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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의 핵추진 순양함 롱비치의 순항 모습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은 스마트폰처럼 성능이 뛰어나지만 크기는 오히려 작아진 제품들을 실용화시킬 수 있었다. 이점은 군사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예전에는 여러 사람이나 커다란 장비로 할 수 있었던 임무를 보다 적은 인력과 작은 크기의 장비로 대체하는 사례가 흔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중폭격기 편대에 의한 대대적인 융단폭격보다 스텔스 폭격기에 탑재한 1방의 GBU가 더욱 효과적이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같은 효과를 내지만 크기와 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은, 또는 크기와 무게는 차이가 없지만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무기의 보유와 사용에 이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은 갖지 못한 최신예 무기를 보유한 것처럼 전력의 우위를 쉽게 알려주는 지표도 드물다. 당연히 첨단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최신예 무기나 장비를 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무기의 크기가 커지는 경우도 왕왕 벌어진다. 당대의 기술로 군에서 요구하는 앞선 성능을 발휘하려다 보니 크기나 무게를 줄일 수 없고 오히려 늘려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도 그때까지 완성된 기술력을 초월할 수는 없고, 더불어 무기의 경우는 안정성도 중요하므로 전시처럼 급박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래 전에 개발되었어도 안정성이 검증된 기술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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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롱비치의 특징인 가분수 모습을 연출한 위상배열레이더
사실 유사 이래 무기의 크기나 무게를 작게 하려는 시도는 항상 있어왔다. 하지만 그때까지 완성되고 입증 된 기술로만 성능을 구현하다 보니, 지금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20여 년 전의 핸드폰처럼 어쩔 수 없이 무기의 크기나 모양이 이상한 경우도 종종 발생하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예라면 세계 최초의 핵 추진 순양함이었던 CGN-9 롱비치(Long Beach, 이하 롱비치)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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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초의 핵추진 함대인 Task Force 1의 항해 모습(위로부터 베인브리지, 롱비치, 엔터프라이즈)
핵이 찬양받던 시절
1945년 핵폭탄이 실전에 사용되자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모두가 놀랐다. 굳이 엄청난 피를 흘려가며 전선에서 밀고 당길 필요 없이 핵무기로 상대방을 한 방에 굴복시킬 수 있는 핵 만능주의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냉전의 시작과 더불어 더욱 활성화되었는데, 이를 선도한 미국이나 소련 모두 나중에 이것이 엄청난 부담이 될 줄은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세월이 흘러 서로를 수십 번 파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음에도 경쟁은 그치지 않았다. 이처럼 핵 균형을 통하여 아슬아슬하게 평화를 이어갔지만 그러한 상황이 전쟁 못지않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현재는 군축을 통하여 위험이 많이 줄었고 냉전체제도 해체되었지만 근본적인 위험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살상 무기로써 먼저 이용되어서 그렇지 원자력은 새로운 가능성도 함께 보여주었다.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한 미지의 차세대 동력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비록 방사능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절반 정도를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사용하기에 따라 원자력은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력원으로써의 기술조차도 인간들은 무기에 적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핵 추진을 이용한 함선이었다.
핵 추진은 제작과 유지보수에 많은 비용이 들지만 함정에게 이만큼 효율적인 동력기관도 없다. 특히 대양에서 장기간 작전을 펼쳐야 하는 항공모함이나 수중에 계속 잠항하여야 위력이 배가되는 잠수함에게 최고의 동력원이라 할 수 있다. 핵 추진을 이용하면 장기간 보급 없이 작전을 펼칠 수 있고 연료를 탑재할 공간을 전투용으로 전용할 수도 있다. 무기에 즉시 적용할 수 있는 이러한 장점이 눈에 들어 오자 인간은 결코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최초의 핵 추진 순양함
1954년 취역한 SSN-571 노틸러스(Nautilus)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은 수상함에도 핵 추진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핵을 이용한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찼던 미국은 이론적으로 연료의 재보급이 영구히 필요 없는 새로운 개념의 전략함대 창설을 구상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50년대 중반부터 핵 추진으로 기동하는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의 제작에 착수하였다.
제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거함거포주의 시대가 막을 내린 대신 미사일로 중무장한 순양함이 새로운 해양 전력의 핵심으로 부상하였는데, 이러한 새로운 사조에 발맞추어 1957년 제작에 들어가 1961년 취역한 최초의 핵 추진 수상함이 바로 롱비치다. 2기의 C1W 가압수로형 원자로는 8만 마력의 힘을 낼 수 있고 최대 속도 30노트로 운항이 가능하였지만 그 보다 이전의 전투함과 비교할 수 없는 항속거리를 자랑하였다.
