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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지원(萬水之源) 두만강(豆滿江)은, 북해(北海)로 흘러 [2편]
‘두만강(豆滿江)은, 고려강(高麗江), 반도(半島) 땅에 없었다.’
2024년 12월 22일
○ “제1편”에서 「두만강(豆滿江)」에 대한 여러 고전문헌(古典文獻)을 설명(說明)하였는데,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반만년(半萬年)을 이어온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총칭(總稱)이다.】에서 「두만강(豆滿江)」을 뭐라고 불렀을까?
「강(江) 이름이 없다.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모른다.」 이게 답(答)이다. 얼마나 황당(荒唐)한 이야긴가! 그러나 이건 사실(事實)【Fact】이다.
반도(半島) 땅에서 무려(無慮) 5,000년(年) 동안 대대손손(代代孫孫=世世孫孫) 왕조(王朝)가 이어져 왔는데, 국경선(國境線)이 되는 아주 중요(重要)한 강(江) 이름조차도 “만족(滿族)” 언어로 된 「두만강(豆滿江)」이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만족(滿族)’이란 ‘여진족(女眞族)’을 말하는 것으로, 원(元) 말(末)로부터 명(明) 초(初)에 “노이합적(奴爾哈赤)”으로부터 만주(滿洲)라고 이름 지어진 것에서 출발(出發)하는 것으로 볼 때, 「두만강(豆滿江)」이라는 이름은 겨우 600년(年) 전(前)의 일이다.
➨ 그렇다면 「4,000」여(餘) 년(年) 동안은 “두만강(豆滿江)”이라고 불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에서는 “두만강(豆滿江)”을 뭐라고, 무슨 강(江)이라고 하였을까? 대답(對答)은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니, 이게 황당무계(荒唐無稽)하다는 것이다.
「두만강(豆滿江)」이라는 이름은 「“만어(滿語)”로 “만수지원(萬水之源)”이라는 뜻이며, 이는 많은 지류(支流)가 모여 대강(大江)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래의 “중국어(中國語) 위키백과”를 보면 그 연유(緣由)를 알 수 있다.
➨➨ 고려강(高麗江)【出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만강(豆滿江)은, 또, 고려강(高麗江) · 도문강(圖們江) · 토문강(土們江) · 통문강(統們江) · 도문강(徒門江)으로도 표기(表記)된 바도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고려강(高麗江)”이라는 강(江) 이름은 무엇에 근거(根據)한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두만강(豆滿江)은, 「고려강(高麗江), 도문강(圖門江), 두강(豆江), 두만(豆漫), 두만(頭萬), 만강(滿江), 만강(萬江), 토문강(土們江), 통문강(統們江), 도문강(徒門江), 도문수(徒門水), 도문하(徒門河), 만수(滿水), 아야고하(阿也苦河), 애호강(愛滹江), 토문강(土門江), 통문강(統門江), 통문하(統門河)」 등으로 불렸다고 전(傳)해진다.
만수지원(萬水之源), 두만강(豆滿江)은 고려강(高麗江)
(1) [维基百科 自由百科全書 : 위키백과]
座標:42°25′47″N 130°36′41″E 【關於俄羅斯薩哈林州的圖曼納亞河,請見「亞界川」。: 亞界川(日語:亜界川/あかいがわ)或圖曼納亞河(俄語:Река Туманная)是薩哈林州斯米爾內赫區的河流,長34公里,流域面積154平方公里,注入神無川[1][2]】
圖們江 / 從中國圖們市俯瞰圖們江,圖們江左方為中國,右方為北韓南陽勞動者區
別名 / 豆滿江
詞源 /「萬水之源」(滿語意譯)
國家 / 中華人民共和國 /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 俄羅斯
源頭 / 長白山
河口 / 日本海
長道 / 505 km(314 mi)
蒙古語 / Түмэн гол
滿文 / ᡨᡠᠮᡝᠨ ᠰᡝᡴᡳᠶᡝᠨ
轉寫 / Tumen sekiyen
俄語 / Туманная река
羅馬化 / Tumannaya Reka
圖們 / 江[1](俄語:Туманная река,羅馬化:Tumannaya reka)亦稱豆滿江(韓語:두만강/豆滿江 Tumangang */?,滿語:ᡨᡠ᠋ᠮᡝᠨᡠᠯᠠ),發源於長白山東南部的長白山天池,幹流全長500多公里,注入日本海。上游是中華人民共和國與北韓的界河,下游15公里為北韓與俄羅斯的界河。
名稱 /圖們江在金朝、元朝稱「愛也窟河」,其下游段稱「統門河」;明朝稱「啊也苦河」,其下游段稱「徒門河」;在清朝時按滿語讀音譯作「土門江」。「土門」滿語原稱「土門色禽」(滿語:ᡨᡠᠮᡝᠨᠰᡝᡴᡳᠶᡝᠨ,轉寫:tumen sekiyen),土門意為「萬」, 色禽意思是「河源」意思就是「萬水之源」。其實「土門」、「豆滿」、「圖們」都是一音之轉。
重要(중요)한 것은,
➊ 「토문(土門)」의 뜻은 「만(萬)」을 말하는 것이고 ➋「색금(色禽)」이란 : 「하원(河源) 곧 하천(河川)의 수원(水源)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根源)”」을 말하는 것이고,
➌ 그 뜻은 「만수지원(萬水之源)」 : 「여러 하천(河川)의 물이 나오는 근원(根源)」이라는 뜻이다.
