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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歸去來辭)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전원 속에서 사는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歸 : 돌아갈 귀(止/14)
去 : 갈 거(厶/3)
來 : 올 래(人/6)
辭 : 말씀 사(辛/12)
귀거래사(歸去來辭)는 도연명의 시 제목으로 '고향으로 돌아감을 노래함' 정도를 의미하지만,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으로 되돌아감을 이르는 고사성어로 쓰이기도 한다. 시 제목이 동시에 고사성어처럼 쓰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귀거래사(歸去來辭)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다. 세상 만물은 결국 돌아온 곳으로 돌아간다.
중국 진(秦)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이 팽택의 현령(縣令)이 되었을 때에 군의 장관(長官)이 의관(衣冠)을 갖추어 배알(拜謁)하라는 데에 분개하여 그날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시(詩)이다. 중국 동진(東晋) 송(宋)나라의 시인인 도연명의 대표적 작품이다. 405년 그가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현(彭澤縣)의 지사 자리를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을 진술한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4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른 각운(脚韻)을 밟고 있다. 제1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으로 간주하여 읊었고, 제2장은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제3장은 세속과의 절연선언(絶緣宣言)을 포함,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으며, 제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쓰는 동기를 그 서문에서 밝혔는데, 거기에는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나,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도연명전(陶淵明傳)에는, 감독관의 순시를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 5말의 쌀,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날로 사직하였다고 전한다.
이 작품은 도연명의 기개를 나타내는 이와 같은 일화와 함께 은둔을 선언한 일생의 한 절정을 장식한 작품이다.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귀거래혜! 전원장무호불귀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지고 있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을쏘냐.
(중략)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요승화이귀진 낙부천명복해의
애오라지 자연의 조화를 따라 다 돌아가니, 무릇 천명을 즐기되 무얼 다시 의심하리.
(하략)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첫 구와 마지막 구절이다.
동진(東晉) 때의 고사(高士) 도연명이 41세 때 팽택현 지사 자리를 내던지고 낙향할 때의 심경을 읊은 시다. 그가 세속에서의 입신양명과 결별을 선언하고, 평소 꿈 꾸었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천명한 글이기도 하다.
서문에서는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상급 기관 감독관의 순시를 맞아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오두미(五斗米)를 위해 향리의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그 날로 지사의 인수를 풀어놓고 사직, 낙향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배경으로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도연명전(陶淵明傳)에 나오는 얘기다.
조선 중기의 문인인 신흠(申欽)은 和歸去來辭라는 시(詩) 첫 구와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歸去來兮! 今也不歸何日歸.
귀거래혜! 금야불귀하일귀.
돌아가리라! 오늘 돌아가지 않으면 언제 돌아가리.
(중략)
歸去來兮! 從吾所好復奚疑.
귀거래혜! 종오소호복해의.
돌아가리라! 내 좋아함을 따랐으니 무얼 다시 의심하리.
(하략)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향리(鄕吏)에게 허리 굽혀 알랑거리지 않겠노라!
도연명(陶淵明)은 중국(中國) 동진(東晋) 사람으로 중국의 대표전인 시인(詩人)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연명의 여러 작품중에 귀거래사(歸去來辭)는 그가 공직생활을 하다가 성품에 맞지않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 가면서 지은 시로 겉으로 보기에는 순수한 자연을 노래한 내용같지만 그 속에는 심대(深大)한 내용이 깃들여져있어 수천년을 두고도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에 의해 회자(膾炙)되고 있으며 특히 요즈음같이 명예퇴직 등을 이유로 자의반 타의반 공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다들 한번씩은 읊조려 볼 것이다.
귀거래사(歸去來辭)의 ‘歸(귀)’는 사전적으로 풀이해 보면 帰의 본자로 追(따를 추)의 변형(變形)과 '婦(아내 부)' 생략형인 帚(비추)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고대(古代)에는 처가(妻家)에서 일정기간 노동(勞動)을 한후 새색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다는 데서 돌아오다의 뜻이 되었다고 하며, 다른 한편 으로는 며느리가 친정(親庭)에 갔다가 시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는 뜻에서 돌아가다의 뜻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한약재로 쓰이는 당귀(當歸)는 감초(甘草)와 더불어 중요한 약제로 쓰이며 당귀차(當歸茶)나 술로 담궈 당귀주(當歸酒)에 활용하는 귀중한 약재이다. 그런데 당귀(當歸)의 뜻을 파자해보면 當(마땅히 당)과 歸(돌아갈 귀)로 '마땅히 돌아 온다' 또는 '마땅히 돌아 오기를 바란다'는 깊은 뜻이 있다.
이는 중국의 옛 풍습에 부인들이 싸움터에 나가는 남편의 품속에 당귀(當歸)를 넣어 준 것에서 유래하는데 전쟁터에서 기력이 다했을 때 당귀(當歸)를 먹으면 다시 기운이 회복되어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이 약을 먹으면 기혈(氣血)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떠든 '歸(귀)'는 '돌아가다' 혹은 '돌아오다' 란 의미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이 작품을 쓰는 동기를 그 서문(序文)에서 밝혔는데, 거기에는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나,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도연명전'에서는 감독관의 순시(巡視)를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 당시의 봉급인 5말의 쌀)를 위해 향리(鄕吏)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날로 사직하였다고 전한다.
