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비단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바라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평화를 이 땅에 이룩하기 위해서 전쟁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이기도 합니다. 그 평화를 반대하거나 훼방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물리쳐야 비로소 바라는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그러자니 전쟁이 불가피합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한다니 이 무슨 모순입니까? 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어쩌지요? 살려두면 악을 자행하며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자에게 사랑을 표방하는 박애주의자는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까? 잡았어도 살려두어야 합니까? 물론 평생 가둬두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행여 탈옥한다면?
수용소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구호물품을 전해주고 봉사하려 왔는데 그만 적들(?)에게 사살당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잃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최전방으로 나가서 남들이 감히 이루지 못한 공로를 이룬 아들이 반역자로 오인되어 아군에게 사살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잃습니다. 이제 남은 가족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속된 말로 무슨 재미로 삽니까? 술에 절어 폐인이 되어갑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이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오랜 시간과 아픔이 따르지요.
‘옥스포드 공작’은 보좌관의 도움으로 그런 아픔을 이겨냅니다. 보좌관의 일침에 도전을 받은 것이지요. 죽은 아들이 지금의 아비 모습을 기꺼워하겠는가 그 말입니다. 아들의 이루고자 했던 과업을 자신이 행하고자 합니다. 심기일전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전쟁, 특히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을 허무한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전쟁은 끝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요인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누가 또는 무엇이 전쟁을 일으킵니까? 인간의 욕심입니다. 그 욕심과 야망을 지닌 자들이 전쟁을 충동합니다. 자연히 나라를 들먹이며 젊은이들의 충성심을 자극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막을 알아야 하고 숨겨진 비밀들을 찾아야 하고 그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과 그 속내를 알아채야 합니다. 현장에서 오가는 말들을 알아내야 하고 그들이 몰래 속삭이는 대화를 엿들어야 합니다. 또한 그들 서로 나누는 통신 내용을 밝혀내야 합니다. 고도로 훈련된 비밀요원이 있어야 하고 사용될 기구들이 필요합니다. 사실 20세기 전쟁은 암호로 이루어졌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작전이나 전략을 미리 알아야 대책을 세워 상대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이고, 피 흘리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며, 최소의 손실로 이기는 것이 차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을 미리 알아야 합니다.
가장 얄미운 적은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소위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당사자도 놀랐지만 구경하던 우리도 놀랍니다. 아, 저 자가 그 놈이었구나 싶지요. 아무튼 대단한 악당입니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강대국들을 쥐락펴락합니다. 그런 머리를 왜 세상의 선과 유익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는지 아쉽습니다. 하기야 그런 마음이 처음부터 없는 것이지요. 그런 자의 이루고자 하는 평화는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평화입니다. 방해가 없으니 평화입니다. 오로지 자기의 안락만을 위한 평화. 한 사람, 또는 단 몇 사람을 위한 평화입니다. 그것을 위해 수많은 목숨이 제물로 바쳐져야 합니다. 엄청난 대가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먹고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 나라 전체를 그리고 국민 전체를 비극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아직 군주가 전권을 쥐고 있던 때는 그 비중이 훨씬 컸습니다. 옆에 직언하는 신하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군주의 권위에 눌립니다. 이 악의 화신이 바로 그 점을 이용합니다. 누구는 전쟁에 들어가게 하고 누구는 전쟁에서 빼고, 하는 짓을 자기 맘대로 조정하는 것입니다. 옥스퍼드 공작은 바로 그 악의 발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찾아갑니다. 그것을 위해 놀라운 첩보력을 구사합니다. 그 과정은 모두 생략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상만 해봐도 그것을 위해 얼마나 큰 자금력과 권력의 배경이 있어야 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1, 2편이 나왔습니다. 이번 것은 그 모두의 시작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이야기해줍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이 배경으로 깔려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좀 과장된 장면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그런 것은 별로 마음 쓰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개인의 아픔을 이겨내고 작지만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냅니다. 말 그대로 왕만큼이나 권력과 재력을 안고 있으니 가능하다 싶습니다. 영화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The King's Man)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