➍ 즉(卽) 만주어(滿洲語)의 「토문(土門)」이라는 뜻은 : 여러 하천(河川)의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지(根源地)를 말하는 것인데, 「두만강(豆滿江)」이라는 의미(意味)는 바로 수많은 지류(支流)를 받아 흘러가는 하천(河川)이라는 뜻이고, 「토문(土門)이나 두만(豆滿), 도문(圖們)은 음(音)이 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두만강(豆滿江)이 과연 이러한 하천(河川)인가? ➨ 위에서 말하는 것은 조선(朝鮮)과 한민족(韓民族) 측(側)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 오늘날의 중국(中國) 측 의도(意圖)대로 설명(說明)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위의 말대로라면 : 두만강(豆滿江)은 만주(滿洲)와 관계가 있을 뿐, 반만년(半萬年) 조선왕조(朝鮮王朝)와는 전혀 관련(關聯)이 없어, 강(江) 이름조차도 조선(朝鮮)의 강명(江名)이 아닌 만주어(滿洲語)와 관련(關聯)이 있다는 뜻이다.
➨ 그렇다면, 「반만년(半萬年)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다는 것일까? 「또 수천(數千) 년(年) 조선왕조(朝鮮王朝)【통칭(統稱)】는, 동국(東國)은, 동한(東韓)은,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滿江)으로 경계(境界)했다”라는 역사(歷史) 이야기는 어떤 “놈”들이 “헛소리”를 지껄인 것인가?」
➨➨ 아니면, 「조선족(朝鮮族)은, 한민족(韓民族)은, 너무너무 무식(無識), 무지(無知)하고, 무지(無智)하여, 글자도 없어, 언어(言語)도 없어, 오직 하는 것이라고는 ‘응-응-응’하면서… …손짓과 발짓으로 통(通)하니, 강(江) 이름도, 산(山) 이름도, 땅(地) 이름도 “전부(全部) 몰라요”했다는 것인가?」
➨➨➨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 논자(論者)」들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수백(數百) 번을 반복(反復)해도 시원치 않은 놈들이다.
「“지” 나라 땅에 있는 강(江) 이름도 모른다」라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땅에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존재(存在)한 적이 없다」라는 가장 강력(强力)한 증거(證據)다. 이건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證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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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维基百科 自由百科全書 : 위키백과] : 朝鮮王朝《新增東國輿地勝覽》卷五十咸鏡道慶源都護府豆滿江(圖們江):「女真語謂萬為豆滿,以眾水至此合流,故名」。後來中國方面改用與原來讀音相近,但沒有意義的「圖們」來作為這條河流的譯名;而朝鮮半島方面則使用「荳滿江」這個名稱[5]。這裡的民族有崇拜水精的習慣:金蛙王與努爾哈赤也與此河有關。[6]
圖們江,遼代稱「駝門」。金、元稱「愛也窟河」,其下游段稱「統門河」。明代稱「啊也苦河」,其下游段稱「徒門河」。清代稱河源段為「大浪河」,圖們市以下則叫「統門水」,也叫「土門江」。康熙年間稱土門,清高宗乾隆皇帝欽定《遼金元三史語解·金史語解》中稱圖們。1962年中朝兩國協定,「紅土水」與溺流水以下稱圖們江。圖們江在清朝時按滿語讀音譯作「土門江」。
據《中國古今地名辭典》記載:「土門」其實並非漢語,也不是韓語,「土門」滿語原稱「土門色禽」,土門意為「萬」,色禽意思是「源」、「河源」,「圖們色禽」亦即萬水之源, 後來略去「色禽」,簡稱「土門」。可是,後來日本借「土門」這兩個漢字詞挑起北韓和清朝之間的領土爭端,指清朝非法侵占北韓的土地。事件間接引致北韓獨立,並使日本有機會進一步侵占北韓的利益。與此同時,中國方面改用與原來讀音相近,但沒有意義的「圖們」來作為這條河流的譯名。
北韓語稱豆滿江,實是圖們江直譯音。朝鮮王朝《新增東國輿地勝覽》卷五咸鏡道慶源都護府豆滿江(圖們江):「女真語謂萬為豆滿,以眾水至此合流,故名」。長白山:「女真語謂善(山)顏(言)阿林,以白色的山峰,故名,胡(女真)人奉之為神山。」《朝鮮王朝肅宗實錄》記載,十七年十一月丙寅:「長白山,胡人(滿人)或稱白頭山,以長白故也」。[7]
地理 / 圖們江發源於長白山東南部,全長505公里,其中490公里為吉林北韓邊界,最下游15公里為俄朝邊界[8]。圖們江流向東北又折向東南,其幹流流經和龍、龍井、圖們、琿春四市。圖們江在琿春市敬信鎮防川村土字牌(東經130度42分,北緯42度17分處)出中國境。[9]