이 작품은 도연명의 기개(氣槪)를 나타내는 이와 같은 일화와 함께 은둔(隱遁)을 선언한 일생의 한 절정(切情)을 장식(粧飾)한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가 41세가 되던 해 팽택(彭澤)의 현령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군(郡)에서 독우(督郵)를 파견해 감찰을 받았다. 그런데 독우의 부하가 평택현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을 시켜 현령이 직접 나와 자신을 맞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도연명은 이 소식을 접하자 상관의 위세를 빌어 명령을 내리는 관리가 가소롭지만 어쩔 수 없이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맞이하러 나가려 했다. 옆에 있던 부하 한 명이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옷차림도 단정해야 하고, 태도도 공손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돌아가서 상관에게 나쁜 말만 전합니다"라고 말했다.
도연명이 모욕감을 떨치지 못하고 "어찌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 굽혀 향리의 소인배에게 알랑거리겠는가(吾不能爲五斗米折腰, 拳拳事鄕里小人邪)"라고 말하고는 80여일 만에 현령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로 도연명은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도연명은 마지못해 마중을 나가려 하였지만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요즈음말로 도연명은 항명일까? 아니면 아전(衙前)들의 과잉 충성에 대한 반발로 인끈을 풀고 고향으로 낙향하려 했던 것일까? 그 진위는 도연명 자신만 알뿐이다! 그러나 그의 기개는 공직자로서 명예를 논할 수 있을 것이며 지금도 그를 높이 사는 것이 아닐까 외람되게 생각해본다.
관리로서 욕됨을 예견하고 소인배들에게 아첨하며 구차하게 자리를 연명하느니 차라리 인끈을 끊고 요즘말로 사표내고 행정이나 정치세계와는 거리가 먼 한가로운 고향땅에서 살려고 하는 마음에서 였을 것이다. 索居閒處(삭거한처)하니 沈黙寂寥(침묵적요)라!
索居閒處하고 沈黙寂寥라
(은퇴 후) 홀로 살아 한가롭게 거처하고, (드러나지 않게) 조용하고 고요히 산다.
散居而靜處하니 卽休退者之事也라
한가로이 살며 조용히 거처하니, 바로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난 사람의 일이다.
沈黙은 不與人上下言議也요
침묵은 남들과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고,
寂寥는 不與人追逐過從也라
적요는 남들과 따라다니고 찾아다니지 않는 것이다.
모 방송에서 '자연인(自然人)'이란 프로가 있다. 도연명은 이러한 방송을 예상이라도 한 듯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삶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귀거래사(歸去來辭)
중국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사부(辭賦).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지은 것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동경하는 내용이다.
도연명(陶淵明, 365년 ~ 427년)은 중국 동진후기에서 남조 송대 초기까지 살았던 전원시인(田園詩人)이다. 호는 연명(淵明)이고, 자는 원량(元亮) 혹은 연명(淵明)이고, 본명은 잠(潛)이다. 오류(五柳) 선생이라고 불리며,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심양 사람. 동진 초기의 군벌의 대인물 도간(陶侃)의 증손이라 하는데, 부조(父祖)의 이름은 분명치 않다. 하급 귀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친은 일찍 사망했다.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산문시이다. 도연명이 41세 때의 가을, 팽택(彭澤)의 현령을 그만두고 향리(심양)로 돌아갔을 때의 작품이다. 13년간에 걸친 관리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향리로 돌아가서 이제부터 은자로서의 생활로 들어간다는 선언(宣言)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관리생활은 마음이 형(形: 육체)의 역(役: 노예)으로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전원에 마음을 돌리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생활 속에서만이 진정한 인생의 기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돌아가련다. 전원이 바로 거칠어지려는데 아니 돌아갈소냐(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의 명구에서 시작되어, 전체적으로 영탄적 어조가 강하나, 그려진 자연은 선명하고 청아한 풍이 넘쳐 있다. 짧으면서도 구성과 표현이 정연한 걸작이며 연명의 대표작으로서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귀거래사(歸去來辭)
🔘 제1단락(1~12구)
歸去來兮(귀거래혜)
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불귀)
자,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
奚惆悵而獨悲(해추창이독비)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
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실미도기미원)
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舟遙遙以輕(주요요이경양)
風飄飄而吹衣(풍표표이취의)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문정부이전로)
恨晨光之熹微(한신광지희미)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 한다.
