다.
근본주의 교회가 얘기하는 이 세상 말고 저 세상 천국을 예수가 얘기했겠어요?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죠.
'이 세상 말고 또 다른 세상에서는 우리가 해피하게 살 것이다.' 이거는 가짜입니다. 이건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이 현세에서 제국의 폭정을 뚫고 정말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하자' 저는 그게 복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에 근거해서 병자들을고치게 된 거죠. 지극함은 통한다고 그 민중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병을 고치게 하는 능력이 생겨난 거죠.
꼭 예수를 믿어야만이 아니라 그 예수가 1세기에서 제국에 눌리는 상황에서 식민지 살이를 하고 있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 살았던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용이 된다고 믿습니다.
제국과 대결해서 굴복하지 않고 타파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함께 끝까지 가야 되지 않겠느냐. 최근에 아사히 노동자들이 완벽하게 승리한 그런 생생한 사례가 우리 앞에 나타났어요.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우리가 승리하는 것도 있구나. 여러분 그게 아사히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그치겠습니까?
더 역사상으로 따지면 민중의 승리로 나타나는 투쟁의 역사는 굉장히 많습니다. 단지 그것이 다시 엎어졌다 다시 일어나고 반복을 해갖고 우리가 헷갈려 하기도 하지만 이 미제가 영원하겠습니까? 아니죠. 예, 미제의 패권이 지금 하루가 다르게 무너진다는 걸 우리가 막 얘기하고 있잖아요.
지금의 이런 현실에 우리가 너무 포획당하지 말고 뚫고 나가기 위해서 예수가 했던 거 지금 우리 아사히 노동자들이 끝까지 밀고 나갔던 이런 단결 투쟁의 이런 소신을 우리가 유지하는 게 일단 중요합니다. 우리가 흩어지지 않는 게 중요해요.
일제 때 밀정이 완전히 우리 독립군들을 다 그냥 궤멸시키는 데 일등 공신이에요.
같은 조선인이 조선인을 그렇게 한 그런 역사가 우리에게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친일이 여전히 발호를 한다고 보는데 이런 역사를 우리가 어쨌든 간에 극복하고, 자주하는 독립하는, 이 미제와 일제의 이런 얽매인 사슬을 뚫고 나가는 우리의 세상을 기어코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의 김천대책위의 이런 투쟁이 그렇게 우리의 정신과 신조와 소신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텃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또 어떻게 우리가 발아가 돼서 우리 투쟁의 그런 선 기능으로 또 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유지하는 거 지키는 거 견디는 거, 단결하고 투쟁해서 우리를 억누르는 것을 깨고 나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역사를 그것을 우리가 끝까지 담보해서 치고 나갑시다."
옥수수인데도 알갱이가 톡톡 터지면서 맛있는 초당 옥수수를 지었던 우현덕 농부.
"아까 목사님 말씀 들으니까 예수님이 지금 시대에 계셨으면 아마 이 자리에 계셨을 것 같아요. 아마 이곳이 하늘나라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하면서 찬송가로 시작했다.
당부
최순애 씨가 12살 때 '오빠 생각' 시를 적어가지고 방정환 선생님이 하시던 잡지에 제출해가지고 상을 받았다. 그 뒤에 박태준 선생님이 곡을 붙여가지고 노래를 만들었다.
"그래서 오빠가 돌아왔을까요? 안 돌아왔을까요? 다음에 오면 제가 가르쳐 드리겠다고 했죠. 두 가지 설이 있더라고요. 일찍 돌아가셨다 하는 게 있고, 유튜브를 믿을 수가 없는데 유튜브에서 어떤 분이 '후손을 한 분 뵈웠었는데 오랫동안 살아계셨다'고 해요. 만났을 것 같아요. "
하고 같이 '오빠 생각'을 불렀다.
"최순애 님의 이 동시를 이원수 선생님이 보시고 너무 마음에 들어가지고 펜팔을 시작하신 거예요.
7년 동안 편지만 주고 받다가 만나기로 했대요. 최순애 선생님이 수원에 사셨는데 이원수 선생님은 진주인가에서 올라가다가 경찰에 잡혔대요. 학생 운동 이런 걸 하셨나 봐요. 그래서 약속 장소에 못 나간 거예요.
1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나와가지고 다시 찾아가 가지고 결혼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이 불렀다. 고향의 봄.
