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작년 까지만 해도 소비에트 군사사 연구에 집중하던 사람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일제강점기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 그림을 보고 엄청난 창작욕이 솟구치는 바람에 1932년 봄 경성을 배경으로 한 독립운동 소설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본작은 당대 윤봉길, 이봉창 등의 유명 독립운동가들이 소속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인애국단 산하 경성지부라는 가공의 조직의 항일 투쟁을 주플롯으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작의 주인공 이정우를 비롯한 경성지부 대원들은 그들의 사부이자 상관인 천남건 지부장의 지휘 아래 경성 내 한 조용한 암자를 아지트로 삼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암자의 주지스님인 혜월 스님이 지부의 참모장 격입니다.) 1925년에 임정에 들어온 임정의 국내파트 파견 인원이라는 설정으로, 정보수집과 자금모집 및 송금을 위해 1928년부터 경성에 잠입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원래는 가명과 가짜 신분으로 직장을 얻어 생활하였지만 대공황 터지며 직장이 다 없어지면서 목구멍이 포도청 신세가 되자 친일파에 대한 사기와 강도로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다소 궁상맞은 상황입니다.
게다가 임시정부와 연락하고 송금하고 무기를 조달하기 위해, 천남건 지부장과 의형제인 사람이 두목인 인천의 중국 폭력조직과 거래하고 있는데 만보산 사건 때문에 이 조직에서 직거래하는 돈 밝히는 중국인하고 은근히 호구를 잡힌 상황이라 더욱 상황이 밝지 않습니다.
우리의 좀 고전소설 주인공스럽고 요즘 웹소설 남주답지 않게 성실하고, 종교적이며, 바른생활 사나이스러운 정우는 짝패이자 성격이 좀 가벼운 민호하고 같이 친일파 부호에게 사기를 치는 겸 정보제공자로 등장한 총독부의 일본인 고위관료인 나카하라 히로요시 사무관과 접촉하기 위해 일본인 백작으로 변장하고 친일파 부호인 중추원 참의 한덕만의 딸 한주리의 약혼식장에 접근합니다.
소설의 여주인공인 주리는 금지옥엽으로 자라며 세상 물정 모르고 마냥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였지만, 모종의 계기로 부친이 친일파라는 데에 엄청난 죄책감을 가진 데다가 관동군 장교인 아오야기 테츠오 중위와 원치 않은 약혼까지 하게 되어 거의 우울증 직전인 상황입니다.
정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만 주리를 달래주려다가 이 과정에서 주리에게 자기도 모르게 반하게 됩니다. 정우는 혜월 스님의 도움으로 주리와 편지를 교환하며, 주리의 고민을 상담해 주며 마음을 치유해 주고 어째서 주리가 강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는지 알아내기 시작합니다.
한편 주리의 약혼남인 아오야기 중위는 일반적인 일본군 장교 답지 않게 인성이 매우 좋고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시와라 간지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그의 세계최종전쟁론의 신봉자로서 이시와라의 선동으로 만주사변에 앞장서게 된 인물로, 세계최종전쟁을 통한 천황의 세계지배(팔굉일우)가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물입니다. 정우는 자신을 일본인으로 알고 있는 아오야기 중위를 통해 이시와라 간지의 무서운 계획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로 결심한여 행동한다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입니다.
스스로 소설을 홍보하기 위해 평한다면, 제 소설은 이러한 플롯 내에서도 이 시기를 다루는 작품들과는 다른 차별화를 두기로 했습니다.
1. 맹목적 반일로 빠지지 않게 주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다루는 소설은 명확한 선악구도 내에 일본인을 악마화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총독부 관리인 히로요시가 주인공의 협력자로 등장하고, 주인공의 은인을 일본인으로 설정하는 등 과잉민족주의, 맹목적 반일의 물을 빼며, 일본인 반동인물에 대한 과도한 단순화를 지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2. 유교적인 주인공
흔히 조명되는 독립운동가나 독립운동 관련 소설, 또는 대체역사물의 주인공은 "서구적 근대"를 적극 수용하고 대중을 계몽하려 하며 꽉 막힌 유교 인사들과 적대관계를 만드는 인물형으로 그려집니다. 저는 그러한 캐릭터를 180도 뒤집어서, 주인공 정우가 기본적으로 불교 신도이면서도, 철저하지 않더라도 유교적 인물임을 작중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인 주인공 정우를 송시열의 후예로 설정하여 노론음모론을 정면 부정하고 이 아무개 소장을 디스하는(ㅋㅋ)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어느 애독자분께는 "입으로 레닌을 찾고 글로는 유교 보수 반동 지주계급국가를 복원하려는 번안풍 종자"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ㅋㅋㅋㅋ
3. 서구적 근대에 대한 의문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르르 쏟아진 서구적 사조와 계몽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여성해방론 등은 국내 역사서술이나 문학 등에서 독립운동과 결합되어 거의 긍정 일변도로 소개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 얄팍하게나마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플롯을 전개하고 등장인물을 설정했습니다. 서구적 근대를 지향하는 사람을 친일파, 또는 오류를 범하는 반동인물로 쓰는 방법으로요. 솔직히 얄팍한 비판이라 쓰기 조심스럽긴 합니다;;
그리고 초반부에는 우울하기 이를 데 없는 여주가 모종의 계기로 이를 벗어나게 되며 방방 뛰고 활기차진 것이 귀엽다는 평을 많이 듣습니다. ㅋㅋ
제 소설이 비록 흔한 웹소설처럼 사이다 전개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 전개 속도가 속도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성을 추구하고, 그 안에서 재현되는 여러 사람들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저의 소설 『경성활극록』을 강하게 추천드리는 바 입니다.
첫댓글 유교와 근대사조에 대한 재해석이 흥미롭네요. ㅎㅎ
http://pkka1918.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