🔘 제2단락(13~24구)
乃瞻衡宇(내첨형우)
載欣載奔(재흔재분)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僮僕歡迎 (동복환영)
稚子候門(치자후문)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삼경취황)
松菊猶存(송국유존)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휴유입실)
有酒盈樽(유주영준)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인호상이자작)
眄庭柯以怡顔(면정가이이안)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의남창이기오)
審容膝之易安(심용슬지이안)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양양해 하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 제3단락(25~32구)
園日涉以成趣(원일섭이성취)
門雖設而常關(문수설이상관)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책부노이류게)
時矯首而遐觀(시교수이하관)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影翳翳以將入(영예예이장입)
撫孤松而盤桓(무고송이반환)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귀거래혜)
請息交以絶遊(청식교이절유)
돌아왔노라.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세여아이상위)
復駕言兮焉求(복가언혜언구)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 제4단락(33~48구)
悅親戚之情話(열친척지정화)
樂琴書以消憂(낙금서이소우)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 하고,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농인고여이춘급)
將有事於西疇(장유사어서주)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혹명건차)
或棹孤舟(혹도고주)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기요조이심학)
亦崎嶇而經丘(역기구이경구)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목흔흔이향영)
泉涓涓而始流(천연연이시류)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선만물지득시)
感吾生之行休(감오생지행휴)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 제5단락(49~60구)
已矣乎(이의호)
寓形宇內復幾時(우형우내복기시)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갈불위심임거류)
胡爲乎遑遑欲何之(호위호황황욕하지)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富貴非吾願(부귀비오원)
帝鄕不可期(제향불가기)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회양진이고왕)
或植杖而耘(혹식장이운자)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등동고이서소)
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요승화이귀진)
樂夫天命復奚疑(낙부천명복해의)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위 시의 내용은 60행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제1단락(1~12구)에서는 관리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결의와 귀로, 제2단락(13~24구)에서는 집에서 마중하는 모양과 집에서의 느긋한 상태, 제3단락(25~32구)에서는 집 주위의 자연 묘사와 작자의 동작, 제4단락(33~48구)에서는 작자의 즐거움과 기쁨에 찬 생활 묘사, 제5단락(49~60구)에서는 작자가 진심으로 바라는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위 시의 배경에는 자연의 추이에 인생을 맡겨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인생관이 깔려 있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도에 복귀한다고 하는 노장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작자는 인생을 부정하거나 도피한 것이 아니라 전원에 돌아가 밝게 살았다는데 육교적인 정신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4 도연명(陶淵明) 귀거래사(歸去來辭)
나, 돌아갈래!
귀거래사는 중국 동진 시대의 시인인 도연명이 41세가 되던 해 가을, 팽택(彭澤, 장시성 심양 부근)의 현령을 그만두고 고향(심양)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산문시다. 어느 날 도연명은 군에서 보낸 감독관에게 예복을 입고 가서 뵈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탄식하며 "내 닷 말 곡식 때문에 소인 앞에 허리를 꺾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그날로 사표를 냈다고 한다.
벼슬 녹봉 때문에 허리 굽히느니 나 돌아갈래
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연명(陶淵明)
1. 저작 동기
朱文公曰: 歸去來辭者, 晉處士陶淵明之所作也.
주문공이 이르길: “귀거래사란 것은, 진나라 처사 도연명이 지은 것이다.
潛有高志遠識, 不能俯仰時俗.
도잠에게는 높은 뜻과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고, 시속을 굽어보거나 우러러보지 않았다.
嘗爲彭澤令, 督郵行縣且至, 吏白當束帶見之.
일찍이 팽택의 수령이 되어, 독우가 현에 행차하여 이르렀고, 아전이 말하길 ‘마땅히 예복을 입고 뵈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潛歎曰: 吾安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耶?
도잠이 탄식하며 말하길: ‘내가 어찌 다섯 말 곡식을 위하여, 향리의 어린놈을 향해 굽실거리겠느냐?’라고 했다.
卽日解印綏去, 作此詞, 以見志.
바로 그날 인수를 풀고 그만두고 떠나며, 이 사를 지어 뜻을 보였다.
後以劉裕將移晉祚, 恥事二姓, 遂不復仕.
훗날 유유가 장차 진나라 제위를 옮기려 하자, 두 성씨를 섬기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마침내 다시 벼슬하지 않았다.
宋文帝時, 特徵不至, 卒諡靖節徵士.
송나라 문제 때, 특별히 불러도 가지 않고, 마침내 정절징사를 시호로 받았다.
歐陽公言, 兩晉, 無文章, 幸獨有此篇耳. 然其詞義夷曠蕭散, 雖託楚聲, 而無其尤怨切蹙之病云.
구양수가 말하길, '양진 시대에, 문장이 없었지만, 다행히 오직 이 편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사의 뜻이 편안하고 공허하며 쓸쓸하고 어둡다. 비록 초나라 노래에 의탁했지만 그것이 더욱 원망하고 애절하며 긴박한 병통이 없다'라고 했다.”
* 時俗(시속): 그 시대의 풍속, 그 당시의 속(俗)된 것.
* 俯仰(부앙):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봄.
* 束帶(속대): 관(冠)을 쓰고 띠를 맨다는 뜻으로, 예복을 입음을 이르는 말.
* 折腰(절요): 허리를 꺾는다는 뜻으로, 절개를 굽히고 남에게 굽실거림을 이르는 말.
淵明元序曰: 余家賓, 幼稚盈室, 甁無儲粟.
연명이 원래 서문에서 말하길: “우리 집이 가난하여, 어린 아이들이 집을 가득 채웠으니, 살통에 쌓인 곡식이 없었다.
親故多勸余爲長吏, 脫然有懷.
친우들이 그러므로 많이 내가 지방관이 되라고 권했고, 태연히 마음이 있었다.
家叔, 以余貧苦, 遂見用爲小邑.
가숙은, 내가 가난하고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여, 마침내 등용하여 소읍을 다스리게 했다.