江的北岸是延邊朝鮮族自治州,南岸是北韓咸鏡北道、兩江道。[終]. ◀ [참고(參考)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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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만강(豆滿江)【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만강은 백두산(2,744m)의 동남쪽 대연지봉(2,360m)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석을수를 원류로 하여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에서 발원하는 대지류를 합해 동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총 길이는 521㎞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길다. 유역 면적은 10,513㎢(중국과 러시아 지역의 유역 면적을 합하면 41,242㎢)에 달한다.
두만강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한청문감(漢淸文鑑)』 만주지명고(滿洲地名考)에서 언급하고는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두만강은 또, 고려강(高麗江) · 도문강(圖們江) · 토문강(土們江) · 통문강(統們江) · 도문강(徒門江)으로 표기된 바도 있다. 만주지명고에 의하면, 두만강이 새가 많이 모여드는 골짜기라는 뜻의 도문색금(圖們色禽)에서 색금을 뗀 도문이라는 여진어(女眞語) 자구(字句)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청문감』의 동문유해(同文類解)에서는 원나라 때 지방 관제에 만호(萬戶) · 천호(千戶)라는 관직명이 있었는데, 여진어로 만호를 두맨이라 발음하며 이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 두만강이라고 한다. 한편,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에 쓰여 있는 동위토문(東爲土門)이라는 자구 속의 토문이 두만강이라고 청나라 측이 강변한 바가 있다. 중략(中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만강(豆滿江), 인용 끝]
(3) 두만강(豆滿江) 【나무위키】 : 두만강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한청문감(漢淸文鑑)》 만주지명고(滿洲地名考)에서 언급하고는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두만강은 또, 고려강(高麗江)·도문강(圖們江)·토문강(土們江)·통문강(統們江)·도문강(徒門江)으로 표기된 바도 있다. 만주지명고에 의하면 두만강이 새가 많이 모여드는 골짜기라는 뜻의 도문색금(圖們色禽)에서 색금을 뗀 도문이라는 여진어(女眞語) 자구(字句)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작물로 유명한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 북부지방과 만주 벌판이기 때문에 두만강은 "콩이 가득한 땅의 강" 이라는 의미로 부른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청문감》의 동문유해(同文類解)에서는 원나라 때 지방 관제에 만호(萬戶)·천호(千戶)라는 관직명이 있었는데, 여진어로 만호를 두맨이라 발음하며 이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 두만강이라고 한다.[6]
'투먼 강(한자:图们江, 영어:Tumen river)'이라는 명칭은 중국 측에서의 이름이다. 공식 표기는 Tumen River 쪽인 듯. 한편 러시아어에서는 '안개 낀 강'이라는 뜻의 투만나야(Туманная) 강이라고 하는데, 1972년까지는 만주어 이름을 따서 튜멘울라(Тюмень-Ула)라고 하였으나 1970년대 중국-소련 국경분쟁 이후 연해주 일대의 중국어 및 만주어 지명을 모두 러시아어 지명으로 개칭하면서 두만강도 투만나야 강으로 부르게 되었다. [인용(引用) / 끝]
(4) 두만강(豆滿江) [위키백과 한국어판] : 두만강은 백두산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홍토수(紅土水)를 원류로, 석을수(石乙水), 홍단수(紅端水), 서두수(西頭水), 홍기하(紅旗河), 하이란강(해란강, 海蘭江), 가야하(嘎呀河, 알아하), 훈춘하(琿春河)등의 지류와 합쳐져 동해로 흘러드는 547 km【서두수의 발원지부터는 610 km】의 강이다. 유역은 33,800 km²이며,《한청문감(漢淸文鑑)》 만주지명고(滿洲地名考)에서 지리명이 유래되었다.
