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누가복음 2:28~33
이번 주 수요일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 예배에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께서 세상에 오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함께 살펴보고 그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는 복된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기 전 유대인 사회에서는 메시야 그리스도의 탄생을 갈망하는 기운이 충만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그리스도가 자기들 가운데 태어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자기 품에 안고서 기도했던 선지자 스므온의 고백에서 그리스도를 대망하였던 유대인들의 간절함을 알 수 있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누가복음 2:29~32)
시므온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렸으면 아기 예수님을 뵙자 이제야 자기를 하나님께서 마음의 속박을 풀고 평안히 놓아주신다고 기도했겠습니까?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그 후 삼십년이 지나서 예수님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이 나타나 사역함으로 인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 세례 요한이 혹시나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는 기대감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누가복음 3:15 말씀에 그러한 유대 민중들의 바람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그런데 이처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있었던 것은 근거 없는 일방적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장차 보낼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하여 예고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도 그의 후손 중에 만민의 복이 되는 씨를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이삭과 결혼하러 리브가를 보낼 때 그 가족들도 축복하기를,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원수의 성문을 얻는 씨’는 곧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여자의 후손 곧 장차 원수 마귀의 머리를 깨뜨릴 자이신 그리스도를 상기시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큰 민족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구출하여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많은 징계의 채찍을 맞았습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을 배신하고 주변 족속들이 섬기는 우상 숭배를 범하고 잡신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 선지자들을 보내어 계속하여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그 나라의 죄악과 타락을 없애고 공의와 공법을 시행할 것을 거듭 요청하였지만 그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계속하여 예고하셨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의 말씀 속에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과 그의 사역에 대하여 예고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지만 오늘 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서만 예를 들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7:14 말씀에 기록되어 있기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9:2~7 말씀에 이르기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추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그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맨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32:1,2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42:1~4에서도 이르기를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53:1~3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55:3~5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인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나니 보라 네게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61:1~3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이사야 선지자 한 사람의 글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유다에게 장차 그리스도를 보낼 것인데, 그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한 아기요, 의의 종이요 대속의 고난을 당할 여호와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또 다른 호칭인 다윗 곧 기름부음을 받을 왕으로서 보낼 것이라는 예언을 여러 번에 걸쳐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 외에도 선지자 예레미야, 에스겔, 미가 등 다른 선지자들의 말씀들과 또 다윗 왕이 기록한 수많은 그의 시편 속에서 계속하여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예언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의 혼돈 속에서,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 아래 신음하면서, 또한 이방 민족의 압제 아래 시달리면서, 그 약속된 그리스도가 자기들에게 태어나실 것을 늘 기대하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 나라에게 침략을 당하며 내부의 악과 부패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 그리스도가 오시면 다윗 왕국의 영광을 다시금 회복하여 이방 나라의 압제에서 벗어나며 그 나라 안에 공의와 공법이 강같이 물 같이 흐르게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가 오시어 나라에 정의와 인애가 이루어지고 화평이 가득차서 더 이상 부패한 왕과 신하들과 타락한 제사장과 거짓 선지자들과 사회의 강포한 자들로부터 받는 시달림에서 벗어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늘 이방 나라에게 짓밟혀진 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여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다윗과 솔로몬 시대처럼 열방 가운데 우뚝 선 영광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 커다란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 시절과 그들이 그 후 가나안 고토로 돌아온 뒤에 페르시아 지배 아래 거할 때와 그 후 알렉산더와 후계자들의 왕국 치하에서나 그 후에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을 때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며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낸다는 약속을 단지 유다 민족만을 위하여 보낸다고 예고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선민 유다만을 위하여 오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 만민들을 구원하는 자로서 오시는 분으로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42:6 이하의 말씀만 보아도 이렇게 예언한 바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이사야 42:6~9)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면 만민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들로 부름을 받을 것이라고 이사야 19장에 이렇게 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당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이사야 19:19~25)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어 이방의 빛으로 삼겠다고 예고하셨으며, 그리스도가 오신 그 날에 애굽과 앗수르도 이스라엘과 더불어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며 복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면 세계 만민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이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단지 이스라엘과 유다만을 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고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오셔야 하는 분으로 하나님은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만민을 위하여 오셔야 하는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 속에서도 분명히 밝혀주는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 이사야 7장에서 그리스도가 처녀에게 잉태될 것이라는 표적을 주실 것이라는 예언이 주어진 맥락을 보면, 당시 남 유다 아하스 왕 때인데 그 때 북 이스라엘 왕국 베가 왕과 아람 나라의 르신 왕이 동맹을 맺고 남 왕국을 침공해들어오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의 참혹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때에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임마누엘 그리스도를 처녀의 몸에 태어나게 해주실 것이라고 예고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전쟁이라는 상황은 인간이 겪는 여러 재앙 중에 참으로 끔찍하고 슬프고 두려운 경험 아닙니까? 