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경 |
손님이 뜸하다. 컴퓨터 스위치를 켠다. 동()은 스물여섯 개의 인터넷 카페와 일곱 군데의 채팅 사이트에 가입되어 있다. 사십 개의 즐겨찾기 중에서 텔미플리즈 클럽에 들어간다. 텔미플리즈 클럽은 우울할 때 들어가는 곳이다. 오랄한 대화를 클릭한다. 오랄한 대화에는 아홉 개의 방이 만들어져 있다. 동은 보헤미안이란 방을 만든다. 보헤미안이 된 동은 밀양(密陽:경상남도에 속하는 섬으로 복숭아를 비롯한 과수원이 많고 과하마(果下馬)가 과수원 사이를 걸어 다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다에는 해마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햇살을 얼굴 가득 담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30세 여자라고 소개한다. 곧바로 닉네임 투어리스트가 들어와 33세, 여행사 경영, 사는 곳은 인천이라고 소개한다. 보헤미안은 '복숭아나무 아래서'(1963년 성진우 작품. 책 영업을 하는 주인공 마리를 통해 카뮈식 실존을 처절하게 드러내고 있다.)를 읽어 보았냐고 물어본다. 투어리스트는 책에 별로 관심이 없으며 감천사의 가을 단풍이 불타니 여행이나 가자고 한다. 보헤미안은 '복숭아나무 아래서'를 읽은 사람과 가겠다고 한다. 동은 오랄하지 않은 대화를 하다 나와 버린다. 초록바다 영혼이란 곳에 동은 catharsis라는 이름으로 들어간다. 서울(seoul), 25세, 남자,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뒤 분위기를 살핀다. 방장은 scarlet으로 서울 목초동에 사는 27세 여자라고 소개한다. catharsis는 목초도서관(한국에서 가장 큰 개인 도서관으로 문학과 관련된 책들을 초원의 풀처럼 많이 소장하고 있다.) 옆의 플라타너스 아래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scarlet은 반갑다며 자신도 그렇다고 한다. 목초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는 동은 피식 웃는다. scarlet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한다. catharsis는 누가 왔으니 다음에 통화하자며 나온다. 동이 채팅을 통해 실제로 통화하거나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상공간의 만남이 편할 뿐이다.
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캐논 18*50IS 스테빌라이저 쌍안경은 인체 공학적 디자인으로 편리하며 흔들림에 강하고 산개성단까지 볼 수 있다. 동이 리의 잠자는 모습을 포착한 것은 오늘만도 세 번째다. 창가에서 붉은 꽃이 핀 시클라벤에 물을 주다 말고 리는 오전 10시 20분에 책상에 엎드려 잠들기 시작하여 14분 동안 잤다. 2시 5분에는 목판화를 하다가 그대로 엎드려 12분 4초 동안 또 잤다. 지금 시각 4시 50분. 대리석에 전각을 하던 리가 다시 잠이 든 것이다. 입고 있는 검은 옷 때문인지 리의 얼굴은 언제나 창백하게 보인다. 뚱뚱한 몸이 리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동은 생각한다. 리의 모습은 전각 판화라고 쓰인 유리를 뚫고 햇살이 가득한 도로를 가로 질러 열쇠 특수키라고 쓰인 유리를 순간 넘고 망원경의 렌즈를 통과하여 어느새 동의 동공에 포착된다. 동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책상 위로 흘러내린 리의 머리카락과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등과 오른손 위에 얹힌 왼손의 실루엣이 아름답다고 동은 생각한다. 잠이 많은 여자임에 틀림없다. 저 여자의 잠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순간 리의 평온했던 얼굴이 괴로운 표정으로 바뀐다. 미간이 모아지고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되지 않는 표정이다. 가위에 눌린 게 틀림없군. 동이 달려가서 깨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즈음 리가 안도의 표정으로 잠에서 깨어난다. 잠이 든 지 정확히 13분 20초 만이다. 리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20초 동안 기지개를 켠다. 기지개 켜는 도중 3초 동안 하품을 한다. 리는 피로가 가신 듯 상쾌해 보인다. 하다만 전각을 두고 창가로 간다. 동은 망원경 보는 것을 그만둔다. 젊은 여자가 열쇠를 복사하러 왔기 때문이다.