두만강은 두만(豆滿), 도문(圖們) 외에도 역사적으로 두만(豆漫, 豆慢), 도문(徒門), 통문(統門), 토문(土門) 등으로 불리었는데, 이는 만주어의 음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만'의 원래 뜻은 만주어로 '만(萬)'을 뜻하는 투먼(tumen)에서 유래되었다. [위키백과 인용(引用) / 끝]
(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함경도(咸鏡道)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
豆滿江。在府東二十五里。源出白頭山,歷東良北斜地、阿木河、愁州、童巾、多溫、速障等處,至會叱家南流,至慶興府沙次麻島分流五里許入海。女眞語謂萬爲豆滿,以衆水至此合流,故名之。祀典祭北瀆神于此,載中祀。: 두만강(豆滿江) 부의 동쪽 25리에 있다. 근원이 백두산에서 나와 동량(東良)ㆍ북사지(北斜地)ㆍ아목하(阿木河)ㆍ수주(愁州)ㆍ동건(童巾)ㆍ다온(多溫)ㆍ속장(速障) 등의 지방을 경유하여 횟가[會叱家]에서 남쪽으로 흘러 경흥부(慶興府)의 사차마도(沙次麻島)에 이르러 갈라져 5리쯤 흘러서 바다에 들어간다. 여진 말로 만(萬)을 두만(豆滿)이라고 하는데, 여러 갈래의 물이 여기로 합류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사전(祀典)》에 북독(北瀆)의 신을 여기에서 제사 지낸다. 중사(中祀)에 실려 있다.
(6)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咸鏡道 慶源都護府 : 豆滿江。在府東二十五里。源出白頭山,自東良北、斜地,經會寧、鍾城、穩城,入府境,又南流,至慶興府沙次麻島分流五里許入海。女眞語謂萬爲豆滿,以衆水至此合流,故名之。祀典祭北瀆神于此,載中祀。
여지도서(輿地圖書) : 豆滿江。 在府東十六里。 源出白頭山, 歷茂山、會寧、鍾城、穩城、慶源、慶興, 達于海。
여재촬요(輿載撮要) 卷十之二 / 咸鏡道 慶源府 : 豆滿江行城。 穩城: 石築, 長十四萬三千七百六十八尺。 鍾城 : 石築, 長六萬二千四百八尺; 土築, 長八萬五千六百尺; 木柵, 長三千五百八十二尺。 會寧: 石築, 長一萬一千七百二十尺, 高十五尺。
古跡 : 巨陽城。 有兩石柱, 古懸鍾。 有庾誠者碎其鍾, 用九馬馱來, 從者三十餘人皆死, 遺其鐵置草中, 人不敢取。 西距先春嶺六十里。
題詠 : 申叔舟詩: “淸江氷泮水泱泱, 林藪蒼茫戎虜鄕。 山後海雲連塞暗, 城西嶺路掛天長。 人傳沮漆千年地, 春布關河萬里陽。 羽檄狼煙久已息, 但聞鷄犬達邊疆。” ○ “春風塵海正泱泱, 落日孤城是異鄕。 碧岫郊原胡騎遠, 黃蘆洲渚塞雲長。 羈遊落落關山外, 歸夢迢迢漢水陽。 從古華夷天所限, 江流一帶作封疆。” ○ 朴元亨詩: “山自重回水自泱, 北戎曾此久爲鄕。 貔貅萬竈煙初暖, 桑柘千林日漸長。 漢祖赤旗從沛上, 周家黃鉞肇岐陽。 行人莫怪巡邊戍! 尹碣依俙是舊疆。” ○ 曺兗河詩: “山含佳氣水泱泱, 仙李盤根肇此鄕。 膴膴周原爰始止, 綿綿瓜瓞自延長。 天生聖德開洪業, 物睹春輝向太陽。 好是慶源千古地, 王休萬世頌無疆。”
여지도서(輿地圖書) : 城池 : 永樂二十六年始築。 石城。 而萬曆癸未, 藩胡陷城。 二十一年癸卯, 府使柳光英以城闊民小, 損西城四分一改築。 周一萬四百七十五尺, 高九尺。 堞四百七十七, 垜四百四十, 甕城三, 曲城八。 有東、西、南、北門。 內有七井。 崇禎甲戌, 府使崔惟吉加築, 高十三尺。 南門則壬申府使洪受疇因城作二層樓, 名翫月樓。 城外十五步, 有壕塹四面。
(7) 농암집 제2권 / 시(詩) 차유령(車踰嶺)을 지나 무산(茂山)을 거쳐 회령(會寧)에 도착하다.
