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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같은 늙은 절집, 구례 화엄사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절집을 구경다녔다. 이름없는 암자에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곳까지...
그런데 지금까지 다녀본 절집중에 유난히 구례의 화엄사는 고향같은 포근함으로 내 마음
한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그 곳이 나와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잘 아는 스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사람의
발길이 뜸하여 적막에 갇힌 조용한 산사의 멋과 맛을 즐길 수 있는 고즈넉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태어나고 자랐거나,일이 있어 오래 머물러 본 지역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깊이로 조용히 내게로 다가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내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쌓인 시간의 갈피마다 그리움과 따뜻함이 배어있기 때문일 성 싶다.
♣ 삽화: 겨울나무 위의 새/ 세상너머(烏竹)
그래! 새해 첫 나들이는 화엄사로 가자.....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이곳에서 멀지않은 지리산온천을 경유하여 몇번 모시고 온 적이 있다.
두 분 생전에 함께 모시고 간 마지막 절집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물론 아내도 이곳의 산채밥을 유달리 좋아하여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
10년도 다 되어가는 어느 겨울날, 매표소를 지난 오른쪽의 호텔에서 자고 일어난 아침에,밤사이
내린 눈으로 온천지가 하얗게 펼쳐진 장관을 보고, 돌아갈 길이 태산같은 걱정은 뒷전이고 마냥
좋아라며 아이들과 눈싸움을 즐기던 일 등등........
▲ 화엄사입구의 산채밥 정식
이곳에 오면 늘상 가던 식당의 문이 닫혀있다. 계절적 요인도 있긴 하겠지만 화엄사입구에 즐비한
상가에는 사람의 발길이 별로 없어 을씨년스럽다. 불경기의 끝은 어디인가...
경기가 안 좋아지면 수입이 줄어, 생존에 필요한 것만을 지출해온 소시민이 제일 힘들어지는 법이다.
요즈음, 유행처럼 광고하는 무슨 공중파방송에 출연했다는 인근식당에서 일인분에 만원하는
산채밥을 주문했다. 우리가 가던 식당에 처음 들린 당시에는 삼천원이나 오천원을 했었다.
그때 두 분의 아주머니가 들고 들어오는 진수성찬의 상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차린 상의 크기와
반찬의 수도 저보다 더 크고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흘러간 세월에 비해 음식값은 오르지 않았고
지리산 나물로 만든 음식맛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뿐이다.....
▲ 화엄사 불이문
통일 신라시대에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구례 화엄사는
너무 많이 알려진 까닭에 별다른 부언 설명이 필요없는 절이다.
▲ 대구에서 오는 도중 남원 가까이서 부터 며칠 전에 내린 잔설이 녹지않은 채로 있었으나
화엄사 주변은 눈내린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볼 수는 있으나
우리는 지금 겨울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 보수중인 축대는 잉카제국 마츄피츄의 석축처럼, 엇물리는 돌의 가장자리 모양에 맞게 다듬어
쌓고있다. 저렇게 쌓으면 석축의 수명이 훨씬 길어질 것이다.
▲ 천왕문
공사중이라 출입을 통제하는 금강문을 돌아서 천왕문을 들어선다.
▲ 요사(寮舍)인 원융료(元戎寮)와 청풍당(淸風堂)
▲ 보제루(普濟樓)와 범종각
강당으로 쓰이는 보제루는 종각과 법고가 있는 운고루와 함께 일직선을 이루며 화엄사의
가람배치에 가장 중요한 경계를 짓고있다.
보제루 뒷면("보제루" 현판이 걸린 쪽) 주련의 내용은 "화엄경 보현품"에서 가져온 글이다.