키 커팅머신의 왼쪽에 복사할 키를 고정시키고 오른쪽에 새 키를 고정시킨다. 스위치를 작동시키면 복사할 키의 굴곡을 따라 기계가 움직이고 새 키에는 똑같은 굴곡이 새겨진다. 그리고 난 후 새 키를 솔에다 한 번 문질러 주면 끝이다. 20여 초면 복사가 끝난다. 만남이란 어쩌면 열쇠를 복사해서 나누어 주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잠겨 있는 내면들 속에서 꿈틀대는 존재의 방들. 방문에 노크를 하면 방주인이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복사해서 나누어 주는 것이 만남이 아닐까. 받은 열쇠로 열고 들어간 마음의 방안에서만이 서로가 보듬을 수 있을 것 같다. 동은 여러 가지 형태의 열쇠를 복사하였지만 아직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복사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리의 왼쪽 얼굴에 눌려진 자국이 있다. 리는 조금 열어 둔 창문을 활짝 연다. 예민하게 보이는 담쟁이가 더듬이 끝을 세우고 줄기를 안으로 뻗은 채 있다. 리가 창문을 열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담쟁이덩굴의 끝을 안으로 들여 놓는 일이다. 농익은 가을 햇살이 담쟁이의 붉은 잎으로 모여 있는 것 같다. 잎사귀 세포 가득 불타는 정열로 넘치는, 붉은 잎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붉어지기 위해 담쟁이의 뿌리와 줄기와 잎, 햇살과 바람과 공기 등 모든 것들이 몰입한 것 같은 느낌이다. 실내의 중앙에는 까맣게 칠해진 테이블과 까만 스툴 두 개가 있다. 테이블 위에는 조각도와 고무판, 목판 등이 있고 왼쪽 벽에 붙은 테이블 위에는 롤러와 화선지 등이 널려 있다. 그 위쪽으로 줄이 쳐져 있고 판화 작품이 빨래처럼 걸려 있다. 다른 한 쪽 벽에는 전각에 관한 책이, 진열장엔 전각이 놓여 있다. 리는 판화가 겸 전각가이다. 리는 스툴로 가 앉는다. 고무판을 테이블 위에 올린다. 고무판은 물렁물렁하기 때문에 쉽게 조각할 수 있다. 고무 냄새도 이젠 익숙해져 오히려 상큼하게 느껴진다. 리는 여러 가지 판화 작업을 함께하는데 그 재료마다의 고유한 냄새들을 좋아한다. 패러디 작품을 하기로 하고 화집을 뒤적인다. 앞치마는 여러 가지 색깔의 잉크 자국이 얼룩져 추상화 한 점을 보는 것 같다.
리가 클림트의 '입맞춤'에 처음 끌린 이유는 황금빛 때문이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글거리는 삶에의 욕망 같은 것이 느껴진다. 리는 다시 입맞춤의 몰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눈을 감고 고개가 거의 90도 가까이 옆으로 꺾여 있고, 남자는 옆얼굴의 윤곽만 살짝 보일 뿐이다. 그러나 황금의 식물 줄기 같은 것들이 치렁치렁 춤추고 있다. 찬란하고 황홀하다. 어디론가 끝없이 자랄 것 같다. 몰입.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관념만이 떠다니는 영혼이 아닌 행동으로 몰입될 수 있는 절정의 아름다움. 책의 몰입, 자연의 몰입, 예술의 몰입, 사람에게로의 몰입. 몰입을 위한 무대가 필요하겠지. 리는 나팔을 부는 여인을 그림의 오른쪽에 삽입한다. 1912년 발표작인 폴 세르쉬에의 '무대'라는 그림의 일부이다. 여인이 왼쪽에서 나팔을 불고 있고 다른 한 여인은 새들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들고 있다. 리듬이 살아 있는 듯하다. 그림 속의 새들이 멜로디에 의해 사뿐히 날아오를 것 같다. 새들에 의해 나팔을 불 수도 있을 것이고, 나팔에 의해 새가 모였거나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먼저인가보다는 무대를 형성하고 있는 그 자체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그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아닐까. 관계. 모든 존재는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누가 먼저고 누가 잘난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면서 어우러져 관계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들 속에서 자신을 위해, 또는 타인을 위한 몰입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무대에서 누구와 관계하며 어떤 몰입을 하고 있지? 리는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다. 혼자만 덩그러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동의 가게 안쪽 낮은 문지방을 지나면 동이 밥을 해먹고 잠을 자는 방이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하다. 리의 가게에도 불이 꺼져 있다. 동은 팔레트에 물감을 짠다. 불꽃을 그릴 참이다. 가장 붉다는 먼셀 표색계의 5R을 고른다. 동은 5R의 색상이 비를 머금은 잿빛구름 같다고 느낀다. 활활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가 갑자기 잘 잡히지 않는다. 동은 신문지와 라이터를 들고 콘크리트 계단을 오른다. 4층을 지나면 옥상이다. 옥상에는 빨래 몇 장이 팔락거리고 있다. 동의 옷가지다. 구름이 낮게 내려와 출렁이는 것이 동에게는 하늘에 온통 불이 번진 것 같은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동은 신문지에 불을 붙인다. 일렁이며 춤을 추는 불꽃. 동의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작은 티끌들이 일면서 분노가 솟구친다.
동이 불꽃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미술 시간에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면서 성냥의 유황에서 피어나는 불꽃을 회색으로 그렸던 그 때부터다. 무언가를 태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언청이 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한 동은 입 언저리가 약간 일그러져 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 발음이 샜다. 아이들은 째보라고 놀렸다. 동은 쓰레기를 모아 몰래 불을 피우고 색깔을 관찰하곤 했다. 크레용의 색깔 몇 개가 같은 톤의 색임을 알 즈음 색맹 검사를했다. 색맹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회색분자라고 놀려댔다.
