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테 꿈나무 원정대/꿈나무들 정상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글·사진 김영식 충북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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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마를 이용해 ‘러킹 피어’ 루트를 오르고 있는 꿈나무원정대 대원. |
충주 중앙중학교 가금분교 산악부 제자들과 함께 8월 1일, 요세미테 암벽을 오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 그렇듯 힘든 준비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 사전 예약한 랜트카를 빌려 요세미테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지만 급한 마음에 민준영 씨와 레인저 사무실을 찾으니 ‘FULL’ 이라는 메모만이 붙어 있다. 어쩔 수 없이 변전소 옆에 3동의 텐트를 치고 피곤한 몸을 눕혔다.
아침 일찍 서둘러 텐트를 걷고 레인저 사무실로 향했다. 야영장의 여유가 없어 우리 팀은 세 곳으로 나뉘어 텐트 터를 배정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요세미테의 8월 기후는 비가 올 확률이 없다는 정보에 전혀 우천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한국 여자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알고 보니 앨캡의 노즈를 등반하러 온 부부클라이머였다. 우리 텐트 옆으론 LA에서 오신 곽 선배님과 가족들이 와 있었다.
작은 야영장이 꼭 한인촌 같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국립공원 안에 있는 커버빌리지의 장비점과 요세미테빌리지에 들러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구입했다.
일찍 등반장비를 정리해 엘캡으로 향했다.
우리가 오를 루트는 ‘러킹 피어Lurking Fear·5.10a A2’로 정찰을 겸해 3피치까지 올라 로프를 고정시키고 야영지인 캠프4로 내려오기로 했다. 솔로등반을 위해 요세미테를 찾은 충북산악구조대의 김권래38세 씨는 조디악으로 향했고 우리는 엘캡 왼쪽 끝에 위치한 러킹 피어의 출발점까지 1시간 가량 무거운 장비와 물을 지고 올랐다.
한참을 올라 4급 정도의 바위벽을 만났다. 이 바위벽을 조심조심 100m 가량을 오르니 등반 시작점이다.
등반할 루트를 살피는 동안 거대한 엘캡의 위용에 기가 눌린다. 3일 전부터 내린 비 때문인지 출발점 인근의 작은 계곡에서 물이 흐른다.
캠프지에서 물을 지고 올라오지 않아도 이곳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 때문에 걱정했던 일이 도리어 도움을 주고 있었다. 비가 온 후라 생각보다 덥지 않아 등반에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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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세미테국립공원에 자리잡은 엘캡의 전경. 높이 3천m가 넘는 이 벽에는 현대 벽등반의 다양한 욕구들이 실현돼 왔다. |
우선 민준영31세·충북클라이밍연합회 등반대장과 박종성35세 지도위원이 1피치를 등반했다.
인공등반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1피치 등반 후, 민준영 등반대장은 2피치로 올랐고 이석희18세·이덕희17세·김영민17세 대원은 주마링으로 엘캡의 첫 바위를 올랐다.
민준영 등반대장이 3피치까지 오른 후, 이석희 대원이 1피치를 선등하기 시작했다. 난이도는 5.6급 정도로 20m를 오른 후, 볼트 길로 이어진 수직의 벽을 오른다. 중간 중간 훅을 사용해 등반해야 하는 데 거대한 벽의 중압감 때문인지 전진속도가 느리다. 한참만에 이석희 대원이 1피치를 끝낼 수 있었다. 이어 김영민 대원이 장비를 회수한 후, 하강해 캠프4로 돌아왔다.
캠프4에 돌아와 일정과 등반에 관한 논의에 들어갔다. 민준영 등반대장은 3피치까지 등반해보니 길이는 노즈보다 짧지만 기술적으로는 노즈보다 어렵다고 했다.
특히 이석희·김영민 대원의 선등 속도가 너무 느려 걱정이라고 했다. 원래 계획은 하루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 등반을 강행하기로 했다.
회의를 마치고 장엄한 엘캡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상품을 요세미테 우체국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장비와 식량을 점검하고 캠프4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인 등반을 위해 러킹페어 출발점으로 향했다. 전날보다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다. 등반대장인 민준영 씨와 박종성 대원이 고정로프를 이용해 3피치까지 오른 후, 4피치를 등반했다. 김영민·이석희 대원은 주마링으로 1피치를 오른 후, 김영민 대원의 선등으로 2피치를 자유등반했다. 중간 중간 훅을 사용해서인지 등반 속도가 생각보다 느리다.
