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일 사순 제2주일 미사 강론
- 거룩한 변모, 우리도 변화할 수 있는 은총의 시기 -
변화 속에서 찾은 영원한 희망: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와 우리의 삶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건강과 젊음, 그리고 한때 누렸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하느님을 마주할 날을 기다리는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욕심,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 그리고 이기적인 본성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우리 안의 좁고 굳은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우리 마음에 한 줄기 빛을 비추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입니다.
거룩한 변모: 구약의 완성, 구원의 예고
예수님께서는 가장 신뢰하시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하얗게 변모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눈부신 광경에 황홀경에 빠졌을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구약을 대표하는 두 인물,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의미:
모세는 율법을 제정한 인물로, 유대인들에게 구약의 중심 인물입니다.
엘리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 중의 예언자입니다.
이 두 인물의 등장은 구약 성경의 율법서와 예언서를 예수님께서 완성하신다는 표징입니다.
이 황홀한 순간에 베드로는 이곳에 머물고 싶어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합니다. 마치 우리가 인생에서 행복하고 모든 것이 잘 풀릴 때,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음성: "내 사랑하는 아들, 그의 말을 들어라"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고, 그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 음성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순명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실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으로 닫힌 에덴동산의 문을 다시 열고, 악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 어린양으로 바쳐질 예수님에 대한 하느님의 깊은 신뢰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제자들의 혼란과 희망의 징조
제자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이자 힘과 권력의 메시아로 믿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올인하면 눈부신 날이 올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붙잡히고 매질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할 것이나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추앙하는 예수님이 십자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제자들의 마음에 희망의 징조처럼 다가왔습니다. 이는 그들의 믿음에 확신을 심어주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확신은 곧 무너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고난의 길을 걸으실 때,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좌절했습니다.
고난을 넘어선 부활의 희망
우리 또한 살면서 빛나던 시절을 잃어버리면 두 가지 선택지에 놓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잃고 좌절하며 자포자기하는 삶을 선택하거나,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하며 현재의 고난을 견뎌내고 더 큰 희망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희망과 평화를 불어넣어 주셨고, 그들에게 잠들었던 희망이 되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거룩한 변화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가 짊어진 현실의 어둠과 아픔, 즉 십자가를 견딜 수 있는 용기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거룩한 변모의 희망 속에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희망은 우리를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희망의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유목민이었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가거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미지의 땅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
아브라함은 풍요로운 초지에 안주하려는 유목민의 본성을 거슬러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복을 내리며 그의 이름을 떨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안주하고 싶은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에 큰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물리적인 안락함뿐만 아니라, 미움, 불신, 자괴감, 상처의 기억으로부터도 떠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고통 없는 세상은 없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는 부활의 희망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영광
성당의 십자가에 걸린 예수님의 흰 옷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고통을 넘어서는 거룩한 변모, 즉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도 보지 못했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고통 뒤에 있는 부활의 희망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도록 은총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거룩히 산다는 것은 결국 어떤 처지에서든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을 마주 뵙는 순간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가장 밝은 빛'은 하느님의 빛입니다. 세상이 창조될 때 "빛이 생겨라" 하신 그 빛, 눈부신 광명의 빛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하느님을 마주 뵙는 순간은 심판의 고통이 아니라,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하느님의 빛을 맞이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신앙에서 견딜 수 없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희망은 과거의 눈부신 영광이 아니라, 앞으로 맞이할 눈부신 그 순간, 즉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각자 빛나는 인생으로 초대해주고 싶으시다는 믿음 속에 있습니다. 이 거룩함을 잃지 않는 사순 시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송용민(사도요한) 신부
첫댓글 신부님, 바쁘신 중에도 은혜로운 강론 올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은혜가 충만합니다.
본당일로도 하루가 모자랄 신부님께서 글로써 더 은혜를 베풀어 주시다니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할지요~
가좌동 교우들은 요즘 행복한 나날이겠습니다.송신부님 부임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겼군요.
커다란 의자 교체에 무겁게 느껴지던 십자고상까지 바꾸어 주시고ㅎㅎ
저도 무척 궁금하네요.
어떻게 변했을지~
평일미사 참례율이 쑥쑥 올라가겠습니다.냉담했던 교우들도 돌아올테고...
지난주 부산 포도원교회 담임목사님 욕설파문으로 개신교 신자들이 충격이 클텐데 새삼 우리 신부님들을 위해 감사하고 화살기도 많이 바쳤습니다.
주님,사제들을 지켜주시라고요.
풍요로워진 세상은 주님을 찾지 않아도 우리들의 공허한 마음은 주님 안에서만 채울 수 있음을 저는 확신한답니다.
신부님, 사랑하고 덕분에 행복합니다.
좋은 강론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