于時, 風波未靜, 心憚遠役.
이때는 풍파가 진정되지 않았고, 마음이 멀리 일하러 가는 것을 꺼렸다.
彭澤, 去家百里, 公田之利, 足以爲潤.
팽택은, 집과의 거리가 100리이고, 공전의 이로움은 (집안을) 윤택하게 할 수 있었다.
及少日, 眷然有歸歟之情, 何則?
얼마 지나지 않아서, 뒤돌아보며 돌아가려는 마음이 생긴 것은, 어째서인가?
質性自然, 非矯勵所得,
성질의 자연스러움이고, 힘써서 얻은 것이 아니니,
飢凍雖切, 違己交病.
배고픔과 추위가 비록 절실하지만, 나의 뜻과 어긋나 병을 만났다.
於是, 悵然慷慨, 深愧平生之志,
이에, 서글프고 의기가 북받쳐, 깊이 평생의 뜻을 부끄러워했지만,
猶望一稔, 當歛裳宵逝.
오히려 한 해를 마치길 바라며, 마땅히 치마를 걷고 밤길을 떠나야 했다.
尋程氏妹喪于武昌,
얼마 되지 않아 정씨 집안에 시집간 누이가 무창에서 죽고,
情在駿奔, 自免去職.
마음이 빨리 가려는 것에 있으므로, 스스로 그만두고 직을 떠났다.
仲秋至冬, 在官八十餘日.
중추부터 동지까지, 관직에 80여 일 있었다.
因事順心, 命之曰歸去來兮, 乙巳歲十一月也.
일을 따르고 마음을 순하게 하여, 이름을 귀거래혜로 했으니 을사년 11월이다”라고 했다.
○ 淵明時年, 四十一歲.
○ 도연명의 당시 나이가, 41세였다.
* 眷然(권연): 사모하여 뒤를 돌아봄.
* 矯勵(교려): 잘못을 고치고 힘씀.
* 悵然(창연): 몹시 서운하고 섭섭함.
* 慷慨(강개): 의(義)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義氣)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픔.
* 一稔(일임): 곡물(穀物)이 한 번(番) 여물어 익는다는 뜻으로, 일 년을 이르는 말.
2. 본문
歸去來兮!
돌아가자!
田園將蕪, 胡不歸?
논밭과 동산이 장차 황폐해지려고 하니,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이미 스스로 마음이 육체의 부림을 받게 되었으니, 어찌 마음이 산란하고 원망스러워하며 홀로 슬퍼만 하겠는가?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이미 지나간 것을 바로잡을 수 없음을 깨달았고, 올 것을 바르게 고쳐나갈 수 있음을 알았다.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실로 길을 잃었지만 그것이 아직 멀지 않고,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舟搖搖以輕颺, 風飄飄而吹衣.
배는 흔들리면서 가벼이 떠오르고, 바람이 나부끼면서 옷자락을 날린다.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먼길 가는 사람에게 앞길을 물으니, 아침 햇살이 흐릿한 것이 한스럽다.
乃瞻衡宇, 載欣載奔.
이내 허술한 집을 보고, 문득 기뻐서 뛰어가니.
僮僕歡迎, 稚子候門.
심부름하는 아이가 반겨주고, 어린아이들이 문에서 기다린다.
* 形役(형역): 마음이 육체의 부리는 바가 된다는 뜻으로, 정신이 물질의 지배를 받음을 이름.
* 惆悵(추창): 슬퍼하고 근심하는 모습.
* 來者可追(내자가추):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나 앞으로의 일을 조심하면 지금까지와 같은 잘못은 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에 나오는 말이다.
* 征夫(정부): 출정하는 군사, 먼길을 가는 사람.
* 衡宇(형우): 衡은 기둥 2개에 횡목 1개를 가로질러 만든 허술한 대문이고, 宇는 집의 처마다.
* 載欣: 載는 則과 같은 뜻이다.
三徑就荒, 松菊猶存.
삼경은 거칠어졌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히 있다.
携幼入室, 有酒盈樽,
어린아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술이 항아리에 가득하고,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술병과 잔을 끌어다가 혼자서 따르고, 뜰에 심은 나무 바라보며 안색이 부드러워진다.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남창에 기대어 편안하게 있으니, 겨우 무릎 들일 만한 것의 편안함이랴.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동산에서 날마다 거닐며 뜻을 이루고, 문은 비록 세웠지만 늘 잠겨있네.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遐觀,
지팡이 짚고 늙은 몸 부축해서 이리저리 거닐다가, 때때로 머리 들고 멀리 바라보니,
雲無心以出峀, 鳥倦飛而知還.
구름은 무심하게 산봉우리에서 나오고, 새는 날기에 지치면 돌아올 줄 안다.
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
햇빛 어둑해져서 장차 들어가려 하니,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거리는구나.
* 三徑(삼경): 은자(隱者)의 문안에 있는 뜰. 또는 은자가 사는 곳. 한나라(漢--)의 은자 장후(蔣詡)가 정원에 세 개의 좁은 길을 내고 소나무, 대나무, 국화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 庭柯(정가): 뜰에 심은 나무. 또는 그 나무의 가지.
