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속의 고사성어 -7
아사리판(阿闍梨判)
[요약] (阿: 언덕 아. 闍: 화장할 사. 梨: 배 리, 늙은이. 判: 쪼갤 판)
계율에 밝고 스승이 될 만큼 도력이 높은 궤범사(軌範師)를 아사리(阿闍梨)라 한다. 즉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교육할 만한 덕이 높은 승려를 말한다. 아사리판은 근래에 와서 질서 없이 어지럽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사용하게 된 것도 역사기 길지 않은 것 같다.
[문헌] 불교대사전(佛敎大辭典)
[내용] 아사리(阿闍梨)는 소승불교(小乘佛敎) 종단에서 학승의 행동을 바로 잡아 주는 사범(師範)으로, 교육을 담당할 만큼 덕이 높은 스승, 또는 도가 높은 승려를 말한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말의 뜻과는 상관없이 쓰이고 있다. ‘아사리판’이 바로 그렇다.
석가모니(釋迦牟尼)보다 나이가 아홉 살이나 많은 마하(摩訶) 가섭(迦葉)과 그 삼형제가 유력 인사 2백20명을 데리고 왕사성(王舍城)의 석가모니에게 귀의했다. 승단(僧團)은 그로 인해 세력이 급격히 팽창하였고 많은 지도자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그러다 보니 조직 내에 승려로서의 품위와 의.식.주의 법도가 통일되지 못해 문란했다. 심지어는 돌봐줄 지도자가 없어서 간호도 반지 못한 채 숨지는 승려도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존은 당신을 대신해서 지도해 줄 화상(和尙)제도를 만들어 돌보게 했다.
“지금부터 화상은 제자를 자식과 같이 사랑하고, 제자는 화상을 아버지같이 섬기도록 하라. 그렇게 서로 공경하고 보살피면 바른 법이 널리 퍼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화상 제도는 덕이 높고 계율에도 밝은 스님이 맡게 되자 교단이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되었다. 이것이 ‘사분율(四分律)’ 33권에 기록되어 있는 화상의 탄생 유래다.
승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화상이 보살피고 지도해야할 제자 수가 늘어나자 상대적으로 화상의 숫자가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자 새 화상을 구하지 못하여 언행이 흐트러지고 삐뚤어지는 비구가 늘어났다. 이에 석가모니는 승단의 조직을 보완하기 위하여 다시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지금부터 아사리(阿闍梨) 제도를 만드노니 아사리(阿闍梨)는 제자를 자식과 같이 생각하여 보살피고, 제자는 아사리를 아버지같이 받들도록 하라.”
아사리는 범어로 교수(敎授), 또는 궤범(軌範), 정행(正行)이란 뜻으로,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며, 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도 편달해 주는 스승을 가리킨다.
아사리는 크게 다섯 종류로 나뉜다.(明五種阿闍梨)
첫째, 출가(出家)아사리는 출가를 결정해주는 큰 스님(一出家阿闍梨,所依得出家者。)
둘째, 수계(受戒)아사리는 계(戒)를 주고 수계절차를 주선해 주는 스님(二受戒阿闍梨,受戒作羯磨者。).
셋째, 교수(教授)아사리는 위의(威儀)를 가르치고 경계시켜 주는 스님(三教授阿闍梨,教授威儀者。).
넷째, 수경(受經)아사리는 경전을 가르치고 그 뜻을 일깨워주는 스님(四受經阿闍梨,所從受經。).
다섯째, 의지(依止)아사리는 공부하고 참선하는 스님(五依止阿闍梨,乃至依住一宿者。).
이와 별도로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에는 수계식(受戒式)에 갖추어야 할 10명 아사리로, 삼사칠증(三師七證)이 있다. 삼사는 계를 주는 전계(傳戒)아사리, 수계절차를 주관하는 갈마(羯摩)아사리, 위의 작법을 가르쳐 주는 교수(敎授)아사리를 말하고, 칠증은 수계를 증명해 줄 7명의 아사리를 말한다.
이처럼 아사리는 불교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중심인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과거 유승배불사상(儒崇排佛思想)의 영향으로 규범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난잡한 행동을 이르는 용어로 쓰여져 아사리판하면 질서 없이 우글거리는 것을 일컫게 되었다.
