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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문
종범스님_ 현상은 오고감이 있지만 진실상은 오고감 이없다 [큰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Buddhastudy 2021. 2. 19. 20:20
안녕하십니까
오늘 법문은 불기 2563년 기해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부처님 오심을 봉축합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봉축법문이라고 그러니까
무슨 특별법문같이 생각이 되어서 조금 평소하고 다르긴 합니다마는
다를게 하나도 없죠.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봉축법문입니다.
어느 절에 가나 또 어떤 공양을 올릴 때나. 어떤 기도를 할 때나
항상 부처님을 칭량찬탄하는 게송이 있는데요
언제나 하는 게송이에요.
그 게송이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一切無有如佛者일체우유여불자
이런 게송이거든요.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하늘 위 하늘 아래 부처님 같으신 분 없으시네)
하늘 위에나 하늘 밑에나 부처님 같은 분이 없고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시방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비교할 만한 이 없고)
시방세계 우주 곳곳 어디를 봐도 부처님과 비교될 만한 분은 없다.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세간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보니)
세간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보니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일체 어떤 이도 부처님 같은 분 없네)
일체가 어떤 것도 여불자_부처님과 같은 분은 무유_없다.
이 게송이 경전에도 있고 용수보살 대 지도론에도 있어서 항상 독송을 하게 되고
공양을 올릴 때나 예경을 올릴 때나 축원을 할 때나 늘 하는 게
이 찬불 게송이에요.
그럼 봉축이라는 건 뭐냐?
봉축은 받든다. 받들 봉, 축은 올린다, 빌 축. 받들어 올린다.
받들어 올리는 게 뭐냐?
칭량하고 칭량이라는 것은 말로써 자꾸 드날린다는 뜻이에요.
칭송하고 선양하고 찬탄하고. 이걸 줄이면 칭찬이죠. 칭량 찬탄
예경하고 예배 경공
헌공하고 공양을 올리고
축원하고 원하는 것을 주_말씀을 올리고
서원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서원으로 표현하는 게
이걸 전부 합쳐서 봉축이라고 합니다.
칭량, 칭송, 찬탄, 예경, 공양, 축원, 서원, 이런 것을 하는 걸 봉축이라고 그래요.
부처님 오신 걸 이렇게 봉축한다.
그래서 봉축절이라 이렇게 말씀을 드리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부처님을 예경하고 공경하고 축원할 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이렇게 예경을 하거든요.
이 삼신이 원융하고 융통하고 무해해서
항상 삼신이 함께 계세요.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이
삼불이 원융하고, 삼불이 용통해서, 삼불이 자제하고 삼불이 함께 실현해서 나타나서
늘 함께 하는 것이
삼불원융
불신무애(걸림이나 장애가 없다)
불신신통(신묘하고 자유자재하다)
불신현모(현현하고 미묘하다)
이 3개가 부처님의 세계에요.
그러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상주법계(항상 머무는 법의 세계)
상주법계라고 하는 것은 지혜로서 알 수 있는 법계인데요.
생로병사가 없어요. 상주법계는.
실상여래(진실상으로 계시는 여래)
불이라고도 하고 여래라고도 하고 같은 부처님의 명칭이거든요.
상주법계 실상여래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그래요.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해가 지는데, 밤낮이 분명하죠.
그런데 실제 태양에는 밤낮이 없어요.
밤낮 없는 세계를 상주법계라고 그래요.
우리가 의식으로 알 때는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는데
지혜로 보면 상주법계에요.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거예요.
그 상주법계, 현상은 오고감이 있는데 진실상에는 오고감이 없다.
그걸 실상이라고 그래요.
그 부처님을 실상여래라고 하거든요.
상주법계 실상여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이것도 석 자로 표현하는 명칭이 있는데요
이 부처님을 크다는 큰 대, 고요하다는 고요 적, 부처님 불,
대적불이라고 그래요.
절에 가면 대적전(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을 모시는 법당)이라는 현판이 있어요. 대적전.
대적인 거예요. 크게 고요한 거예요. 대적.
그럼 이걸 전부 합치면 어떻게 되냐?
대적불, 상주법계 실사여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이렇게 되는 거예요.
대적불이시여,
상주법계 실상여래시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시여.
이렇게 예경을 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원만보신 노사나불,
원만한 보답으로든 부처님이 노사나불이다.
원만보신 노사나불이 뭐냐하면
지혜광명 보조여래(지혜광명을 널리 비추는 여래) 지혜광명이 넓을 조, 비출 조, 널리 비추는 여래다.
지혜광명이 이 세상 어디에나 비추어지지 않는 곳이 없이 널리널리 비추어지는 여래를 노사나불이라고 그런다.
원만보신 노사나불인데,
원만보신 노사나불은 지혜광명 보조여래.
그럼 이 지혜광명 보조여래는 평상시에는 뭐라고 그러냐?
대웅불이라고 그래요. 큰 대, 웅장할 웅. 대웅.
절에 가면 대웅전 항상 보잖아요. 보신여래를 모셨다. 이 소리예요.
그 보신 여래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 ‘깨달음을 얻은 보답’이 ‘지혜’로 나타나요.
그래서 부처님의 보신이라고 그래요.
깨달음을 얻은 보답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번뇌망상이었는데,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대적불
상주법계 실상여래를 깨닫는 순간에 번뇌망상이 지혜광명이 되는 거예요.