迦陵頻伽美妙音 (가릉빈가미묘음) 가릉빈가의 미묘한 소리와
俱枳羅等妙音聲 (구지라등묘음성) 구지라등의 미묘한 음성과
種種梵音皆具足 (종종범음개구족) 종종의 법음이 다 구족되어
隨基心樂爲設法 (수기심락위설법) 중생들이 즐겨함을 따라 법을 설하네
八萬四千諸法門 (팔만사천제법문) 팔만사천의 모든 법문이여
諸佛以此度衆生 (제불이차도중생) 모든 부처님께서 이로써 중생을 제도하시고
彼亦如基差別法 (피역여기차별법) 그들 또한 그 차별된 법과 같이하여
隨世所宣而化度 (수세소선이화도) 세상의 마땅한 바를 따라서 교화하여 인도하시네
※ 가릉빈가: 불경에 나오는 사람의 머리를 한 상상의 새. 히말라야 산에 살며, 그 울음소리가 곱고, 극락정토에
구지라: 맑고 미묘한 소리와 모습이 아름다운 새
보제루는 특별함이 숨어있다.승려나 신도들의 집회용인 2층 누각 건물로 대개는 그 밑을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지만, 화엄사의 보제루는 1층의 기둥높이를 낮게 만들어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각황전,대웅전,대석단등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중심영역의 경관을 강조하기 위한 배려
로 보인다.장식을 배제하고 단청도 하지않아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화엄사의 보제루 안내문에서)
직경 70cm정도의 기둥을 막돌에 그랭이질(기둥자리의 홈을 파는 것)을 해서 올려놓았다.
▲ 화장(華藏)의 세계
화장세계(華藏世界)는 불교에서 말하는 청정과 광명이 충만되어 있는
이상적인 불국토(佛國土).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라고도
한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있는 세계이며, 한량 없는 공덕(功德)과
광대장엄(廣大莊嚴)을 갖춘 불국토이다.
비로자나(vairocana)는 광명변조(光明遍照)라는 뜻이다.
태양의 광명(光明)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과 같이 법신불은 온 법계
에 충만해 있다. 충만해 있으면서 와도 온 곳이 없고, 가도 가서 머무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법신불은 아니계신 곳이 없다. 온 법계에 충만해 있어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즉, 무소부주(無所不住)다.
보제루 앞면("화장華藏"현판이 걸린 쪽)의 주련은 "화엄경 현수품"에서
가져온 글이다.
信爲道元功德母 (신위도원공덕모)
믿음은 道의 근원이며 공덕(功德)의 어머니가 되는지라
長養一切諸善法 (장양일체제선법)
일체 모든 선법(善法)을 길러내며
斷除疑網出愛流 (단제의망출애류)
의심의 그물을 끊어 없애고 탐애(貪愛)의 흐름에서 벗어나
開示涅槃無上道 (개시열반무상도)
열반의 무상도를 열어 보이도다
信無垢濁心淸淨 (신무구탁심청정)
믿음은 번뇌(煩惱)의 탁함이 존재하지 않아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지라
滅除僑慢恭敬本 (멸제교만공경본)
교만을 소멸시켜 제거하고 공경의 근본이 되며
亦爲法藏第一財 (역위법장제일재)
또한 법의 갈무리로서 제일의 보배가 되며
爲淸淨手受衆行 (위청정수애중행)
청정한 손이 되어 많은 선행을 받든다.
▲ 대웅전(大雄殿)
단정하고 고른 해서체(楷書體)로 일주문의 현판과 함께 제작된 대웅전의
현판은 1636년 선조의 8번째 아들인 의창군(義昌君)의 글씨이다.
紫羅帳裏撒眞珠(자라장리살진주) 자색장막 뒤에 무수한 진주가 깔려 있다...
이곳 대웅전 주련의 게송은 아름답고 장엄한 연화장세계를 노래하고,
비로자나여래의 과거의 원과 수행을 찬탄하며,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모든
중생들이 나름대로의 원을 이루어 나아감을 노래했다.
▲ 대웅전 뒷편의 구시
구시는 구유의 방언이다.많은 대중들의 밥을 퍼두는 함지통이라 할 수 있다.
