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모를까요? 하기야 우리가 죽어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려나봅니다. 왜 그럴까요? 몇몇 영화에서 본 것처럼 죽는 순간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살아있을 때처럼 행동합니다. 조금 후에 스스로 놀랍니다. 비로소 자신의 몸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몸을 다른 물체들이 그냥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부딪쳐서 다치든지 깨지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그냥 통과해버립니다. 자신이 이전의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모양은 보이는데 몸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그것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이 모두가 살아있는 사람의 상상입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를 따라가면 보통 세상에 그냥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분명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보통 종교에 따라 나뉩니다. 좋은 곳으로 갔다고 말하기도 하고 좋지 않은 곳을 이야기할 때는 답을 피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주하고 싶은 대상일 때 쉽게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도 꽤나 많겠지요. 그럴지라도 죽음을 가까이 두게 되면 남에게 표현은 하지 않아도 생각은 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어디 갈지도 모르고 간다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따로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면 막연히 바라고 살 것입니다. 착하게 선하게 살면 어련히 좋은 곳으로 가겠지 하는 희망 말입니다. 살아가며 이 사람 저 사람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하여 듣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조합하여 나름대로의 희망을 그리며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기는 종교를 가지고 살았다 해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막연히 두려워하며 떠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위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죽음은 과연 우리 인생들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죽음이 있기에 자신의 삶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더 책임을 져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 다음의 어떤 새로운 삶(?)을 만들 기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죽음이 있기에 사람이 인생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동 심리학자인 ‘말콤 크로우’ 박사는 주지사에게 공로상까지 받아 유명인사가 됩니다. 그 기쁨을 안고 아내와 집에 돌아온 말콤은 집안에 낯선 침입자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래 전 자신에게 치료를 받던 환자임을 알게 됩니다. 낯선 방문객 ‘빈센트’는 말콤의 실패작임을 주지시키며 총격을 가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총으로 자결을 합니다. 사건 후 1년 반이 지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말콤은 8살 된 자폐환자 ‘콜’을 맡습니다. 정말 서먹한 관계에서 부단한 노력과 정성으로 콜과의 대화가 시작되고 이어집니다. 그리고 콜은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해줍니다. 죽은 사람이 보인다는 겁니다. 믿을 수가 없지요. 그러나 콜의 여러 가지 언행으로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말콤은 자기 일에 빠져서 아내와의 사이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결혼기념일까지 잊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챙기지 못합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에는 열중합니다. 아내로서는 매우 서운한 일이지요. 자기에게 주어야 할 마음이 거의 전부 고객(내담자)에게 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혼생활이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말콤으로서는 시간을 할애하여 이것도 저것도 모두 챙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기야 열심과 성실을 다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용케 줄다리기를 잘하는 부부들이 있기는 합니다.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콤으로서는 속만 타는 일입니다.
어느 날은 모처럼 일찍 귀가했는데 아내가 젊은 남자와 헤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나중에 그 남자를 집 앞에서 또 봅니다. 아내와 헤어지고 자기 차를 타고 떠날 때 소리 지릅니다. 잠깐 보자고 말이지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튼 잽싸게 떠나버립니다. 이제 아내와 헤어져야 하는 때가 된 것인가 싶지요. 사실 뭐라고 변명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아내를 사랑합니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자꾸 멀어져가는 느낌입니다.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갈팡질팡 하는 듯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콜과의 상담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서로가 만족스럽게 헤어집니다. 그런데 콜은 말콤의 상황을 잘 아는 듯 조언해줍니다. 아내의 잠든 옆에서 고백하고 떠나라고요.
콜의 엄마는 콜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자기 최면일지도 모르지만 혼자서 키우는 금쪽같은 자식입니다. 그런데 콜이 엄마의 과거를 이야기해줍니다. 놀라지요. 그러면서 할머니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려줍니다. 엄마의 응어리졌던 상처를 풀어줍니다. 콜은 산 자나 죽은 자에게 오히려 상담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매우 묘한 반전을 봅니다. 그리고 콜 역의 이 어린아이 연기가 정말 일품이지요.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를 보았습니다. 1999년 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