그걸 보신이라고 그래요.
깨달은 보답이 무궁무진한 거예요.
번뇌망상이 지혜광명이 된다. 그게 보신이죠.
깨달음이 없으면 그 깨달은 보답이 없을 거 아니에요?
깨달은 보답이 없으면 뭐냐? 번뇌망상이에요.
지혜광명 보조여래다. 지혜광명이 널리 비추어지는
또 지혜광명을 비추지 않는 곳이 없이 널리널리 모두 비추는 여래를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고 그러는데
그 부처님을 지혜가 너무 웅장하기 때문에 대웅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대웅불, 지혜광명 보조여래, 원만보신 노사나불 이렇게 되요.
대적불, 대웅불,
세 번째는 대비불_크게 자비로운 부처님 큰 대, 자비로울 비, 부처님 불
이 대비불은 팔상성도(8가지로 도를 이루어서)
현상여래(모습을 나타내는 여래)
천백억화신으로 모습을 보이신 석가모니불이다.
이런 세계가 부처님의 세계에요.
부처님의 세계는 대적불, 대웅불, 대비불이 부처님인데
대적불은 상주법계 실상여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대웅불은 지혜광명 보조여래, 원만보신 노사나불
대비불은 팔상성도 현상여래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뭐 이렇게 됐단 말이에요.
그러면 부처님이 보이신 석가여래팔상성도
이것이 오늘 봉축법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루는데요
석가여래께서 천백억화신을 나타내는 그 방향으로
8가지 행위, 8가지 모습
상이라고 하는 거는 상호라는 상 자인데
행위도 상이라고 그러고 모습도 상이라고 그러고
이걸 줄여서 행상이라고 그래요. 행상.
행할 때는 모습이 있고요, 모습이 있으면 행이 있어요. 행상.
그러면 부처님이 팔상성도를 어떻게 이뤘냐?
1. 도솔래의상(탄생을 위하여 도솔천에서 온다)
도솔_천상의 이름, 발음할 때 는 도솔도솔 그러는데,
이걸 컴퓨터로 찾으려면 두자에서 찾아야 되요. 두 자에서 찾아야 나와요. 불교한자음이 다른 게 많아요.
도솔이라는 말은 지족이라는 말이에요. 만족함을 안다. 지족천인데
래의_올래, 의식이라는 거동 의,
래의가 뭐냐? 거동 의자를 찾아보면
의는 래야, 온다는 글자에요. 의식이라는 의 자도 되고 올 의 자도 되요.
래의_온다. 이 소리에요.
이걸 기록할 때 인도말로 중국말로 기록할 때 전부 한문의 대가들이 이걸 수정을 해서 이렇게 된 거예요.
엄청난 그 당시의 지식문화가 불교경전에 들어와 있더라고.
한문 공부를 안해보면 모르는데요, 저게 어떻게 저렇게 됐을지라고 할수록
중국에 한문학자들이 여기에 동원이 되었구나라는 걸 알 수 있거든요.
의 자를 온다고 잘 돼요. 용어만 있지.
도솔천에서 온다. 그럼 온다는 말은 뭐냐?
도솔천에서 하강한다는 뜻이에요. 도솔하강.
2. 비람강생상(바람에서 태어나다)
그다음은 비람강생상인데, 비람에서 났다 이 말인데,
비람이라는 것은 룸비니 동산을 말하는데
룸비니 동산은 인간세상이거든요.
인간이라고 하는 건 하나하나 사람도 인간이라고 그러는데
사람이 사는 장소도 인간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천상에서 하강하여 인간으로 태어났다.
이게 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이거든요.
그럼 여기에 엄청난 의미가 있는데
도솔천은 아쉬운 게 하나도 없어요.
모든 게 만족할 뿐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있지 않고 사바세계, 인간세상으로 온 거예요.
인간세상에는 선업을 지으면 선업을 받지만 선업을 안 지으면 선업 못 받아요.
하는대로 받는게 인간세상이거든요.
그런데 석가모니께서 즐거움만 즐거움만 받는 도솔천에서
선업은 선보, 악업은 악보로 받는 인간세상으로 내려오셨다.
이거는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왜그러냐하면 인간은 받는데 행복한게 아니라 이루는데 행복한 거예요.
이거 아주, 이것만 오늘 알아도 봉축 잘하는 거예요.
받는데서 행복하지 않고
이루는데서 행복하다.
그게 심리적으로 뭐가 있느냐면요, 그런게 있어요
반복해서 소비를 하면 효용이 감소하고
아무리 처음에는 좋았던 것도 계속 반복해서 소비하면 나중에 효용이 감소해서 좋지 않아요.
이래서 부자가 되면 자식교육을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이 99%가 되는거에요.
1%는 돌연변이가 실패 안하지 100% 다 실패해요.
왜 그러냐하면 처음부터 좋은 걸 자꾸 소비하게 하면 그게 안 좋아져요.
석 달만 소비하면 석 달부터는 안좋아져서 점점 새로운 걸 찾게 되요.
그래서 그것도 새로운 거 찾아 또 안좋아져서 나중에는 험한 길로 빠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게 반복소비 효과감소라는 거예요.
그러니 석가모니가 이거 알고
받는 것만으로는 안되겠다. 그래서 하강하신 것에요.
왜 열을 올리지? 여기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