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는 직접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는 않는 다수 대중을 의미하는 말로, 원래는 죽은 옛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인데, 이 말은 1969년 11월 3일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한 연설로 유명해졌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목소리를 가진 소수(Vocal Minority)"와 달리 다수는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 다만 이 말을 처음 쓴 것은 닉슨이 아니며 1967년 공화당 지지 성향의 노조 간부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이후 닉슨의 연설 작성자가 썼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면 동의하거나 동조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설령 동의하지 않아도 자신의 뜻이 관철될 거라 믿지 못해서 침묵을 지킬 수도 있고, 어떤 보이지 않는 이익을 위해서 침묵을 지키기도 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일 것 같습니다.
개혁이나 혁신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고 해서 모두가 거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침묵을 지키는 자가 많을수록 리더는 자기 욕심대로 일을 끌고 가게 되니 침묵이 능사는 아닙니다.
<민주당의 병증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은 지 오래됐다.
며칠에 한 번씩 재판을 받으러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당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시작에 불과하다. 불법적인 금품 수수, 선거법 위반 등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현역의원만 수십 명이다.
직전 당대표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와 정당 제도를 뿌리째 훼손하는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당당히 주장한다. 지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인사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수박이라고 부르며 박해하는 일, 영부인을 "설치는 암컷", 현직 법무부 장관을 "어린놈"이라고 부르면서 막말을 하는 일은 일상사가 됐다.
당 지도부는 스스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민주당의 말 없는 다수 의원들은 이런 상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당내 사정에 밝은 분에게 '침묵하는 다수'의 입장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차마 웃지도 못할 농담이 답변으로 돌아왔다. "침묵하는 다수는 계속 침묵할 작정이랍니다."
언론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의 문제를 지적할 때 흔히 이재명 대표의 책임을 거론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공격도 이 대표에게 집중된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민주당이 안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은 이재명 대표 개인 때문인 것처럼 여겨지는 착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대표만 바꾸면 일시에 상황이 반전될 듯한 느낌이 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대표 개인의 책임이나 잘못으로 민주당 전체가 어려운 지경에 빠져있다면 대표를 바꾸면 된다. 소위 '반명'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대한 해답이 된다. 그러나 민주당의 문제는 이재명 대표가 취임하기 훨씬 전인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문제는 생긴다. 그것을 직시하고 고치자고 말하는 용기 있는 구성원들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조직이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자정작용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물론 몇몇 의원들이 지도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는 있지만, 반명 수준을 넘어서 고질적인 병의 근원을 뿌리 뽑자는 제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표가 반대파를 포용하고 공정하게 공천권을 행사하면 만사 걱정이 없다는 듯 들린다. 답답한 일이다.
눈을 돌려서 여당의 모습을 보자. 민주당보다 결코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야말로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당대표가 임명한 혁신위원회는 대통령의 독선과 수직적인 당정관계에 대해서는 입도 못 연 채 애꿎은 다선의원들을 상대로 불출마를 종용하다가 활동을 마쳤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중진들이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수도권으로 옮겨 간다고 문제가 해결 된다고 여긴다면 국민들의 불만을 전혀 읽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강서구청장 후보 선정 과정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공직을 상실한 사람을 바로 사면해서 보궐선거에 내보내는 것도 기가 막힌 일이지만, 심지어 그 후보가 원래부터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누가 보더라도 공직윤리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처사였다.
그러나 여당에서는 한 사람도 나서서 반대하지 못했다. 오히려 중진들은 앞 다투어 선거 지원에 나섰다. 후보 결정을 누가 했든 어떻게 이런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나.
다들 우리 정치가 문제라고 한다. '반윤/반명'이라는 용어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러나 양 진영의 대표에게 반기를 드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용기 있게 행동에 나설 때만 정치를 바꿀 수 있다. 일어서야 할 때 침묵하는 사람은 결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한국일보. 금태섭 전 국회의원·변호사
출처 : 한국일보. 오피니언 한국정치 뜯어보기, 한국 정치를 망친 '침묵하는 다수’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것이 꼭 맞는 얘기는 아닙니다. 범죄수사를 보면 죽은 사람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비록 죽어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죽으면서도 뭔가 증거를 남기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몰아 부치는 것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이익과 부합되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요즘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가지고 야당 사람들이 아전인수(我田引水)로 떠들고 있지만 그때 침묵을 지킨 다수가 다 잘못되었다고 말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지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이말로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어떤 일에도 발 벗고 나서지 않는 것인데 그게 다 자기들 이익 때문이고, 이 글의 필자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죽은 사람도 말을 합니다. 다만 그 말을 듣지 않으려는 자들이 문제일 뿐입니다.
2회 영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