등반대장이 5피치를 완료하고 하강할 때 쯤 김영민 대원도 2피치를 올랐다. 이석희 대원이 장비 회수를 마친 후, 다시 출발지점으로 내려가 비박준비에 나섰다. 출발지점의 좁은 장소에서 둘씩 짝을 지어 비박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민준영 등반대장과 상의해 계획을 일부 수정했다. 김영민·이석희 대원의 등반속도가 너무 느려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아 전 구간 선등하는 것을 포기하고 중간 중간 어려운 부분을 선등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6시 30분, 루트를 선등할 민준영·박종성·김영민 대원이 먼저 출발하고 이어 이덕희·이석희 대원이 따라 붙었다. 박연수40세 부대장을 비롯한 나머지 대원들은 홀링백을 끌어 올리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3피치 이후는 발 디딜 틈이 전혀 없는 수직의 벽이다. 피치 종료지점에 매달려 있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민준영 등반대장 외에 모든 대원들이 요세미테 등반이 처음이라 수직의 벽에 매달려 짐을 끌어 올리느라 애를 먹는다. 오후 3시, 민준영 등반대장과 김영민·박종성 대원이 캠과 너트를 사용해 10피치까지 루트 작업을 마쳤다.
우린 10피치 근처의 좁은 테라스 두 곳에서 포다리지를 이용해 비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홀링 작업이 늦어져 저녁 7시가 넘도록 5피치까지 짐을 올리는 데 그쳤다. 늦은 시간이지만 전 대원이 하강해 출발지점으로 내려왔다. 출발지점에서 비박을 할까 생각했으나 모두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라 캠프4로 철수했다.
캠프4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 무렵 조디악으로 솔로등반을 나섰던 김권래 씨가 캠프4로 돌아왔다. 야간등반을 감행하다 랜턴을 떨어뜨려 루트 중간에 매달려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가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온 것이다. 내일 우리 팀과 합류해 ‘러킹 피어’를 등반하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다들 피곤한 탓인지 9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캠프4를 출발했다. 캠프장에서의 휴식으로 어제보다 몸 상태가 좋아 보인다.
출발지점에 도착해 바로 등반을 시작했다. 민준영 등반대장과 김영민 대원은 3피치를 더 등반해 고정로프를 설치하기로 했다. 어제 작업해 놓은 10피치까지의 주마링 오름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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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세미테국립공원의 엘캡 정상에 오른 꿈나무원정대 대원들. |
우선 홀링백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개인 배낭에 짐을 옮겼다.
수직의 벽을 하루 종일 주마링하는 것도 정말 힘든 등반이다. 스텐스가 없는 피치 종료지점에 매달려 온종일 홀링 작업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홀링 작업이 이어졌으나 홀링 작업을 위해 매달아 놓은 태그라인이 크랙에 끼이면서 홀링백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10피치의 비박지에서 밤 12시가 넘도록 홀링 작업을 하다 포기하고 비박에 들어갔다. 2천m가 넘는 고도라 밤에는 무척 춥다. 침낭 하나로 2명씩 덮고 얇은 옷으로 끔찍한 밤을 보냈다. 어린 대원들이지만 힘들어도 아무 말 없이 참고 견딘다.
길고 긴 끔찍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밝았다. 이제 7피치 정도 등반을 하면 100명 정도가 비박할 수 있는 좋은 비박지다.
어린 대원들에게 비박지에서 족구 한판하자고 농담을 하며 등반을 부추겼다. 민준영 등반대장과 김영민 대원은 선등을 하기 위해 먼저 출발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어제 끌어올리지 못한 홀링백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이제는 홀링 작업도 조금 익숙해져 순조롭게 이어졌다.
12피치의 오버행을 넘어서니 설악산 천화대 암릉 같은 곳이다. 이제 등반이 쉬워지겠구나 했더니 14피치 이후론 수직의 암벽이다.
올라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대암벽이다. 16피치는 걸리등반 루트로 난이도가 높아 민준영 등반대장도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17피치 등반을 마치니 테라스에서 생각했던 족구장 같은 곳이 아닌 서너 명씩 잘 수 있는 공간이 길게 이어진다. 어제 비박한 테라스에 비하면 호텔 같은 곳이다. 일찍 등반을 끝내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홀링백을 끌어 올리고 나니 12가 넘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홀링백에 있던 물과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다음날 아침은 다들 ‘오늘은 등반을 마쳐야 한다’는 표정이다. 이제 2피치만 등반하면 ‘러킹 피어’의 본 등반은 끝난다. 이후 2백m의 슬랩을 등반하면 엘캡 정상이다. 오늘은 민준영 등반대장과 이석희 대원이 선등에 나섰다.
두 대원이 마지막 두 피치를 등반하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홀링 작업에 들어갔다. 등반이 끝날 때 쯤 되니 이젠 홀링에 익숙해져 순조롭게 척척 진행된다.
19피치 등반을 마치고 기쁨에 겨워 서로 얼싸안고 기념 촬영을 하고 바로 엘캡의 정상으로 향했다. 중간 중간 로프를 사용하며 200m정도의 슬랩을 올라서니 멀리 하프 돔이 보인다. 정상에는 누가 쌓았는지 모를 케른이 있었다.
우리도 케른을 쌓고 꿈나무원정대의 소원을 빌었다.
어린 이석희·이덕희·김영민 대원의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지난 시간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섰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