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금 마5;13절
팔복은 기독교인의 성격 묘사 하고 있다 -
그럼 이제 세상을 향해 기독교인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냐?
기독교인은 고립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속해 있지 않으나 그래도 세상에 있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은 세상과 관계을 가지고 있습니다.
벧전2장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소금[세상에 대한 기독교인의 성격]이 되기 위해서 “ 심령이 가난한자, 긍휼히 여기는자요, 온유한자요, 의를 따라 주리는면 목마른자”입니다.
우리는 어떤일을 해야 하는가?
“너희는 소금이다”” 기독교인은 세상에 대하여 소금처럼 사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즉 세상의 부패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은 죄로 타락하여 세상은 썻어진 상태에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타락하고, 사악하고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세상을 완전히 창조하셨지만
죄가 들어오면서 악하고 오염의 요소가 시작 되었다.
창세기“ 창6장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불결하고 오염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께서 홍수를 보내셔야 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사고 원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사고 계획이 “[부패의 성향,,,불결,오염,,] ,,,그리고 철처히 낙관론릉 가지고 있지만 비 성서적일뿐만 아니라 역사에서도 거짓으로 증명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세상 속에 거하지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 2:15)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인도자들은 교회를 세상 속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도우미로 바꾸어 “번영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복음의 핵심인“죄”의 심각성과 “회개”의 절실함을 전하는 교회가 점차 줄어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온 세상의 교회들이 그렇게 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바뀔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 일점 일획이라도 다 이루어 질 것입니다 (마 5:18). 왜냐하면 천지를 지으신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교회들이 변질되어 가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을 통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성경은“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 (유 1:8)”이 횡행할 것이고,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5)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곧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3-15)” 라는 에베소서의 말씀과 같이,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사람의 속임수에 요동치 않고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라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온 힘을 다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성경의 말씀으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딤후 3:16).
우리는 시편 73편을 기록한 아삽과 같은 생각을 떠올리 때가 존재합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 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편 73:12-13
우리는 종종 아삽과 같이 악인들의 삶이 가진 화려함과 풍족함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것들을 죄악 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심지어 우리 자신의 삶의 정직과 성실함이 무의미한 것처럼 여길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고뇌 가운데 아삽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깨달은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 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시편 73:18-19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이의 삶은 그 현재가 아름답고 찬란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인생의 결국은 어찌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전멸되어 사라지는 인생입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이름과 명성을 이 세상에서 날리며 살다가 안개와 같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인생처럼 부유하고 풍족해 보이던, 그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들의 삶의 종말이 얼마나 작고 초라 했었는지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오직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그 분 안에 거할 때에야 비로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너희만은 소금이라” 고 합니다.
주님은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 아무데도 쓸데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밝힐 것”입니다.
소금의 특성은 짜게 해야 한다. -선언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과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 가셨던 것처럼 세상과 명백히 달랐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소금의 특성 ]
1. 부패을 방지 합니다. 즉 ,,, 부패[정신·정치·사상·의식 등이 타락함]의 과정을 예방합니다.
소금은 음식 에 맛 없는 것을 방지 하는일을 합니다.
이 진술에 따르면 기독교 없이는 삶이 무미건조 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이것을 증명합니다. 특히 늟거나 임종시 ,,,,기독교가 없는 삶은 철처할 정도로 무미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들은 철처히 소금으로써의 작용을 해야 합니다. ,즉 소금의 기능을 다해야 합니다. 즉 모든 영역 에서 ,어떤 상황 에서 나 행하여져야 합니다.
참 기독교인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에서 그 주변에 영향을 주고 변화을 줍니다.
요셉 –창39; 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다니엘 –사자굴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다리오왕이...
6;25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소금은 본질 때문에 모든 것속으로 스며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속에 은사를 붙일 듯 일으키시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처럼 접촉하는 모든 사람 에게 영향을 줄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