그 두렵고 떨리는 상황이 이스라엘 역사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얼마나 많이 일어났습니까? 가나안 땅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많은 전쟁을 겪었습니까? 모압, 암몬, 아람, 블레셋, 아말렉, 에돔, 아라비아, 애굽, 앗수르, 바벨론, 알렉산더의 그리스 군대와 그 후계자들의 시리아 왕국과 로마 제국의 군대가 그 땅을 수없이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주님 오신 후 이천년이 지나 다시 건국된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서도 많은 전쟁을 치렀으니, 그들은 1960년대에 이집트와 시리아 등과 여러 차례 전쟁했고 이번에도 레바논의 무장 정파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그리고 이란과 저 남쪽 예멘 반군과의 지속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역사를 돌아보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그 후에 이천년 동안 세계 각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전쟁이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지난 세만 돌아봐도,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유럽에서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독일과 프랑스 접경 참호에서 무참하게 죽어갔으며, 2차 세계 대전에서도 동서양의 수백 만 명의 젊은이들이 각처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의 전쟁터에서도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과 수백 수천 만 명의 민간인들이 죽음과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전쟁의 동기는 인간의 이기심과 자만심과 경쟁심입니다. 민족적인 우월의식 때문입니다. 본래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한 혈통에서 난 형제 자매들인데, 죄와 이기심이 지구상에서 인간들끼리의 전쟁을 계속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전쟁을 그치고 평화를 가져올 위대한 인물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는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것은 인간의 내면을 교육한다고 오지 않습니다. 그러한 완전한 평화는 인간의 죄성을 완전히 바꾸고 전쟁을 완전히 없애는 일이 일어날 때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을 이루실 자는 온 세상의 왕이 되시는 자요 인간의 모든 죄를 청산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죄성을 없애고 사람의 마음 속에 미움과 원한을 없애고 참된 사랑과 용서와 평화의 마음을 베푸는 자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일을 하실 자가 그리스도라고 하나님은 예고하셨으니, 선지자 이사야 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2~4)
그리고 이사야 9:6,7 말씀에서 예고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11장에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바로 그러한 위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인데 그의 통치하에서 평화의 세상이 마침내 다가올 것이라고 목가적인 어휘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이사야 11:6~10)
이러한 말씀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기다릴 분명한 이유 중에 하나가 선명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으로서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며 전쟁을 온전히 그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더 이상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더 이상 서로 죽이고 피 흘리고 압제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온 세상 모든 사람들과 나라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사랑과 평화 가운데 살게 되는 날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가올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면 전쟁이 없어지고 온 세상이 공의와 공법이 물같이 흐를 뿐 아니라 더 큰 일도 일어날 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을 절망 속으로 밀어넣는 사망과 슬픔이 완전히 꺾일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이사야 25:6 말씀 이하에 이렇게 예고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이사야 25:6~8)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면 그가 풍성한 기쁨과 만족의 세상을 가져올 것이며 슬픔이 영원히 달아날 것이며 눈물을 그 얼굴에서 다 씻어낼 것이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입니까? 이것은 모든 사람이 절실하게 바라는 소망이 아닙니까? 우리의 주변에서 사람들은 날마다 죽음의 덫에 걸려 늙고 병들어 죽고 있으며, 젊은이들도 사고로 죽고 절망 중에 죽고 어린아이들도 연약함 때문에 죽어가며 슬픔 속에 세상 많은 이들이 남몰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러한 인생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으니, 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유다 민족만의 소망이 아니라 온 인류의 참 소망이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의 기다림이 쌓인 끝에 이천년 전 다윗의 동네인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 동네에 처녀 마리아의 몸에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으니,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예고하셨던 그리스도의 탄생의 약속이 마침내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 밤 천사들도 베들레헴 들판의 목자들에게 찾아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큰 소리로 찬양하고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그토록 기다리던 평화의 왕이 세상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영원히 닦아주실 분, 다시는 전쟁도 없고 악한 자들도 없고, 사망도 없고, 밤이 없는 영원한 평화와 행복과 사랑과 생명이 충만한 나라, 다시는 재앙이 없는 상춘의 나라를 만민들에게 가져다 주실 구주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더욱 커진 불확실성 속에서 진동하고 있습니다. 자연 재앙은 점점 강력해지고, 전쟁 에너지도 커지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활개를 치고 세상은 더 험해져서 사람들은 지치고 답답하고 분노와 슬픔과 근심과 두려움과 질병과 연약함과 실망과 마음의 상처 속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럴 때에 이스라엘의 구원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로 이천년 전에 세상에 오셨다가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께 믿음과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줄 모릅니다. 그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다시 세상에 오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가 약속하신 모든 것들이 마침내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진동하고 있는 세상에 살면서 이제 다시는 진동하지 아니할 나라 곧 영원한 영광과 생명과 평화와 행복의 나라를 우리에게 가져오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기다림의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가 친히 이렇게 속히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 말씀에,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님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인사말로 “마라나 싸”(고린도전서 16:23) 혹은 “마란 아싸”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우리 주께서 오십니다.”, 혹은 “우리 주님, 오시옵소서”라는 뜻을 가진 인사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아담과 하와 이래로 언제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앙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약속대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천년 전에 예루살렘 아래 작은 성 베들레헴 다윗의 성읍에 태어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천년 오신 우리 주님을 기념하는 이 성탄 주간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영광의 하나님 곁을 떠나 우리를 구하시려 이 세상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기억하여 감사하며 기뻐하면서,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을 열렬히 기다리는 이 복된 소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그리고 전쟁과 슬픔과 눈물과 근심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성탄절에 영원한 평강의 왕이 이미 태어나셨음을 알립시다. 그들에게 이 성탄절의 의미를 바로 알려주고 이 기쁨과 크신 축복을 그들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전도하며 열렬하게 주님의 몸된 교회로 인도해들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