동은 자신을 회색분자라고 한 아이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슬레이트 지붕의 그 아이 집에 불을 질렀다. 불은 집의 한 귀퉁이에 그을음만 남긴 채 힘없이 사그라졌다. 미안하다며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던 엄마는 장독에 넣어둔 주홍빛 홍시 한 소쿠리를 그 아이 집에 가져다주게 했다. 투덜대며 가지고 가던 동은 홍시 몇 개를 깨뜨렸다. 아껴 먹던 홍시를 가져다주고 돌아와 훌쩍거리고 있는 동에게 엄마는 불은 아주 무서운 것이니 마음속에 모닥불을 지피고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했다. 엄마를 원망해도 좋지만 가슴 속의 모닥불만은 꺼뜨려선 안 된다고 하였다.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크게 울었는데 엄마의 말에 대한 수긍이라기보다는 실패한 보복에 억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동은 그날 밤 그 아이집이 붉게 타오르는 꿈을 꾸었다. 화장실도 다 타버리는데 소변이 마려워 발을 구르다가 불꽃을 향해 오줌을 누었다. 밖에는 밤사이 함박눈이 내려와 있었다. 엄마는 빗자루로 축담에서 대문까지 좁은 길을 만들었다. 방구석에서 울고 있던 동은 부엌으로 가 천일염 한 바가지를 들고 나왔다. 엄마는 소금을 얻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무 데나 오줌을 싼 것은 그 아이들이에요. 겨울 아침 햇살이 쌓인 눈 위에서 순은빛 가루로 빛났다. 눈 내린 세상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동은 이런 아름다움이 낯설게 느껴졌고, 그 누구도 수치심에 쌓인 내면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상과 분리된 느낌이었다. 엄마는 뜨개질 한 털모자를 씌워주었는데 포근함마저 과분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 느낌에 스스로 놀라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동은 뽀드득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너무 커서 춥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다. 다섯 아이들의 집을 돌면서 아이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천일염을 뿌렸고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놀리다만 아이들은 움찔 놀라 물러났다. 돌아온 후 닷새 동안 고뿔을 앓았다. 엄마는 울먹거리며 이렇게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 죄 없는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쩌누를 반복해서 웅얼거렸다. 그 소리는 어둔 동굴 같은 동의 마음속에 메아리가 되어 더한 생채기를 냈고 영혼은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버릴 것 같았다. 동은 손으로 엄마의 눈가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눈을 뜨기도 힘들어 계속 잠을 잤다. 엄마가 측은해서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즈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엄마, 마음속에 모닥불을 지폈어요. 동은 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엄마는 동의 생각보다 훨씬 안도하며 기뻐했고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간호에 지친 엄마는 초저녁부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초승달이 차갑고 날카롭게 보이는 밤이었다. 동은 불꽃을 보고 싶다는 충동을 다시 느꼈고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수치심과 불안의 벽을 태워 버리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마음속에 지펴놓은 모닥불에서 차가운 바람만이 부는 것 같았다. 아니, 모닥불을 지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동은 찬장 깊숙이 숨겨놓은 성냥을 찾았고 짚단 세 개를 가져다 불을 피웠다. 불꽃을 보자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날 밤 불씨가 남아 집에 불이 났다. 곤한 잠을 자던 엄마가 질식사했다. 동의 내면에는 어둠이 더 짙어졌다. 엄마가 저의 모닥불이었나 봐요. 동은 울부짖었다. 뼈 속에서 찬바람이 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세상의 가장 낮고 어두운 구석으로 내던져져버린 것만 같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그 겨울을 더 춥게 했다. 동의 눈빛은 슬픔과 분노로 이글거렸고 건드리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동은 불꽃 그림을 더 많이 그렸다. 슬픔의 뭉치가 된 듯한 자신도, 자신을 멸시하는 듯한 세상도 모두 태워버리고 싶었다. 동은 거의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동이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언어들이 불꽃으로 변한 듯 불꽃 그림에 집착했다. 동은 자신의 닫힌 내면을 열어 줄 열쇠를 불 속에서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벽에 걸린 수많은 열쇠와 특수키들을 바라보면서 정작 자신의 마음을 열어줄 열쇠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리는 '숨 쉬는 몰입'이라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배경은 몽골이다. 몽골의 들판에서 유목민처럼 떠돌아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프랑스 문화원에서 전화가 온다. 리의 전각을 전시하자는 것이다. 비엔날레에의 프랑스어권 작가들을 위해 k대 불문학과 교수와 프랑스 문화원이 마련한 자리다. 리는 대부분의 만남을 피한다. 심한 기면증의 원인도 있지만 큰 체구의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게 되면 대부분 시선을 땅에 둔다. 차라리 고물거리는 개미를 보거나 흙에 반쯤 묻힌 작은 돌멩이를 보거나 바닥 타일의 질감을 관찰하는 편이 좋았다. 그 동안 시내에 있는 시립미술관 분관의 초청으로 두 번 전시했다. 이번에는 프랑스인에게 전각을 소개하자는 문화원 측의 권유로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이다. 문화원은 리의 생각보다 협소하다.
리는 벽 쪽에 붙인 긴 테이블 위에 돌이나 나무에 새긴 전각 작품을 걸고 벽에는 종이나 천에 찍은 작품을 액자에 넣어 전시한다. 이번 전시회의 대부분은 나무나 돌, 산, 강 등을 소재로 한국적인 정서를 소박하게 담아낸 것과 고구려 벽화에서 따온 이미지에 상징적인 의미를 표현하기도 한 것들이다. 올해의 비엔날레는 '멈춤, 물 한 방울, 열풍'(세계 40여국의 실험성이 강한 작가들이 참석하여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임. 50년의 전통을 가진 이번 비엔날레는 동양적 사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치한 작품들로 관람객들의 반응이 작품을 완성시킨다. 특히 동양적 문양으로 장식된 방안에서 동양의 모습이 찍힌 10개의 화면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표정과 눈빛이 전시현장에서 촬영되는 비디오가 시선을 끌었다.)이라는 주제로 동양적 사상의 담론을 담고 있다. 리의 전각이 동양적인 맛을 풍기므로 초청된 것이다. 사실 리는 전각 이외에 현대적인 판화도 같이 다룬다. 동양적인 철학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구상하여 비엔날레에 출품하기도 했다. 설치 미술은 컴퓨터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특별한 작업 공간이 필요 없다. 리는 컴퓨터로 작업한 것을 바로 현장에서 설치했다.