* 怡顔(태이): 기쁜 낯을 함. 안색을 부드럽게 함.
* 寄傲(기오): 떳떳해서 거리낌 없는 마음으로 편안한 것.
* 流憩(유계): 이리저리 거닐며 쉼.
* 景翳翳(경예예): 景은 햇빛, 翳翳는 어둑어둑한 모양을 말한다.
* 盤桓(반환): 어정어정 머뭇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멀리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일.
歸去來兮!
돌아가자!
請息交以絶游.
청컨대 사귀기를 그만두고 왕래를 끊자.
世與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
세상과 내가 서로 어긋났으니, 다시 멍에 매어서 무엇을 구하겠는가.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친척의 정다운 이야기를 좋아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면서 근심을 없앤다.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于西疇.
농부가 내가 이르기를 봄이 왔다고 하고, 장차 서쪽밭에 일이 있을 것이다.
或命巾車, 或棹孤舟.
혹 헝겊으로 씌운 수레 몰고, 혹 배 한 척 노 저어서.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
이미 깊은 골짜기 시냇물 찾고, 또 험악한 산길로 언덕을 지나며,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나무는 즐거운 듯이 무성하고, 냇물은 졸졸 흐르다.
羨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만물이 때를 얻은 것을 부러워하고, 내 생이 끝나가는 것을 느낀다.
* 駕言(가언): 駕는 '수레에 멍에 매다'는 뜻이고, 言은 여기서 조사로 쓰였다.
* 窈窕(요조): 산수가 구불구불하고 속이 깊은 곳을 말한다.
已矣乎!
그만 두어라!
寓形宇內復幾時,
형체를 우주에 붙여 두는 것이 다시 얼마나 될까,
曷不委心任去留,
어찌 마음에 맡겨 가고 머무는 것에 맡기지 않는가,
胡爲乎遑遑欲何之?
무엇 때문에 바삐 서둘어 하려고 하는가?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부귀는 내가 원한 것이 아니고, 임금 계신 곳은 기약할 수 없구나.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耔.
좋은 시절행각하면서 외로이 가고, 혹 지팡이 꽂고서 김매고 북돋우리라.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맑을 물에 임해서 시를 짓는구나.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그대로 변화에 올라타고 다함으로 돌아가고, 저 천명을 즐기니 다시 무엇을 의심할까.
* 良辰(양신): 좋은 시절이나 계절.
3. 작품에 대한 해설
按, 淵明, 以不欲束帶見督郵而去官.
도연명을 살펴보면 띠를 차고 독우를 보고자 하지 않아 벼슬을 버렸다.
而其序, 其辭, 略不及之, 無怨天尤人之心.
그러나 서문과 본문의 말엔 대략이라도 이런 내용이 없어,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는 마음이 없었다.
惟見其有安土樂天之趣, 可謂賢矣.
오직 선비를 편안히 여기고 하늘을 즐기는 뜻이 있음을 보이니, 어질다고 할 만하다.
自以晉室宰輔陶侃之曾孫, 恥復屈身, 後代宋業漸隆, 不肯復仕, 歿於宋元嘉四年.
스스로 진나라 재상 도간의 증손자로 다시 몸을 굽히는걸 부끄러워 했고, 후대에 송나라의 업이 점점 융성해져서 기꺼이 다시는 벼슬하려 하지 않고, 송나라 원가 4년에 죽었다.
而朱文公綱目, 特筆書之曰: 晉處士陶潛卒. 可謂又賢矣.
그러자 주희가 자치통감강목에, 특별히 '진나라 처사 도잠께서 돌아가셨다'라고 썼으니, 또한 어질다 할 만하다.
且節義之耿介者, 多過於矯激, 襟懷之和適者, 易流於頹靡, 淵明, 以和適之襟懷, 而全耿介之節義, 不偏不倚, 蓋兩得之.
또한 절의가 굳센 사람은 대부분 과격한 데서 지나치고, 기상이 화평한 사람은 무너지는데 흐리기 쉬운데, 도연명은 화평한 기상으로 굳센 절의를 온전히 하여, 치우치지도 기울지도 않았으니 대체로 두 부분을 얻었던 것이다.
此篇, 兩提起歸去來兮, 而始之曰; 胡不歸? 終之曰; 乘化歸盡.
이 글에선 두 번 귀거래혜(歸去來兮)를 제기했으니, 처음엔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라고 말했고, 마지막엔 '조화를 타고 돌아가 마치겠다'고 말했다.
胡不歸之歸, 歸歟之歸也; 歸盡’之歸, 子全而歸之之歸也.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의 귀(歸)자는 '돌아갈끄나'의 귀(歸)자이고; '돌아가 마치겠다'의 귀(歸)자는 '자식은 온 몸을 보전하여 죽어야 한다'의 귀(歸)자다.
惟其有前之歸, 養高全節.
오직 앞에 돌아갈 것이 있어 고상함을 기르고 절개를 온전히 했다.
故能生順死安, 歸盡無歉.
그러므로 살아선 순종했고 죽어선 편안했으니 돌아가 마치더라도 부끄럼이 없었던 것이다.
使枉己違性, 徇祿忘歸, 則易姓之際, 不能全節.