본시 구유는 아름드리 통나무속을 파내고 마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큰 그릇
인데, 많은 신도들이 운집하는 법회나 대작불사를 회향할때와 유사시 승병
들의 밥을 퍼두던 용기로 발전하였으며, 한지(韓紙)를 만들기 위하여 닥나무
를 삶아 두기도 하였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선통선원"이다.
▲ 동,서 양탑과 좌로부터 대웅전,명부전.적묵당
▲ 각황전은 보수공사중 이다. 각황전은 건물이 웅장하며 그 건축수법이 뛰어난 건물이다.
어느 봄날 이곳 마당에서 내려다본 화엄사가 그렇게 안온할 수가 없었다.
▲ 대웅전 앞의 계단 아래에는 양식을 달리하는 동서 양탑이 있다.
보물 제132호인 동탑(東塔)은 보물 제133호인 서탑(西塔)에 비하여 아무런
조각과 장식이 없고, 단층기단(單層基壇)으로 되어 있다.
서탑은 1995년 해체보수되었는데, 이때 진신사리와 더불어 4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가운데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필사본 다라니경과 불상을
찍어내는 청동불상주조틀 등이 있었다.
▲ 각황전앞 석등(覺皇殿앞石燈)과 원통전(좌), 영전(우)
국보 제12호인 각황전 앞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이는 높이 6.36m나
되는 거대한 석등은 8각의 하대석(下臺石)이 병(甁) 모양의 간석(竿石)을
받치고 있고, 중간에 띠를 둘러 꽃무늬를 연이어 새긴 것으로 현존하는
국내 석등 중에서 가장 큰것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웅건한 조각미를 간직한
대표적 작품이다.
▲ 원통전(圓通殿)과 노주(露柱)
관음 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는 원통전은 불단 내부 유리 감실 속에 목조 관음 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주련과 마찬가지로 행서로 쓰여진 현판은 영, 정조 시대 때 대사간을 지낸 조종현(趙宗鉉)의
글씨이다.
주련은 ‘석문의범(釋門儀範)’ 구절중 관세음보살의 강림을 찬탄하는 내용을 남용(南龍) 김용구
(金龍九)의 행서(行書)로 썼다.
원통전 앞에는 네 마리의 사자가 이마로 방형(方形)의 석단(石壇)을 받치고 있는 보물 제300호인
노주(露柱)가 있다. 이를 흔히 원통전전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이라고 한다.
▲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각황전옆으로 난 계단을 조금 오르면 정면에 보이는 탑전(塔殿)오른쪽
대(臺)에 국보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과 희귀한 모양의 석등이 있다.
이들 석탑과 석등은 그 능숙한 기법과 균형있는 조형미로도 주목되지만,
그 특이한 형태는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사사자석탑은 화엄사 창건주 연기(煙氣)조사의 효성을 나타낸
것이기에 효대(孝臺)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 석탑의 사방에는 머리로 석탑을 받치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와,
그 중앙에 합장을 한 채 머리로 탑을 받치고 서 있는 승상(僧像)이 있다.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인 비구니의 모습이라고 한다.
입술에 붉은 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불에 단청을 올렸던 것으로 추정
된다.
▲ 석탑 바로 앞 석등의 아래쪽에도 꿇어앉은 한 승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불탑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한 연기조사가
석등을 머리에 이고 차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런데 존자나 조사,선사의 일화에 어머니를 위한 이야기는 더러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 어머니와 아들(1)
▲ 어머니와 아들(2)
거동이 불편하셨던 부모님을 모시고 오르내리던 길에 동백나무는 여전히
푸른 자태로 제자리에 서 있다.
오늘 이 길을 함께 한 아들녀석은 먼 훗날 오늘의 여행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며 간직하고 살아갈까......
내려가는 돌계단을 내딛는 내 걸음은 생전 부모님의 불편한 걸음으로
바뀌었고, 그 앞의 나는 가벼운 걸음으로 무심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 ♬ 묻노니 자네는 누구인가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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