그 이듬해 최초의 핵 추진 항공모함 CVN-65 엔터프라이즈(Enterprise)가 건조되면서 본격적인 핵 추진함대의 초석이 놓였지만, 롱비치와 엔터프라이즈의 건조에 기존함보다 무려 3~4배가 넘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면서 후속함 건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냉전시기의 돈 많은 미국이라도 마구 건조할 수 없었을 만큼, 당시까지 핵 추진 방식이 비용 대 효과가 어느 정도나 뛰어난 것인지 아직 자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1962년 쿠바 사태가 벌어지면서 롱비치는 그 해 취역한 최초의 핵 추진 구축함인 DLGN-25 베인브리지(Bainbridge)와 함께 엔터프라이즈를 호위하여 지중해까지 무보급으로 긴급 전개하는 경이적인 위력을 발휘하였다. 이때 엔터프라이즈, 롱비치, 베인브리지로 구성 된 제1특별임무대(Task Force 1)는 사상 최초의 핵 추진 함대로 전 세계에 그 위력을 자랑을 자랑하였다. 해군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였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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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상 최초로 실전에서 격추를 달성한 탈로스 함대공 미사일
특징적인 모습을 가져온 신기술
롱비치는 1968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조기경보 레이더로 MiG-17 편대를 포착한 후 그 중 한 기를 탈로스(Talos) 대공미사일에 격추시켰는데, 이는 사상 최초의 함대공 미사일에 의한 요격 전과다. 그런데 롱비치는 이러한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전투함이다. 아마도 너무나도 유명한 엔터프라이즈와 거의 동시에 데뷔하여 극적인 요소가 반감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인들의 관심 밖으로 남아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 못생긴 엄청난 가분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군에서 사용하는 무기가 굳이 잘생길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관심을 가져야 존재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못생겼다면 당연히 많은 이들이 기억하기 힘들다. 롱비치는 탄생 당시에도 그랬지만 설령 지금 처음 모습을 본 사람이라도 느끼는 첫인상이 백이면 백, 모두 같을 만큼 특징적인 가분수다.
마치 측면에서 거대한 파도가 닥치면 균형을 잃고 곧바로 뒤집힐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마스트 때문인데, 이와 같이 언밸런스 한 모습의 거대한 마스트 구조를 갖게 된 이유는 최초의 함정용 위상배열레이더였던 SPS-32/SPS-33 SCANFAR 때문이다. 엔터프라이즈와 롱비치는 해당 분야에서 최초의 핵추진함이라는 점 이외에도 최초의 함정용 위상배열레이더를 탑재하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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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의 함대공 미사일인 RIM-2 테리어를 시험 발사하는 롱비치
이 레이더는 거대한 엔터프라이즈에서는 어느 정도 용서(?)가 되는 크기였으나 성능과는 별개로 롱비치가 흉악한 모습을 갖도록 만들어 버린 결정타였다. 실제로 48톤의 SPS-32와 120톤의 SPS-33을 롱비치에 탑재하는데 많은 난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 언급하였던 것처럼 최고의 레이더였지만 당대 기술로써 더 이상 크기를 줄일 수 없어서 벌어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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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역 직전의 모습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다
당시 엔터프라이즈와 롱비치를 제작한 이들은 핵 추진 못지않은 여러 기술들을 도입하려 애썼고 그 중 하나가 오늘날 대세가 된 위상배열레이더였다. 그런데 문제는 진공관을 사용하던 1950년대 기술로 완벽하게 작동이 되고 크기도 콤팩트 한 위상배열레이더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롱비치를 대두마왕으로 만들어 버린 SPS-32/SPS-33은 시도 때도 없이 툭하면 고장이 나 신뢰성이 거의 빵점 취급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SPS-12 레이더를 마스트에 장착해 임시적으로 사용하다가 SPS-48/49로 최종 교체해 버렸다. 한마디로 무리하게 당대를 뛰어넘으려다 보니 당시까지의 기술력으로는 모양도 볼품없고 기능도 별로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이후 트럭스턴 (Truxtun)급 등 새로운 핵 추진 순양함이 건조되어 핵 추진의 유용함은 여전히 입증이 되었으나 대두를 상징하는 SPS-32/SPS-33은 롱비치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자동차 배터리 정도 크기의 초창기 이동전화를 떼어놓고 오늘날 스마트폰을 논할 수 없듯이, 비록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롱비치에 장착되었던 최초의 위상배열레이더는 오늘날 SPY-1 레이더의 출현에 귀중한 기여를 하였다. 이렇게 한 시대를 선도하였던 롱비치는 1995년에 일선에서 퇴역했으며 현재는 브레머튼(Bremerton)에 정박하면서 해체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동 시기에 항공모함의 역사를 새로 쓴 엔터프라이즈만큼은 아니지만 롱비치 또한 세계 해군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기념비적 함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의욕이 너무 앞서서 실험적으로 이것저것 시도된 흔적이 많아 못생긴 대두로 각인이 되었지만 롱비치는 시대를 선도하였던 괴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제원
배수량 17,525톤(만재) / 길이 219m / 폭 22.3m / 속력 30노트 / 승조원 870명 무장 (최종 개수 기준) 스탠더드 ER 함대공 미사일 / Mk16 8연장 아스록 발사관 1문 / 4연장 하푼 발사관 2문 / 2연장 토마호크 ASM/LAM 발사관 1문 / Mk46 3연장 어뢰 발사관 2문 / 5인치 함포 1문 / 20mm 팰렁스 CIWS 2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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