너무 덥다고, 위에서(하나님 아니고) 비정상이니까 날씨까지 비정상인지 모르겠다고, '조율'을 불렀다.
구자숙 님 공지.
"김천은 근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음에도 그 역사가 묻혀 있던 그런 곳이어서 몹시 안타깝습니다.
이곳은 옛날부터 역(말이 쉬어가는 곳)을 중심으로 발달한 역촌이었기 때문에 또 시장이 발달해서 김천시장이 전국 5대 시장 중에 하나였거든요.
무슨 말이냐 하면 모든 소문들이 항상 들어왔다가 나가고 하는 그러한 곳이었어요. 그런 만큼 사람들이 새로운 것들을 빨리 접하고 그 새로운 것에 호응해서 일어났던 곳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여기서 독립운동도 상당히 활발하게 일어났죠. 아무도 지금은 기억을 잘 못하고 있는데 1930년대 후반 민족주의 계열이 모두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전향했을 때, 남아있던 좌익 세력들이 여전히 독립운동을 했는데 김천그룹 재건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했는데요. 잡혀간 사람이 300명이었습니다.
아까 말씀하시기로 대구 좁은 데서 잡혀 가면 그거에 연관된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 했는데 김천에서 300명이 잡혀갔다면 - 옛날에는 또 대가족들이었잖아요.- 연관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한 곳이었음에도 그 역사는 묻혀버리고 그 역사가 가장 묻힌 이유는 6.25 전쟁 때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철길 따라 가면서 피난민들이 폭격당하고, 또 관공서가 완전히 폭격을 당했습니다. 제가 김천 독립운동가 임종업이 황금동 7번지 사람이어서 그곳이 어디인가 김천시청에 지적도를 좀 보여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다 6.25 전쟁 때 불타버린 곳이라서 새로 정비 작업을 했기 때문에 이 지적도하고 예전에 황금동하고는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정도로 엄청나게 피해를 입었는데, 그 이전 해방 직후에 여기에 미군들이 주둔을 해가지고 우익을 키우고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탄압을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임종업 같은 경우에 보도연맹 간사장을 강제로 시켜가지고 예비검속을 해서 감옥에 가두었어요. 김천에는 소년형무소가 있어요. 6.25 전쟁 중에 (트럭에 태워) 저 고개 넘어 가다가 이 많은 죄수들을 끌고 가기가 힘이 들었으니까 골짝마다 죽였겠죠.
가장 슬펐던 이야기는 무덤을 파게 했다고 해요.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죠. 거기에다가 총탄을 갈겨가지고 한 사람 엎어지고 그 위에 사람들이 엎어져서 매장을 당했는데 그 무덤을 헤치고 억지로 도망온 사람이(개령 사람인가) 일주일 동안 거기서 걸어와서 자기 동네에 와서 얼마 후에 숨을 거두었는데 어찌나 흙을 파내면서 힘이 들었던지 손톱 밑이 새카맣게 썩어 있었다라고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김천에서는 대방재에서 한 1200명, 돌고개에서 한 600명 죽었다고 하고요. 그리고 철길 따라 (피난가다) 미군 폭격으로 죽은 사람들, 해서 김천에 대략 죽은 사람을 2천 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돌고개와 대방재, 직지사 부근 대항면 골짜기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유족들을 찾아도 유족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아마 형무소에 있었던 사람들이니까 김천 사람이 아닐 경우도 있었을 것 같다고도 해요.
어쨌든 과거사 정리를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민간인을)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고 경찰과 헌병들이 그냥 총살시킨 데 대해서 잘못된 것이다고 진실 규명을 해가지고 1차에서 진실 규명이 된 사람들이 있고 최근에 2차로 진실 규명이 되었는데요.
저희들이 지난 7월 13일날 대방재와 돌고개에서 추모제를 지냈는데 최근에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유해 발굴을 하면 개토제라고 해서 제사를 지냅니다. 그게 8월 14일, 아까 우리 저녁 7시에 먹자 했는데 그날 오전 10시에는 개토제를 합니다.
그래서 유족들도 지금 널리 알리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는데 유족뿐만 아니라 우리 김천 시민들도 많이 참여해서 이들의 안타까웠던 죽음들을 위로하고 앞으로의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떻게 이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같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