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장대비가 쏟아지면 봉창으로 물 들쳐질까봐 걱정한 이력이 한 번 쯤 있을 것입니다. 창문은 그렇다치고 쓰레기 배출 날짜 하나 딱딱 못 맞춰 일하다 말고 오피스텔에 다녀오는 건 거의 치매 수준입니다. 누가요? 제가요. 장대비 가운데 겨우 5시간 마감을 쳤는데도 피로도가 높아 늦잠을 잤고 오늘 트래킹은 자동 취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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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인 오늘 아내와 첫 선을 본 날 입니다(90년 7.17). 당산 역 근처 어느 레스토랑에서 맞선을 봤고 중매장이(김영성)를 따돌리고 2호선 전철을 탔을 것입니다. 단발머리 그녀는 예뻤습니다. 우리시대는 단발머리(조용필)만으로도 50점을 먹고 들어갔다는 것 아닙니까? 민해경의 짧은 단발도 아직까지 로망으로 남아있습니다. “비가 온다 안 온다.“ 에 만원을 건 내기를 하였는데 아마도 비가 왔을 것입니다. 만원을 왜 안 주냐고 치대지 않았어요. 아내가 알아서 대학로에서 밥을 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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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타고 이태원에 있는 “라코스테“를 갔고 새벽1시쯤에 헤어졌습니다. 1990년 이태원은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가장 핫한 도시였다는 것 아닙니까? 그날 이후 썸 타는 기간이 6개월 쯤 되었고, 에스더를 임신한 딸의 약혼식을 장모님이 서둘러 거행했습니다(만리성). 91.5.25. 청년들의 섬김을 받고 성석 교회(양계성목사)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당일에 진행하는 창경궁 우중 야외 촬영부터 들러리 행사, 그리고 제주도 신혼여행까지 한 방에 다 치르면서 정신이 홀라당 나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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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결혼은 정신이 홀라당 나가야 하는 거라고 하더이다. 첫 만남-낭만적인 키스-대학로 연극-진수 유미와의 갈등-아내의 거침 없는 말투, 1년 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잘한 갈등을 한 것 같긴 한데 왜 더 장고하지 않고 결혼을 서둘렀는지 아쉽습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에스더를 임신한 것입니다. 혼전 임신을 왜하냐고? 우 씨, 내 나이 스물여섯, 뭘 알았겠습니까? 하기야 서툴지 않으면 청춘도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뒷뻑을, 연애의 정석은 아니어도 에예공을 선물로 받았고 17년을 오롯이 사랑했으니, 미련도 후회도 없다고. 우씨, 근데 왜 외로운 거야?
2024.7.17.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