칠 후 리의 가게에 비엔날레 초청작가인 오르타가 찾아온다. 오르타는 프랑스에서 왔지만 서예의 묵 냄새와 경직된 듯한 붓놀림에 매력을 느낀다면서 서화에 찍을 초형인(肖形印)을 파 달라고 한다. 초형인은 전각의 일종으로 글씨를 새기는 대신 새나 물고기 등 동물 모양을 파는 것이다. 붓글씨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배운다고 한다. 오르타는 오리너구리에 자신의 이름과 예명을 넣어 달라고 한다. 왜 오리너구리인가요? 리는 오리 주둥이에 너구리 모양을 하고 버둥거리는 우스꽝스러운 오리너구리의 모습이 떠올라 묻는다. 오리너구리를 택한 이유가 있지요. 오리너구리는 다섯 개의 성별을 결정하는 염색체를 가지고 있어요. 오리 염색체가 다섯 개의 X 염색체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자가 생성되는 것이 더욱 놀랍지요. 이들 염색체는 XY XY XY XY XY 와 같은 식으로 나란히 배열되어 있어요. 체인의 끝 한 부분은 인간의 성 염색체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체인의 다른 끝 부분은 새의 성 염색체와 비슷하죠. 포유류임에도 알로 번식하고 젖을 먹입니다. 폭이 넓은 발은 다섯 개의 발톱과 물갈퀴가 있지요. 수컷의 발뒤꿈치엔 가시가 돋았고 독까지 있습니다. 오리처럼 생긴 주둥이는 입 안쪽에 커다란 볼주머니가 달려 있는데 물에 사는 생물을 잡아먹고 볼주머니에 저장해요. 긴 꼬리에는 에너지를 저장하지요. 그 같은 다중성을 사랑하죠. 상징적으로 다양성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성격의 예술작품을 창작하겠다는 내 의지가 담긴 것이지요. 오르타는 쉬지 않고 말한다. 참 신기하네요. 그러지 않아도 인간은 복잡한 종족 아닌가요? 이렇게 물었지만 리는 어떤 종류의 동물을 새기든지 상관없고 더 이상의 설명도 듣고 싶지 않다. 단지 오리너구리가 진화 중이라는 학자와 몇 백만 년 전 화석에서 발견된 오리너구리와 현재의 오리너구리가 같기 때문에 진화론을 부정하는 학자들 중 어느 것이 맞는지 궁금할 뿐이다. 리는 계혈석에 오리너구리를 새기기 시작한다. 리는 오리너구리에 몰입한다. 오르타도 새겨지는 오리너구리를 본다.
오르타가 초형인을 들고 나가자 남자가 들어온다. 남자가 내민 쪽지에는 세 개의 이름이 적혀 있다. 예전에 리는 인장의 이름과 사람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애매해진다. 어떤 것이 진짜 이름일까를 생각하다가 이름 모두를 합한 이미지가 남자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사실 이름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자신의 의지로 지은 이름도 아니다. 리란 이름은 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작명가가 지은 것이다. 그 작명가는 친구들과 산삼 캐러가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높은 곳에 오르려다가 낙사했다고 들었다. |
단지 이름과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낯익어가는 것이다.
리는 이름과 닮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예술 사이트에서 만나 채팅으로 일 년 넘게 대화로 사귀어 온 대학 교수 준수와 처음 대면한 날이었다. 리가 계속 만남을 미루었지만 준수의 집요함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준수는 비대한 리의 몸을 비난의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준수는 240미리 신발을 신고 있었다. 작고 왜소한 사람이었다. 졸음이 쏟아졌다. 잠을 깨고 보니 준수는 가고 없었다. 기면증이 편할 때도 있구나.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것이 이때부터다. 인터넷의 이름은 서로의 상상 속에서 물렁거리지만 곧 만나는 순간 돌처럼 굳어진다. 가상의 공간이 현실화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관계가 유연하게 흐를 수 있을까? 준수가 돌아간 후 두 번 다시 전화나 메일도 없었으며 채팅사이트에 준수라는 이름을 볼 수 없었다. 리도 본명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리의 몸이 부푼 것은 계부에게 상처를 입고 끼니마다 인스턴트식품을 먹었던 때부터이다. 아니다. 기면증이 생긴 무렵인 것 같기도 하고, 수십 개의 이름으로 사이버 공간을 부유해 다닐 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리는 고무판에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말을 타고 달리는 리가 몸을 뒤로 돌린 채 코끼리만한 늑대에게 활을 겨눈 그림이다. 돈 많은 계부와 결혼한 엄마가 위암으로 죽자 계부는 리의 몸을 더듬었다. 리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계부는 대가로 매끼마다 피자, 햄버거 등의 인스턴트식품을 사다 주었고 리는 폭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의 악몽으로 리는 판화에 더 매달렸다. 말의 긴 갈기와 리의 갈기 같은 긴 머리카락이 율동감 있게 나부끼어 화면상 늑대의 크기와 비슷하다. 케이스에서 세모 칼을 먼저 꺼낸다. 날카로운 실뱀같이 우글거리는 리의 머리카락을 파내기 시작한다. 늑대와 겨눌 수 있는 대칭 구도가 뛰어난 수렵도를.