가령 자기를 굽히고 본성을 어그러뜨리며 봉록을 따라 돌아감을 잊었다면, 역성혁명의 즈음엔 절개를 보전할 수 없었으리라.
其歸盡也, 抱恨包羞, 澌盡泯滅, 草木俱腐而已.
그래도 돌아가 마칠 때엔 한을 품고 부끄러움을 머금어, 다하고 없어져 초목과 함께 썩을 뿐이다.
安能雖死猶生, 千古流芳, 如此哉.
어찌 비록 죽더라도 산 것 같아 천고에 향기가 남겨짐이, 이와 같았겠는가.
始末兩歸字, 爲一篇之眼目, 讀者其毋忽略於此云.
처음과 끝의 두 가지 귀(歸)자는 이 글의 핵심이 되니, 독자는 여기에서 소홀히 하지 말라.
4. 진서(晉書)에 묘사된 도연명
晉書 隱逸列傳 陶潛曰:
진서의 은일열전 도잠에서 말했다.
其親朋好事, 或載酒肴而往, 潛亦無所辭焉, 每一醉, 則大適融然.
친한 벗이 좋은 일로 간혹 술과 안주를 가지고 오면, 도잠은 사양하지 않았고, 매번 한 번 취하면 크게 즐거워하며 화평했다.
又不營生業, 家務悉委之兒僕, 未嘗有喜慍之色.
또한 생업을 경영하지 않았고 집안 일은 다 종에게 맡겨두고, 일찍이 기쁘거나 슬픈 빛이 없었다.
惟遇酒則飲, 時或無酒, 亦雅詠不輟.
오직 술을 만나면 마셨고 때로 술이 없으면, 또한 시 읊조리길 그치지 않았다.
嘗言夏月虛閑, 高臥北窗之下, 清風颯至, 自謂羲皇上人.
일찍이 말했다. ‘여름 달밤에 공허하고 한가로이 높다란 북창의 아래에 누워,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스스로를 세상을 잊고 숨어사는 사람이로다[희황상인(羲皇上人): 태고(太古) 때 사람을 말하며, 세상을 잊고 편히 숨어사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했다.’
性不解音, 而畜素琴一張, 絃徽不具, 每朋酒之會, 則撫而和之, 曰: 但識琴中趣 何勞絃上聲.
성품은 음악을 알지 못하나, 흰 비파[소금(素琴): 무현금(無絃琴)으로 도잠은 음악을 몰랐지만 줄이 없는 소금을 두고서 술 취할 때 두드렸다고 함] 하나를 준비해 놓고, 줄과 기러기발이 없는데[無絃琴]도 매번 벗과 술이 모이면, 비파를 어루만지며 화답하면서, 다만 비파의 흥취를 아노니, 어찌 줄 위의 소리를 수고롭게 하랴’라고 말했다.”
▶️ 歸(돌아갈 귀)는 ❶형성문자로 帰(귀)의 본자(本字), 归(귀)는 통자(通字), 归(귀)는 간자(簡字)이다. 追(추; 따라가다)의 변형과 婦(부)의 생략형인 帚(추)로 이루어졌다. 고대(古代)에는 처가(妻家)에서 일정 기간의 노동을 한 후 새색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 데서, '돌아오다'의 뜻이 되고, 전(轉)하여 '시집가다'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歸자는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歸자는 阜(언덕 부)자와 止(발 지)자, 帚(비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阜자와 帚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阜자는 '쌓이다'라는 뜻의 堆(언덕 퇴)자가 생략된 것이다. 이렇게 '쌓이다'라는 뜻을 가진 堆자에 帚자가 더해진 것은 집안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歸자의 본래 의미는 '시집을 가다'였다. 아마도 시집간 여자가 집안일을 한다는 뜻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止자가 더해지면서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歸(귀)는 ①돌아가다, 돌아오다 ②돌려 보내다 ③따르다, 붙좇다(존경하거나 섬겨 따르다) ④몸을 의탁하다 ⑤맡기다, 위임하다 ⑥마치다, 끝내다 ⑦시집가다 ⑧편들다 ⑨맞다, 적합하다 ⑩모이다, 합치다 ⑪선물하다, 음식을 보내다 ⑫자수하다 ⑬죽다 ⑭부끄러워하다 ⑮몸을 의탁할 곳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돌아올 회(回)이다. 용례로는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본디의 처소로 돌아옴을 귀환(歸還), 집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가(歸家), 사람의 마음이나 사물의 돌아가는 형편을 귀추(歸趨),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귀향(歸鄕), 끝을 맺음을 귀결(歸結), 재산이나 권리 따위가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에 속하게 됨을 귀속(歸屬), 돌아가 몸을 기댐을 귀의(歸依), 적이 굴복하고 순종함을 귀순(歸順), 돌아와 닿음을 귀착(歸着), 돌아오거나 돌아가는 길을 귀로(歸路), 객지에서 부모를 뵈러 고향에 돌아감을 귀성(歸省), 한 군데로 돌아감을 귀일(歸一), 집으로 돌아가 쉼을 귀휴(歸休), 서울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귀경(歸京),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함을 귀양(歸養),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옴을 귀래(歸來),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귀사(歸思), 숙박 집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귀숙(歸宿), 황천으로 돌아감이란 뜻으로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귀천(歸泉), 흙으로 돌아감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귀토(歸土), 