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과 고향/박재삼
저집
말이죠
물론 울타린 없죠
키를 넘는 옥수수 그게 바로 울타리죠
그 새로 볕에 노는 아이들이 보이죠
자세히 자세히 보세요
가끔 아이들의 때묻은 손발들이 보이죠
---여름밤 나뭇잎 새로 언젠가는 별빛에서 눈물 얻고 오늘은 저 옥수수 새로 손발 보는 가난에 눈물 얻다.
벗이여
불꽃밭에 든 우리집과 고향을
나는 그렇게 보고 산다.
===[박재삼 詩 100選, 박재삼문학관운영위원회]===
1933년 동경에서 출생하여 4살 때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삼천포로 이사하여 성장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지게 노동, 어머니는 생선 행상으로 어렵게 생활하였다는 사실은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당시 3천 원이 없어 중학교에 갈 수 없어 신문 배달을 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 가혹하고 무거운 가난을 겪으셨습니다.
"그 시대에는 다 그렇게 살았지"라고 쉽게 말씀하시는 사람도 계시지만,
가난은 가난은 가난은.......
결코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돌이 떡으로 보이는 배고픔을 참고 견디어 보지 않고는 진정한 가난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옥수수가 울타리를 대신하는 초가집.
수염을 휘날리며 키 큰 옥수수 사이로
여름 땡볕에 검게 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시는 시인.
어린 나이에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다리다
반짝반짝거리며 졸고 있는 밤하늘 별을 보고
배고픔에 눈물 훔치다 스르르 잠이 들던 생각을 하시나요?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조선시대의 왕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여름에 얼음을 먹을 수 있고
겨울에 딸기며 수박을 먹을 수 있고
한양에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고
최신식 해우소가 있으며
휴대전화가 제공하는 음악과 카메라, 동영상, 화상통화...
대형화면의 영화 구경을 할 수 있고.
차량, 기차, 비행기를 타고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 여행을 할 수 있고 등등.
왕보다 더 편한 생활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출근길에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지금은 서쪽에는 파아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동쪽에는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오늘도 시 한 수를 감상하며
마음은 고향 하늘을 마음껏 달려갑니다.
뜨겁고, 쓰고, 검은 보약(커피) 한 사발
들이키고 힘을 얻어 하루를 시작합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