오늘은 손님 한 명 없다. 고요가 등에 찬 기운을 끼얹는 듯하다. 언젠가부터 열쇠 복사하러 오는 사람이 줄기 시작했다. 다양한 기능의 열쇠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문을 입력시킨 후 같은 지문이라야 문을 열어주는 지문키도 있다. 지문이 사람마다 거의 다르기 때문에 편리할 것 같지만 실제로 불편한 점도 많다. 손가락을 다치거나 땀이 났거나 이물질이 묻었을 경우 확인 거부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키와 보조키가 하나로 된 게이트맨 회사에서 나온 멀티키 쓰리가 유행이다. 섭씨 70도 이상이면 화재 감지 센서까지 작동하고 보일러도 켜고 끌 수 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자동개폐장치이기 때문에 열쇠도 필요하지 않다. 요즘 열쇠가게는 두 가지 이상을 겸하지 않으면 생활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동은 열쇠가게만 집착하고 있다.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형태의 열쇠를 본다. 안개에 항상 갇혀 있는 것 같은 불안함. 그 불안 속에서 열쇠를 열고 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수 없이 지나다니는 무표정의 사람들, 멸시하는 사람들. 모두 저 열쇠들로 문을 열 수는 없는 것일까? 동은 뻣뻣하고 긴 머리카락을 묶고 있던 끈을 푼다. 언제부턴가 얼굴을 가리고 싶어 머리를 길렀다. 아니,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아 기른 머리다.
동은 상가의 옥상에 오른다. 문이 잠겨있다. 호주머니 속에서 열쇠 하나를 꺼낸다. 열쇠구멍이 있는 것이면 모두 딸 수 있는 열쇠다. 동이 직접 끌로 만든 것이다. 옥상 문을 연다. 도시의 회색 공기는 동의 머리카락을 어둔 마음처럼 헝클어 놓는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회색의 나무가 보도블록 위에 우울하게 엎드려 있다. 신호등의 불빛을 본다. 붉은 불도 녹색불도 그 어떤 의미 있는 신호도 보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무엇을 쫓고 있는 듯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침을 뱉고 싶다. 입안의 침을 모은다. 오른쪽 입술의 중간쯤이 일그러져 치켜 올라간 흉터가 있는 째보. 째보라고 놀리던 어릴 적 친구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경계하는 시선이 입술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볼 때면 소름이 돋는다. 동은 아래로 침을 뱉는다. 하얗게 엉킨 채 낙하하던 침은 바닥에 모래알 같이 작디작은 흰 점을 찍는다. 동은 자신의 처지가 보도블록 위에 끈적거리며 쓸모없이 붙어 있는 버려진 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리는 요즘 잠자는 횟수가 늘었다. 동은 리가 궁금해진다. 갑자기 깊은 잠에 빠져드는 기면증 환자임을 눈치 챈 후 더 자주 관찰한다. 엷은 안개와 함께 가을비가 내린다. 리의 가게가 촉촉이 젖는다. 가는 빗줄기 사이로 리의 모습을 본다. 잘 보이지 않는다. 흘러내리는 긴 머리가 보기 좋았는데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버렸군, 무슨 일이 있나? 며칠간 리는 고개를 거의 들지 않고 작업에 몰두했다.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비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한다. 리를 보고 있으면 동의 마음속에 모닥불이 지펴지는 것 같다. 오늘은 꼭 찾아가 보리라 몇 번 다짐하지만 쉽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비 때문에 리의 윤곽이 흐트러진다. 유리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리를 더욱 불분명하게 한다. 또 잠이 들었다. 잠든 지 18분이 지났는데 일어나지 않는다. 동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엄마처럼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에 동은 급히 뛰쳐나간다.
우산도 쓰지 않고 뛰쳐나왔지만 리의 가게 앞에 오자 멈칫한다. 가게는 아담한 산장 같다. 벽은 하얗게 칠해져 있고 벽면에 붙은 담쟁이가 발갛게 물든 채 창문의 삼분의 일가량을 커튼처럼 드리우고 있다. 비바람에 가늘게 흔들리는 모습이 감미롭다. 빗속에서 머뭇거리던 동은 용기를 내어 리의 가게 유리문을 연다. 작은 풍경이 꿈결인 듯 우주에서 밀려오는 소리처럼 가슴 깊숙이 울려 퍼진다. 안으로 들어서자 잉크냄새와 숲 속의 바람이 깃든 나무냄새 등이 한데 어우러져 동을 휘감는 듯하다. 핸디코트로 흰색이 칠해진 실내 벽은 붓의 자연스러운 터치를 그대로 살려놓았다. 목판화를 하다가 엎드린 채 잠들었나 보다. 나무를 깎은 조각들이 책상 위에 흩어져 있다. 그 옆에는 autumn rain이 필기체로 쓰여 있고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담쟁이와 빗방울 속에 있는 동의 열쇠가게 건물이 스케치되어 있는 노트가 있다. 비 내리는 창가를 보면서 스케치한 그림 같다.
