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모자 사건
문익환과 윤동주는 은진중학교에 다니다가 평양 숭실학교로 전학을 간다. 평양은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 대동강을 낀, 관서지방의 행정,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 평양은 문익환의 아버지와 삼촌이 유학을 간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19세기 후반부터 서양의 선교사들이 방문하기 시작하여 1893년에 이미 북장로교회의 선교지부가 설치되었으니 사람들은 그곳을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렀다.
윤동주가 숭실학교 편입하였을 때 한 학기 먼저 편입한 문익환은 매우 세련된 도시 학생이 되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문익환은 유난히 얼굴이 희고 선이 가늘어 귀공자 같은 풍모였다. 그 모습을 보고 윤동주가 모자에 탐을 냈다.
당시 학생들은 교모를 기성품으로 사서 쓰는 게 아니라 맞춰야 했다.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듯이 모자도 머리둘레를 재어서 재단한 것인데, 윤동주의 모자는 문익환의 모자처럼 반듯하지 않고 살짝 구겨진 곳이 펴지지 않았다. 그래서 윤동주가 조르자 문익환은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물욕이 전혀 없는 친구의 청인지라 문익환이 이렇게 말한다.
"좋아.
내 모자가 정 쓰고 싶다면 바꿔주겠어,
대신 호떡 사!"
▲ 모자사건 호떡에 모자를 바꾸고 찍은 사진(뒷줄 가운데 문익환, 오른쪽 윤동주, 맨 앞 이영헌)
윤동주(맨 오른쪽)와 문익환(뒷줄 가운데)이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 때 다른 동기생 두 명과 함께 찍은 사진. 다른 두 명은 인터넷 등에 장준하 선생과 정일권 전 국회의장으로 소개돼 있지만,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씨는 “장준하 선생의 아드님에게 확인한 결과 맨 왼쪽 분은 장 선생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고, 앉아있는 이로 알려진 정일권 전 의장은 숭실중학을 같이 다니지 않아 같은 교모를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며 “인터넷 등의 소개는 잘못된 내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