豆滿江南車嶺北, 穹廬甌脫舊成羣 : 두만강 남쪽이요 차유령 이북 지역, 저 옛날 말갈이며 몽고족이 득실댔지 聖朝拓地看何似, 靺鞨遺墟稼似雲 : 우리 조정 변경 개척 그 공로 어떠하냐, 말갈족 살던 자리 누런 벼 구름 같네
여섯 번째 / 胡運百年無許久, 異時奔迸卽須東 : 오랑캐 운 겨우 백년 오래가지 못하리니, 훗날 쫓겨 달아날 제 동쪽으로 올 터인데 豆江飮馬誰禁得, 直恐七州皆化戎 : 두만강서 말 물 먹일 저들 행위 뉘라 막나, 어허 북변 일곱 고을 오랑캐 땅 되잖을까
(8) 만기요람(萬機要覽) : 군정편 4 / 관방(關防) 함경도(咸鏡道) : 두만강행성(豆滿江行城) 석축의 길이 62,408척. 토성의 길이 85,600척. 〈양성지 소론(梁誠之所論)〉 : 함길도(咸吉道)의 회령은 본시 범찰족(凡察族)이 살던 곳이다.
(9) 번암집 제8권 / 시(詩) ○ 재필록(載筆錄) 고이도대렵가〔古珥島大獵歌〕
「珥島宛一夷夏閾, 豆滿江波囓不得 : 고이도라 완연히 화이(華夷)의 경계, 두만강 물결조차 삼키지 못하였네. 葭葦冥冥長數丈, 雉兔麋鹿成窟宅 : 갈대숲 무성하고 높이는 몇 장, 꿩 토끼 사슴들의 소굴이 되었어라. 評事出號期大獵, 夜宿訓戎晨結束 : 평사가 호령 내려 사냥을 약속하니, 훈융진에서 밤을 묵고 새벽에 모였도다. 중략(中略), 沙磧黯淡殺聲集, 蕩穴擣巢殊不遲 : 모래벌판에 암담히 살육 소리 가득한데, 굴과 둥지 소탕함에 너무도 주저 없네. 중략(中略), 隔江相呼欲有問, 其奈語言皆侏離 : 강 사이로 서로 부르며 묻고자 하여도, 어이하랴 언어가 다 오랑캐(侏離) 말인 것을, 중략(中略).」하였다.
◆ 위의 글에서 「당시(當時)의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가 아닌 중원대륙(中原大陸)에 있었다」라는 아주 중요(重要)한 단서(端緖)가 있다. 즉(卽) 「隔江相呼欲有問, 其奈語言皆侏離 : 강 사이로 서로 부르며 묻고자 하여도, 어이하랴 언어가 다 오랑캐(侏離) 말인 것을」하였는데,
이는 당시(當時), 두만강(豆滿江) 건너에 사는 이민족(異民族)은, 오랑캐(侏離)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리[侏離 : 오랑캐]”는 정확(正確)하게 어디에 있는, 어떤 종족(種族)이나 부족(部族)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만 확실(確實)하게 밝혀도 “조선왕조(朝鮮王朝)”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問題)를 밝혀낼 수 있다. 자! 하나하나 알아보기로 하자.
「고전번역원 DB」에 의하면 : 「관연록(觀燕錄)은 1,804년 동지사(冬至使)의 일행으로 북경(北京)에 다녀온 아산의 선비 “김선민(金善民, 1,772~1,813)”이 이듬해인 1,805년에 정리한 대청 사행 기록이다. 현재 원본은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을 일반에 서비스하고 있다.」라고 친절(親切)하게 설명(說明)하고 있다.
이곳에 “되놈 주리(侏離)”가 기록(記錄)되어 있으며, 그 주석(注釋) 편에서 : 《주-D001 / ‘되놈의 것’ : 원문은 ‘주리(侏㒧)’로 ‘주리(侏離)’를 말한다. 주리(侏離)는 중국 고대 서방의 소수민족, 혹은 그들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옳은 말이다. 「주리(侏離)란 ‘되놈’」을 말하는 것으로, 서방(西方)에 사는 이민족(異民族)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 두만강(豆滿江) 건너에 있는 이민족(異民族)은, ‘되놈’이라고 불리던 서방(西方)의 이민족(異民族)으로, 또 호자(鬍子)라고도 불리는데, 수염이 긴 서방(西方)인들을 칭(稱)하는 말이다.