동은 리를 흔들어 깨운다. 깜짝 놀란 리는 걱정스러움과 흥분으로 뒤얽힌 동의 얼굴과 마주하고 누구세요? 라고 묻는다. 동은 그때야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리가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로 물러선다. 그믐밤을 연상하게 하는 숏 컷의 유난히 검은머리 아래로 하얗고 넓은 이마가 반듯하게 보인다. 눈썹은 칼로 정교하게 다듬어 날카롭게 보이나 약간의 오만한 기품이 느껴진다. 망원경으로 수십 번 훔쳐 볼 때는 막연하나마 친근감이 느껴졌는데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오히려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온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밝은 갈색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간절하게 젖어 있다. 눈동자가 너무 밝아 그 밝은 창을 통해 과연 동을 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먼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마치 신기루라도 보고 있는 것 같은 안개처럼 신비한 시선 때문에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코의 실루엣은 부드러우나 무엇인가 결심하고 곧 실행에 옮길 사람처럼 입술을 꼭 다물고 있어 의지가 강하게 보인다. 검은 바지에 검은 블라우스만 입는 비대한 몸에 비해, 얼굴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작았고 예리하면서도 지적으로 보이며 신비한 아름다움이 번져나오는 것 같다.
벽에 길게 걸쳐진 줄에는 고구려 벽화와 전통 문양의 판화가 가지런하게 널려 있다. 크고 작은 전각도 보인다. 날개를 위로 세워들고 입을 벌린 채 무어라고 외치는 듯한 세발 까마귀의 배경은 붉은 해와 붉은 별자리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어울려 춤을 추는 것 같은 전각도 있다. 사냥과 춤과 일상생활 등 고구려의 조각들을 옮겨다 놓은 것 같다. 저기, 시간을 새기고 싶은데요. 동은 머리카락으로 반쯤 가린 얼굴을 약간 옆으로 하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새기지요? 그리고 보니 시간 속에 기억이 새겨져 있듯, 제가 하는 작업은 작은 공간이지만 시간을 새긴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각인된 시간을 언제든지 선명하게 찍어 볼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시간을 새기고 싶은데요? 리는 물에 젖는 느낌으로 말을 한다. 기다림의 시간 또는 만남의 시간……. 특별히 새기고 싶은 그림 있으세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언제나 피하는 리였지만 머리카락으로 가린 동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동은 십여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수렵도의 말을 보며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한다. 모르겠어요. 동은 무의식중에 말한다. 달리는 말을 새기면 어떨까요? 시간 속을 자유롭게 질주할 수 있는……. 악몽 같은 시간 속으로는 달려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나요? 좋은 기억만을 명중시키는 활도 새겨 드릴게요. 좋지요. 고마워요. 동은 밤새 비를맞고 들어와 따뜻한 아랫목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누그러짐을 느낀다. 기억의 시간을 새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제가 감사해야지요. 동은 전각을 파고 있는 리를 바라본다. 가로 세로 20㎝ 대리석에다 파기 시작한다. 리는 말을 완성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다. 동은 리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소파에 눕혀 준다. 동은 잠자는 모습을 지켜본다.
잠이 든 지 정확히 14분5초 만이다. 머릿속으로부터 두려움의 비명이 소용돌이친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귓속에서 뒤엉킨다. 전쟁터나 지옥에 온 것 같다. 그 소리는 점점 커다란 몸뚱이가 되어 리의 영혼까지 삼켜버릴 것 같다.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꼼짝할 수가 없다. 가위에 눌릴 때마다 리는 누군가가 좀 깨워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신음하면서 간절한 의식으로 몸을 비틀려고 하는 리를 동이 깨운다.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나중에 파세요. 이만 갈게요. 두려움에 발버둥질하던 자신을 깨워 준 동이 리는 싫지 않다. 리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금만 하면 끝나는 걸요. 말 타면서 활 쏘는 모습은 저의 전공이죠. 리는 전각을 완성한다. 먹을 묻혀 화선지에 찍은 후 동에게 보여 준다. 이 시간 안에서 살고 싶군요. 동은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온기가 느껴지는 시간의 단편이 각인됨을 느낀다. 동은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열쇠가게에서 왔다고 말한다. 아, 예. 비상열쇠를 모두 잃어 버렸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세 개나 되던 비상열쇠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하나 남은 열쇠마저 잃어버릴까 항상 불안해요. 리는 달빛처럼 희뿌연 목소리로 말한다. 열쇠 복사는 얼마든지 간단하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열쇠 잃어버릴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지요. 비밀번호로 여는 열쇠가 있으니까요. 리를 바라보며 말한다. 동은 풍성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리 안에서 태아처럼 몸을 반쯤 말고 한잠 푹 자고 싶다. 리는 동의 모습을 수렵도의 모델로 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한 번 갈게요. 리는 웃는다.
