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훔친 도둑/김미희
수박, 너 시치미 뗄래?
빨강 훔친 거 맞잖아
난 절대 훔치지 않았다고요
네 초록 줄무늬 통 안에
빨강 숨긴 거 다 알거든
내가 훔친 건 빨강이 아니에요
빨강이 될 걸
미리 알았을 뿐이라고요
절대 빨강을 훔치지 않았다고요
-<<동시마중>>2023년 5·6월호
환상 도둑/김륭
짧은 동시 한 편을 읽는 데도 마치 동화 속을 걷는 듯 묘묘한 기분이 드는 작품이 있다. 「미래를 훔친 도둑」이란 제목 탓인지도 모른다. 독자들은 시인이
빨강으로부터 가져온 상상의 공간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수박, 너 시치미 뗄래? /빨강 훔친 거 맞잖아"
시인이 자신의 느낌으로부터 확장된 상상 속 공간은 빨강으로부터 시작되고 이 빨강은 사물이 되는 동시에 미래가 된다. 그리고 이 빨강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시적 감각이 극대화된 순간 그곳에는 언제나 시인 내부에서 터져 나온 느낌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훔친 건 빨강이 아니에요/빨강이 될 걸 /미리 알았을 뿐이라고요절대 빨강을 훔치지 않았다고요"
결국 수박의 빨강은 김미희의 언어를 통해 통상적인 인간의 통속적인 상상의 바깥으로 걸어나간다. 이쯤되면 시는 "이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보르헤스)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김미희의 빨강은 그의 상상력이 고투 끝에 올려놓았을 것 같은 제목으로부터 더욱 빛난다. 이처럼 뛰어난 시인의 상상력이 현실과 만나면 그곳엔 항산 마법이나 환상이 따라온다. 우리 동시의 가능성이다. -<김륭>
첫댓글 이런 평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참말로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과분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