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필집 「점(點) 하나 파란만장」을 읽는 내내 마음이 측은했다. 도중에 책을 덮을 수가 없을 만큼 사연이나 상황이 목숨을 위협한다는 불안감이 넘쳐났다. 내 일도 아닌데 지나친 긴장감인가? 부모가 가난을 물려주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는 영특하다. 암기력과 집중력이 대단하여 주산 4단이고, 예능에도 소질이 있어서 추사체의 대가이고, 기타도 칠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 가난은 극복해야 할 소산이므로 생명에 이로운 일은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보고야 만다는 결연한 의지 또한 타의 추종을 약간 허용할 정도다.
작가의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3살 때 등에 업고 뽕나무밭이 무성하던 잠실벌 땅콩밭에 자주 김을 매러 다녔는데 딱히 자신을 돌보아줄 방법이 없어 밭 가운데 있는 오동나무에 메어놓고 마른 오징어다리를 손에 쥐어주면 불어 터질 때까지 빨아먹으며 잘 놀더라고 했다. 그랬던 세월에 세상사가 빠르게 요동치면서 뽕나무밭이 변하여 1972년도에 준공된 한강의 6번째 다리인 1,280m의 ‘잠실대교’ 옆으로 지하철이 건너다닐 ‘잠실철교’가 건설되고, 다리 남단에는 서쪽에 이미 지어진 주공 1단지와 3단지 저층 아파트에 이어 중층 5단지 아파트가 자리해 위용을 떨칠 때 피눈물로 모아둔 돈으로 저택을 장만한 쾌거를 이룬다.
이처럼 그의 살아온 삶을 동천을 곁에서 지켜볼수록 흐뭇하다. 그의 일취월장을 공감해서이다. 난세가 아니므로 수신제가를 실천하는 평범한 인물처럼 보인다. 가난으로 비롯된 환경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올바르게 처신하여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겸손하고 가족의 화목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인간미가 넘쳐난다.
<작가소개>
동천(東泉) 엄기철(嚴基喆)
▣ 1955년 충청북도 충주(忠州)시 동량면 지동리 금잠마을 출신
▣ 서예가(1988년 입문)
• 개인전 4회(인사동 2회, 吉祥寺초대전 2회)
2013년 인사동 서울미술관 기획초대전
2013년 길상사 초대 ‘법정스님 입적 3주기 추모전’
2019년 인사동 한국미술관 ‘金剛經 특별전’
2020년 길상사 초대 ‘법정스님 입적 10주기 추모전’
• 추사김정희선생추모 전국휘호대회 장원/초대작가/심사 역임
• 한국추사서예대전 초대작가/심사/운영위원 역임
• 全日展 국제예술대상
• 아세아미술초대전 초대작가/운영위원
• (社)한국추사체연구회 顧問 (現)
• 작품소장 : 안암동 ‘보타사’ 觀音殿 ‘현판 및 주련’ 외 多數
▣ 수필가(2020년 國寶文學 ‘桑田碧海’로 등단)
• 첫 수필집 ‘점(點) 하나 파란만장’(2023년)
• 자서전 형식의 ‘人生은 더불어 숲’(현재 출간 진행 중)
▣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2023년)
▣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최고위과정 수료(2008년)
▣ 韓進重工業Group/건설부문 27년 근무 후 퇴직(2008년)
▣ 현재 Gallery 겸 서예작업실 ‘秋藝廊(추예랑)’ 운영 - 松坡區
글쓴이는 無에서 有를 창조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회자(膾炙)되는 서예가이자 수필가로 알려져 있다. 1982년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두었고, 지금은 두 사위와 네 명의 외손자, 외손녀까지 더해 총 10명의 직계가족(다람쥐 가족)을 형성하고 있다. ‘다람쥐 가족’이라는 애칭은 작가가 운영하는 가족밴드(Band)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추사체사랑 동천 엄기철’ 블로그(blog)를 운영하고 있다.