○ 관연록(觀燕錄) 상(上) / 1,804년(純祖4, 甲子) / 11월 27일 아침에 맑고 저녁에 흐림
※ 觀燕錄 1,804년 11월27일 원문(原文) 이미지【출처(出處) : 한국고전번역원 DB】
◆ 관연록(觀燕錄) 본문(本文) : 「밥을 먹은 뒤에 후원(後園)에 올라 관제묘(關帝廟)와 여러 제불(諸佛)을 모신 정전(正殿)을 보았다. 돌아서 민가(民家)로 들어가 마려(磨驢 방아를 돌리는 나귀), 바늘〔針〕, 신발〔履〕, 양아(養兒), 주은(鑄銀 주조한 은) 등 각양의 물건을 보았다. 비록 그것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말이 ‘되놈(侏㒧)’의 것이라 다시 캐묻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臨水埜中飯 : 물에 임해 들에서 밥 지어 먹고, 中略, 侏㒧何所道 : ‘주리(侏㒧)’들이 무엇을 말하거나, 腥臊欲掩鼻 : 누린내에 코를 가리려 했지, 中略, 鞘頭北風利 : 칼집 끝에 북풍이 날카롭다」라고 하였고,
「天寒霜薄坐深更 : 찬 하늘에 서리 내릴 제 밤늦도록 앉았는데, 鬍子當門語不明 : 문 앞에 서 있는 되놈의 말 분명찮네. 來日又從何處去 : 내일은 또다시 어디로 가야하나, 鳳凰山外鳳皇城 : 봉황산(鳳凰山) 밖에는 봉황성(鳳皇城)이 있네.」하였는데, 여기서
❶ 〈주리(侏㒧) : 주리(侏離)〉란 무슨 말일까? 그 주석(注釋) 편에서 : 「주-D001 / ‘되놈의 것’ : 원문은 ‘주리(侏㒧)’로 ‘주리(侏離)’를 말한다. 주리(侏離)는 중국 고대 서방의 소수민족, 혹은 그들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되놈」이란 ‘호(胡) 또는 호자(鬍子)’를 말하는 것인데, 곧 얼굴에 수염과 구렛나루 털이 많은 서방(西方) 이민족(異民族)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청(淸)」의 여진족(女眞族)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의 몸에서는 누린내가 코를 찌른다고 하였다.
더불어 이들을 지칭(指稱)하여 「주리(侏㒧)=주리(侏離)」라고 하였는데, 「주리(侏㒧)=주리(侏離)」는, ➨「고대(古代) 서방(西方)의 야만족(野蠻族)」을 말하는 것이다.
➨➨➨「여진족(女眞族)【여진족(女眞族)➙말갈(靺鞨)➙물길(勿吉)➙읍루(挹婁)➙숙신민(肅愼民= 肅愼國=肅愼氏)】은, 동북방(東北方) 종족(種族)이 아니라, 서방(西方) 종족(種族)【호(胡)=호자(鬍子)】이었다」라는 것을 확인(確認) 시켜주는 아주 중요(重要)한 내용(內容)이다.
여진족(女眞族)은, 「조선인(朝鮮人)과 그 외모(外貌)가 전혀 달랐다」라는 뜻이다. 특히 봉황산(鳳凰山)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곳은 당시(當時) ‘건주위(建州衛)의 땅’이었고, 건주여진(建州女眞)이라는 말이고, 이는 곧 이들이 바로 ‘올량합(兀良哈)=오량해(烏粱海)’족이라는 이야기다.
「조선사(朝鮮史)」에서 「건주여진(建州女眞)은 곧 오량해(烏梁海)이고, 올량합(兀良哈)」인데, 이들은 본시(本是) 「만주(滿洲)【예니세이강[Yenisei River] 서(西)쪽으로부터 우랄산맥[Ural, Mt=오랍산맥(烏拉山脈)까지의 서(西) 시베리아(Sibera) 저지대(低地帶)】땅」에서 살던 자(者)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김선민(金善民)”은, ‘되놈’이라고 하고, ‘주리(侏離)=주리(侏㒧)’로 표현(表現)했다. 100% 옳은 말이다.
➨ 「주리(侏離)=주리(侏㒧)」란 「고대(古代) 서방(西方)의 한 종족(種族)」을 일컫는 말이다.
➋ 위의 본문(本文) 글을 보면 : 「호자(鬍子)」는 또 무슨 뜻인가?
「고전번역원 DB : 그 주석(注釋)」을 보면 :「[주-D003] 되놈 : 원문은 ‘호자(鬍子)’다. 호자(鬍子)는 긴 수염이나 수염이 긴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고, 과거 중국 동북 일대에 활동한 토비(土匪)를 일컫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썼다」라고 하였는데,
서방(西方)에 살던 종족(種族)이 갑자기 동북방(東北方)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토비【土匪=土寇=土賊 : 지방(地方)에서 일어난 도적 떼】짓을 할 수 있었겠는가?
