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篆書의 권위자로 특히 瓦篆에 독보적인 근세 서예가 정향 조병호(靜香 趙柄鎬) 선생의 경신(1980)年 묵서 현액으로 배접이 되어있으며 보존 상태 양호하다.
<크기> 117.5×33.7cm
<참고> 조병호(趙柄鎬), 1914-2005. 9. 3
호는 靜香. 충남 청양 출생, 又荷 閔衡植, 葦滄 吳世昌 선생께 사사를 받았으며 秋史 金正喜, 小棠 金奭準, 白堂 玄采의 정통을 이은 분으로 일컬어진다., 한학자 신영복 교수의 스승이다. 일찍이 1933년에 詩書畵社에 입문하고 1939년 조선서도전에 입선하자 일본인들이 벌인 전시회에 참여하였다는 지인들의 비판을 받고 이후 서예계와 인연을 멀리하였다. 중국 고궁박물관과 역사박물관에 글씨가 소장되어 있다. 篆書의 권위자로 특히 瓦篆에는 독보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력사항은 1933년 詩書畵社 입문, 1939년 1회 조선서도전, 1940년 흥아전, 1956년 단제묘 창건, 1966년 기미의사 권흥규선생 순열비문, 1981년 朝鮮始祖神聖檀帝廟庭碑, 1981년 미도파전, 1981년 중국 초청전, 1985년 동춘당 손주며느리의 烈婦德水李氏旌閭追記碑, 1990년 한 . 일 교류전, 1992년 중국 서법회 초청 및 전시회, 1993년 대전 시민 문화상, 중 . 일 . 만전, 충남 서예가 협회 고문 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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