⁕ 네이버(Naver) 또는 다음(Daum)에서 ‘동천 엄기철’, 또는 ‘추사체사랑 동천 엄기철’로 검색
<이 책 본문 中에서>
“우리 식구들은 최악의 가난한 상황에 시달렸다. 하지만 살아있는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될 지경이니 급기야 어머니는 떡 행상을 시작하셨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머리에 떡을 이고 마을을 누비며 장사를 하시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돌아오시면 한 개 남긴 인절미를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는 떡 중에서도 인절미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우리들은 먼발치에서 떡을 잡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때부터 아버지의 병환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내 눈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은 영락없는 할머니였다. 비녀를 꼽은 쪽진 머리와 듬성듬성 빠진 앞니, 거친 농사일에 무디어진 손마디는 고달픈 삶의 무게로 메마른 가시나무처럼 보였다. 그런 어머니가 창피해서, 혹시라도 운동회 때 학교라도 찾아오시거나 소풍길에 함께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철부지였다. 그 기억을 떠올리니 한없이 부끄럽고 송구스럽다. 어머니는 가끔 식구들과의 겸상이 아닌 부엌 아궁이 앞에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바가지에 물을 붓고 보리밥을 말아 드시곤 했다. 쉰밥이 아까워 물에 빨아 드셨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식구들이 눈치챌까봐 노심초사 혼자 드신 것이다.”
“이제 나도 노인 반열에 올랐으니 새로운 공간의 세계가 도래한다는 예측시대를 얼마나 누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문명의 이기를 통해 현존하는 가족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어 이 보람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기대에 벅찬 마음이다. 내가 써내려가는 사진일기는 먼 훗날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것이다. 나의 이 소중한 기록에 담긴 무조건적인 할아버지의 사랑이 손자, 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온전히 느껴진다면 이보다 더 값진 보람은 없을 것이다.”
“드디어 난공불락으로 여겨왔던 ‘금강경’ 작업에 돌입하였다. 8폭 병풍으로 시작을 하는데 어느 누구의 작품도 인용하지 않고 내 스스로 구도를 잡고는 글씨도 먹물이 아닌 금분(金粉)으로 도전했다. 5,300여 자를 8폭으로 나누고 32개의 각 단원마다 불(佛)자를 넣어 나름의 구분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하는데 인조 금가루를 다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붓에 응고가 되는 관계로 조절이 쉽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작업에 임해 한 달여 만에 작업을 끝내고 나니 성취감으로 인한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 기분이었다.”
<서평>
「점(點) 하나 파란만장」은 동천 엄기철의 인간미를 견지한 인품의 고백이다. 한편으로는 고난만 무성하게 자라서 숲을 이루는 과정에 무너진 성터에서 그믐달을 바라보는 심경이다. 이 심경은 작가의 삶이 얼마나 처연했는지를 보여주는 진술을 들여다보면서 필자는 뜻하지 않게 가슴이 아렸다. 문득, 떠오른 주제가 가난, 극복, 그리고 생존이다. 이 키워드를 통하여 가난에는 눈물을 삼켰고, 극복에서는 얼굴을 찡그리며 버티었고, 생존에 이르러서 비로소 웃음을 머금었다. (中略)
동천의 예술세계를 눈여겨보면서 구한 결론은 인문학의 실천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어떤 작품에서 눈물을 참기도 했는데 상류층이 되도록 노력한 그의 의지실천을 칭찬하련다. (中略)
그러니까 가난은 문학이고 극복은 역사이며 생존은 철학이 되었다. 그의 수필은 그의 역사를 들여다본 거고, 지속적인 서예 탐구나 글짓기 작업은 이제 생활이 여유롭다는 증명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남기려는 성취욕, 그것은 열화를 견디느라고 먹물을 토해내는 흙 가마에서 구워지는 도자기의 빛이다. (中略)
- 故 고훈식 시인, 조엽문학회 회장
(엄기철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332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