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임이 끝나고 몇 사람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그 전날 어느 모임에서 나는,
-아직 올해 결심을 세우지 못했다, 고 말했다.
새 해가 되면 몇 가지 생각을 세우곤 했는데, 미처 그것을 못한 것이다. 년초가 조금 분주했던 탓에.
이야기를 하던 M이 올해는 블로그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해,
-노트를 써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내가 노트 한 권 선물할게요.
내가 이렇게 말을 한 건, 미안한 점도 있고, 고마운 점도 있어서다. 미안한 점은 --
단골 카페에 앉자마자 나는 패딩 주머니에서 펜을 한 자루 꺼냈다. 그걸 본 J가 깔깔 웃으며
-또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셔, 하니, M이 날 보고,
-잃어버렸구나, 했다. 그때 어딘가 서운한 표정이 슥 스치는 걸 느꼈다.
한달쯤 전에 집을 나선 나는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펜이 한주먹 잡혔다. 그저 웃음이 났다. 날씨가 급속도로 쌀쌀해져 그 패딩을 입 기 시작한 후부터 집을 나설 때마다 집에 굴러다니는 펜을 한두개씩 넣은게, 한 손에 다 잡히기 어려울 만큼 주머니에 모인 것이다. 그날 그것을 본 M이 문구점에 들러 필통을 하나 선물하겠다고 고집해 필통을 하나 선물받았다. 그리고 그 선물을 치앙마이에 갔을 때 마야에게 주고 왔다.
-그 필통을 나보다 더 잘 쓸 사람한테 줬어요.
나는 M에게 마야한테 펜이 가득 들은 필통을 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아인 그 부족의 희망이 되어야해서. 공부하는 젊은 아이니까 많이 도움이 될거라는 설명도 붙였다.
그렇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던 차에, 같이 커피를 마시던 H가 올핸 시를 많이 외울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노트를 하나 사서 써가며 외울거라고 말해, 내가 노트 이야기를 한 것이다.
-내가 노트 선물할게요, 라며.
그래서, 치앙마이에서 사온 수제 노트가 몇 권 남아있어 하나 선물을 해주자 마음 먹고, 어제 주소를 물은 다음, 포장을 해놓았다. 포장을 하면서도 발신자와 수신자 이름 쓰는 곳이 헷갈려 우편물을 확인했는데, 그것도 잘못 파악을 한 것 같다.
우체국에서 테이핑을 하고 텔러에게 가려하자 청원경찰인 여직원이 다가와 이거 여기로 가는 거면 잘못 적으셨어요, 한다.
그 직원을 본 건 십년도 넘는다. 그렇게 아는 사이니 뭔가 수상쩍음을 느끼고 다가와 내게 알려준 것이다.
요즘 택배 혹은 소포 부칠 일이 없으니, 우체국에 가서 편지 보낼 일이 없으니, 그토록 오랫동안 알아왔던 약속을 잊어버린 것이다. 일단은 어이없는 웃음을 속으로 웃고, 가원이 어릴 때, 넌 학생이, 수신자와 발신자 이름 쓰는 곳도 모르냐며, 타박했던 일이 떠올랐다. 청원직원이 내준 종이에 보내는 이와 받는이의 주소를 다시 써 창구에 가져가 노트와 책을 포장한 소포를 부쳤다.
흐르는 세월, 변하는 세상, 그리고 오래된 약속을 잊어버리는 나...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