잠결에 가위에 눌린 리는 스포츠 모자를 쓴 청년이 와서 가게 앞에 포스터 붙이는 것을 본다. '아, 고구려'(해방 후 중국에 머물게 된 고구려 전문 역사학자들이 오랜 기간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예술전문가들과 합작하여 고구려의 벽화와 문화를 백두산 아래에 있는 고래실에 복원하였다. 남북통일을 앞두고 고래실의 벽화를 서울 코엑스에서 전시함.)이란 제목의 고구려 벽화 전시회다. 장소는 코엑스로 되어 있다. 리는 고구려 수렵도를 보러가기로 한다. 인스턴트식품으로 한참 폭식을 하고 있던 중학교 일학년 때였다. 미술책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무용총 수렵도에 끌려 고무 판화 시간에 수렵도를 했다. 고분 벽화인 그 그림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운동성과 고구려인의 기백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고무판을 파기 시작하면서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계부에 대한 증오와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마구잡이로 칼집을 내며 팠다. 미술 선생님은 수렵도를 망쳐놓았다고 타박했다. 리는 미술부도 아니면서 매일 미술실로 갔다. 미술실에는 대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리는 한 쪽 구석에 앉아 고무판을 파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무엇하러 왔느냐고 물었지만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포기한 듯 말을 걸지 않았고 선생님은 리에게 다른 작품도 해보라고 하였다. 리는 수렵도만 고집했다. 졸업할 무렵 선생님은 생명력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칭찬을 하며 처음으로 롤러를 손에 들려주었다. 그 후로 두 번 다시 미술실에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모든 것에 부족한 미숙아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을 피했다. 계부가 스무 살이나 어린 계모와 재혼을 하고 유럽의 어느 나라로 이민을 간 것과 그나마 재산의 일부를 리에게 상속시켜 준 것은 잘 된 일이었다. 다시 판화를 시작하였다. 리는 항상 세상이 판화를 하기 위한 고무판으로 보였다. 둥근 칼로 양각을 만들고 싶은 일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창칼로 찔러보기도 하였으며, 어떤 것은 끌칼로 아예 긁어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판화를 찍었을 때는 방향이 바뀌었다. 리는 완성한 판화를 꼭 찍어 보고 완전한 구도는 방향이 바뀌어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동물과 사람의 대칭 구도가 잘 되어진 수렵도를 생각하며 세상도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리는 수렵도의 활시위 장면은 누구를 향한 겨냥이 아니라 동물의 자연스러운 역동성과 어우러지는 픽션적 모티프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지탱할 활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리는 검은 잉크를 롤러에 묻히고 종이에 찍었을 때 그 흑백의 대비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리는 자신을 세상다운 세상으로 만드는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진실이라고 리가 믿는 것은 수렵도의 역동성과 균형미였다.
리를 보려고 망원경을 보던 동도 '아, 고구려' 포스터를 본다. 동은 경직된다. 포스터에 있는 용과 삼족오가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니 그림 아래에 '해뚫음무늬금동장식품'이라고 써져 있다. 하늘 위로 날아가는 불새 같은 용과 삼족오가 동을 보는 것 같다. 테두리의 둥근 선이 삼족오와 불꽃을 자궁처럼 부드럽게 감싸고 있으며 이미 한 마리는 승천한 듯 자리가 비어 있다.
코엑스 전시장 앞. 동은 불꽃같은 구름무늬에 매료되어 대형 포스터를 보고 있다. 불꽃 속에는 세발 까마귀가 있다. 불이란 태우기 위해서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 앞으로 리가 지나간다. 리의 몸에 불이 붙은 것 같다. 동을 보지 못한 리가 지나가고 동은 뒤를 따른다. 전시회 입구의 벽에는 고구려의 역사와 연대표가 걸려있다. 고구려 유물들이 전시된 입구로 들어서면 고구려의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서 있다. 리는 유리 안에 전시된 고구려 여자 앞에 섰다. 유리에 비친 리의 모습과 고구려 여자가 겹쳐진다. 리는 벽화가 전시된 곳으로 간다. 동도 유리에 비친 자신이 고구려 남자와 겹쳐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리를 따른다. 안악3호 무덤을 비롯한 몇 개의 무덤은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져 있었다. 미로같이 만들어놓은 여러 개의 무덤들을 지나가다가 리가 멈춘 곳은 무용총 수렵도 앞이다. 수렵도를 감격스럽게 볼 무렵 잠이 쏟아진다. 수렵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잠을 잔지 12분 만에 가위에 눌리기 시작하고 동은 바로 깨웠다. 리는 동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다.
시간이 되시면 차 한 잔하고 가세요. 함께 동의 가게로 간다. 리는 동의 불꽃 그림을 본다. 삶의 구비마다에서 이글거릴 듯한 불꽃은 예술적인 눈을 가진 리를 사로잡는다. 리는 그 불꽃을 전각으로 해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불꽃 그림만 그리세요? 네, 태워 버리고 싶은 시간이 있어서요. 동은 불꽃 그림을 선물로 준다. 저 사람도 잊어버리고 싶은 시간을 가졌구나. 열쇠에 대한 것은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왔음을 집에 도착하고 난 후 리는 깨닫는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린다. 리가 동을 초대한다. 동은 선물을 안고 빨간 장미 한 다발을 산다.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랜만에 하늘을 본다는 생각을 한다. 가슴에 따뜻한 모닥불이 타오른다. 머리를 묶고 신호등 앞에 선다. 두 개가 아래위로 붙어있는 회색빛 신호등을 동은 바라보고 있다. 빨간불인지 초록불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위에 불이 오면 멈추고 아래에 불이 오면 건넌다는 것을 동은 이미 알고 있다. 색상변환기술로 티브이, 컴퓨터, 휴대폰 등을 통해 색맹인도 정상인이 볼 수 있는 색의 이미지와 거의 동일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최근의 보도도 한줄기 빛으로 동에게 다가온다.
리의 작업실에 들어선다. 마음속에 쌓여있던 어둠이 낳은 시간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낀다. 동이 마주보고 있는 것은 리의 웃는 얼굴과 말을 탄 채 불꽃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동의 우람한 모습이다. 전각하기엔 큰 치수다. 불은 태우기 위해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타닥타닥 별똥별 같은 조그만 불씨들로 가슴에 모닥불을 피우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걸 요즘에 와서 많이 느껴요. 동은 태우고 싶었던 기억의 시간을 명중시킨다. 그리고 리에게 열쇠를 선물한다. 동은 문에 열쇠를 설치해 준다.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돼요. 화재감지기도 함께 설치되어 있어요. 이제 열쇠가 정말 필요 없게 되었네요. 동을 향해 웃으며 말한다. 리는 리라는 모습으로 동은 동이라는 모습으로 마주 본다.