➨「호자(鬍子」: 긴 수염이나 수염이 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서방(西方)의 이민족(異民族)을 지칭(指稱)하는 말이다. 반도(半島) 또는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의 종족(種族)들과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서방(西方)의 이민족(異民族)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호자(鬍子)」란 : 「뜻을 나타내는 터럭 발【髟(머리털, 수염, 늘어짐)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胡(호)가 합(合)해진 글자다.】“호(鬍)”자는 오랑캐의 이름으로도 쓰이고, 수염과 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가 많은 이민족(異民族)인 서방(西方) 오랑캐(胡)들을 일컫는 말이다. 동양인(東洋人)과는 전혀 다른 외모(外貌)를 가진 자(者)들이다.
이러한 종족(種族)이나 부족(部族)은, 동북(東北) 지방에 존재(存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자(者)들은, 「서방(西方) 종족(種族)」이기 때문이다.
➌ 위의 본문(本文) 글에서 말하는 것은 : 청인(淸人) 역시 몽고인(蒙古人)들과 좀 다르긴 하지만 유사(類似)한 종족(種族)으로, 「되놈(胡 : 鬍子)이며, 주리(侏離)로, 몸에서 누린내가 풍기는 자(者)」들이란 이야기다.
➍ 「필자(筆者) 주(注)」 : 「주리(侏離)」란 「서방(西方)의 악(樂)」을 말하는 것으로, 「서방종족(西方種族)」을 뜻하는 말이다. 많은 ‘고전(古典) 사료(史料)’를 보면 : 『東 曰 韎, 南 曰 任, 西 曰 侏 離, 北 曰 禁 : 동(東)은 매(韎)라 하고, 남(南)은 임(任)이라 하고, 서(西)는 주리(侏離)라 하고, 북(北)은 금(禁)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주리(侏離)는 서방(西方)의 악(樂) 또는 서방(西方) 종족(種族)」을 일컫는 말이다.
【효경구명결(孝經鉤命決)과 통전(通典)에서는 : 「東 曰 侏 離 : 동(東)은 주리(侏離)」라고 전혀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큰 오류(誤謬)다.】
『 韎 』 : ‘동방(東方)의 음악(音樂)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자사전’에서도 설명(說明)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大部分)의 ‘고전(古典) 원문(原文)’을 살펴보면 : 「주리(侏離)는 서방(西方)의 종족(種族) 또는 악(樂)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옥편(玉篇)에서는 : 「매(韎) :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동사강목(東史綱目)·周禮卷24 四夷之樂·선화봉사고려도경 제40/악률(樂律)·해동역사(海東繹史) 주례(主禮) 주(注)·樂書(四庫全書本)/卷173·五禮通考(四庫全書本)/卷071 외(外) 많은 사료(史料)가 「서방(西方)의 것을 주리(侏離)」라고 하였다.】
【해동역사(海東繹史) 제22권 / 악지(樂志) 악제(樂制)와 악기(樂器)를 보면 : ➀ 동이(東夷)의 음악은 매(佅)라 하는데, 창을 잡고서 시절에 맞게 자라나는 것을 도우며, ➁ 남이(南夷)의 음악은 임(任)이라 하는데, 활을 잡고서 시절에 맞게 기르는 것을 도우며, ➂ 서이(西夷)의 음악은 주리(株離)라 하는데, 도끼를 잡고서 시절에 맞게 죽이는 것을 도우며, ➃북이(北夷)의 음악은 금(禁)이라 하는데, 방패를 잡고서 시절에 맞게 저장하는 것을 돕는다. 「효경구명결(孝經鉤命決)」】라고 하였다.
또 옥편(玉篇)을 찾아보면 : 「매(韎) :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 “두만강(豆滿江)”은 그저 20세기(世紀) 이후(以後)에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심어진 강(江) 이름일 뿐이다. “만수지원(萬水之源)”이라는 뜻을 가질 수 없는 평범(平凡)한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강(江)과 무엇이 다른가?
중요(重要)한 것은, 「반만년(半萬年)을 이어온 조선국(朝鮮國)의 언어(言語)로 된 이름이 아닌 만어(滿語)의 뜻으로 만들어진 강(江)의 이름인가?」 하는 것이다.
「반도(半島) 땅에 옛 조선(朝鮮)【고대(古代)로부터 고황제(高皇帝)의 조선(朝鮮)까지의 총칭(總稱)】은 없었다」라는 또 하나의 강력(强力)한 증거(證據)가 추가(追加)되는 것이다.
