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면 생각나는 사건과,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이 있다.
1988년 10월, 12명의 미결수가 집단 탈주했다.
탈주범들은 8일간 연쇄 인질강도 행각을 벌이며 서울 도심을 휘저어 놓았다. 남가좌동의 한 주택에서 마지막까지 버텼던 주범 지강헌,
그는 인질에게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보태 17년을 썩을 것을 생각하니 아득해서 탈주했다고 밝혔다.
지강헌(池康憲, 1954년~1988년 10월 16일)은 1988년 교도소 이감중에 도망쳐 서울에서 인질극을 벌였던 탈주범이다.
지강헌 일당이 서울시 북가좌동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장면은 TV를 통해서 전국으로 생생히 중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특히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라는 뜻으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고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절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지강헌 일당이 보호감호제도에 대한 불만 때문에 탈주극을 벌이면서, 보호감호제에 대한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88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1988년 10월 8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중 12명이 탈출하여 서울시내로 잠입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이들은 흉악범이 아니라 잡범이었는데, 보호감호제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500만 원 절도를 저지른 자기보다 600억 원 횡령을 한 전경환이 형기가 더 짧다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탈출한 것이다.
이 중에서 최후까지 잡히지 않던 5명 중 4명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서울시에서 여러 군데의 은신처를 전전하다 10월 15일 밤 9시 40분경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영서 씨 의 집에 잠입해서 고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이 인질극은 당시 TV로 생중계 되었으며, 인질극을 벌인 범인
4명은 다음과 같다. 지강헌 (당시 35세) 안광술 (22세) 강영일 (21세) 한의철 (20세)
당시4명의 탈주범중 유일한 생존자이자, 위에 언급한 3번째 이름 강영일씨와는 중학교2학년때 픽맨과 같은반 친구였는데
떡장사를 하시는 홀어머니와 살았고 도시락에 떡을 싸올 만큼 가난했다.
성격은 조용한 편이고 말수가 적었으며 급우들과는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였지만 학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었다.
인질로 잡혀있던 가장(家長) 고 아무개씨가 새벽 4시쯤에 탈출하여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고, 곧바로 경찰병력 1천여 명이 집을 포위했다.
인질범들은 새벽 4시 40분부터 경찰과 대치했으며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낮 12시경 강영일이 협상을 위해 밖으로 나와있을 때 한의철과
안광술이 지강헌이 가지고 있던 호송교도관의 총을 빼앗아 자살했으며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며 창문을 깨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항간에는 당시 경찰이 실수로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를 전달했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살시도 직후 경찰특공대원들이 집으로 진입해 인질로 잡혀있던 가족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다. 경찰진입과정에서 지강헌은 총 2발을 맞았고,
같은 날 병원에서 과다출혈로 숨졌다.
끝까지 검거되지 않았던 5명 중 인질극에 가담하지 않았던 마지막 탈주범 김길호가 탈주한 지 1년 9개월 만인 1990년 7월 1일에 체포되면서
탈주극은 막을 내렸다.
1983년 법원 구치감 창문을 뜯고 탈주했던 '대도' 조세형도 "징역 15년에 추가로 보호감호 10년까지 선고받고 희망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1988년에 재심재판에서 "먹방이라 불리는 감호소 독방에서 수감을 찬 채 몇달동안 두들겨 맞으면서 지냈다"고 했다.
청송교도소는 1983년도에 문을 열었다. 삼청교육대에 붙잡혀들어가 악명높은 훈련과 교육을 받았던 2400명이 감호소에 수감되었다.
그 뒤 지금까지 거쳐간 수감자가 1만5000명. 1980년 제장된 사회보호법에 근거해서 재범 위험이 있는 상습범에 대해 징역형과 별도로 강제구금을
해왔다. '미래의범죄' 가능성에 대한 처벌인 것이다. 보호감호를 선고하는 판사는 공상과학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처럼, 앞으로의 범죄를
예언해 미리 봉쇄하는 '예지자'의 역할을 맡는 셈이다.
누범자가 대상이다 보니 감호처분을 받는 사람의 70% 이상이 절도범이다. 인권단체 기자회견에 나왔던 40대 남자는 4차례에 걸쳐 20여만원 훔겼다가
청송감호소를 포함해 20년9개월을 복역했하고 하소연했다. 인권단체는 "라면 몇 상자, 쌀 몇 포대를 훔지는 좀도둑이 사회에 무슨 위협이 된다고
곱 징역을 살아야 하느냐" 며 보호감호 폐지를 주장해왔다.
교정할수 없는 상슴 범죄꾼들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던 정부도 결국 보호감호제를 없애기로 했다.
작가 김주영은 "청송중에서도 감호소가 있는 월전(月田) 이라는 동네에서 자랐다"고 했다.
달 뜨면 달빛이 골짜기에 고여 '달밤'을 만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한다.
월전마을이 '감호'라는 왠지 무섭고 살벌한 이름을 벗게 됐듯, 감호소를 거쳐간 수감자들의 한 (恨)도 달빛처럼 평화롭게 녹아들기를 바란다.
지강헌이 죽어가며 듣고 싶어했던 비지스의 홀리데이... 그가 간 그 곳에서라도 평화속에 휴식이 있기를...
첫댓글 지금은 피해입힌 모든분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혼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지강헌이 틀어달라고 했던 홀리데이가 비지스의 홀리데이인가요? 아니면 스콜피온스 홀리데이인가요? 잘못 틀어줬다고 들은 기억이 있어서요.
원래는 비지스 꺼였는데
갱찰이 스콜피온스꺼 줬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냥 설입니다...
글구 제 카톡 아이디 등록 부탁드릴께요.
dexon 입니다. ㅅㅅ
@픽맨/김영진 등록했습니다^^
@seed[김대정] 넵 재미난 정보 상시구독중이고요.
종종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