여자가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옴을 대귀(大歸), 마음을 결정하고 돌아감을 결귀(決歸), 향하여 감이나 따라감을 적귀(適歸), 함께 돌아감을 동귀(同歸), 작별하고 돌아감을 고귀(告歸),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감을 우귀(于歸), 본디 상태나 자리로 다시 돌아감을 복귀(復歸), 도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회귀(回歸), 벼슬을 내어 놓고 돌아옴을 체귀(遞歸),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한 뒤 전쟁에 쓴 마소를 놓아주었다는 옛일에서 온 말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귀마방우(歸馬放牛), 헛되이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귀어허지(歸於虛地),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필귀정(事必歸正), 죽는 것을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시사여귀(視死如歸), 구슬을 온전히 조나라로 돌려 보낸다는 뜻으로 흠이 없는 구슬이나 결점이 없이 완전함 또는 빌렸던 물건을 온전히 반환함을 일컫는 말을 완벽귀조(完璧歸趙), 옳지 않은 일에 부화뇌동 함을 이르는 말을 난만동귀(爛漫同歸),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처음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을 낙엽귀근(落葉歸根), 넷이 결과적으로 하나를 이룸을 일컫는 말을 사귀일성(四歸一成),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깐 동안 머물러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죽는 것은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생기사귀(生寄死歸), 나이를 먹어서 머리털이 희어져도 학문이 성취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백수공귀(白首空歸), 합심하여 같은 목적으로 향함을 일컫는 말을 일심동귀(一心同歸),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옴을 일컫는 말을 조왕모귀(朝往暮歸), 가는 길은 각각 다르나 닿는 곳은 같다는 뜻으로 방법은 다르지만 귀착하는 결과는 같음을 일컫는 말을 이로동귀(異路同歸) 등에 쓰인다.
▶️ 去(갈 거)는 ❶상형문자로 厺(거)는 본자(本字)이다. 본디 마늘 모(厶; 나, 사사롭다, 마늘 모양)部라 쓰고 밥을 담는 우묵한 그릇이나, 안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다의 뜻이다. 글자 윗부분의 土(토)는 흙이 아니고 吉(길)의 윗부분 같이 뚜껑을 나타낸다. 우묵하다, 틀어 박히다의 뜻에서 전진(前進)에 대하여 퇴거(退去)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❷회의문자로 去자는 ‘가다’나 ‘지나다’, ‘내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去자는 土(흙 토)자와 厶(사사 사)자가 함께 결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去자는 大(큰 대)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것이었다. 去자의 갑골문을 보면 팔을 벌린 사람 아래로 口자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口자는 ‘입’이 아닌 ‘문’을 뜻한다. 갑골문에서의 去자는 사람이 문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떠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모양이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去(거)는 지난의 뜻으로 ①가다 ②버리다, 돌보지 아니하다 ③내몰다, 내쫓다 ④물리치다 ⑤덜다, 덜어 버리다, 덜어 없애다 ⑥거두어 들이다 ⑦매었던 것을 풀다 ⑧피하다 ⑨죽이다 ⑩지나간 세월(歲月), 과거(過去) ⑪거성(四聲)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왕(往), 갈 서(逝),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올 래/내(來), 머무를 류/유(留)이다. 용례로는 금전을 서로 대차하거나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거래(去來), 물러감과 나아감을 거취(去就), 지난해를 거년(去年) 또는 거세(去歲), 지난번을 거번(去番) 또는 거반(去般), 제거함을 거세(去勢), 떠남과 머묾을 거류(去留), 뿌리를 없앰을 거근(去根), 버림과 취함을 거취(去取), 가는 길을 거로(去路), 지나간 뒤에 그 사람을 사모함을 거사(去思), 머리와 꼬리를 잘라 버린다는 거두절미(去頭截尾),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 가지와 잎을 제거한다는 거기지엽(去其枝葉), 갈수록 더 심함을 거거익심(去去益甚), 연한이 차서 퇴직할 차례라는 거관당차(去官當次), 갈수록 태산이라는 거익태산(去益泰山), 떠나간 사람은 날로 소원해 진다는 거자일소(去者日疎) 등에 쓰인다.
