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 'Master of Puppets' >
헤비메탈의 음악적 상징성은 '저항'이다.
아니 헤비메탈은 '반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페츠'를 내 인생의 노래로 삼은 두 사람.
한 명은 KBS라디오 '김홍범PD'이고 또 한 명은 산악인이자 좋아하는 후배인 '문성욱'이다.
얼마 전 문성욱과 토왕폭과 인수봉을 함께 등반하면서 떠오르는 생각과 책을 읽으면서 겹치는 몇 가지 것들을 조합해 적어본다.
1. 김홍범의 ‘Master of Puppets'
'내 꿈은 순수성을 잃지 않았을까'
Master, master
Where’s the dreams
that I’ve been after?
Master, master
You promised only lies
Laughter, laughter
All I hear or see is laughter
Laughter, laughter
Laughing at my cries
직업병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 인생의 노래’를 고르기 힘들다.
처음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는 쉬울 것 같았는데,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본 지 4일째다.
다른 필자의 글을 봐도 전혀 감이 오질 않는다. 그래서 핑계를 댄다. 직업 때문이라고.
나는 현재 KBS라디오에서 ‘박원의 키스 더 라디오’라는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외적으로는 음악에 관한 글을 쓰면서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과 숨은 음악인을 발굴하는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등을 맡고 있다.
그렇다. 나는 직업 때문에 나만의 음악 취향을 잃어버렸다.
조금 오버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근데 좋아하는 노래가 많아도 너무 많다.
비록 재능이 부족하여 음악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듣는 것만큼은 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지금 ‘내 인생의 노래’를 갖고선 수많은 곡을 후보로 올려놓곤 끙끙대고 있다.
그래서 순수해지기로 했다. 내 인생의 노래라기보다는 내 인생을 음악으로 인도한 곡을 고르기로.
장고 끝에 뽑은 곡은 지금도 명반으로 꼽히는 메탈리카(Metallica)의 1986년 작인 3집 <마스터 오브 퍼페츠(Master of Puppets)> 수록곡 ‘마스터 오브 퍼페츠’다.
이 곡은 ‘Battery’, ‘Orion’과 함께 심오한 가사와 더불어 그 시대의 사운드를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내가 이 곡을 좋아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강하다. 무겁다. 빠르다. 이 3원칙에 맞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지만 그 당시 음악 좀 듣는 친구들에겐 ‘힘’과 ‘속도’가 진리였다.
메탈리카를 필두로 하는 헤비메탈은 ‘반항’의 상징이기도 했다.
담긴 가사와는 별개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듣는 학생을 ‘타락한 것’으로 취급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반항심리가 발동하여 이 3원칙에 충실한 음악에 더욱 심취했다.
그리고 무겁게 내리치는 드럼과 기타 사운드만큼이나 ‘마스터 오브 퍼페츠’가 담고 있는 묵직한 이야기를 몸과 마음으로 체감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실패한 정권이 나타날 때마다 시퍼런 칼날처럼 등장했으니까.
고 신해철은 “나 어렸을 때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페츠’ 앨범을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이틀간 학교를 안 가고 음악만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만큼 이 곡은 대단하다. 자신의 꿈을 잊은 채 돈과 권력의 꼭두각시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가 기존 음악의 틀을 깨고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사운드를 통해 수십 배 증폭되고, 그 증폭된 외침은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타격한다.
“하하하하.”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이 곡은 이렇게 인형처럼 사는 자들에 대한 조롱 섞인 웃음소리로 끝을 맺는다.
나도 간혹 이 곡을 무심결에 찾아들을 때가 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혹시 내 꿈의 순수성을 놓치진 않았나, 성공만을 탐하진 않나, 인간미를 잃진 않았나하고 말이다.
‘마스터 오브 퍼페츠’. 어쩌면 나는 이 금속성 사운드와 웃음 덕분에 인형이 아닌 사람답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과거에 이 곡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겐 다시 한 번 들어보길 권한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조종하고 있는 줄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하하하하.
- 김홍범 KBS 쿨FM ‘박원의 키스 더 라디오’ PD
2. 문성욱의 내 인생의 노래 Master of Puppets>
'바위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며 문성욱은 안종능이라는 걸출한 파트너를 만난다.
그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등반 경험이 많았던 안씨에게서 많은 기술적인 면을 배웠다.
"형 동생 하죠. 안종능은 굉장히 등반 감각이 뛰어난 친구입니다.
산악회에서는 그 이름 때문인지 처음에 암벽등반만 했는데 그를 만나고 빙벽이나 인공등반 등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빨간 날을 도심에서 견디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산에 다니기 전에 맺었던 대부분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빠르게 폭을 넓힌 그의 등반을 장비의 발달과 진보된 환경 덕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다.
"집착에 가깝게 빠져들었다"는 그는 어느 순간 주변의 걱정스런 눈빛에 "산으로 가겠다"며 쐐기를 박아버렸다.
