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의 강타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MVP상이 선정된 1931년 이래 최초로 '3년 연속 리그MVP 등극'이라는 전인미답의 신기원을 개척한 것이다.
지미 팍스(1932-33), 요기 베라(1954-55), 어니 뱅크스(1958-59) 등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자릿수(9명)의 선택된 영웅들이 기록한 '2년 연속 리그MVP'들의 그룹에서 치고 나오는 쾌거를 이룩한 것.
물론 그가 덤으로 얻은 영광인 '리그MVP 최다수상 기록'마저도 본즈의 위대함을 조명하는 또 다른 요인.
본즈는 자신이 2002년 경신했던 '리그MVP 최다 수상기록'을 5회에서 6회로 재경신, 3회를 기록한 지미 팍스, 조 디마지오등의 2위 그룹과 더블 스코어로 현격하게 그 간격을 벌려놓았다. 이처럼 본즈가 이뤄놓은 업적들은 내로라하는 역대 그 어떤 대스타의 찬란한 업적과는 차별화되는 '그 무언가'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 '위기의 남자' 배리 본즈
◇ '경기 내적(內的)' 스트레스 요인
본즈의 2003년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한 시즌이었다. 경기 내외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본즈를 가만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경기 내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자신의 '히팅 프로텍터(Hitting Protector)'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줬던 4번타자 제프 켄트가 올 시즌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했다는 점. 분명 변화와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듯. 2001년과 2002년처럼 '3번타자' 본즈가 아닌 '4번타자' 본즈로 일궈낸 MVP 수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기존의 MVP 수상과는 질적 차별화가 바람직할 듯 싶다.
이 외의 경기 내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체력적 부담을 꼽을 수 있다. 올 시즌 그의 나이가 한국 나이로 소위 '불혹(不惑)'이라고 칭하는 40세라는 점. 상당한 체력적 부담속에서도 지명타자가 아닌 '포지션 플레이어(Position Player)'로 당당히 나서 일궈낸 업적이라는 것이다. 시즌 도중 본즈는 체력적 부담으로 인해 지명타자제를 실시하고 있는 아메리칸리그로 이적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적이 있을 정도.
◇ '경기 외적(外的)' 스트레스 요인
올 해 본즈는 그야말로 경기 외적인 스트레스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던 상황. 그의 '정신적 지주(支柱)'이자 '인생의 스승'이었던 아버지 바비 본즈가 암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한 악조건 속에서 일궈낸 수상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더 큰 의미가 존재한다.
본즈는 MVP 수상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심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 이 상(MVP)은 나의 아버지 바비에게 바치는 상이다. 내가 여태껏 받아왔던 그 어떤 상보다 내게 전해지는 의미는 특별함 그 자체다."라고 인터뷰한 것을 보더라도 그가 보낸 18년간의 빅리그 시즌 중에서 2003시즌이 결코 순탄한 시즌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셈.
게다가,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그가 가진 인터뷰 파문으로 그의 심사가 결코 평상심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 본즈가 베이브 루스를 향해 던진 단 한마디, 바로 'Wipe Him Out!' 이 짧은 한 마디로 인해 보수 성향의 백인우월주의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은 이후에 일궈낸 업적이라는 점에서 본즈의 강심장에 또 한번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본즈는 때 아닌 '색깔 논쟁'으로 인한 타석에서의 집중력 저하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아버지 바비의 사망으로 인한 심적 패닉을 잘 추스리고 위대한 관문을 뛰어넘은 것이다. 과연, 이런 과정속에서 한치의 흔들림없는 평상심으로 타석에 임할 선수가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반문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본즈는 역대 최고의 타자에 등극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은 이미 확보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 물론, 본즈의 다소 거만한 행동이 그의 객관적 업적을 다소 평가절하시키는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본즈에게 있어 거만함은 결코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 본즈, 과연 역대 최고의 '포지션 플레이어'인가
2001년, 73호 홈런 기록은 물론 단일시즌 최다 볼넷 기록(177)과 베이브 루스가 1920년 수립한 후 80여년간 접근을 불허했던 단일시즌 장타율 기록(.847)을 넘어 .863의 새기록을 작성한 본즈.
2002년에도 본즈의 신기록 경신 릴레이는 그칠줄 몰랐다. 그의 '영원한 라이벌' 루스가 1920년 수립한 OPS(출루율+장타율)기록인 1.3791을 넘어 1.3807의 근소한 차이로 OPS부문 새 지배자로 등재됐다.
게다가,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1941년 수립한 단일시즌 출루율 기록인 .553을 경신 .581로 1위에 진입하는 등, 그는 역대 최고의 타자들이 작성한 단일시즌 기록들을 줄줄이 갈아 치웠다.
즉, 본즈가 불과 2년만에 역대 최고의 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본즈는 '역대 최고의 타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의문과 관련해서 본즈의 평가를 가치절상(價値切上)시켜야 하는 요인과 절하(切下)시킬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을 비교ㆍ분석해보기로 하자.
