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가 자신보다 더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달리 말해서 자신이 아이보다 먼저 죽어서는 안 됩니다. 남의 자식에다 장애를 가졌으니 누가 좋다고 돌보아 주겠습니까? 자신의 반도 따라 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 아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옆에 있어야 합니다. 그 아이를 뒤에 두고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어찌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의지나 의도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어찌 보면 살얼음 위를 걷는 삶입니다. 너를 두고 내가 죽어서는 안 돼, 어쩌면 그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장애는 없지만 어린 자식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겨우 4살이나 되었을까, 엄마도 없이 자라왔는데 이제 아빠까지 곁을 떠나야 합니다. 절망 낙담 비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어린 아들의 창창한 미래를 닦아줄 새 부모를 만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것만이 아비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입양기관을 통해서 이곳저곳 알아봅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봅니다. 과연 내 아들을 맡길 만한 사람인가 확인 작업을 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왜 입양을 해야 하는가, 그 문제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사람됨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어찌 되었든 아들에게는 ‘남’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린 아들이 죽음을 이해할까요? ‘마이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본인도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존’은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입양처를 찾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 이 죽음의 문제도 답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보다 어쩌면 어린 마이클이 직면하기 어려운 문제이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세상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찾으면 우리 가까이 늘 있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곤충이나 벌레 어쩌면 보다 큰 동물의 죽음도 볼 기회가 있기도 합니다. ‘안 움직여.’ 죽었기 때문이야. 죽는 게 뭔데? 몸을 떠나는 거야. 하지만 보이지 않을 뿐 이 공기 중에 있는 거지. 이 옆에도 위에도 어디에도.
어느 날 공원에서 놀다가 딱정벌레가 죽은 것을 유심히 보며 건드리는 아들 존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존은 마이클에게 죽음을 대면하게 해줍니다. 물론 자신도 생각하게 되지요. 비록 하나님을 믿고 신앙하며 살아왔지만 사실 죽음이란 설명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곧 닥쳐올 현실이지만 과연 어떻게 당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는? 그 때는 각자의 믿음대로 가겠지요. 때로는 떠나는 사람보다 남아 있을 사람들의 아픔이나 슬픔을 더 걱정합니다. 떠나는 사람에게는 그냥 운명이고 남는 사람들에게는 거부하고 싶은 고통입니다.
몸이 자꾸 약해지며 이상해지는 것을 느끼고 실제로 일을 하지 못할 지경이 됩니다. 결국 작업 차량과 도구도 처분합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아들과 재미있게 지냅니다. 다니고 싶었던 곳 다니고, 먹고 싶은 것 사먹으며 즐겁게 지냅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남겨줄 아빠와의 추억을 만듭니다. 편지도 여러 통 써둡니다. 각각의 봉투에 언제 열어 보렴 하고 메모해둡니다. 아빠가 일했던 작업도구도 기념으로 넣어둡니다. 그렇게 조그만 상자를 만듭니다. 마이클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그 때마다 펼쳐보며 아빠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한 노인은 남편의 사용하던 칫솔을 다 늙어서야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해도 무엇인가 도구가 있으면 한결 가까이 느껴집니다.
입양, 어쩔 수 없이 택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임신이 불가능한 경우지요. 그래도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인공 수정을 여러 번 하면서 임신을 시도했어도 도저히 이루지 못한 후에 결정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나이 다 들어서 사고로 자식들을 잃은 후에 입양을 신청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오로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입양을 하여 기르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비혼의 독신이 아기를 기르고 싶어서 입양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혈통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혈통과 비혈통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뜻하지 않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대비해야 합니다. 개인의 문제이면서 사회적 문제입니다. 때문에 나라의 감시가 따르게 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알아봅니다. 사람도 중요하고 아이가 지낼 주거 환경도 중요합니다. 이런저런 여건들을 살펴봅니다. 여기는 이렇고 저기는 저렇고 모두가 장단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이클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처음 보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낯이 익은 사람이 나을 것입니다. 돌고 돌아 그렇게 결정합니다. 이제 맡기고 돌아서야 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마이클을 맡기며 돌아서려는 아빠를 바라보는 마이클, 알아챈 것일까요? 영화 ‘노웨어 스페셜’(Nowhere Special)을 보았습니다. 제목이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특별한 곳이 따로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이니까요. 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