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17 - 헤라클리온에서 버스를 타고는 크레타섬의 서쪽인 레팀논에 가다!
어제 크레타섬의 동쪽을 보았다면 여행 7일째인 오늘 2024년 4월 29일 은 크레타섬의 서쪽
을 보기로 하고는..... 1821 거리를 걸어 아지오스 미나스 교회 Basilica of Agios
Markos 를 보고 나와 남쪽에 니코스 카잔차키스 Tomb of Kazantzakis 묘지를 구경합니다.
언덕 위의 묘지에서 “희랍인 조르바” 를 회상하고 성벽을 걷다가 내려와 우리 여행가이드북에 헤라클리온
시외버스 터미널 Terminal B (Hania Gate) 를 찾아가니 여긴 없어진지라.... 버스를 타고 하니아문을
들어가서 이리클리온 시가지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바퀴 돌아서 동부에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서는 9유로 하는 크레타섬이 서부 레팀논행 버스표를 끊는데.... 어제 크레타섬
동부에 말리아는 4.2 유로 했으니, 그 보다 배나 먼지라 11시 30분 버스는 13시가 넘어야 도착합니다.
이윽고 우리가 탄 버스는 부두 Port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베네치아 항구와 베네치아 요새를 지나는
데.... 여행계획서를 짜면서 크레타섬 서부에 대 도시 하니아를 갈까 하고 오랫동안 엄청 고민했습니다.
크레타섬을 찾는 사람들은 역사 유적지를 보려면 헤라클레이온으로 가야 하고 아님 도시 그
자체의 옛스러움과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하니아로 가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하니아는 여기 헤라클리온에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곳인데 그럼 대기시간을 합쳐 7~8시간을 차를
타는데 바쳐야 하는데.... 몸도 피곤하고 또 시간도 넉넉지 않으니 오랜 고민 끝에 하니아를
포기하고는 그 중간에 베네치아가 지은 3대 성채 중에 하나인 레팀논까지만 다녀오기로 한 것입니다?
버스 오른쪽 좌석에 앉아 차창으로 해변을 보면서 가는데.... 헤라클리온을 지나 얼마
달리지 않아 멋진 해변이 보이니 여긴 아무다라 해변(Ammoudara Beach)
인 것 같은데..... 일광욕, 스노클링, 해변 산책 등을 즐기기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달리니 해변은 아기아 펠라기아(Agia Pelagia) 인 것 같은데 크레타섬의 해안선은 저마다 고유한
특색을 갖춘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합니다만 그중에 여기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변은 어촌
분위기를 지녔음에도 수영과 스노클링에 이상적인 수정 처럼 맑은 바닷물이 있는 안전한 만이라고 합니다.
인근에 위치한 모노나프티스 해변(Mononaftis Beach) 은 보트를 타거나 좋은 경치를 보며 걷는 하이킹
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숨겨진 보석이며 방문객에게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고 합니다.
드디어 레팀논(레티몬) Rethymnon 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 나오니 바로
바닷가 인데..... 여긴 파도가 심한지라 석축을 튼튼하게 쌓았습니다.
여기 레팀논에서 여기서 서쪽으로 1시간 반 가량을 더 가면 헤라클리온에 이어
크레타섬의 제2도시이자 고풍스럼고 아름답기로는 첫째라는 하니아
Chania 를 못고 되돌아 가는 것이 서운한데 언제 다시 찾아올 기회가 있을라나?
크레타섬에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은데..... 아래 15곳
가운데 이번 3박 4일 크레타 여행에서 본 것은 크노소스궁전과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과 여기 레팀논 올드타운으로 불과 3곳이라 좀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만일 다음에 다시 크레타섬을 찾을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하니아 Chania 에 내려
숙박하면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30분을 달려 키사모사 Kissamos 에 도착해 배를 타고 그람부사
Gtamvousa 섬에 가서 크레타섬의 경이로운 자연이라는 발로스 라군 Balos Lagoon 을 보려고 합니다.
크노소스 궁전 | 크노소스 궁전을 탐험하는 고대의 화려함
사마리아 협곡 | 사마리아 협곡을 횡단하는 하이킹 모험
엘라포니시 해변 | 핑크 샌드와 청록색 바다
레팀논 올드타운 | 시간을 거닐다
발로스 라군 | 크레타섬의 경이로운 자연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 | 역사 발굴
스피날롱가 섬 | 역사적인 영토
프레벨리 팜 비치 | 열대 낙원 프레벨리 팜 비치
하니아 올드타운 | 베네치아의 매력과 해변의 즐거움
아르카디 수도원 | 영적 휴양지
파이스토스 미노스 궁전 | 미노아의 경이로움 파이스토스 궁전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 레이크사이드 헤이븐
프랑고카스텔로 성 | 전설과 전망 Frangokastello 성
마탈라 동굴 | 암석으로 만들어진 불가사의 마탈라 동굴
바이 해변과 야자수 숲 | Paradise Found Vai 해변과 팜 포레스트
해변을 따라 걸으니 오른쪽에 거대한 성채가 나타나는데.... 중세 시대에 여기 크레타섬은 베네치아
가 지배하였으니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로 부터 섬을 지키기 위해
헤라크리온과 하니아에 그 중간인 여기 레팀논에 쌓은 성채 Venetian Fortezza Castle 라고 합니다.