그 논점에 접근하기 위해서 일단 개념 정립부터 요구된다. '타자(Hitter)'와 '선수(Player)'는 구별됨이 바람직하다. 선수(여기서는 투수를 제외한 포지션 플레이어를 의미)는 공ㆍ수ㆍ주 3박자를 모두 평가 요소로 고려하는 반면, 타자는 타석에서의 능력, 즉 수비와 주루능력은 제외한 배팅 능력만을 고려한다는 것. 여기서는 타자가 아닌 '선수'의 관점에서 논하기로 한다.
◇ '역대 지존' 본즈? - No
ㅁ 'Z 스코어' 분석
동시대에 활약한 선수들이 아닌 경우, 이 선수들을 동일한 기준에 의해 평가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메이저리그 초기의 데드볼 시대(Dead ball Era)에는 볼의 반발력이 현재보단 극히 떨어져서 현재의 파워와 단순 비교는 무리다.
이런 애로사항으로 인해 세이버매트리션들은 연구대상 선수가 동시대의 리그 평균치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를 근거로 그 선수의 당시 활약상을 객관적 수치화하여 비교ㆍ분석하는 방법을 도입했는데 그게 바로 'Z 스코어 분석'이다.
'Z 스코어' 분석은 경제학등의 통계분석 툴(Tool)로 표준오차(標準誤差)와 평균등의 개념을 활용하는 분석 방법으로 야구에 원용된 것으로 시대적 간격이 존재하는 선수들의 기량을 평가하는 툴로서의 유용성은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수치(score)가 커지면 그 선수는 해당 시즌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Z 스코어'를 통해 분석한 결과, 홈런부문 역대 최고의 'Z 스코어' 수치를 보인 선수는 베이브 루스. 루스는 1920년 8.30의 Z 스코어를 기록하며 역대 1,2,3위를 기록한 반면 1998년 70홈런을 기록한 마크 맥과이어는 4.36만을 기록했다.
본즈의 2001년 73호 홈런의 'Z 스코어'는 4.60정도. 결국 본즈의 파워는 루스의 그것에 비해 리그 평균과 비교할 때 특출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역대 최고의 홈런 타자라는 관점에서 본즈는 아직 루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게 바로 루스 추종자들의 입장이다.
게다가, 이런 흥미로운 상상도 가능할 듯 싶다. 과연, '본즈가 루스만 사용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55온스(약 1,560g)짜리 배트를 사용한다면 과연 몇 개의 홈런을 뽑아낼 수 있을까' 하는 유쾌한 상상 말이다. 루스는 그의 거대한 배트로 말미암아 양키스 클럽하우스의 네안데르탈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ㅁ 포스트시즌 플롭(Postseason Flop)
'포스트시즌 플롭'을 우리말로 옮기자면, '큰 경기(포스트시즌) 징크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즉 본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킬러 B' 시절이던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차례의 포스트시즌 동안 홈런 1개 타율 .190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 포스트시즌 플롭의 대명사로 인식되며 본즈를 비하하는 본즈 폄하논자들의 주된 논거가 되었다.
큰 경기에 약한 본즈의 징크스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한 후에도 지속되었다. 1997년과 2000년 포스트시즌에서도 2할 타율에 1홈런에 그치며 그 오명은 씻지 못했다. 올 시즌도 본즈는 예외가 아니었다. '청새치군단'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NLDS에서 무려 8개의 볼넷을 얻어내는 집중 견제속에서 홈런없이 2개의 안타를 뽑아내며 타율 .222에 그친 것.
다행히 작년 월드시리즈에서 타율 .471 4홈런 6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 포스트시즌 플롭의 오명을 다소 누그러뜨리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포스트시즌 타율은 .246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본즈는 역대 최고 타자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힘들다는 게 본즈를 평가절하시키는 측의 주장.
ㅁ 피부색 논쟁
외부적으로 두드러지게 표출된 바는 없지만 본즈를 평가절하시킬려는 의도에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잠재적인 인종차별적 의도도 내포되었음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때 본즈의 한 마디가 보수 미 언론을 강하게 자극했다. 본즈가 베이브 루스를 'Wipe Him Out!(난 이미 루스를 넘어섰어!)'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백인의 전설' 루스를 무참히 깍아 내렸기 때문.
급기야 볼티모어에 소재한 루스 박물관의 경영 책임자인 마이클 기본스의 공식적인 정면 대응을 시작으로 각 언론에선 본즈를 향해 집중포화를 날렸다. 이는 결국 본즈와 루스의 다른 피부색에 기인한 바 크다는 점. 결국 이 피부색으로 인해 본즈는 자신의 경이로운 업적에 비해 평가절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경기외적인 요소로 인한 평가절하는 진정한 지존을 가리는 평가 척도로서는 신뢰성과 타당성을 상실하는 근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이런 근거에 의한 본즈 폄하론자들은 오히려 비난받아야 할 지도 모를 일.
◇ '역대 지존' 본즈? - Yes
물론 홈런 타자의 관점만 놓고 따지자면 'Z 스코어' 분석에서 봤듯이 본즈가 루스를 뛰어넘는다고 표현한다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홈런 타자만 아닌 '멀티 플레이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달라진다.