「만어(滿語)란 만주어(滿洲語) 곧 만족(滿族)의 언어(言語)라는 것이고, 만주(滿洲)란 이름은 만주족(滿洲族)이라는 노이합적(奴爾哈赤) 종족(種族)인 여진족(女眞族)을 칭(稱)하는 말이다.」
본시(本是)의 만주(滿洲) 땅은 「백두산(白頭山)=장백산(長白山)=벨루하산(Belukha, 山)=금산(金山)=아이태산(阿爾泰山)【별노합산(別盧哈山:4,506m), 우의봉(友誼峰:4,374m), 규둔봉(奎屯峰:4,082m)】」의 북방지대(北方地帶)를 말하는 것으로 「만어(滿語)로 “금산(金山)”」이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 및 백두산(白頭山) 동남(東南)에 있었다」라는 「만족(滿族)과 그들의 언어(言語)로 된 “금산(金山)”이 일만(一萬) 리(里) 떨어진 서(西)쪽 땅에 있을까! 왜 “만족(滿族)과는 ‘십 원 한 장’도 관계(關係)없는 땅”에 만들어진 것일까?」
바로 그곳이 본시(本是)의 「백두산(白頭山)=장백산(長白山)=벨루하산(Belukha, 山)=금산(金山)=아이태산(阿爾泰山)【별노합산(別盧哈山:4,506m), 우의봉(友誼峰:4,374m), 규둔봉(奎屯峰:4,082m)】」의 북방지대(北方地帶)가 바로 옛 「만주(滿洲) 땅」이기 때문이다.
➨ 「본래(本來)의 두만강(豆滿江)은, 「“당노산맥(唐努山脈)=당노오랍산(唐努烏拉山)” 북방지대(北方地帶)」를 적시며 흘러 북해【카라해(Kara Sea)】에 물을 쏟아붓는, 수많은 지류(支流)를 가진, “만수지원(萬水之源)”을 가진「예니세이강(Enisei, 江)」이다.
「오늘날의 “두만강(豆滿江)”은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를 흐르는 오늘의 하천(河川)일 뿐이다. 조선사(朝鮮史) 또는 한국사(韓國史)에서 말하는 두만강(豆滿江)은 결코 될 수 없는, ‘십 원 한 장’도 관계(關係)없는, 20세기(世紀) 이후(以後)의 하천(河川) 이름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끝-
2024년 12월 22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 다음 편에서는,
"여진족(女眞族)인 만족(滿族)과 奴爾哈赤(노이합적:누루하치)은 어디에 거점지를 두고 명(明)나라를 쳤을까?" 에 대한 기존 역사통설 논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反論)으로, "조선(朝鮮)은 노이합적(奴爾哈赤)의 동(東)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그 논거(論據)와 함께 설명(說明)해 보고자 합니다.
* 이와 더불어 여진족의 선대인 말갈, 물길, 읍루, 숙신은 본래 서방과 북방사이의 우리들과는 다른 이민족이었다는 것인데... ...역사통설 논자들은 이들을 '한반도 동북방'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 이러한 역사통설 논자들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깨(破)보겠습니다.
한파가 몰아치는 한주 입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카프카스 산맥의 북쪽을 "만추"라고 발음 하는 것은.....
저는 지금까지 알타이산맥 동쪽 신장지구 근처를 만주라고 한 생각을 바꾸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대진"님!
제가 언어학자는 아닙니다만 : 오늘날의 우랄산맥 동쪽으로부터 에니세이강 사이의 광할한 땅의 지명은,
첫째 고대는 돌궐어요,
둘째 중세는 타타르 곧 달단어요,
세번째 중세 이후는 만어(滿語 : 여진족)로 되어 있다고 보아집니다.
실제 현지의 지명 설명을 보면 위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 고구려의 서쪽과 서북쪽에서는 돌궐과 경계하니, 돌궐족이 쳐들어올 수 있었떤 것이고,
또한 말갈을 정복하여 백제와 신라전에 참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며, 고구려부흥군에 말갈병이 대대적으로 참전할 수 있었던 이유겠죠.
* 또한 조선의 북쪽이나 서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것이고, 귀화 또는 포로들이 조선 땅에서 무리를 이루어 살던 집단을 백정이라 했고, 가축과 함께 유랑하며 사는 이들을 양수척, 화척등등으로 불리게 된 것이고,
* 만족의 노이합적이 동쪽으로 조선과 국경르 맞대고 있었다는 것을 조선 사대부들은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한국민들은 자신들의 선대를 분명 '조선'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는 전혀 다른 사고를 합니다.
오직 반도(半島)가 옛 '고토'인 것처럼 말입니다.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으니... ...
*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국민들은 자신들의 '선대 역사 이야기'를 믿으려 할까요?"
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댁내 평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