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없는 빈총도 맞지 않은 것만 못한 법이다. 가뜩이나 살기가 팍팍한데 경천동지할 안보위협까지 겹쳐 국민의 가슴이 화석으로 변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처지가 불안심리에 시달리는 가연성 사회라 해도 최근에 불거진 북한의 전력은 확실히 겁난다. 굶주린 인민들은 누렇게 부황이 들었는데 최고 7~8개의 핵과 5000톤의 화학무기, 1000여문의 장사포가 우리를 겨냥하고 있다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한술더떠 전쟁이 나면 중국이 자동 개입해 지상군 40만명과 전투기 800대, 함정 150척이 동원된다니 결과는 속된 표현으로 '묻지마라 갑자생'이다.
심지어 남침 16일만에 수도권이 북측에 장악될 수 있다는 국감발언에 소스라치면서 라면이 동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스럽다.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 집단은 우리를 차로 졸치기식 해장거리로 간주하고있는 기막힌 상황이 가설만은 아니다. 상상만 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상황인데도 섣부른 미군철수니 국보법폐지니 하는 이상한 짓거리가 벌어지고 있어 억장이 무너진다. 말이 쉬워 자주국방이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호랑이 앞에서 웃통벗는 오기는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화섬산업 공멸은 막자
다시 본질문제로 돌아가 섬유산업의 주력인 화섬산업이 빙하기에 진입했다. 과거 재벌 축성의 지름길이었던 화섬업계와 대구 합섬직물 산지 다함께 공멸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원인을 따지면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세계의 공장 중국 앞에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지만 모든 것을 중국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만들면 팔리던 옛날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배급주거나 카피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와서 호떡집에 불난 듯이 소재개발이다 기술개발이다 하며 법석이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결과는 덩치큰 화섬산업이 간판 내리기 시작했고 대구 산지는 떡쌀 담그는 줄초상으로 사실상 산지 기능이 상실되기 시작했다.
대구가 최소한 합섬직물 산지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 5만대 규모의 혁신직기중 1만5000대 규모는 돌아가야 하지만 현실은 1만대 미만으로 떨어졌다. 과거 한국에 밀려 풍비박산이난 일본 후꾸이도 아직 1만2000대 규모가 가동되고 있는데 세계 최대산지라는 대구가 이모양 이꼴로 쪼그라든 것이다.
일본 원사메이커의 부단한 신소재 개발과 제직·염색업계의 특수 기술개발이 톱니바퀴를 이뤄 세계 기능성 섬유시장을 석권하고 있을 때 한국은 먼발치서 어줍잖은 카피에 매달리고 있다. 극소수 업체를 제외하고는 품질경쟁에서 일본과 상대가 안되고 가격에서는 중국과 게임이 안되는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우리 화섬산업 전반의 현주소인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안주했던 지난날의 타성을 벗어나기 위해 화섬이건 직물업계건 몸부림치고 있는 점을 평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소재를 비롯한 획기적인 제직과 염색가공기술을 개발해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 각사가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어 남아있는 업체들의 미래가 꼭 절망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우리내부의 스트림간 공조가 전혀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종간 공조를 통해 같이 살겠다는 기본상식마저 망각한 채 강자적 논리를 앞세워 앞공정쪽의 폭리를 위한 횡포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화섬기초원료를 생산하고 있는 유화업계의 폭리행진에 화섬원사와 대구 합섬직물업계가 실신상태에 빠졌다. 직물수출시장은 수년간의 장기불황으로 야드당 1~2센트에 벌벌 떨면서 적자수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기초원료가 폭등행진으로 화섬원사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고 원사메이커들은 원료가 반영을 제대로 못해 눈덩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작년한해 폴리에스테르 원사부문에서만 한기업이 최고 7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화섬업계의 경영상태가 바닥 밑으로 추락했다. 대구합섬직물업계의 부도 돌림병 후유증은 이미 도시전체를 회색으로 변모시킨 최악의 상황이다.
반대로 원료를 공급하는 유화업계는 돈을 갈퀴로 긁어 주체못할 흑자를 만끽하고 있다. 올 상반기 유화업계의 영업실적을 봐도 대부분 각사가 수천 억씩 영업이익을 내 작년 1년 수익을 앞지르고 있다. 콩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두부 값은 바닥 밑으로 떨어지다 보니 콩장사는 배터지고 두부장사는 배곯아 죽는 형국이다.
이런 불균형이 시정되지 않는 한 당면한 우리 화섬산업의 표류와 좌초는 끝이 없다. 유화업계 입장에서는 내수나 로컬가격이 국제가격에 비해 절대 비싸지 않다고 시장원리를 내세우지만 이것도 정도문제다. 국내 뒷공정이 죽고나면 그 많은 물량을 중국이 다 소화해줄리 없다. 중국의 석유화학 증설 속도를 볼 때 중국의 유화 자급도도 시간문제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스트림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지만, 고압적인 유화업계의 태도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화섬협회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산업자원부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해답이 없다.
유화폭리 폭발한다
사실상 산자부가 특정산업을 위해 가격문제에 개입할 경우 해당 업종의 반발을 우려한데다 자칫 공정거래법의 저촉을 겁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PTA와 MEG, 카프로락탐 등 원료가격은 초강세를 지속하면서 원사가격 인상을 유발하고, 결국 최종수요자인 대구 합섬직물 업계의 피골이 더욱 상접해졌다. 올들어 원사가격이 60% 올라 야드당 생산원가가 줄잡아 20% 인상한데 반해 원단가격은 평균 2.5%인상에 그치고 있으니 채산 악화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오죽하면 화섬업계나 직물업계가 설비나 직기를 돌려서 눈덩이 손해를 보는 것보다 가동을 중단하는 면이 낫다고 설비를 대거 세우는 참상이 벌어지겠는가.
급기야 유화업계의 폭리문제가 도마위에 오르면서 섬산연 차원에서 이문제에 본격개입을 준비하고 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11일 열리는 섬산연 회장단 회의에서 이같은 방침을 결정해 유화업계는 물론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전방위 공세를 강화할 계획이다.
얼마전 프라스틱업계가 유화업계의 횡포에 대항해 봉기직전에 산자부 중재로 조정됐듯이 이번에는 전 섬유업계가 봉기해 부도덕한 유화업계의 폭리횡포를 막기 위해 총력을 경주해야한다.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이대로 앉아 죽을 순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