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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이문재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 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 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계간『시작』(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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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이문재
봄이
새끼발가락 근처까지 왔다
내 안에 들어 있던
오랜 어린 날이
가만히 고개를 내민다
까치발을 하고 멀리 내다본다
봄날이 환하다
내 안에 들어 있던
오랜 죽음도 기지개를 켠다
내 안팎이
나의 태어남과 죽음이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있다
그리 낯설지 않다
봄날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흙냄새가 바람에
바람이 흙냄새에 얹혀진다
햇살이 봄날의 모든 곳으로
난반사한다 봄날의 모든 것이
햇볕을 반가워한다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우리 우리들이다
새끼발가락이 간지러운 이른 봄날
나는 이렇게 우리다
우리들이 이렇게 커질 때가 있다
―월간『유심』(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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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주는 여운]
찰나(刹那)의 시대
정환웅
카메라 폰 상시 휴대의 시대
순간의 포착은
어떤 시대보다 더 예리해졌다.
목련 스스로 부끄러운 순간마저도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진과 영상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
철가방 속의 배달 음식
하지만 계란탕으로
빈 속을 달래야 하는
우리의 몸은 여전히
옛날 그대로다.
우리의 봄날이 계란탕처럼
순해져야 할 이유다.
2021.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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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의 시대
정환웅
느림의 미학
정적(靜的) 서정의 시대
새끼발가락을 간질이는
봄날의 꿈틀댐.
생명의 기지개
흙냄새에 얹혀진 봄바람
난반사하는 햇살 속에서
까치발을 하고 내다보는
연초록 들판
파노라마로 스치는 유년의 회상(回想)
봄은 새싹이 새끼발가락을
간지럽히는 계절
봄날에는 나도 우리가 되어
이렇게 커간다.
봄날의 예민한 촉수는
느려터진 맨발바닥으로
흙을 밟을 때라야
작동하는 것을...
2021.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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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 사랑의 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