베네치아는 제 4차 십자군에 선박과 해군을 제공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이후 전리품으로
얻은 크레타섬을 방어하기 위해 헤라클레이온과 하니아 그리고 여기 레팀논에
견고한 성채를 쌓았는데 이후 1453년에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합니다.
1645년 오스만 제국은 베네치아 공화국령 크레타섬을 침공하여 25년간이나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 전쟁으로
오스만은 크레타섬을 정복해 1898년까지 2백여년간 통치을 하게되니 지중해 동부는 이슬람의 바다가 됩니다.
베스트팔렌 조약과 피레네 조약을 통해 유럽에 평화가 회복되자 10년 넘게 이교도와 싸우는 칸디아를 돕고자
프랑스와 스페인을 중심으로 귀족 자제들이 의용군이 되어 도우러 왔지만 그들의 도움은 제한적이었고,
대부분은 불편한 숙식 환경과 지지부진한 공성전에 지쳐서 1년도 못되어 돌아가는 자가 부지기수 였습니다.
1667년, 20년을 끌어온 공성전을 끝내기 위해 5월 ~ 11월간 오스만 군대는 32차례에 걸친
총공격을 해왔으니 이에 수비군 측은 4천여명, 공격 측은 2만명이 희생되었는데
하지만 결판이 나지 않았고, 겨울 휴식을 지나 1668년 봄이 되자 다시 격전이 벌어집니다.
프랑스에서 온 5백 기사들은 12월 16일에 출진했다가 절반을 잃으며 격퇴되었고 그해 한 해동안 베네치아는
440만 두카토에 달하는 거금을 투입하고 나서야 칸디아를 지켜낼 수 있었으니.... “지금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도 볼수 없는 요새를, 이슬람권의 그 어떤 술탄도 가지지 못할 소중한 진주를 내줄 찰나에 있다.”
1669년 가을, 프랑스등에서 온 의용군이 본국으로 떠나자 25년간 칸디아 수비를 맡아온
프란체스코 모로시니는 회의를 통해 항복을 결정하였으니... 1669년 9월 6일,
베네치아 공화국은 도시를 포기하고는 오스만 제국의 크레타 종주권을 인정하였습니다.
다만 수다, 스피나롱가, 그람부사등 크레타 주변에 떠있는 3개 요새화된 섬은 연공금 지불
을 대가로 여전히 베네치아 수중에 남았으며 달마티아에서 베네치아군이 점령한
지역은 베네치아령으로 확정되었고 배상금은 없는 것으로 하였으며 그리고 칸디아
수비군은 가져갈수 있는 모든 것을 안전히 챙겨 떠날 수 있다는 술탄의 명령이 내려집니다.
오스만 측은 크레타의 민중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칸디아 포위 때에 이미 크레타의 대주교
를 임명하고 토지나 종교, 언어 등 개개인의 삶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으니 많은
원주민들이 무슬림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리스어를 사용하였고 동시에 그리스
정교 역시 존중받아 18세기 기준으로 크레타는 그리스 정교가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다만 대놓고 간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 보니
크레타의 문화는 점차 튀르크화 되었으며, 그로 인해 오늘날 크레타 문화는
그리스 본토 보다는 터키 서부 및 키프로스와 더 비슷해지게 되었으니 굳이 그리스
내에서 크레타와 문화가 비슷한 곳을 찾자면 서트라키아와 도데카니사 제도가 있습니다.
두 지역도 크레타와 더불어 그리스 본토에 비해 터키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곳인데 이후 크레타는 1898년
오스만의 자치국인 크레타 자치국이 들어설 때까지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으며 1908년 청년 튀르크당의
혁명을 틈타 그리스가 크레타를 합병하고 1913년 발칸 전쟁의 결과 크레타는 그리스의 영토로 확정됩니다.
칸디아 공방전때 서유럽 의용군들이 온 것은 2차 빈 포위 때의 신성동맹과 함께 마지막 십자군으로도 평가
받으며 1688년에 해군 원수로 베네치아 도제가 된 모로시니는 대튀르크 전쟁에서 신성동맹군의 한 축이
되어 오스만 제국에 일격을 날렸고 베네치아는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달마티아와 모레아 반도를 획득합니다.
그러나 18세기 초에 베네치아는 오스만에게 크레타의 마지막 베네치아령 요새인 수다와 그람부사,
스피나롱가, 모레아를 포함해 에게해의 마지막 거점이던 미코노스 섬과 티노스까지 빼앗기니
이후 여세를 몰아 그리스 서북부에 코르푸(케르키라)까지 공격해 온 오스만 투르크군은
막을수 있었고, 이것이 3세기 동안 지중해를 진동시키며 이어져 온 양국간의 마지막 충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