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81/올레수첩]’유채꽃 제주濟州‘는 남의 나라
26코스 425km 제주 올레길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터. 그전에 서너 코스를 걷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처럼 본격적으로 걷자고 덤빈 것은 처음이었다. 맨먼저 안내소에서 '올레수첩'을 먼저 샀다. 코스별로 두세 곳 스탬프를 찍도록 되어 있다. 금요일 오후 제주원도심~조천 만세동산 18코스 19.9km를 거뜬히 완주했다. 도장 꽝꽝꽝. 별 것도 아니건만 흐뭇하고 보람졌다. 토요일은 10코스 화순금모래해변~모슬포 하모체육공원 15.6km, 바람의 엄청난 질투 속에도(바람의 섬이란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끝까지 완주, 이틀간 50km 12시간여 동안 7만보를 걸었다. 모슬포 앞바다의 윤슬이 너무 아름다웠다. 갑자기 우리의 손자 '윤슬'이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찔끔 났다. 할래비가 제 이름을 지어준 까닭을 언제나 알까? 두 코스 완주, 뚜벅이가 이뤄낸 성과다. 오메! 다리가 비명을 질렀다. 아니나다를까, 다음날 아침 발 뒤꿈치를 한 발짝도 디딜 수가 없다. 냉찜질을 한 후 다시 고행苦行에 나섰다. 누가 시켜서는 죽어도 못할 강행군이다.
제주는 오면 올수록 '남의 나라'같다. 언어도, 자연 풍광도 본토와 다르게 이국적이다. 깨끗하고 넓다. 굳이 영어로 말하자면 exotic하고 fatastic하다. 여러 번 다녀갔건만, 유채꽃밭을 보지 못하여 올해는 꼭 보자고 약속을 했다. 산방산 자락의 유채가 만발했다. 꽃 속에 파묻힌 60대 부부의 얼굴이 꽃처럼 피어났다. 멋진 일이다. 그것도 제주살이 2년을 목표로 온 지 일주일도 안된 동생부부와 '깜짝 만남'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게다가 제주삼합(대왕문어+전복+불고기)으로 거한 오찬까지 곁들였으니. 유채꽃밭 입장료 각 1천원이 아깝지 않다. 향기까지 진동한다. 일단 올해의 소원은 푼 셈이다. 내일모레 '제2차 촛불혁명'만 이루어진다면, 은근한 생각. 흐흐.
올레길을 걸을 때마다 이 길을 처음 만든 서명숙 님이 참으로 고맙다. 적은 돈이나마 후원도 해야겠다. 길을 잃지 않도록 한 수많은 리본과 간세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발품을 팔아 425km의 길을 냈을까. 대단한 일이다. 간세는 일본에 수출까지 했다고 한다. 올레길 걷기는 곧바로 열풍을 불러일으켜 지리산 둘레길, 해파랑길, 마실길 등 우리나라 국토를 '하나의 길'로 통일시킨 '일등공신'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올레길을 걷는 것일까? 스트레스 해소, 힐링, 나만의 시간과 자아 성찰, 자연과 함께하고 싶어서, 등등등등, 사람마다 이유는 다 다를 것이다. 사실, 도회지에 터를 두고 사는 우리로서는 하루 보통 15km 이상 되는 1코스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학자는 DNP가 3만달러를 넘으면 누구라도 유행처럼 걷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것도 무슨 트렌드일까? 잘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걷기를 좋아한다. 손을 잡을 때도 있고, 따로 또 함께 걸을 때도 있지만, 시간만 있으면 걷자고 집을 나선다. 좋은 일이다. 산길도 좋고 바닷길도 좋고 들길도 좋다. 길은 길하고 통하게 마련. 우리는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걸을 것이다. 그 걸음이 멈추는 날, 우리는 생을 마치게 되리라. 대한민국 걷기의 원조 신정일 선생을 아시리라. 국토를 자유자재로 걸어 100여권의 인문지리서를 남긴, 독보적인 존재. 박학다식, 청산유수, 대단한 인간의 다큐를 전주sbs에서 곧잘 본다. 그의 걸음 속에는 언제나 역사가 흐른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스토리텔링이 흥미롭다. 걷다가 보면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안내판을 종종 만나게 된다. 10코스 알뜨르비행장이나 해안가 동굴진지 등이 그것이다. 일본인이 아니고 일본제국주의는 간악했다.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할 수도 있다고 한 대선후보의 말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어떠한 이유로든, 하늘이 두 쪽 나지 않은 한 그들의 '상륙'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만큼 당하고도 우리는 정녕 밸도 없는 민족일까? 아니면 눈곱만큼 반성할 줄 모르는 이 땅 토착왜구들의 기세등등함에 언제까지 속앓이만 해야 할까? <일본놈 다시 온다/조선사람 조심하라>던 해방정국의 참요讖謠을 기억해야 한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계절에 상관없이 걷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일요일 오전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한라수목원을 잠깐 산책한 후 사려니숲길로 향했다. 10km, 이 정도는 걷겠지. 이틀간 50km도 걸었는데,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인데 어쩌겠는가. 이 숲길은 절물휴양림 안의 '장생의 숲길(13km)'에 비하면 숲길의 향은 훨씬 덜 하다. 우리로서는 제주 숲길의 으뜸은 아무래도 여러 번 걸었던 장생의 숲길이 최고인 것같다. 그나저나 남은 24코스는 언제 다 걸을 것인가? 처음부터 올레수첩을 사 도장을 찍고 다녔으면 이미 3분의 1은 채웠을 것이건만, 우도와 마라도코스도 도장을 찍으려면 새로 걸어야 할 터인데. 우리가 뭐 호사가가 아닌 마당에 굳이 이 수첩에 도장을 몽땅 채울 필요까지 있을까, 하다가도 '이왕이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백두대간 완주증을 받으면 그 성취감에 얼마나 황홀해 할 것인가. 세계 걷기의 성지인 '산티아고' 800km 도전의 밑거름도 되리라. 걷기는 우리의 숙명. 다음에는 무념무상, 하루 2코스도 욕심을 내볼 거나. 하하. 꿈결같이 다녀온 제주 3박4일. 월요일 아침, 활기찬 한 주를 위하여 새벽 6시 공항택시를 탔다.
오늘은 3.9절 마지막 독립운동의 날이 될지니, 우리 모두 "돈 워리 비 해피" Don’t worry, B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