문성욱은 전문등반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히말라야로 날아가 수직의 거벽에 신루트를 내며 올랐다.
안씨와 함께 한 파키스탄 브락상피크의 700m 거벽이다.
"원래 아민브락에 가려고 한 것인데 가서 보니 브락상피크도 오를 만해 보였습니다.
트레킹피크이지만 등반 신고는 해야 하는데, 내용도 잘 모르고 영어도 짧고 해서 그냥 올랐습니다.
사실 산 높이도 몰랐으니까요. 다녀와서 공부가 부족한 걸 알았죠."
더플백 하나씩 달랑 메고 300만원 들고 떠난 그들은 로컬버스를 갈아타고 베이스캠프까지 찾아갔다.
그들은 여느 원정대와 같은 쿡도 없었고, 대부분을 직접 몸으로 때워야 하는, 어찌 보면 등반 본연의 행위를 온 몸으로 겪는다.
덕분에 비용 대부분은 도로 남겨왔다.
초등 후 명명한 루트 이름은 '마스터 오브 퍼펫츠(Master of puppets)'.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의 노래에서 따온 것이다.
"강렬한 메탈 음악은 내 자신의 기분을 흥분시켜 힘들고 곤란한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노래를 떠올리면 왠지 등반도 잘 되는 것 같아요."
<헤비메탈에 열광하는 '청교도 산꾼'>
안종능씨에게는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등반 기술을 배웠다면 선배 엄지훈씨에게서는 정신을 배웠다.
그와 함께 줄을 묶어본 적은 별로 없지만 야영을 할 때면 오가는 대화 속에 그는 '소프트웨어'를 전수받았다.
이를테면 초등과 재등에 관한 문제와 같은 것이다.
"인공등반이라도 초등의 경우 루트 파인딩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남습니다.
브락상피크를 오를 때에도 안종능과 루트파인딩에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분명 있는 것이죠.
그래서 초등은 단지 난이도로 비교할 수 없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명쾌한 그의 결론은 늘 묵묵한 모습이었던, 그래서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특별한 색깔을 찾으려 했던 고민을 날려버렸다.
문성욱은 2003년과 2004년 연이어 파키스탄 트랑고타워 등반에 나선다.
브락상피크 등반 중 만났던 임성묵씨가 먼저 그에게 등반을 제의한 것이다.
"트랑고타워라는 상징성 때문에라도 가고 싶었습니다.
두 번 다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아쉬움은 없습니다.
몸이 고생스러워도 '내가 왜 왔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의 집에는 장롱 가득 등반장비가 들어차 있다.
장비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콜렉터'로서 모으는 것은 아니다.
한때는 기계를 다루는 선배를 찾아가 아이스바일의 피크를 만들어 보는 등 장비 제작에도 빠진 적이 있다.
고산거벽등산학교와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등반기술서나 산악잡지를 들여다보는 시간도 늘었다.
문성욱은 2006년 3월 안종능씨와 함께 중국 쓰촨성 쓰구냥 산군에 있는 야오메이봉 남벽으로 떠나며 50m 로프 2동만 가져갔다.
"실제로 초경량 등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도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찾아간 것인데 실제로 가서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더군요.
하지만 지금도 못 올라갈 벽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는 언젠가 야오메이봉에 다시 갈 생각이다.
그리고 또 다른 대상지가 떠오르면 여행 가는 기분으로 훌쩍 떠날 것이다.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글머리에서 말한 두 사람의 결론은 이랬다.
귀도 테넬라는 "오직 행위에 의해서만 그 증거는 이룩되는 것"이라고 했고 마르틴 훼르만은 "알피니스트는 곧잘 자유라는 것을 끄집어내고 싶어 하는데 그 자유는 무엇보다 제일 먼저 관용 없이 사물을 바라보는 견해에 대해 당당히 부딪혀 갈만한 자유가 아니면 안된다"고 끝을 맺었다.
무엇이든 머리보다는 손이, 손보다는 발이 낫다는 이야기다.
- 월간 마운틴. 산악인 탐험 '문성욱' 알피니즘의 퓨리턴, 그 초상' 중에서
※ 아래 사진들은 몇 년전 성욱과 함께 소승폭 등반 중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첫댓글 시원하다....^^
그 후 성욱은 영원한 등반파트너인 석문, 종능과 2012년 5월 알래스카 마운틴 헌터봉, 알래스카의 노즈라 불리는 헌터 노스버트래스에 AK6, AI6R, M7+, ED+ 의 어려움과 영하 30도 이하의 추위에서 세번을 비박하고 1,900M를 등반하여 'Sympathy Varition' 이라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습니다.
재적년에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석문,명희와 남미 쎄레또레로 떠나더니 기념비적인 등반을 해치우고 왔습니다.
성욱의 결혼식주례는 이상조초대교장선생님이 해주셨습니다.
한형은 등반도 잘하고, 글도 잘쓰고, ~~~잘 읽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