ㅁ 파워/스피드 지표(Power/Speed Number)
주루 스피드와 파워등을 모두 고려한 '파워/스피드 지표(Power/Speed Number)'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본즈는 이미 역대 최고의 타자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
본즈의 파워/스피드 지표는 568.2로 2위인 '대도' 리키 헨더슨(LA 다저스)의 490.41을 압도적인 수치 차이로 따돌렸다는 점. 반면 느린 발을 가진 루스는 209.85로 58위에 불과하다.
'멀티 플레이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본즈가 역대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임에 더 이상 논란의 여지는 없다.
본즈와 아버지 바비가 합작한 '부자 990홈런-961도루'의 엄청난 대기록은 어쩌면 영원히 메이저리그의 전설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본즈가 42세 정도까지만 현역 선수생활을 지속하게 된다면 아마 '부자(父子) 1,000홈런- 1,000도루'라는 경이로운 대기록 수립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 문제는 올 시즌 7개를 기록한 도루가 1000-1000클럽 달성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 본즈는 2002년 9개를 기록한 데 이어 올 시즌에도 다시 한자릿수 도루를 기록, 그의 베이스 러닝 능력이 급격하게 퇴보되고 있는 점이 걸림돌이다.
ㅁ 수비 능력(Fielding Ability)
공격만 아니라 수비면에서도 본즈는 단연 돋보인다. 본즈는 내셔널리그 외야수 부문 8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탄탄한 수비력을 겸비한 슬러거.
물론 그의 어깨가 강견이 아니라는 점은 지적받고 있지만 수비 범위와 타구 판단력만큼은 전성기 시절에는 리그 최정상급이었다는 것. 이 두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이다.
올 시즌 접어들면서 경기 내외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존 레이팅(Zone Rating)이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비율(FPCT) 1.000의 무결점 수비를 보였다는 점. 올 시즌 최종 FPCT는 .992로 리그평균 FPCT .979에 비해 아직까지도 수비능력은 리그 평균을 상회한다. 초인적인 집중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불혹에 이른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본즈는 타석에서 뿐 만 아니라 필드에서도 초인적인 집중력을 보유한 선수로 평가해도 과언은 아닐듯 싶다. 게다가, 아버지 바비의 암투병과 생명 위독이라는 경기 집중력 저해 요인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범인(汎人)의 경지'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있을 듯.
ㅁ 철저한 자기 관리능력
1998년 400홈런-400도루클럽의 신기원을 연 후, 본즈 스스로 "메이스의 660홈런을 넘을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느슨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바로 오늘의 본즈를 낳게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올시즌도 마찬가지. 본즈는 500홈런-500도루를 기록한 올시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올스타 브레이크에서 "wipe him out!'을 선언한 것도 목전에 둔 메이스의 기록(660홈런)보다는 루스의 714홈런기록을 향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은 아닐까 싶다.
본즈는 이처럼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며 긴장감을 잃지 않는 메이저리그 생활을 18년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관리능력의 화신(化身)임을 입증하는 것. 누구도 엄두내지 못할 자기 관리법을 가진 그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이다.
게다가, 2001년 73홈런 신기록을 작성한 후 이듬해인 2002년 투수들의 집중 견제를 의식, 정면 승부를 피할 것으로 예상, 장타형 스윙을 지양하고 보다 짧은 스윙 메카니즘으로 타격왕에 도전, 최고령 타격왕 타이틀을 거머쥔 것을 보더라도 본즈는 '파워에만 집착하는' 보디 빌더가 아니라 '영리한 두뇌'를 지닌 '볼 플레이어'라는 것이다.
◎ 본즈 - 역대 최고의 '5-툴 플레이어'
필자 개인적인 결론을 내리자면, '타자(Hitter)'의 경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루스가 본즈를 능가하는 타자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선수(Player)'라는 관점에서는 본즈의 아성을 허물 선수는 '영웅' 루스, 맨틀, 그리고 디마지오 등 그 누구도 본즈에겐 필적하기 힘들다는 것.
즉, 역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5-툴 플레이어= 배리 본즈'가 아닐까 싶다. 본즈는 수많은 '안티-본즈 매니아'들의 끊임없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불세출의 대선수임에 틀림없다. 과연 본즈처럼 위대한 선수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를 지켜 볼 수 있는 현재의 야구팬들은 그야말로 특별한 행운을 향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986년 4월 20일 대 시카고 컵스전 지리한 연장 17회 초 짐 모리슨의 대타로 등장, 데이브 검퍼트로부터 자신의 생애 첫 안타를 뽑아내고 1루로 살아나간 본즈.
그리고, 18년이라는 긴 시간의 흔적이 흐른 지금도 그는 전설로 살아있으며 그가 은퇴한 이후에도 팬들의 가슴 속에 '불멸(不滅)의 전설(傳說)' 배리 본즈로 영원히 기억될 선수임에 틀림없다. '지금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본즈는 더 없이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