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눅 17: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눅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눅 17: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눅 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눅 17: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눅 17: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성경 원리의 큰 틀을 이해하고 나면 뭐든지 '결론으로부터 거꾸로 생각을 하면 되는 것'이라는 논리가 서게 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은 이생이 다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천국 갈 것인가를 가장 먼저 해결하고 나서 이생에서 뭘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했다면 이생에서 아무리 억만장자로 살았든 결국 영원히 고통받는 곳으로 가니까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심판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라고 부르며(고후 5:10)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에 따라 살았느냐'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것은 상을 주려는 심판('판결'이라는 뜻으로)이지 벌을 주려는 심판은 아닙니다만 (벌은 없지만 받을 수도 있었던 상을 못 받게 되는 손실loss은 있습니다.) 그래도 매우 엄중한 심판의 자리입니다. 반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주님을 위해 한 것에는 엄청난 상급을 받게 됩니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줬는데 그 숙제는 안하고 다른 숙제만 많이 해서 간들, 그 아이는 숙제를 안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심을 먼저 해결하고 뭘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합니다. 이렇게 거꾸로 생각하면 인생처럼 단순하고 간단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불신자는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여 거듭나는 것이 급선무이고, 거듭난 우리는 부르심을 발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제가 여기서 부르심이라고 하는 것은 광범위합니다. 정체성대로 살면서 우리의 권세를 누리는 것부터 사명뿐 아니라 성도로서의 일반적 부르심,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각자의 신분 등, 포함) 부르심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만 하면 됩니다. 인생의 소소한 것들(돈, 건강, 인간관계)은 성경 말씀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고요. 정말 심플하죠? 물론 단순하다는 말이지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허허...
이것은 제가 ‘미래로부터 사는 법(관련 영상 여기)’이라고 해서 한때 목청 높여 주장했던 논리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너무 어려운 일인데 왜 그렇게 목청 높여 주장했는지... 물론 세상의 사고방식과 너무 달라서 제가 목청을 높였겠죠.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요즘 세상 조직심리학에서 이 논리와 동일한 것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코시국 이후로는 더욱 그렇고요. 어떤 책은 정말, '내가 썼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드는 예까지 동일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자주, 강하게 주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났으니까 그냥 살다가 초등학교 가고,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니까 그냥 갑니다. 그리고 받아주는 곳으로 대학을 갑니다. 받아주는 곳이 없으면 일을 합니다. 세상이 규정한 좋은 직업에는 많이 몰리고 소위 3D 업종에는 사람이 없어서 난립니다. 남들이 하니까 결혼을 하고, 돈이 없지만 갖고 싶은 게 있으니까 카드로 긁고, 그렇게 빚이 생겼으니 빚을 갚다 늙어서 병들어 죽습니다. 그 사람이 성도면 천국 갑니다. 아니면 지옥 가고요. 우리는 과연 이렇게 하루하루 내게 닥치는 문제들을 간신히 해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내일 닥칠 일은 내일 또 해결하면서?
만약 그것이 옳은 방법이라면 오늘 본문에서처럼 예수님이 굳이 미래의 일들을 알려주셔야 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예수님은 정말로 미래로부터 사신 분이십니다! 항상 미래를 얘기하셨고 “내가 죽어도 3일 만에 부활하니 안심해라”, 등등, 항상 장래 일을 일러주셨습니다. 왜? 우리도 그렇게 미래로부터 살라고.
“내가 다시 올 때는 갑자기 올 테니까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좀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전쟁과 비교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둘이 좀 비슷합니다. 전쟁이 나면 모두가 알 수밖에 없듯이 예수님께서 오실 때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전쟁이 언제 날지 모르듯 예수님도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휴전 중인 나라에 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전시 상황에 대한 준비를 이렇게 안 하는 국민도 없습니다. 그런 얘길 하면 ‘에이, 전쟁 쉽게 안 납니다!’하고 오히려 말한 사람을 면박줍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합시다!'라고 하면 더 이상한 사람 취급받습니다. 휴전 중인 나라에서는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만발의 준비를 하는 상태, 그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 상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라도 전쟁이 날 수 있다.” & “언제라도 예수님이 오실 수 있다.”
물론 전쟁은 영원히 안 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시 올 때, 누구나 볼 수 있게 올 것이지만 나는 갑자기 온다. 그러니 항상 준비된 상태로 있어라. 내가 올 것을 염두에 두고 그 미래로부터 살아라.”
할렐루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다만, 우리로 하여금 깨어 준비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우릴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