이글은 임종대(林鍾大) 편저 ‘한국 고사성어(故事成語)’를 기본으로 하여 첨삭한 것임.
이하 [네이버 지식백과] 아사리판 - 덕망 높은 스님들이 모이면 ‘아사리판’이 된다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2009. 9. 25.)
아사리판
덕망 높은 스님들이 모이면 ‘아사리판’이 된다
작금의 우리 현실은 무질서하기 짝이 없다. 원칙과 정도(正道)는 무시되고 편법과 사도(邪道)가 횡행하는 말법(末法)의 시대이다. 정치판도 그렇고, 교육계도 그렇고, 경제계도 그렇다. 어느 분야 하나 원칙과 정도를 좇고, 순리를 따르는 곳이 없다. 가히 총체적인 무질서 시대라고 할 만하다.
‘개판, 난장판(亂場-), 아사리판’ 등과 같이 ‘무질서한 현장’을 지시하는 단어가 많이 쓰이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개판’의 ‘개’는 ‘犬’의 뜻이고, ‘난장판’의 ‘난장’은 ‘亂場(과거를 보는 마당에서 선비들이 질서 없이 들끓어 뒤죽박죽이 된 곳)’이어서 그 어원과 유래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없다. ‘개판’은 ‘개가 날뛰는 무질서하고 난잡한 현장’을, ‘난장판’은 ‘과거장(科擧場)에 모여든 선비들이 무질서하게 들끓고 떠들어대던 현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아사리판’의 경우는 그 어원과 유래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판’은 ‘일이 벌어진 자리’를 뜻하므로 별문제로 친다 해도, ‘아사리’라는 단어의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사리판’의 어원과 유래를 전혀 언급할 수 없는 처지는 아니다.‘아사리판’은 ‘아사리’와 ‘판’으로 분석된다. ‘아사리’라는 단어가 먼저 존재했고, 나중에 ‘판’이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아사리판’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아사리판’에 대해서는 대체로 두 가지 어원설이 전한다. 그 하나는 ‘아사리’를 동사 ‘앗-〔奪〕’에 어미 ‘-
ㅇ.ㄹ/을’과 접미사 ‘-이’가 결합된 ‘앗
ㅇ.ㄹ 이’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고 이것에 ‘판’이 결합된 단어로 간주하는 설명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앗
이’는 ‘빼앗을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빼앗을 사람과 빼앗길 사람이 한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상태가 바로 ‘아사리판’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어원설은 ‘앗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고 또 그와 같은 단어가 조어(造語)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취할 수 없다. 그리고 ‘빼앗는 사람’과 ‘뺏기는 사람’이 뒤엉킨 무법천지라면 ‘뺏기는 사람’에 대한 표현도 조어 과정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ㅇ+아래 아+ㄹ)
다른 하나는 ‘아사리’를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지도하여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중’을 가리키는 ‘아사리(阿闍梨)’로 보고, 이것에 ‘판’이 결합된 단어로 파악하는 설명이다. 이때의 ‘阿闍梨’는 범어 ‘ācārya’에 대한 중국어 음역어(音譯語)인데, 이것이 불교와 함께 ‘아사리’로 국어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사리판’은 ‘덕망 높은 스님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로 해석된다.
덕망 높은 ‘아사리’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모여서 함께 의견을 개진한다.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아사리’들이 함께 모여 각자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견이 많아지고 또 다양해진다. 물론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격론을 벌이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아사리’들이 모인 장소가 자칫 소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일 수가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부각되어 ‘아사리판’에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이라는 비유적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덕망 높은 스님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에서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이라는 의미로의 변화 과정이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지지를 받을 수 있다.그런데 정작 ‘아사리판’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이는 이 단어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첫댓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런 뜻이 있는줄도 몰랐습니다... 잘 배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아사리판(阿闍梨判),
계율에 밝고 스승이 될 만큼 도력이 높은 궤범사(軌範師)를 아사리(阿闍梨)라 한다.
즉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교육할 만한 덕이 높은 승려를 말한다.
아사리판은 근래에 와서 질서 없이 어지럽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사용하게 된 것도 역사기 길지 않은 것 같다.
빼앗을 사람이 많으니 빼앗을 사람과 빼앗길 사람이 한 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함부로 입열면 안되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좋은 말씀 잘 배웠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