▶️ 來(올 래/내)는 ❶상형문자로 来(래/내)는 통자(通字), 간자(簡字), 倈(래/내)는 동자(同字)이다. 來(래)는 보리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다. 아주 옛날 중국 말로는 오다란 뜻의 말과 음(音)이 같았기 때문에 來(래)자를 빌어 썼다. 나중에 보리란 뜻으로는 별도로 麥(맥)자를 만들었다. 보리는 하늘로부터 전(轉)하여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다란 뜻으로 보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쓰는 것이라고 옛날 사람은 설명하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來자는 ‘오다’나 ‘돌아오다’, ‘앞으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來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來자의 갑골문을 보면 보리의 뿌리와 줄기가 함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來자는 본래 ‘보리’를 뜻하던 글자였다. 옛사람들은 곡식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來자는 점차 ‘오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來자가 이렇게 ‘오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夂(뒤져서 올 치)자가 더해진 麥(보리 맥)자가 ‘보리’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來(래)는 ①오다 ②돌아오다 ③부르다 ④위로하다 ⑤이래 ⑥그 이후(以後)로 ⑦앞으로 ⑧미래(未來) ⑨후세(後世) ⑩보리(볏과의 두해살이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거(去), 갈 왕(往), 머무를 류/유(留)이다. 용례로는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죽은 뒤에 가서 산다는 미래의 세상을 내세(來世), 다음에 오는 주를 내주(來週), 겪어 온 자취를 내력(來歷), 후세의 자손을 내예(來裔), 외국인이 한국에 오는 것을 내한(來韓), 적이 습격해 오는 것을 내습(來襲), 오고 가고 함을 내왕(來往), 손님이 찾아옴을 내방(來訪), 와 계신 손님을 내빈(來賓), 찾아 오는 손님을 내객(來客), 와 닿음을 내도(來到), 남에게서 온 편지를 내신(來信), 다음에 다가오는 가을을 내추(來秋), 어떤 결과를 가져옴을 초래(招來), 아직 오지 않은 때를 미래(未來), 금전을 서로 대차하거나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거래(去來), 앞으로 닥쳐올 때를 장래(將來), 가고 오고 함을 왕래(往來),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사물의 내력을 유래(由來), 변하여 온 사물의 처음 바탕을 본래(本來), 이르러서 옴이나 닥쳐 옴을 도래(到來), 오는 사람을 막지 말라는 내자물거(來者勿拒), 오가는 사람을 내인거객(來人去客), 오는 사람을 금해서는 안 됨을 내자물금(來者勿禁), 올 때는 갈 때의 일을 모른다는 내부지거(來不知去) 등에 쓰인다.
▶️ 辭(말씀 사)는 ❶회의문자로 辛(신; 날붙이의 모양, 자르다, 명백하게 하는 일)과 (란; 뒤섞인다, 다스리다)의 합자(合字)이다.뒤섞인 것을 정리하다, 재판에서의 진술(陳述), 말(詞; 사), 사양하다, 그만두다 따위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辭자는 ‘말씀’이나 ‘알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辭자는 실타래를 손으로 엮고 있는 모습을 그린 란(어지러울 난)자와 辛(매울 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란자와 司(맡을 사)자가 결합한 사(말씀 사)자가 ‘말씀’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司자는 손을 들고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명령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금문에서는 이렇게 ‘명령하다’라는 뜻을 가진 司자에 란자를 결합한 자가 ‘(높은 분의)말씀’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관료들은 죄인의 죄를 묻고 따져 심판하는 역할도 했었다. 그래서 소전에서는 죄인들 간에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풀어 심판한다는 의미에서 辭자가 ‘말씀’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辭(사)는 (1)사상(思想)을 말이나 글로 나타낸 것 (2)한문(漢文) 글체(體)의 하나. 소(騷) 및 부(賦)와 비슷하며, 흔히 운어(韻語)를 씀 (3)문법(文法)에서, 단독으로는 문장(文章)의 성분(成分)이 될 수 없는 말. 조사(助詞), 조동사(助動詞), 부사(副詞)의 대부분을 이르는 데 형식어(形式語), 허사(虛辭), 부속사(附屬辭)따위로 일컬어 짐 등의 뜻으로, ①말씀 ②문체(文體)의 이름 ③핑계 ④사퇴하다 ⑤알리다 ⑥청하다 ⑦타이르다 ⑧사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말씀 언(言), 말씀 화(話), 말씀 설(說), 말씀 어(語), 말씀 담(談), 말씀 변(辯)이다. 용례로는 작별하고 떠남이나 인사를 하고 떠남을 사거(辭去), 임금의 명령 을 전달 하는 내시 등의 벼슬아치를 사관(辭官), 응대하는 말을 사령(辭令), 맡아 보던 직임을 내어 놓고 물러남을 사면(辭免), 체로 쳐서 골라 가르는 일을 사별(辭別), 이 세상을 하직한다는 뜻으로 죽음을 일컫는 말을 사세(辭世), 사양하는 일과 받는 일 또는 사퇴와 수납을 사수(辭受), 맡아보던 일자리를 그만 두고 물러남을 사임(辭任), 말과 얼굴빛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사기(辭氣), 제사를 지내고 신을 보내는 일을 사신(辭神), 하고자 하는 말을 사연(辭緣), 사임할 뜻이나, 사직할 뜻을 사의(辭意), 사양하여 받지 아니함을 사절(謝絶), 맡은 바 직무를 내어놓고 그만 둠을 사직(辭職), 작별하는 인사의 말을 함을 사결(辭訣), 쓸데없는 말이 많음을 사비(辭費), 사절하여 물리치는 것을 사사(辭謝), 말과 얼굴빛이나 말과 표정을 사색(辭色), 늘어놓거나 기술한 말이나 글의 내용을 사설(辭說), 말에 조리가 있고 분명함을 사리명창(辭理明暢), 사퇴했으나 허락을 얻지 못함을 사불획명(辭不獲命), 태연하여 말과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아니함을 사색불변(辭色不變), 겸손히 마다하며 받지 않거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사양지심(辭讓之心), 사임할 뜻을 표함을 사의표명(辭意表明)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