봄이 올 무렵 리는 커다란 열쇠를 물고 초원을 달리는 말에 동과 리가 함께 탄 전각을 새겼다. 그 말은 시간 속 어디든지 달릴 수 있는 듯 자유롭고, 이글거리는 정열과 따뜻함으로 가득하다.
벚꽃 날리는 봄밤이다. 동에게서 전화가 온다. 리에게 창밖을 보라고 한다. 리가 창밖을 본다. 어디쯤에서부터 왔을까. 전대미문의 별들이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 창가에서 찰랑거리는 식물줄기마저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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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소설] "언어 거칠지만 결함 상쇄할 만한 문학적 깊이 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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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작가가 태어난다는 것은 언제나 긴장과 흥분이 따르는 일이다. 신인이란 기성문단의 틀에 박힌 창작방법을 뒤엎고 관습화된 상상체계에 도전함으로써 문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사람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응모작들을 읽은 첫 인상은 신인에게서 기대되는 자유로운 실험정신이나 과감한 작가의식이 대체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작품들이 단편소설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서사적 골격과 구성상의 밀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요즘의 세태를 반영한 것인지 모르나, 응모작 대부분이 이 시대의 사회현실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폭넓게 고민하려는 자세를 취하기보다 극히 개인적인 소외와 고독의 문제에 매몰되어 자폐적(自閉的)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 젊은이의 풍속도라 할 채팅이나 특정 사이트 등 인터넷 관련 소재가 자주 다루어지는 것도 그와 같은 안일한 글쓰기 태도의 결과라고 여겨진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음의 두 작품이 선자(選者)들의 시선을 끌었다. 물론 이 작품들도 위에서 말한 문제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진지한 극복의 노력을 통해 현대인의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사줄 만하다.
"외계인과 루시와 아내를 위한 디저트"는 비교적 짜임새가 있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작품이다. 죽은 아내를 대행하는 여자의 미묘한 감정변화도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고, 고양이와 식물의 생태도 인간들 간의 소통상실의 상황을 부각시키는 소도구로서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너무 밋밋하다. 당선작으로 문단에 내놓기에는 결정적인 포인트가 결여되어 있다. 아마 그것은 주인공 남자의 실체가 끝내 불투명하게 처리된 사실과도 관련되어 있을 터인데, 좀더 치열한 내공을 쌓아 다시 도전하기 바란다.
당선작으로 뽑은 '맥거핀'은 정교한 솜씨가 더 요구되는 작품이다. 언어구사도 아직 거칠고, 특히 도입부에서는 필요 이상의 현학취미를 노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러한 결함을 상쇄할 만한 문학적 깊이와 진정성을 이룩하고 있다. 선천적인 장애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닌 두 주인공이 그 상처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빠져들었던 각자의 자기몰입에서 벗어나 참된 내면적 화해에 이르는 과정은 진지하고 설득력이 있다. 정진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김주영(소설가), 염무웅(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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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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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소설] "미약한 작가, 소통의 시공간 향해 나아갈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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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의 꿈은 천문학자였다. 나는 그 시절 삼문동 둑길의 비스듬한 풀밭에 누워 신비로운 우주에 흠씬 젖어들곤 했는데, 한참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잔별들까지 보였다. 우주는 마음을 열고 다가갈수록 더 깊어지고 광활해지는 것 같았다. 천체망원경을 구입했을 즈음, 나의 초점은 별이 아니라 욕망들로 북적대는 구겨진 얼굴들과 최소한의 욕구도 해소되지 않아 눈물로 얼룩지는 얼굴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평화와 자유를 생각했고, 관계와 소통을 생각했고,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과의 유기적인 관계도 고민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주를 바라보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심히 세상을 바라보면 미세한 한 톨 먼지 입자의 파닥임도 감지할 수 있는데,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스스로가 하나의 우주였다.
이제 시작하는 미약한 작가가 이 시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상(李箱)과 아도르노를 넘어서 내가 닿게 될 미적 자율성과 사회성이 감동적으로 유동하는 소통의 시공간을 위해 총총하고 혁혁한 우주의 새벽으로 나는 출항하려 한다.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이런 큰 영광의 순간에 이르게 된 것은 모두 가슴 저리게 고마운 분들 덕분이다. 방의 벽면을 책으로 채워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주신 부모님 석인균과성소순, 위로가 되어주는 석혜경, 석정혜, 석혜숙, 석연정, 석종명과 친척들,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 서명자, 늘 배려로 감동시키는 사랑하는 남편 김세열, 문학하는 엄마를 보듬어준 눈물 나게 미안하고 고마운 아들 김의길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용기와 가르침을 준 문순태·유순영 선생님과 문학에 대해 성찰하도록 해주신 박양호·김동근 선생님, 따뜻한 사람들인 고재종과 곽재구와 김형중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자양분을 주신 신덕룡, 이은봉, 배봉기 등 광주대 문창과 선생님들, 이미란·임환모·노철·장일구 선생님을 비롯한 전남대 국문학과 선생님, 청강을 허락해 주신 철학과 선생님들, 곽경숙과 민혜숙 등 밤새 불러도 호명을 다 못할 선생님과 동료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도 감사하고 축복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직 뵌 적은 없지만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었던 염무웅·김주영 선생님께서 나의 부족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선해주신 것이다. 영광스럽고 행복하다.
■ 작가약력…
△1968년 경남 밀양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졸업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석연경(광주시 북구 일곡동) |